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24
124
오지게 잘해요.
BHL엔터의 사무실은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사무실의 불은 여전히 밝았다.
“우리 애들 아직 안 나왔죠?”
“아까 VCR 조금 나오고 아직 무대는 안 나왔어요.”
소속사 직원들과 서수련 이사는 K-pop CON의 본방사수를 위해 회의실에서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있었다.
“N넷 로고 되게 어색하지 않아요?”
“N넷이 그렇게 쉽게 손을 내밀 줄이야.”
직원들은 생소하다는 눈빛으로 화면 왼쪽 상단에 있는 방송사 로고를 바라보았다. 서수련도 마찬가지였다.
“어, 우리 애들 아니네.”
“진짜 엔딩 쯤에 나오는 거 아니에요?”
K-pop CON은 무려 2시간이 넘게 하는 온라인 콘서트였다. 하지만 방송 시간이 3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아위의 무대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방송순서에서 늦게 나오면 나올수록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진짜 이렇게 빨리 뜰 줄 몰랐는데.”
요즘 서수련의 말버릇 중 하나였다.
“여기도 아까 다른 그룹이랑 겹치지 않아요?”
“저런 걸 웨스턴 컨셉이라고 하죠?”
“스테디긴 한데 하필 겹쳐서 나왔네.”
서수련과 직원들은 아위가 나오기 전, 다른 그룹들의 무대를 보고 분석했다. 몇 팀의 무대 끝에 드디어 아위의 무대 전 VCR이 송출됐다.
소속사에 요청한 월드 투어 영상과 해외팬들의 모습이 나오고, 글로벌 보이 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NEXT Stage : AWY]“…진짜 엔딩이네.”
N넷이 먼저 화해하자고 손을 내민 것도 아직 신기한데 심지어 순서까지 마지막으로 빼다니.
화면 한가득 이안의 얼굴이 잡혔다. 이안은 눈을 내리깐 채로 마이크를 들었다.
“와….”
“진짜 얼굴 미쳤다. 얼쳤다 얼쳤어.”
이윽고 이안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도입부를 부르자, 직원들이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난 가끔 쟤가 현실 인물 아닌 거 같아요.”
“저도요.”
“주민 씨는 어쩜 저런 애를 데려왔지?”
이안을 데려온 박주민은 신인 개발팀 팀장으로, 몇 달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떠들며 길거리 캐스팅을 했었다. 요즘은 차기 그룹의 데뷔조를 꾸릴 시기라 잠시 쉬는 중이었다.
“진혁이 날아다니네.”
깁스를 푼 박진혁은 멤버들과 뛰어다니며 무대를 휘어잡고 있었다. 서수련이 흐뭇하게 웃었다.
“심한 부상은 아니어서 다행이죠?”
“그렇지.”
“악!”
서수련이 소리를 질렀다. 문 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병헌 대표가 서수련의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수련의 맞은 편에 앉은 직원들이 킥킥 웃었다.
“아 놀랐잖아요!”
“대표님 오셨어요?”
오랜만에 이병헌 대표가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차기 그룹 런칭을 위해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바빴다.
“내 밥도 있어?”
“여기요. 특별히 갈비탕으로 준비했어요.”
“땡큐.”
이병헌이 지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투자자들과 만나면 뭘 하겠나. 식사였다. 그리고 식사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어때요?”
“애들이 잘해서 순조롭지. 다들 돈 주겠다고 난리야. 근데 술 때문에 죽겠어. 간이 술에 절여진 것 같아.”
그는 갈비탕을 뜯자마자 국물부터 후루룩 마셨다. 티브이 화면 속에서는 아위의 마지막 곡을 끝으로 방송이 끝났다. 바로 광고로 넘어갔는데, 아위의 화장품 광고였다.
“크, 나는 쟤네들만 보면 밥 안 먹어도 배불러.”
말은 그렇게 해도 갈비탕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모습에 직원들이 하하 웃었다. 속이 한결 편안해진 대표는 품 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일단 우리 투자자들은 이 정도로 하자고.”
아위가 번 돈은 그들의 활동에 아낌없이 재투자하고 있었고,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론칭하는 것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 투자는 필수였다.
서수련은 이병헌이 건네준 투자자 목록에 의문스러운 얼굴을 했다.
“예웬리 쪽에서도 투자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중국 자본은 이상하게 찝찝해.”
대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웬리는 이안을 ‘우상유니’에 트레이너로 꽂은 이후로 BHL엔터에게 협력 제안이라든가 투자 의사를 꾸준히 보내고 있었다.
“N넷도 예웬리 입김이 들어간 것 같더라고.”
“진짜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정황상 그래.”
예웬리는 중국의 미디어 재벌, 신화 미디어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중국 기업이 으레 그렇듯 넘쳐 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한국까지 돈을 뿌려 대고 있었는데, 그들은 N넷의 본사, C기업과 협력 관계이기도 했다.
어쩐지 돌아가면서 소속사랑 싸우던 N넷이 그렇게 쉽게 ‘주작’ 사태를 용서해 주는 것이 수상하긴 했었다.
“말로는 우리 애들 팬이라고 하는데… 이러다 스폰 의혹이 붙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설마요. 희진 씨한테 듣기로는 그럴 만한 친구가 아니던데요.”
“가까운 사람의 평가는 모르는 법이야.”
서수련은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다. 예웬리랑 절친이라던 보컬 트레이너 이희진도 아직 회사 전속도 아니고.
“…투자해 준다는 사람도 많은데 굳이 예웬리까지 넣을 필요는 없겠죠.”
그녀가 투자자 목록을 대표에게 다시 건네줬다.
“그나저나 애들 요즘 뭐 한다고 했지? 박 팀장에게 들은 거 없어?”
그렇게 물어보는 이병헌 대표의 얼굴에서는 어쩐지 장난기가 한가득이었다. 서수련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게임이요.”
“게임?”
“네, 굳이 동수 씨한테 안 들어도 되던데요. 애들 피시방 목격담 자주 올라와요.”
서수련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뜬 아위의 단체 피시방 습격 사진을 보여 줬다.
-알바하다가 아위 만난 썰.jpg
(사진) 인증샷ㅇㅇ
야간 알바가 여기 아위 자주 온다고 좋아하길래 설마 했음 근데 내가 야간 뛰는 사이에 모자 쓴 탈색 머리에 덩치 큰 남자들 들어오는데 딱봐도 연예인이었음
걔네가 고개 꾸벅 숙이면서 인사하는데 최이안 마스크랑 모자 쓰고 있어도 잘생겨서 알았음
└와 미친ㅠㅠ 더 들려줄 썰 없어?
└└최이안이 게임 개잘하나봐 다른멤이 막 최이안 게임 미쳤다고 최멘최멘 거리던데 처음에는 뭐? 최면? 햄최몇? 그런건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최이안+아멘이더라 다른애가 뜬금없이 기도하길래 알았어
└앜ㅋㅋㅋ최멘이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워ㅋㅋㅋㅋㅋ
└대박ㅠㅜㅠㅜㅠ 나도 보고싶다ㅠㅜㅠㅜㅠㅜㅠ
└└게임 안풀려도 큰소리없고 샷건 안치고 욕도 안하는거 보니 인성도 좋아보이더라
“게임이라면, ‘갤럭시 크래프트’ 그런 거 하나?”
“요즘 애들이 그런 걸 하겠어요? 아림픽 종목 연습한다는데, 제 생각엔 그러다가 빠진 거 같아요.”
목격담을 훑어봐도 문제 될 거리가 없었다. 이병헌 대표가 흡족하게 웃었다.
“괜히 룸 다니고 음주운전 걸리는 것보다는 낫지.”
“그럼요. 건전한 취미죠.”
“어디서 이런 애들이 모였을까.”
가수가 알아서 잘하니 회사 입장에서 하나라도 더 얹어 주고 싶은 법이다. 이병헌 대표는 박동수에게 애들 고기 먹이라며 또 카드를 쥐어 줄까 생각했다.
* * *
‘아이돌 게임 올림픽’ 촬영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난 멤버들은 곧바로 숍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단체 스케줄에 밴 안에서 신나게 떠들던 멤버들을 보면서 조수석에 앉은 박동수가 말했다.
“얘들아 너네 피시방 슬슬 자제해.”
“왜요?”
시끄럽게 떠들던 멤버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순간 찾아온 정적,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는 김주영을 보며 박동수는 웃음을 참았다.
“팬들 몰릴 거 같아서. 너네 어디 피시방 가냐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는 거 같더라.”
“아 진짜요?”
“형이 어제 피시방 근처 가 보니까 사생 같은 사람 몇 명 보이고….”
“어디서 그렇게 알고 온 거지?”
아위의 팬이 되어 버린 아르바이트는 절대 위치를 안 알려 준다고 했었다. 이안의 어깨에 앉은 진이 말했다.
[사장이네. 매출 올리려고 흘렸어.]‘역시….’
어쩐지 아위가 게임을 하러 가는 시간에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요새 들어 점점 늘어난다 싶더라니. 그는 아위에게 음료 서비스를 주던 사장을 떠올렸다.
절대 어디 안 말한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인상 좋아 보였는데 역시 세상엔 믿을 사람 없다.
“한 피시방 계속 가지 말고. 다른데도 가. 아니면 차라리 컴퓨터를 사는 게 어때? 형이 알아봐 줄게.”
“그럴까요?”
박동수의 말을 듣는 사람은 이주혁밖에 없었다. 밴에서 내린 조태웅과 박진혁이 수군거렸다.
“근데 피시방에서 하는 게 더 재밌지 않아?”
“우리 그럼 다른 데 가 보자.”
“안녕하세요!”
숍 직원들에게 꾸벅 인사한 멤버들은 익숙하게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이안이 안녕. 오늘도 피부 상태 좋네.”
“안녕하세요, 형.”
이안을 전담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용준이 이안의 뒤로 섰다.
“너네도 오늘 게임 대회 나가니?”
“네, 형. 왜요? 누구 왔었어요?”
“방금 민하 왔다 갔거든, 미라클. 너네 친하다며?”
한 숍에서 한 가수만 맡지는 않는다. 가끔 같은 숍을 다니는 연예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친해진 사람도 몇 있었다.
“원래 다니던 샵 계약이 끝나서 여기로 왔대.”
“그래요? 가끔 보겠네….”
“근데 걔가 뭐랬는지 알아?”
이용준이 큭큭 웃었다.
“내가 게임 잘하냐고, 우승하겠냐고 물어보니까 잘한다고, 이안이 너는 이길 수 있다고 하던데?”
이안이 어이없어서 허, 코웃음을 쳤다.
“너는 어때?”
“아, 형. 이민하 걔는 이기죠. 제가 걔한테 질 리가 없어요.”
“너네 진짜 친하구나.”
김용준은 친구들끼리의 신경전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김 현이 말했다.
“형, 이안이 오지게 잘해요.”
“진짜?”
“게임 별로 안 한대서 다 같이 피시방 갔는데 이안이한테 다 발렸어요.”
김용준이 이열~ 감탄하면서 이안의 볼에 파우더를 슥슥 발랐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친 아위는 상암의 E 스포츠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 입구부터 레드카펫과 함께 포토존이 있었는데, 기자들이 먼저 온 가수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돌 그룹이 이어서 포토존 중앙으로 향했다. 갑자기 포토존이 유난히 밝아졌다.
“오 뭐야, 코스프레 하셨네.”
“대박.”
어쩐지 카메라 플래시가 유난히 반짝거린다 싶더라니, 신경 써서 준비한 게임 캐릭터 의상에 자신들의 옷을 쳐다본 멤버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도 뭐 준비할 걸 그랬나?”
“스타일리스트팀은 좋아했겠다. 코스프레 의상 만들었었다며.”
“재밌겠다.”
아위는 밴 안에서 가수들을 구경했다. Y앱 생중계로도 진행되는 레드카펫에도 순서가 있었는데, 아위는 거의 마지막이었다.
“오늘 그룹별 팀전도 있을 각인데, 7인조 아이돌 누구 있지?”
“있으면 우린 우승이지, 최이안이 있는데.”
멤버들이 이안을 한껏 띄워 줬다.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도 이렇게 게임을 잘할 줄은 몰랐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슬슬 내리자.”
박동수가 내려서 밴의 문을 열어 줬다.
“네, 방금 차에서 내린 분들… 남자 아이돌 그룹 아위입니다!”
아위가 밴에서 내리자, 레드카펫의 사전 인터뷰를 맡은 MC가 크게 외쳤다. 기자들이 카메라의 방향을 바꿔 밴에서부터 아위의 모습을 찍었다.
그 모습에 포토존 앞에서 코스프레 의상을 입고 서 있었던 한 그룹이 멋쩍게 웃으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