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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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빈 장씨. (2)
‘목소리가 너무 익숙한데?’
이안이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박동수가 이안을 감싸고 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왔다.
“다 찍으셨으면 데려가겠습니다. 이안아, 조금이라도 쉬자.”
“네.”
사람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대로 붙잡고 있을 수 없어서 순순히 물러났다. 이안은 박동수를 따라가면서 계속 뒤를 돌아봤다.
“왜 그래? 누구 아는 사람 봤어?”
어딘가 익숙한 느낌인데…. 이안은 박동수의 물음에 일단 고개를 저었다.
“…아닌가? 착각했나 봐요.”
* * *
촬영은 하루 종일 이루어졌다. 이안은 중간중간 그가 등장할 분량을 찍고 남은 시간은 다른 배우들이 촬영하는 모습을 쉴 새 없이 관찰했다.
“이안 씨, 아직 촬영 멀었으니까 들어가 쉬어요.”
“아닙니다. 이때 아니면 배우 선배님들 연기 볼 일이 없잖아요. 저도 공부해야죠.”
“그러면… 잠시만요.”
자신의 촬영 분량이 끝나면 밴으로 들어가 나오지도 않았던 젊은 배우들만 보다가, 성실한 모습을 보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저절로 호감이 될 수밖에 없다. 촬영 스태프가 간이 의자를 가져와 이안의 근처에 펼쳤다.
해가 지고, 김춘택과 김소아가 손을 잡게 되는 도화원 신을 찍는 차례가 됐다. 이안은 아침과는 다른 의상으로 갈아입고 상석에 앉았다.
‘아까 그 단역 배우….’
김춘택과 함께 밤놀이를 즐기는 선비 역할에 아까 봤던 단역 배우도 있었다.
‘진짜 누구 닮았는데…?’
생각에 잠긴 이안을 깨운 것은 큐사인이었다. 이안이 자세를 바로잡아 연기를 시작했다.
시장에서 김춘택을 만난 이후로 생각에 잠겼던 김소아는 장옷을 머리에 쓰고 집 밖을 나섰다. 도화원 앞으로 향한 그녀는 몸종도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
문 근처에 서 있던 기생이 김소아를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아씨님이 어쩐 일로 도화원을 방문하셨는지요?”
“김춘택이라는 자를 만나러 왔다.”
아 알겠다. 기생이 미간을 찌푸려 업신여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분은 만나 뵐 수 없습니다.”
“왜인가?”
“아씨님 같은 사람들이 워낙 많은지라.”
김소아는 당황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김춘택이 장난질을 쳤구나. 그녀는 턱을 위로 향한 채 기생의 얼굴을 응시했다.
“붉은 노리개라고 하면, 알겠느냐?”
“이리로 오시지요.”
기생이 급격히 태세를 전환했다. 김소아는 도화원을 나가는 양반들의 시선을 피해 장옷을 꽉 여몄다.
장면이 전환되고, 김춘택은 왁자지껄 떠드는 선비들과 기생들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술을 마셨다.
김소아를 안내한 기생이 그녀를 문 앞에 세워둔 채 빠른 발걸음으로 김춘택에게 향했다.
“다들 물러나 계시게.”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는 소식에 김춘택이 씨익 웃었다. 선비들과 기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술병으로 난장판이 된 현장을 묵묵히 바라보던 김소아가 상석에 앉아있는 김춘택의 앞으로 향했다.
“앉으시지요.”
김춘택이 손짓했다. 김소아는 그의 맞은편에 마련된 방석에 앉았다. 그녀를 안내했던 기생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빈 술잔에 술을 따르고 물러났다.
“그래서,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해 봤습니다.”
김소아는 술잔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눈을 내리깔았다. 세력이 다른 김춘택이 그녀에게 접근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바로 장희재를 물 먹일 계략을 짜려고 했겠지.
“나으리께서는 나에게 뭘 줄 수 있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들어 김춘택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눈이 마주친 김춘택이 눈을 반짝였다.
“복수의 기회를 드리지요. 조강지처를 내치고 천것을 들인 장희재 영감에게.”
“…….”
“부인께서는 제게 장희재 영감이 뭘 하는지 살짝 언질만 주시면 됩니다.”
“제가 나으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밀고를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 부인께서는 그러지 못할 겁니다.”
이안이 술잔을 들어 느릿하게 마셨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김소아의 얼굴에 고정하고 있었는데, 반쯤 뜬 눈이 사람을 홀리는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 끈적한 시선에 김소아가 고개를 살짝 틀어 외면한다.
“어차피 저 아니면 다른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침묵하던 김소아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녀가 치맛자락을 꽈악 쥐었다.
“나으리께서도 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실 텐데요. 저 아니면 주부(*첩이 남편을 이르는 말)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김소아는 김춘택의 시선을 외면한 것에 못내 자존심이 상했다. 그녀는 제 앞에 놓인 술잔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나는 알 수 있지만. 적어도, 나으리는 영영 모를 겁니다.”
그녀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김춘택을 바라본다. 김춘택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녀를 응시했다.
그 고요함 속 미묘한 분위기에 카메라 너머 지켜보던 감독이 웃음을 참았다. 그가 콘티를 짜면서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이었다.
“허나… 좋습니다. 서로 원하는 바가 같으니.”
“…….”
“나으리의 놀음에 어울려 드리지요.”
“좋습니다. 나중에 제가 부인을 찾아뵙지요.”
김춘택이 시장에서 샀던 붉은 노리개를 김소아에게 건넸다. 김소아는 그 노리개를 마지못해 쥐고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쉽게 넘어오진 않겠군….”
그녀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춘택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컷!”
감독의 컷 사인에 기 싸움을 하던 분위기는 어디 가고 이안이 활짝 웃었다.
“이안이 느낌 좋은데? 우리 빨리 퇴근할 수 있겠다.”
“그렇겠죠?”
이안과 고혜민이 서로를 바라보며 실없이 웃었다. 도화원 촬영은 오늘 하루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둘 다 NG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진 촬영에 기분이 좋았다.
“너는 사람 좀 그만 홀려. 나 넘어갈 뻔했잖니.”
모니터를 하러 가는 이안의 어깨를 고혜민이 아프지 않게 쳤다.
“무슨 소리세요, 누나. 누나도 장난 아니던데.”
고혜민은 아까 전까지만 해도 고혹적인 미소를 짓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푼수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안과 고혜민이 윤 작가의 옆에 섰다.
촬영 모니터는 총 4대가 있었다. 다양한 각도로 그들의 촬영분을 되돌려 볼 수 있었다.
“여기, 혜민 씨 입술 씹는 부분이랑, 이안 씨 분위기 아주 좋네요.”
“촬영 감독님이 진짜 잘 찍어 주셨네요.”
화면 속 김춘택은 한량 같은 모습인데 어쩐지 무게감이 있어 보였다. 가볍고도 무거운 모순적인 중심을 아주 잘 잡았다. 박 감독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윤 작가를 바라봤다.
“나는 괜찮은데, 작가님은 어떠세요?”
“저도 괜찮은 것 같아요. 딱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야.”
“오케이, 오늘 끝내죠.”
박 감독의 말에 조연출이 큰 소리로 촬영이 끝났다는 것을 알렸다. 스태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윤미숙과 박표현 사단은 스태프 및 배우들에게 휴식시간을 잘 보장하기로 유명했다. 감독의 철학이 ‘쫓기듯 촬영하면 결과물이 좋지 않게 될 것, 그러니 충분한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한다.’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윤 작가는 쪽대본의 여왕인 정 작가와는 다르게 대본을 미리 써서 넘기는 것으로 유명했고, 박 감독은 세세한 콘티와 효율적으로 짠 촬영 스케줄 덕분에 낭비하는 시간이 적었다.
드라마 여왕인 윤 작가의 이름값 덕분에 실력이 좋은 배우들도 몰린다. 배우들의 연기는 막힘 없었고, NG가 많았던 장면은 단역 배우가 실수했던 분량이 많았다.
“이안아, 고생했다.”
“나 어땠어요, 형?”
“장난 아니더라. 이거 방송되면 팬 몰이 많이 하겠던데? 우리 이번 앨범 선주문 많이 넣어야겠어.”
박동수가 같은 남자가 봐도 반하겠다며 농담을 건넸다.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대충 지운 이안은 박동수가 건넨 물병을 따다 말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래서, 진짜 반한 건 아니죠?”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긴 형은 여친이 있으시니까.”
“뭐… 뭐, 야!”
박동수에게 폭탄을 터뜨린 이안이 빠른 걸음으로 앞서갔다.
‘대표님은 이미 알고 있던 것 같던데….’
이안이 콧노래를 불렀다. 박동수와 서수련 이사가 남몰래 교제하고 있는 사실은 진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어쩐지 핑크색 파우치부터 느낌이 쎄하더라니.
‘내년쯤엔 국수 먹을 수 있으려나? 축가는 뭐로 부르지?’
박동수가 황급히 이안의 뒤를 쫓는 사이, 이안은 모여서 대절 버스를 기다리는 단역 배우들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침, 마이스타그램에 이안과 찍은 사진을 업로드하던 단역 배우가 벌떡 일어났다.
“어? 당소듣 같이 했던 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 한여빈이요.”
“다음 촬영에도 오시죠? 그때 봬요.”
한여빈이 활짝 웃었다. 배우 지망생으로 수많은 촬영장에 참여해 단역을 했지만, 이렇게 단역 배우 하나하나 챙겨 주는 주조연 배우는 이안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얼굴 잘생긴 아이돌 출신이라 싸가지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선입견이었다.
이안은 밴으로 향하다 말고 다시 몸을 돌렸다. 그는 멀찍이 떨어져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단역 배우를 가리켰다.
“아까 같이 다니던 단역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저 오빠요? 이세민이요.”
“그렇구나…. 아는 형이랑 닮았는데 이름이 다르네요. 그럼 다음 촬영 때 봬요.”
등을 돌린 이안이 허탈하게 웃었다. 박동수가 밴의 문을 연 채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박동수의 복잡한 표정을 보고 장난 칠 거리가 생겼다며 좋아했겠지만, 이안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
이세민? 이세민이라고?
[단독]‘다이아몬드’ 지원, 학폭 논란에 그룹 자진 탈퇴.‘못 알아볼 뻔했어.’
[뭐야 누군데?]‘얼굴 많이 손봤구나, 지원아.’
[학폭지원? 쟤가 걔야?]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싶었더라니, 성형을 해도 타고난 본판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그가 기억하는 누군가와 매우 흡사해서 잊을 수가 없었다.
이지원이라는 이름을 이세민으로 개명했구나. 이안이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 보니 나 프.아 막방 끝나고 이지원한테 연락 온 적 있었어. 씹었지만.’
전생에서는 학폭 논란 이후 연예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나마 연예계 생활을 이어 가던 김용민에게 가끔 연락해 질척였던 것이 생각났다.
‘임태우가 말한 반갑지 않은 연락이 쟤군.’
임태우가 트로트 가수로 성공하니, 연락 없던 놈이 염치없이 연락이 왔다고 했었나. 인생 2막을 시작한 임태우를 보며 쟤도 했는데 나도 재데뷔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가 아는 이지원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었다. 게으르고, 싸가지 없는 성격에, 노력도 안 하는데 자신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태우가 노력하는 것에 반의반도 안 했을 놈이.’
이안이 쯧, 혀를 찼다. 박동수는 급격히 기분이 나빠진 이안의 눈치를 봤다.
‘너 쟤 배우 하는 거 알고 있었냐? 미래에도 했었나?’
[다이아몬드 듣보 그룹 소식을 일일이 알았겠냐? 김용민이야 프.아 12위니 알고 있었지…. 근데 이세민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뭐지?’
밴에 탄 이안이 핸드폰을 켜 이세민을 검색했다. 과거로 돌아와 그가 최이안의 삶을 사면서 미래가 바뀐 것인가?
‘변수가 많아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