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ighbours RAW novel - chapter 94
파편이 내 눈을 찌를 듯 좀 더 가까워지는 순간, 나는 소리쳤다.
“소담이 걱정은 안 하세요? 그걸로 날 조금만 다치게 하면 경찰에 바로 신고하고, 외숙모를 감방에 처넣을 건데.”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위기감 속에서 나는 오직 그녀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으시겠어요? 나한테 이러시면 윤소담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뭐…?”
추성희가 눈을 부릅뜨고 사시나무처럼 전신을 떨었다. 두 눈은 이미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내가 정말 윤진하를 죽게 했다면, 날 해치면 안 될 텐데요? 그럼 배후에 있는 그 사람의 다음 목적은 윤소담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연우재든, 권이결이든, 외숙모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든!”
“너… 지금 뭐라고….”
병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틈을 타 나는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 힘껏 비틀었다. 아아악! 고통에 찬 외마디 비명에 이어, 병이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둔중하게 울렸다.
그녀가 다른 물건을 잡지 못하도록 재빨리 제지하려 했지만 추성희가 좀 더 빨랐다. 그녀는 흉기가 될 만한 뭔가를 집는 대신 내 멱살을 잡았다. 다음 순간, 공기를 찢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얼굴에 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이 개같은 년! 너 같은 게 어떻게 감히…. 네가 죽었어야 해! 우리 진하 대신, 네가!”
그녀를 얕봤던 게 무색할 만큼 엄청난 힘이었다. 나는 두 번 더 따귀를 얻어맞고 나서야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눌 수 있었다.
“그만… 그만하세요!”
나도 추성희를 때릴 순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맹렬하게 달려드는 앙상한 손목을 꼭 잡고 저만치 밀쳐 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모르겠다. 아주 조금은 죄책감이 있었는지도. 내가 직접 사주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권이결이 내 슬픔과 상실을 달래 줄 요량으로 그 사고를 꾸민 건 맞으니까.
“소담이 건드리면 너 가만 안 둬! 아니, 그 전에 너부터 죽여 버릴 거야!”
추성희는 미친 사람처럼 아악, 고함을 내지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내게 집어 던졌다. 피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돌덩이 같은 오브제 석상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리려는 순간, 나도 벽난로 위에 장식된 사슴뿔을 추성희에게 들이밀었다. 더는 방어만 할 순 없었다.
“그만! 거기서 멈추지 않으면 경찰 부를 거예요. 외숙모가 아들의 죽음으로 정신이 이상해져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다가 날 범인으로 몰고, 폭행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진술하겠다고요!”
“뭐, 이년이 지금 어디서…!”
“세상에!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그때 경찰보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용 여사와 장 집사가 부리나케 거실로 뛰어들었다. 아수라장이 된 실내를 보고 아연실색한 것도 잠시, 장 집사가 내게 달려와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 사모님이 이렇게 하셨어요? 네?”
“너!”
추성희는 그 물음엔 대꾸도 않고, 엉망이 된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내 말 잘 들어. 윤부경은 저러다 뒈지든 말든 상관없어! 그 인간 딸도! 비서 년이랑 놀아나 태어난 아이 따위 알 게 뭐야, 난 할 만큼 했어! 그만하면 충분히 친엄마 노릇 해 줬다고!”
역시. 윤소하가 친딸이 아니었구나. 소하 본인도 알고. 그래서….
“하지만 우리 소담이는 달라! 진하에 이어 소담이까지 잘못되면, 내가 너 절대 가만 안 둘 거야. 아니지. 진하의 한을 먼저 갚아 줘야 우리 소담이한테 해코지 못 하겠지?”
철저히 관리하고 가꿨던 이목구비는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이 순간, 추성희는 이빨을 한껏 드러내고 숨을 쉭쉭 내쉬는 악귀 같았다.
“먼저 연우재…. 그놈부터 가만 안 둘 거야. 보호해 줄 사람부터 없애고, 그다음… 네 차례야. 너도 진하랑 똑같이. 아니, 훨씬 더 잔인하게 죽여 줄 테니까.”
“…….”
“내가 못 할 것 같니? 천만에. 한라그룹만큼은 못 돼도, 내 친정에도 돈, 힘, 모두 있을 만큼 있어. 내가 쥔 약점으로 움직여 줄 권력자들… 한라그룹에 버금가는 사람들이 연우재랑 너 하나쯤 못 건드릴 것 같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협박엔 담담했지만, 연우재를 건드리겠다는 선언엔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갈 협박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가 말한, ‘내가 쥔 약점’은 금고에서 빼낸 컨피덴셜 박스 속 자료일 것이다. 뭐가 됐든 윤성일보가 최후의 보루로 남겨 둔, 결정적인 증거들 말이다.
“연우재는 아무 잘못 없어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아무에게도 사주한 적 없다고…!”
나는 최대한 추성희의 협박과 의지를 꺾을, 현실적인 명분을 생각해 내려 애썼다.
“결국 외숙모와 소담이가 다시 보복을 당하게 될 거예요. 한라그룹의 후계자를 건드리면 그쪽이 가만있을까요?”
-나비, 내가 대신 복수해 줬어.
권이결의 차분하던 저음이 동시에 떠올랐다. 차라리 권이결이 했다고 털어놓을까. 연우재가 타깃이 되지 않도록.
“연우재 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윤진하를….”
권이결의 뒤에는 거대한 세력이 버티고 있다. 한라그룹과는 다른 종류의, 일반인들로서는 상상조차 못 할 엄청난 배경이 아닌가.
권이결은 쉽게 당하지 않을 거야. 어떤 면에서는 연우재보다 그가 더 안전해. 그러니까….
“윤진하를….”
윤진하를 죽인 건 권이결이에요.
그러니 연우재는 건드리지 말라고 쐐기를 박으려 할 때였다. 추성희가 입을 열었다. 눈물을 흘리며 이를 가는 얼굴은 분노가 형상화된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보아하니 연우재에게 아주 흠뻑 빠졌구나. 하하…. 남자한테 미친 건 영락없이 지 애미랑 똑같네.”
“…….”
“그럼 떠나. 연우재와 헤어져서 멀리 사라지라고!”
연수향과 똑같은 말에 순간 숨을 참았다. 어조와 상황은 달라도 결국 요구 사항은 같았다.
“그래. 네가 진짜 우리 진하를 죽게 했는지, 그건 모르는 일이야. 증거가 없으니까.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겠지, 알아. 하지만 네가 행복해지는 꼴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어.”
“…….”
“우리 진하는 그렇게 불쌍하게 죽어 버린 마당에 감히 네가… 너 따위가. 그렇게 죽고 못 사는 남자랑 단 하루라도 즐거운 꼴을 볼 바에는….”
시뻘게진 눈, 흐트러진 숨결 사이로 추성희가 다시금 쐐기를 박았다.
“연우재 많이 좋아하니? 사랑해? 그럴수록 더 헤어져야 될 거야! 내가 절대 니들 둘 행복하게 두지 않을 거니까.”
“세상에, 사모님! 왜 이러시는 거예요?”
보다 못한 장 집사가 눈을 크게 뜨고 나와 추성희 앞을 가로막았다. 그동안 별의별 일들이 무수히 있었어도 최대한 부드럽게 중재하려 했지,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선 적은 없었다.
“진하가 그렇게 된 거랑 은효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시면 정식으로 경찰에 수사를 맡기시고….”
“사모님이 미국에서 낙태시킨 그 여자애, 잊으셨어요? 진하 옛 여자 친구요. 그 집이 조폭이니 뭐니 말 많았는데 그쪽일 수도 있잖아요.”
용 여사까지 나섰지만 추성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닥쳐! 니들이 뭘 알아! 자식새끼 잃어봤어?”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손에 잡히는 대로 다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장 집사와 용 여사는 재빨리 나를 보호하듯, 내 몸을 부축해 거실 밖으로 이끌었다.
“나가자, 은효야! 여기 더 있어 봤자 좋은 꼴 못 보겠어.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추성희는 쓰러지듯 바닥에 앉아 오열했다. 진하, 진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아들을 애타게 부르짖는 목소리에 한이 가득 맺혀 있었다.
“내 아들, 진하…. 이제 정신 차리고 공부도 열심히 할 거라고 했는데.… 하루아침에 그렇게 가 버리다니, 불쌍한 내 아들… 하아….”
내가 아주머니들을 뒤따라 계단을 반쯤 내려왔을 때였다. 미치광이처럼 울부짖는 소리 끝에 쿵, 쿵, 발소리가 뒤통수를 울렸다.
“너! 명심해!”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추성희가 저승사자처럼 새카만 낯빛으로 나를 섬뜩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우재랑 헤어져. 너도 제일 소중한 걸 잃어야지. 공평하게.”
“…….”
“안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지켜봐.”
“외숙모. 아니… 추성희 씨.”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시조카도, 뭣도 아니었다.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뛰는 와중에도, 나는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럼 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것 같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