My Lucky Encounter From the Game Turned Into Reality RAW novel - Chapter 216
게임 속 기연이 현실로 216화
49. 공왕은 해결사(5)
[또 다른 침입자로군.]블랙드래곤의 말과 함께 검은 독수리가 빛에 물들었다.
그리고 그 빛이 가시자.
미궁 깊숙한 곳에 새로이 두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새로운 등장인물 가운데 은발의 잘생긴 청년이 예를 올리자 드래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있음을 확인해 놓고도 나타나다니. 간이 큰 건가? 아니면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건가.]드래곤의 심기를 거스르며 나타난 건 바로 아드리안과 아르시아였다.
이즈라엘은 그 두 사람의 등장에 크게 반가워하였지만, 그와 별개로 상황은 더 악화되었음을 직감했다.
[역시 살려줘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아.]블랙드래곤이 고개를 치켜들며 위협하듯 몸을 부풀리더니 소름 돋도록 무시무시한 마력을 끌어 올렸다.
금방이라도 이들에게 공격을 퍼부을 것처럼.
과정은 몰라도 아드리안과 아르시아는 분명 자신을 찾으러 이곳에 온 것일 터.
이즈라엘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괜히 엉뚱하게 은인까지 위기에 빠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일단 위협을 하시니 무장을 갖추겠지만, 결코 위대한 존재를 적대할 생각이 없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드래곤은 헛웃음을 흘리듯 콧바람을 내뿜었다.
네까짓 게 무장해봤자 무슨 변화가 있겠냐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드리안과 아르시아가 변신하듯 무장을 바꾸자, 드래곤의 반응이 달라졌다.
[대단하군, 오리하르콘과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장비라니.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양이 아닌데.]“혹시 블레이크 러셀이란 다크 엘프를 아십니까?”
[블레이크? 아아, 그 칼잡이?]“그 블레이크의 제자가 제 옆에 있는 여인입니다.”
마치 센척하는 양아치들이 누구 아냐며 지인의 이름을 동원하듯 아드리안도 제일 센 지인의 이름을 들먹였다.
그런데 이게 나름 효과적이었는지, 드래곤의 반응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래? 대단하군.]덕분에 이즈라엘 대통령과 안센 원수의 안색이 밝아졌지만, 어째서인지 아드리안과 아르시아는 자세를 낮추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설마 그 다크엘프의 이름을 들먹이면 휴식을 방해한 너희를 용서해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후웅!
그러면서 드래곤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왔다.
게임으로 치면 일종의 평타인 셈이지만, 어찌나 강력하고 실린 기운이 파괴적인지 아르시아는 뒤를 버텨주던 아드리안과 함께 길게 주욱 밀려났다.
콰아아앙!
시야를 가득 채운 육중한 크기의 꼬리는 마치 폭탄이 터진 것 같은 무시무시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만약 방패의 재질이 아다만티움이 아닌 미스릴이었다면 여지없이 파손되었을 만큼.
다행히 아다만티움 방패를 움켜쥔 아르시아는 크게 불편한 곳이 없어 보였다.
질량으로 보나 크기로 보나,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제법이야.]이대로 전투가 지속되면 자신들은 금세 짓이겨질 것이라 판단한 이즈라엘과 안센 원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즈라엘은 대외적으로 아드리안과 같은 등급의 마법사지만, 전투 능력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응?”
그런데 당장에라도 제대로 전투가 시작될 것 같던, 드래곤과 아드리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멀리 물러난 이즈라엘에게 들리지 않는 말소리로 서로 뭐라 뭐라 대화를 나누더니.
[하하하하하!]느닷없이 드래곤이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드래곤의 체구가 점점 작아지면서, 흑발을 허리까지 기른 남성으로 변모했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이즈라엘과 안센이 서로를 보며 물었지만, 답이 나올 리 없었다.
그래서 눈치껏 슬금슬금 조심히 다가갔다.
그랬더니…….
“자네 재밌는 사람이군.”
드래곤이 아드리안의 어깨에 팔을 걸치는 것 아니겠는가.
“저 두 분은 살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드리안이 이즈라엘과 안센을 가리키자, 인간 남성이 된 드래곤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지.”
마나의 맹세고 뭐고 필요 없었다.
그렇게 목숨을 부지한 이즈라엘 대통령과 안센 원수는 혼란스럽다 못해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드는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었으니…….
아드리안은 어쩌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대단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 * *
진짜 위험했다.
미궁 안에 드래곤이 있는 것만 해도 정상이 아닌데, 하필 이즈라엘 대통령이 그 드래곤과 눈 씨름을 벌이고 있던 것 아니겠는가.
그나마 눈앞의 드래곤이 괴짜여서 무사할 수 있었지, 만약 난폭한 성향을 갖고 있었다면 골로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즈라엘뿐만 아니라 나와 아르시아까지.
“그럼 또 보세.”
“네, 공국에 방문하시면 언제든 환영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자신을 ‘브랑기슈’라 소개한 블랙드래곤이 친우를 대하듯 내 어깨들 툭툭 두들기곤 이내 텔레포트로 모습을 감췄다.
브랑기슈는 별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미궁 대신 나와의 관계를 선택한 것이다.
“대,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즈라엘이 달려와 물었다.
그의 의문은 당연했다.
자신들을 죽이려던 드래곤이 아무 미련 없이 웃으며 자리를 피해줬으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저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거든요.”
“네?”
“어느 인어가 그러더군요. 특별한 물건을 주면 부탁 한 가지를 들어주는 드래곤이 있다고요.”
“그게 저 드래곤이란 말입니까?”
“네.”
설마 코랄헤임의 이에리아 넬슨 3왕자가 살기 위해 내뱉었던 정보가 이렇게 도움이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 드래곤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무엇을 드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이 부탁을 들어줄 정도면 엄청난 보물이겠죠. 제가 반드시 배상토록 하겠습니다.”
아니 꼭 그렇지도 않다.
론델에선 분명 구하지 못할 물건이긴 했지만, 지구를 오갈 수 있는 나는 쉬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니.
“아뇨,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드래곤에게 준 건 시계였다.
스위스제 오토매틱 시계.
만약 이에리아가 말했던 부탁을 들어주는 드래곤을 만나면 건네기 위해 미리 챙겨둔 물건 중 하나였다.
즉, 준비한 물건이 주인에게 갔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즈라엘 대통령님께서 공화국을 잘 이끌며 우리와 계속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 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즈라엘은 내가 드래곤에게 존귀한 물건을 넘겨주고 자신들을 살려달라 부탁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저의 친구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뭐라?’
‘그럼 브랑기슈 님께 그 물건을 손에 넣은 곳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브랑기슈는 괴짜 드래곤이다.
어쩌면 블레이크처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를 지상 최강의 생명체에게 소원 하나 내뱉고 작별할 생각은 없었다.
드래곤이란 존재는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지만, 블레이크와 셀린, 나와 아르시아가 파티를 맺는다면 충분히 드래곤도 사냥할 수 있으니.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로렌스 공왕 전하께 신세를 지고 말았네요.”
“아닙니다. 이 정돈 당연하죠. 대통령께선 내가 친우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이시니까요.”
“하하, 기쁩니다. 저를 친우라 생각해 주셔서.”
나는 굳이 이즈라엘에게 상세한 사실을 밝혀서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그가 내게 마음의 빚을 지닌 이상 언제고 도움이 될 테니까.
드래곤도 그렇고 대통령도 그렇고 다소 계산적인 친우 사이가 되었지만.
어쩌겠는가, 내 성향이 이런걸.
“리카르도 오르데인을 괴롭혀주고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리카르도의 이름이 나오자 이즈라엘의 미간이 분노로 좁혀졌다.
그가 이즈라엘을 이렇게 납치하지 않았다면 드래곤에게 위협을 받을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리카르도가 군을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대통령이 예정보다 빠르게 구조되면서 상황이 꼬였으니까요.”
“그 점은 괜찮습니다. 저도 철저히 대비를 해왔으니까요. 안센 원수와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면 해결될 일입니다.”
드래곤에 의해 공기 취급을 받았지만, 안센 원수는 공화국 군부의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였다.
“필요하시다면 힘을 보태드릴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미 충분히 도움을 받았는걸요. 뒷일은 맡겨 주십시오. 이 정도도 해결하지 못하면 어찌 지도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납치를 당한 시점에서 지도자의 체면은 모두 날아간 셈이지만,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즈라엘은 자신의 힘으로 뒷일을 해결하고자 했다.
나는 그를 존중해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변수를 대비한 제안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정 상황이 어려우면 부끄럽지만 친우의 힘을 빌리죠.”
나는 악수를 청해오는 이즈라엘의 손을 맞잡았다.
* * *
[프리우스 공화국 다시금 내전?] [이즈라엘 대통령: 친우인 아드리안 로렌스 공왕의 도움으로 안센 원수와 함께 미궁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나와 안센 원수를 납치한 범인은 리카르도 최고의원이며, 그런 그를 라미너스 장군과 에이트린 장군 등 급진파의 오러마스터들이 도왔다.] [리카르도 최고의원: 아무래도 대통령께선 음모론을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공화국을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현장을 뛰어다니는 우린, 대통령처럼 한가하지 않다.] [이즈라엘 대통령: 내가 납치를 당한 동안 전쟁을 준비한 것만 봐도 속셈이 뻔하지 않은가. 생각이 깨어있다면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뭐긴, 국민 고혈을 빨아먹은 페어몬트의 후인다운 태세지.
└웃기지 마라, 공화국을 다시 봉건제로 회귀시키려는 이즈라엘 대통령의 음모가 분명해.
-뇌가 있으면 제대로 생각을 해라. 이즈라엘 대통령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정책 중에 잘못된 게 있어? 아니면 부정을 저질렀어? 그냥 세뇌된 너희는 그렇게 믿고 싶은 것뿐이야.
-구시대의 하수인 새끼들, 너희는 새 시대에 필요 없는 자들이다.
└구시대의 하수인은 너희겠지. 페어몬트 대통령 때문에 삶이 얼마나 빡빡했는데, 그걸 잊고 페어몬트 시대로 돌아가자니, 미친 거 아냐?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상 국민의 의견이 양분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선동을 했다고 한들 페어몬트를 떠받드는 리카르도 지지자가 많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이즈라엘이 왕가 출신이라곤 하지만, 그 왕가가 있었기에 지금의 프리우스 공화국이 세계 4대 강국 중 한 곳이 됐으며, 민주 공화제가 도입된 게 아니던가.
정작 살기 좋았던 시절은 왕가가 굳건히 버티던 때였고, 그 왕가의 후손이 이즈라엘인데, 독재로 나라를 좀먹은 페어몬트를 지지한다는 게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들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단지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 아닐까요?”
공왕성 집무실에서 온라인 기사를 보며 쯧쯧 혀를 차니, 귀신같이 내 생각을 알아챈 워커 재상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결국 이성파 대 감정파의 싸움이란 건가요?”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워커 재상이 하하 웃어도 나는 한숨만 내쉬었다.
이럴 땐 역시 여론 조작만 한 방법이 없는 것 같지만, 이즈라엘 대통령이 직접 해결하겠다고 한 이상 나는 이후의 사태를 방관해야 했다.
“복잡한 기사 보면서 인상 쓰지 마시고, 좋은 기사들을 보십시오. 예를 들면 이런 거 말입니다.”
그러면서 워커 재상은 내게 한 기사를 공유해 주었다.
[자신의 사람을 끔찍하게 아끼는 로렌스 공왕. 이번에도 이즈라엘 대통령을 구하다.]-로렌스 공왕형 개 멋지네. 구출 전문가.
-성녀에 이어 이번엔 공화국 대통령까지 ㅋㅋ
-진짜 지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오명도 아랑곳 않고 나서는 듯.
└지난번 코랄헤임 국왕일가 납치사건은 진짜 ㅋㅋ
기사와 거기에 달린 댓글을 본 나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더불어 좋아요 버튼 누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