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14)
14. 대수림(3).
“하아!”
커널 대령의 한숨이 깊다.
그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새벽같이 장교들을 불러모았다.
“피해는?”
“아직은 없습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갈 것 같습니다.”
“그럼 좋으련만······.”
불침번을 더 많이 배치하고 기간트도 3교대로 최대한 빈틈없이 배치했지만, 지금까지 매일 한 명의 병사가 어김없이 사라졌기에 천막 안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오늘은 제발 병사들이 무사해야 할 텐데······.’
커널 대령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젊은 장교가 말했다.
“이대로 기다릴 수만 없습니다.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맞습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너무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서 잡아야 합니다.”
커널 대령과 황립 사관학교 동기지만 나이가 5살이나 많은 라그르 중령이 인상을 찡그리며 장교들에게 말했다.
“어허! 누가 그걸 모르나 잡을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지! 놈이 귀신 같아서 기간트만 있으면 그 근처엔 나타나지 않아.”
그때 한 젊은 장교가 손을 들고 말했다.
“차라리 야영지 주변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뭐?”
“괴수가 번번이 나무 위로 올라가 놓치고 있으니, 아예 주변 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면 도망갈 길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놈이 숨어 있을 장소도 사라지고요.”
몇몇 젊은 장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커널 대령은 짧은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여기 나무는 높이가 2, 300미터에 지름이 10미터가 넘는다. 게다가 대수림의 나무는 단단하기가 강철에 버금간다고 하지. 여기 있는 기간트가 모두 달려들어도 나무를 베고 치우는데, 며칠은 걸릴 거야. 그리고 그건 전진 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석 배터리를 다 쓰자는 말이고.”
기간트가 그냥 걷는 것과 전투나 도끼질 같은 격렬한 활동을 할 때 마석 배터리 소모량은 천지 차이였다.
방금 젊은 장교가 말한 것은 빈대를 잡자고 초가집을 전부 태우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커널 대령은 이런 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부하들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부분 동부 전선에서 자기 밑에 있던 기간트 장교들이었기에 전투 경험은 많았지만, 대수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대수림 경험이 있는 장교는 라그르 중령뿐이었다.
그때 참모인 호프만 대위가 말했다.
“함정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함정?”
“땅을 파고 함정을 곳곳에 만들고, 미끼를 두는 겁니다.”
갑자기 라그르 중령이 발끈했다.
“뭐라? 지금 병사들을 미끼로 쓰자는 말인가?”
“아니요. 우리에겐 마차나 수레를 끄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을 미끼로 쓰고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 괴수가 함정에 빠지면 사방에서 달려드는 겁니다.”
“하지만 놈은 지금까지 인간만을 사냥했네. 말을 사냥하지 않으면 헛수고가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나마 호프만 대위의 방법이 괜찮았는지 커널 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호프만 대위의 방법대로 해봅시다.”
물론 괴수가 함정에 걸릴지는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안 되면 다른 표지석을 찾아 이동하는 게 어떻습니까?”
라그르 중령이 물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지.”
“네. 사령관님.”
라그르 중령은 깍듯하게 대답했다.
커널 대령은 동기인 라그르를 인간적으론 좋아하지만, 그처럼 되고 싶진 않았다.
나이도 5살이나 많고, 진급도 동기생 중에서 가장 느렸다. 게다가 그는 기간트 기사들이 모두 기피하는 장벽 너머 전진 기지에 10년 이상 근무했기에 세상 물정에 어두웠고, 사교성도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 대수림 길 안내자이자, 전진 기지에서 자신을 도와줄 부관으로 임명됐다.
보통은 동기생의 부관이 되는 치욕을 맛보기 전에 지방 영지군으로 전역하거나 아예 군을 떠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는 넉살 좋게 동기생과 함께 대수림으로 가게 돼서 다행이라며 흔쾌히 허락했다.
커널 대령은 라그르 중령이 고맙긴 한데,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대수림에서 딱 3년만 버티자.’
자신은 황립 사관학교 출신에 남부 드와이트 대마경에서 활약하고, 동부 전선에서 윌리엄 중장 밑에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았다.
동기들이 하나둘 별을 달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곧 자기 차례가 올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차고, 룩급 기간트를 몰 수 있음에도 장군 진급은 하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윌리엄 중장 라인이 썩은 동아줄인 것을 알았다.
물론 자신은 가문도 변변치 않고, 오리지널 기간트에 탈 실력도 부족했기에 라인을 옮길 선택지는 없었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윌리엄 중장이 제국의 실세들만 갈 수 있다는 헬다임 장벽 사령관이 되었다.
이건 기회였기에 부하들과 윌리엄 사령관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오자마자 정말 기회를 잡았다.
전진 기지 사령관은 고되고 힘든 자리였지만, 3년 이상 근무한 전임 사령관들은 모두 별을 달았다.
교대하고 장벽으로 돌아가면 고생했다는 의미로 황제께서 별을 달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전진 기지에서 3년만 버티면 별을 단다.
그런데 부임하기도 전에 최하급 괴수 한 마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줄은 몰랐다.
“와아아아!”
갑자기 병사들의 함성이 들리고, 천막 밖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소리야?”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라그르 중령이 일어섰다.
“아니, 같이 나가지.”
커널 대령이 지휘관들을 데리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밖엔 많은 병사가 이곳을 향해 몰려들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때 젊은 중위와 여 하사관이 커널 대령에게 다가왔다.
“충! 타일러 빈스 중위 보고드립니다.”
“자네가 무슨 일인가?”
커널 대령은 눈앞에 젊은 장교를 탐탁지 않아 하고 있었다.
정보국의 정보를 이용해 암살미수 사건을 해결한 것이 뻔했지만, 윌리엄 사령관은 이 장교를 너무 믿고 있었고, 이번엔 중요한 비밀 임무까지 맡았다.
게다가 황립 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도 아니고, 기간트도 타지 못하는 놈이 4개월 만에 중위라니!
분명 남부의 명문가인 빈스 가문이 뒤에서 움직였을 것으로 생각했다.
“괴수를 잡았습니다.”
“뭐?”
그때 병사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작업용 기간트와 십여 명의 병사들이 죽은 표범 괴수를 질질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커널 대령은 눈이 똥그래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여기 병사들과 힘을 합쳐 놈을 잡았습니다. 원래는 두 마리였는데, 하나는 죽였고, 다른 한 마리는 치명상을 입고 도망쳤으니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걸 자네들끼리 했다고?”
괴수를 잡은 건 장교와 하사관 한 명, 열세 명의 할버드병이 전부였다.
수십 대의 기간트도 하지 못한 일을 겨우 열다섯 명이 해낸 것이다.
그때 글래디스가 나섰다.
“모두 타일러 중위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중위님께서 함정을 만들고 전투를 지휘했기에 괴수들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타일러의 공을 빼놓지 않았다.
커널 대령이 타일러 중위를 빤히 쳐다보자, 타일러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병사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가만있을 순 없었습니다. 허락 없이 병력을 움직인 것은 죄송합니다.”
“아니야. 잘했네. 전진 기지에 도착하면 참여한 병사들 모두 포상을 내리지.”
“충! 감사합니다.”
보고가 끝나자, 글래디스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타일러의 팔을 잡고 죽은 표범 괴수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녀는 타일러의 손을 번쩍 들었다.
“타일러 중위님께서 괴수를 잡았다!”
“타일러 중위님 만세!”
“와아아아아!”
병사들이 타일러를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커널 대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생각해보니, 윌리엄 사령관도 황립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었고, 기간트도 타지 못하는 참모 출신이었으며, 가문도 변변치 않았지만, 중장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지금은 제국의 실세 중의 하나인 장벽 사령관이 되었다.
오늘 문뜩 정보국 장교에 불과한 타일러의 활약을 보고, 자신이 라인을 잘못 타서 별을 달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던가······.’
그리고 커널 대령은 눈앞에 젊은 장교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
닷새 후 거짓말처럼 강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얕은 시냇물 수준이었기에 기간트의 도움을 받고 손쉽게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긴 행군이 시작됐다.
우린 카야킨 전진 기지로 가는 가장 안전하다고 알려진 루트로 이동했지만, 중간에 거대 뱀 괴수와 고릴라 괴수를 만나 싸우기도 했고, 성인 머리통만 한 수백 마리의 벌레 떼와 싸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십여 명의 병사가 죽고, 비숍급 기간 한 대와 폰급 기간트 몇 대가 상했다.
난 평소 주변에 있는 기간트 장교들과 운명의 실을 연결해 놓은 상태였다. 혹시나 전투 중 기사가 죽으면 마법인형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어차피 전사한 사람을 다시 쓰는 일이니,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사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기간트는 너무 튼튼했기에 마나를 품은 마법인형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그리고 병사들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끔찍한 더위를 버티지 못하고 열사병으로 죽고, 독충과 독사에 물려 죽고, 물을 잘못 마셔 죽고, 괴수에 잡아 먹히고, 이름 모를 병으로도 죽었다.
난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시원한 조끼도 있었고, 전생처럼 뿌연 방사능 낙진과 화산재는 없으니까.
그래도······.
“하아! 시원한 콜라 한 잔 마시고 싶네.”
지금 기분이면 2리터짜리 페트병도 단숨에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얼음 가득한 팥빙수나 아이스크림이라도······.
전생 때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모든 것이 풍족했던 시대가 있었고, 모두 살아 있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가 때론 사무치게 그립다.
쿵! 덜컹! 덜컹!
마차의 흔들림이 심해지는 것이 길이 점점 더 험해지는 것 같다.
‘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냥을 한다는 거지?’
이정도 대규모의 기간트 부대가 함께 해도 하루에 5km를 전진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대수림은 극악의 환경이었고, 그나마 카야킨 전진 기지까진 괴수의 출몰이 뜸한 지역이라고 했다.
그럼 카야킨 전진 기지보다 더 멀리 있는 전진 기지론 어떻게 가고, 또 어떻게 괴수를 사냥하고 부산물까지 챙기는지 의문이었다.
‘이번에 장벽으로 돌아가면, 한 1년은 대수림으로 오지 않는 게 좋겠어.’
엄살이 아니라, 어제 난 벌레에게 물려 죽을 뻔했다.
볼일을 보려고 엉덩이를 깠는데, 풀숲에서 팔뚝만 한 독지네 한 마리가 급습했다.
다행히 혹시 몰라 배치한 사마귀 꼭두각시가 지네를 재빨리 낚아챘기에 정말 살짝 물렸다.
하지만 엉덩이가 얼얼하고 알싸한 그 고통은 아직도 남아 있었기에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심히 괴롭다.
어서 빨리 임무를 끝내고, 헬다임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당분간 사용할 꼭두각시 마법인형은 충분했다.
인형의 집을 열었다.
[암살자(lv.6) 꼭두각시] [사마귀(lv.7) 꼭두각시] [표범(lv.5) 꼭두각시]휘릭! 탁!
‘오! 좋은데!’
암살자가 던진 단검이 구석에 세워둔 나무토막에 정확히 박혔다. 이젠 제법 숙달됐기에 7미터 안이라면 100발 100중이었다.
암살자 꼭두각시의 레벨은 6에서 멈췄지만, 다른 무기를 배워두면 실전에 유리했기에 단검 투척술은 물론이고 검과 창까지 틈틈이 훈련하고 있었다.
암살자는 나와 영혼 이동 싱크로율도 좋고, 지금 내 꼭두각시 중에서 자동인형으로 업그레이드할 가능성이 컸지만, 아직 각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에 더 많이 굴러야 했다.
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영혼 이동을 자주 하는 것이기에 틈나는 대로 스킬을 사용했고, 덕분에 나도 전투 감각을 조금씩 끌어 올렸다.
사마귀 꼭두각시 역시 레벨 7에서 성장이 멈췄다.
그랬기에 날아다니며 칼날 같은 두 앞발을 휘두르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사마귀는 저번에 표범 괴수를 잡는데, 유인도하고 눈을 찔러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중에서 적을 기습하는 스킬을 연마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표범 꼭두각시가 좁은 방을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었다.
표범 괴수는 몸 길만 3미터에 앞발의 크기가 사람 얼굴만 하다. 이놈의 앞발에 맞고도 멀쩡한 내가 대단······, 아니 조끼가 대단하다.
난 그날 표범 괴수를 허수아비로 만들자마자, 인형의 집에 넣었다.
주변은 어두웠고, 사체는 감쪽같이 사라졌기에 괴수가 크게 다치고 도망쳤다고 둘러댔다.
표범 허수아비는 몸이 너무 많이 상했고 덩치가 커서 그런지 완전히 치료되는 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곧바로 꼭두각시로 만들었고 지난 몇 주간 훈련했다.
하지만 아직 레벨은 5.
지금 내 인형의 방 한쪽 길이가 7미터로 3미터 크기의 표범 괴수가 달리고 훈련하기엔 턱없이 좁았기에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괴수를 풀어놓고 훈련할 수도 없고.
‘언제 전생처럼 대궐 같은 인형의 집을 만들까······.’
어서 표범 꼭두각시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큰 인형의 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도 이놈이 내 마법인형이 되었기에 이제 누구든 날 상대하려면 최소 분대 병력은 보내야 할 것이다.
게다가 표범은 성장 가능성이 아직 많이 남았기에 레벨이 지금보다 배 이상 올라간다면 소대 병력도 충분히 씹어먹을 수 있었다.
‘크크큭!’
흐뭇한 웃음이 지어졌다.
괴수 마법인형이 이렇게 좋을 줄 알았다면, 전생에도 시도해볼걸.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쿵! 쿵!
천장에서 두드리는 소리.
“타일러 중위님!”
“뭔데?”
“카야킨 전진 기지가 보입니다.”
“뭐? 도착은 저녁이라며?”
“일단 올라와 보십시오.”
서둘러 마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무들 사이로 정말 거대한 나무가 우뚝 솟아오른 것이 보였다.
“허! 저게 산이야? 나무야?”
“다들 오해하는 것이 대수림의 나무가 크다고 다 거신목이 아닙니다. 저 나무처럼 수만 년은 자라야 진짜 거신목이라 부를 수 있는 거죠.”
“수만 년?”
대체 높이가 얼마나 될까?
아직 대여섯 시간은 더 가야 했기에 여기서는 높이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 카야킨 전진 기지가 저 나무 근처에 있다는 건가?”
“아니요. 저 거신목 속에 있습니다.”
“뭐? 나무 속에?”
글래디스가 말하길 카야킨 전진 기지는 2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곳이라 했다.
원래 마석 광산이 있던 자리였는데, 파도 파도 계속 마석이 나오자 아예 기지로 만들었고, 입구는 좁고 거신목이 워낙 크고 단단해 괴수로부터 침입도 막아주기에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누구는 끔찍한 감옥이라고 말하지만, 제가 볼 땐 거긴 안식처입니다. 지상보다 덜 덥기도 하고, 술집도 있고, 여관도 있고, 심지어 여자도 있죠.”
“여자?”
“수천 명이 사는 곳에 여자가 없겠습니까. 그냥 하나의 도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 어서 뜨끈한 물에 담그고 싶네요.”
글래디스는 벌써 목욕할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하긴 나도 제대로 씻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는 것이 유일한 청결 활동이었고, 여자도 예외는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도 이제 곧 목욕물에 몸도 씻고, 시원한 방에서 잠도 편히 잘 수 있겠지······.
***
[카야킨 전진 기지]거신목 아래 드러난 2개의 거대 뿌리 사이, 높다란 검은 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 벽 가운데 있는 커다란 성문 앞에 선두 기간트가 도착했지만, 어쩐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거대한 공터에 마차들이 속속 도착하고, 영지의 기간트와 병사들도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간 글래디스가 돌아왔다.
“무슨 일이야? 왜 안 들어가는 건데?”
“전임 사령관과 기간트 장교들이 요새 문을 닫고 농성 중이라고 합니다.”
“뭐? 농성?”
“자신들은 새로운 사령관이 온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기지를 비워줄 수 없다고, 그냥 장벽으로 돌아가라고 한답니다.”
“이런 미친! 두 달 동안 힘들게 왔는데, 그냥 돌아가라고?”
그동안 대수림에서 고생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깊은 빡침이 몰아쳤다.
“그리고 커널 대령님께서 찾으십니다.”
“알았다. 바로 가자.”
주먹을 불끈 쥐고, 곧바로 커널 대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