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88
188
COMEBACK SHOW. (1)
아위덤 이다솔은 트래픽이 초과되어 흰 화면만 뜨는 팬 카페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아 망했네.”
그녀는 SNS를 켜 컴백 쇼 방청 신청 망했다며 하소연을 했다. 다행히 그녀 같은 파랑새 친구들이 많았다.
“아, 그냥 안방에서 편하게 덕질이나 해야지.”
민희 언니도 어차피 사녹 못 간다는데 불러서 치킨이나 먹으면서 같이 볼까? 그렇게 생각한 이다솔이 허탈하게 웃었다. 녹화 시간이 길어도 꼭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에 실망이 더 컸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마치 로또 당첨을 확인하는 것처럼 어차피 없을 거지만 일말의 희망을 담은 채 컴백 쇼 방청 목록을 살폈다.
“허어억…!”
그녀가 숨을 삼켰다. 너무 놀라면 온몸이 굳는다는 것을 이다솔은 난생처음 알았다.
“미친, 진짜야?”
그녀는 화면 속 자신의 이름과 핸드폰 뒷번호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어떡해!”
겨우 정신을 차린 이다솔이 펄쩍 뛰었다.
명단에 그녀가 있었다. 700명 중 무려 86번으로!
* * *
컴백 쇼 당일, 이다솔은 부푼 기대를 안고 일산에 있는 N넷 제작 센터를 찾았다. 그녀는 제작 센터를 배경 삼아 셀카를 찍고는 김은하에게 전송했다.
(다솔) 어때? – 8:20
(으나김) 좋겠네 – 8:20
뭐야 이게 다야? 이다솔이 뚱한 표정으로 핸드폰의 화면을 껐다.
‘얘가 요새 좀 까칠해졌단 말이야.’
홈마를 해 본다던 김은하는 대리찍사에게 아위의 데이터를 사 보정 연습을 하고, 결국은 카메라까지 구입하더니 어울려 지내던 홈마 무리들과 주로 시간을 보냈다.
“아직 한산하네.”
인원 체크가 예정된 시간보다 40분 일찍 온 터라 아직 모여 있는 팬들은 얼마 없었다. 이다솔은 벌써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오신 분들 앞에 돗자리 받아 가세요!”
캠핑용 1인 돗자리였다. 비닐 포장에는 아위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하루 종일 길바닥에 앉아 있을 팬들을 위한 소소한 준비였다.
‘푹신하네… 좋다.’
난생 첫 컴백 쇼 방청에 떨려서 준비한 것이라곤 보조 배터리밖에 없었던 이다솔은 뒤늦게 아차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많이 챙겨 올걸, 군것질거리나….’
상념에 잠긴 그녀를 깨운 건 팬매니저의 목소리였다.
“앞에 번호 순서대로 앉아 주실게요!”
팬매니저의 앞에는 백 단위로 끊은 숫자 팻말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다솔은 1-100으로 표시된 곳으로 갔다.
“몇 번이세요?”
“저 86번이요.”
대충 이쯤 되겠지? 이다솔은 돗자리의 포장을 뜯고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푹신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들 줄 서세요! 9시에 끊을게요!”
저 멀리서 종종걸음을 하며 걸어오던 팬들은 시간이 59분을 향하자 미친 듯이 뛰었다. 지각하면 명단에 지정된 번호순대로 못 선다. 바로 700번 뒤로 가서 방청할 때도 맨 뒷줄에 서야 했다.
“거기! 시간 지났어요! 지각 줄에 서세요!”
지각한 팬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은밀하게 제 번호를 찾아가려다가 팬매니저에게 덜미를 잡혔다. 그 팬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지각 줄에 섰다.
“명단 확인할게요!”
사녹에 들어갈 팬들이 워낙 많아서 명단 확인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다솔은 신분증과 앨범 예약 판매 영수증을 미리 꺼내 제 차례를 기다렸다.
“이거 손목에 차 주세요.”
본인임을 확인받은 이다솔은 손목에 종이 팔찌를 차고는 다가올 녹화를 기다렸다. 그 순간, 옆줄에서는 언성 소리가 높아졌다.
“신분증 본인 아니시죠.”
“맞는데….”
팬매니저가 누군가를 다그치고 있었다.
“아니잖아요, 가세요.”
팬이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줄에서 이탈했다.
“뭐야?”
“누가 방청권 팔았나 보다.”
주변에 있던 팬들이 수군거렸다.
사녹 방청에 700명, 예비 인원만 200명이다 보니 준비물을 안 가져온 사람은 가차 없이 집으로 보냈다.
“아 어떡해! 예판 영수증 안 갖고 왔어!”
소리를 치며 바닥에 주저앉은 팬도 있었다.
“폰으로 확인도 안 돼요?”
“무조건 인쇄해 오셔야 해요.”
그녀는 팬매니저의 단호한 말에 결국 엉엉 울면서 그곳을 빠져나갔다.
‘내가 다 맘 아프네.’
이다솔이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본인 확인이 끝나고, 첫 무대 녹화 전까지 대기해야 했다.
이다솔의 앞에 있는 사람이 고개를 돌리더니 수줍게 말했다.
“혹시 멤버 누구 좋아하세요?”
“저는 이안이….”
“와! 저도요!”
핸드폰을 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무료함에 허공만 쳐다보던 이다솔은 먼저 말 걸어 준 팬의 말투가 어눌한 것을 눈치챘다.
“어, 외국분이세요?”
“네.”
“와, 어디에요?”
“태국이요!”
와 태국에서 여기까지 오네. 심지어 한국어도 잘했다. 범상치 않은 케이팝 고인물의 냄새가 났다.
이다솔이 태국 팬과 수다를 떨 때, 뒤에는 홈마로 추정되는 사람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애들 이번 팬싸컷 어떨 거 같아요?”
“아, 예상을 못 하겠어요. 영통도 있으니까….”
“영통이랑 따로일걸요?”
영상 통화 팬사인회는 코로나가 사그라든 이후에도 계속됐다. 해외 팬들의 접근이 쉬워져서, 대면 팬사인회보다 컷 수가 높았다.
“예판은 얼마 사셨는데요?”
“600장이요.”
“많이 사셨네요. 저는 450장 샀는데… 안 되겠죠?”
“450장은 애매하네요, 500장 하시지 그랬어요. 많이 사고 떨어지는 것보다는 더 많이 사고 가는 게 낫잖아요.”
그리고 예약 판매 분량으로 받는 팬사인회는 더욱 컷 수가 컸다.
‘와… 김은하 얘는 뭘 믿고 홈마를 한다고….’
뒷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이다솔이 침을 꿀꺽 삼켰다. 450장이 안 될 거 같다니…. 역시 인기 아이돌은 팬사인회 컷 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약 30분을 기다렸을까, 안쪽에서 연락을 받은 팬매니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녹화하러 들어가실게요! 소지품은 저희가 지키고 있으니 두고 가시고요!”
유독 팬매니저의 숫자가 많았다. 몇 명은 혹시 모를 소지품 도난 방지를 위해 팬들이 앉았던 자리에 남아 있고, 다른 팬매니저들은 팬들을 이끌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와, 진짜 가깝다.”
“애들 모공까지 보이는 거 아니에요?”
이다솔은 금세 친해진 태국 팬과 속닥거렸다. 스탠딩과 무대와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웠다.
‘아, 스탠딩 운동화 더 높은 거로 사 올걸.’
이다솔은 앞에 선 사람의 키가 자신보다 커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멤버들을 볼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러분! 멤버들한테 개인 멘트 하지 마세요! 퇴장시킵니다!”
“멤버들 관심 끌려고 손도 뻗지 마세요! 잼잼! 그런 거 안 됩니다!”
“개인 촬영하는 거 걸리면 블랙리스트 올라가는 거 아시죠!”
곳곳에 퍼진 팬매니저가 주의 사항을 읊었다.
* * *
대기실에서 준비를 마친 멤버들이 스튜디오의 문을 열기 전에 멈췄다.
“우리 늘 하던 거 해야지.”
멤버들이 동그랗게 서서 서로를 마주했다. 익숙하게 손을 모으려던 찰나, 조태웅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밖에서 해 볼까?”
“…그럴까?”
“팬들이랑 다 같이 외치면 좋을 거 같은데….”
“그래, 그럼 그냥 들어가자.”
김명진이 멤버들 대신 문을 열었다. 아위 멤버들이 녹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멤버들은 스탠딩 구역의 오른쪽, 모니터를 하는 곳에 서서 인이어를 끼웠다. 오른쪽 펜스를 잡은 팬들의 함성이 유독 높았다.
스탠딩에 서 있던 팬들은 멤버들의 얼굴을 1초라도 더 보기 위해 오른쪽으로 향했고, 대열이 오른쪽으로 쏠렸다.
“여러분 제자리에 서 계세요!”
팬들에게 짓눌린 팬매니저가 숨을 흡, 참았다. 그들은 팬들과 함께 펜스를 붙잡고 멤버들을 등지고 있었는데, 혹시 모를 팬들의 돌발 행동과 불법 촬영을 잡아내기 위함이었다.
표정이 말이 아닌 팬매니저를 힐끔 바라본 멤버들이 둥그렇게 서서 손을 모았다.
“팬매 누나 힘드니까 빨리 외치고 무대 위로 올라가자.”
“그럼 무대 바로 앞에 서 있는 팬매 누나가 죽겠는데?”
“그런가? 일단 모여 봐.”
지켜보던 팬들이 ‘구호 하나 봐’라며 웅성거리고, 이주혁이 입을 열었다.
“얘들아 드디어 팬들이랑 하는 사녹이다.”
“코로나… 와 진짜 혐로나 너무 길었어.”
김 현이 투덜거렸다.
“오랜만에 팬들 봤다고 나대지 말고. 무사히 무대 끝내자. 예전에 진혁이처럼 다리 다치지 말고.”
“뭐!”
“어쨌든, 긴 녹화 오늘도 파이팅하자. 다음 말은 알지?”
“We are Who we are!”
멤버들이 우렁차게 외치자, 그들이 구호를 외칠 때까지 기다리던 팬들도 멤버들과 같이 외쳤다.
““AWY!””
“어! 대박.”
“우리 팬들이 센스가 있어.”
멤버들이 팬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마이크를 든 그들이 무대 위로 올라서자,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여러분 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요.”
몇몇 팬이 ‘우리도!’라며 소리쳤다. 팬매니저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차피 인원도 많아서 개인 멘트 하는 팬들을 하나하나 잡아내긴 어려웠다.
“오는 데 힘들지는 않았어요?”
이주혁의 말에 맨 앞줄에 있던 팬들이 안 힘들었다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다들 아침은 먹고 왔어요? 배고프죠, 좀만 참아요.”
“저희가 역조공 진짜 많이 준비했거든요?”
제작진이 녹화 준비를 끝낼 때까지 멤버들은 팬들과 소통했다. 이런 소통의 시간도 오랜만이라 이안도 적극적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어때요? 멋있어요? 아, 그럴 줄 알았어.”
“오늘 사녹 너무 길지 않아요? 우리 녹화 끝까지 힘내요.”
순간, 컴백 쇼 피디가 마이크를 들었다.
“아위, 녹화 시작할게요.”
“네!”
멤버들이 우렁차게 외치고는 안무 대형을 찾아갔다.
이다솔이 침을 꿀꺽 삼켰다. 박진혁이 오늘을 위해 특별히 리믹스한 곡의 도입부가 흘렀다.
“뭐지?”
“Dawn이다!”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 이거지.’
무대는 응원해 주는 팬이 있어야 완성된다. 이안은 눈을 감고 팬들의 응원 소리를 감상했다. 이안이 환하게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 * *
한 번의 무대를 마친 멤버들이 땀 범벅이 된 채 웃었다. 한 곡당 평균 두세 번의 녹화를 진행하니, 모니터를 하러 무대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어?”
이주혁을 따라 무대 아래로 내려가려던 조태웅이 자신의 눈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멍하니 멈춰 섰다.
“뭐 해? 안 내려가고… 어?”
갑자기 길을 막은 조태웅을 툭 친 김주영은 그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뭐, 뭐야. 얘 운다. 어떡해?”
“어? 무슨 일인데?”
혹시나 조태웅의 병이 또 도졌을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쳐다보던 멤버들은 울먹이며 겨우 말하는 조태웅의 대답에 울컥했다.
“아니, 그냥… 좋아서.”
울음은 전염이 되는 건가. 박서담이 훌쩍거렸다.
코로나 때문에 무관중으로 진행됐던 작년, 그리고 안타깝게 활동 중지했던 시간.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이라 느껴질지 몰라도 멤버들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얘들아 울지 마!”
“얘들아 고생했어!”
“울지 마! 다 괜찮아!”
멤버들의 변화를 눈치챈 팬들이 크게 외쳤다. 감수성이 풍부한 몇몇 팬들은 조태웅과 박서담을 따라 훌쩍거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