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95
295
재밌는 일을 벌였더군.
이안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른다 생각했지만, 자신의 표정을 숨기는 데 능숙했다.
청화 그룹의 이 회장도 이안을 떠올리면서 좀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청년이라 생각했다.
“제가 늦었습니까?”
“아니네, 앉게.”
이안이 눈동자를 굴려 내부를 살폈다. 작은 가게 안에는 주인장 없이 이 회장밖에 없었다. 가게 주인이 예의상 차린 음식은 이 회장도 이안도 입에 대진 않았다.
“피차 바쁜 몸이니 본론부터 얘기하지.”
“네.”
“재밌는 일을 벌였더군.”
이안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고 발뺌해 봤자 눈앞에 있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간 밝혀질 일이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다 가릴 순 없죠.”
“청화는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이 사장님은 그래선 안 됐습니다.”
이안의 당돌한 대답에 이 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건방진데 이상하게 밉지 않았다.
이 회장의 나쁘지 않은 반응에 이안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느낌이 좋았다.
“저를 따로 불러내신 만큼 저한테 경고하러 오신 것 같은데, 글쎄요….”
이안은 이 회장이 장남을 못마땅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어차피 자신의 자리를 차남에게 자리를 물려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안도 대담하게 지른 것이다.
그가 원래 몸으로 와서 벌였던 일에 나비 효과를 고려해야겠지만, 가속화되었으면 되었지 절대 이대문은 회장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 자리가, 경고로 들리지 않는다면 제 착각입니까?”
이 회장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저는 청화 그룹에 유감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청화가 아니라 이대문 사장님께 붙은 쥐새끼라서요.”
역시 그렇군. 이 회장도 이안을 따라 물을 마셨다. 급하게 마시는 것을 보니 꽤 속이 탔나 보다.
“회장님께는 이득이죠. 손 안 대고 눈엣가시를 치워 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실수는 좀 했지만.”
“그건 인정하지.”
이 회장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는 장남이 뭘 하든 차남이 뭘 하든 청화 그룹에 이익만 가져오면 된다. 서로 경쟁하게 만들어서 승리자에게 제 자리를 물려주면 끝이다.
이대문이 양인준을 밑에 두고 이용하는 것도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슨 사고를 치더라도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한다면 괜찮았다.
‘좋지 못한 약물이 걸려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하지만 아랫것을 이용해야 할 아들이 되레 휘둘리면 안 됐다. 게다가 해서는 안 될 일에 연루된다면 더욱.
이 나이를 먹어서까지 아들이 ‘친구’ 사귀는 걸 단속해야 한다니, 이 회장은 허한 기분을 느꼈다.
‘느낌이… 진짜 좋은데?’
이 회장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 이안은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이 회장의 능력이라면 아들과 손자가 한 사고는 충분히 감출 수 있을 것이다. 교묘히 가리고 앞에 누군가를 내세우겠지. 그럼 그 방패가 누가 될까? 높은 확률로 Y 씨, 양인준이 될 것이다.
‘이제 빨리 끝내야지. 나는 바쁘다고.’
이안은 이제 양인준 따위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이제 그 쥐새끼도 이 사장님이 내치셨겠죠?”
“허, 맞네.”
그 말대로였다. 최근 이대문과 양인준의 교류가 뚝 끊겼었지.
이 회장은 눈앞의 사람이 아직 서른도 안 된 청년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이안이 짠 판은 솔직히 정교하지는 않았다. 너무 당당하게 꼬리 밟힐 행적을 보였으니…. 하지만 거기서 인간미가 느껴질 정도였다.
연예인으로서 커리어도 탄탄히 쌓아 가고 있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뒤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 같은 투자 능력으로 회사를 키우면서 자신의 세를 키우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 양쪽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본의 아니게 피해 끼쳐 드렸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대신….”
이안은 진의 메모리 카드에 남아 있던 정보를 이 회장에게 몇 가지 말했다.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소리인가?”
“믿고 말고는 회장님의 자유죠. 하지만, 만약 믿으신다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이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업계에서 외계인이라느니 예언자라느니 같은 헛소리에 심취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안의 얼굴은 꽤 진지했다. 여태껏 보지 못한 잘생김이어서 그런가? 그냥 신뢰감이 들었다.
“자네가 감마 인베스트먼트의 실질적 오너가 아니었으면 뜬금없는 소리라고 치부해 버렸을 걸세.”
“하지만 저만 따로 부르실 정도로 제게 관심이 있는 것도 맞잖아요.”
재밌는 청년이로군. 이 회장이 벌떡 일어났다. 언제 왔는지, 가게 현관에는 비서가 대기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사업 파트너로 볼 일이 있었으면 좋겠구만.”
“잊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제 본업은 아이돌입니다. 저희 그룹을 광고 모델로 써 주신다면 생각해 보죠.”
이안은 내심 이 회장과 다시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뱉은 그의 말에 이 회장은 대꾸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먼저 가겠네.”
“들어가십시오.”
이안은 이 회장을 태운 고급 승용차가 길 끝으로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됐나?’
이안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뭔가 너무 쉬웠다. 사실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 여유로운 척 가면을 썼던 것이지, 으름장을 놓을 것 같았던 이 회장은 오히려 자신에게 적잖은 호감이 있는 것 같아서 꽤 당황했다.
‘감마 인베스트먼트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었다. 이안도 자신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다. 업계 사람들은 감마 인베스트먼트가 어디에 투자하는지 주시하고 있었고, 정류원은 ‘아니, 내가 한 게 아닌데 다들 나를 노스트라다무스 보듯 한다니까.’라고 엄살을 떨었던 적이 있기도 했다.
‘아니면 내 운빨이 먹혔거나 둘 다거나.’
어쨌든 이안의 입장에서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면서 후련한 듯 숨을 크게 뱉었다. 이제 끝이 보였다.
* * *
[단독] 연예계 마약 게이트에 관여한 ‘Y 씨’ 스폰서 알선 의혹마약·성매매 알선·원정 도박 등에 연루된 ‘Y 씨’의 정체는 누구인가… 현직 기자로 밝혀져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오다니.’
이안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의 화면을 닫았다. 지금쯤 양인준은 똥줄 타고 있겠지. 아마 이미 영장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신문지를 씹는 듯한 표정을 지은 조태웅이 이안을 바라보고 어깨를 흠칫 떨었다.
“뭐야 왜 갑자기 웃어?”
“아니, 그냥.”
“너도 먹기 싫다고 징징거렸잖아. 이걸 보고 웃음이 나오냐?”
멤버들이 죽상을 한 채 눈앞에 있는 식사를 바라봤다. 양념이 없는 닭가슴살과 토마토 등 다이어트 식단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양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동안 처먹은 것에 대한 업보지 뭐.”
“으아악! 라면 먹고 싶어.”
“난 피자.”
“돈까스 제육볶음….”
“벌써 위장 떨린다.”
이안의 대답에 확인사살을 받은 멤버들이 절규했다. 월드 투어의 시작인 잠실 콘서트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아위는 그동안 관리를 하지 못한 대가를 받는 중이다.
“첫 잠실 콘서트에 빵빵한 얼굴로 나왔다가 홈마한테 박제되면 참 재밌겠다 그치?”
“우린 연예인이라고. 그런 사진은 디지털 장의사를 불러도 계속 남는 거 알지?”
“그만, 그만해…. 알고 있으니까.”
김 현과 박진혁의 말에 가장 타격을 받은 건 먹는 걸 유난히 좋아하는 김주영이었다. 식탁에 고개를 처박은 그가 웅얼거렸다.
“어차피 투어 돌면 알아서 빠질 텐데.”
“하지만 우린… 아이돌이잖아.”
“크흑….”
‘우린 아이돌인데?’ 같은 말은 관리가 느슨하거나 나태해질 때마다 하는 말인데, 아위는 이런 말로 서로를 채찍질했다. 그게 아위가 롱런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였다.
“우리 이거 먹고 스케줄 어디 가요?”
“가전.”
“이야, 이제 커피믹스까지 찍으면 장난 아니겠는데?”
“커피믹스는 힘들지. 공무원급이잖아.”
아위는 백색가전 광고를 찍으러 간다. 가전제품은 중장년층이 주 구매층인데, 중장년층에게 어필할 만큼 대중성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재밌는 사실은, 무려 청화 전자의 광고였다.
이안이 이 회장에게 미래 정보의 일부분을 알려 준 것은 순전히 충동적인 일이었다. 대기업 회장에게 신비하고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면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설마 그때 내 말을 진짜 믿은 건가.’
그 생각은 잠깐이었다. 설마 이 회장이 믿었을 리가. 그냥 호의일 것이다.
이안은 부정했지만, 사실 그 설마가 맞았다. 이안의 정보로 혹시나 하고 일을 벌였는데, 그게 좋은 결과가 되어 돌아왔다.
이 회장은 이안이 말해 줬던 것과 딱 맞아떨어지는 미래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이래서 다른 기업 회장이 무당을 믿는가 싶었다. 청화 전자의 광고는 좋은 정보를 알려 준 것에 대한 나름의 보상이었다.
* * *
모두 다 탄 것을 확인한 임진우가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옆에는 새로 뽑은 로드 매니저가 긴장된 얼굴로 인수인계를 받고 있었다.
뭐가 거슬리는데. 맨 뒤 자리에 앉은 이안이 몸을 들썩거렸다. 옆에 앉은 이주혁이 핸드폰을 보다 말고 이안에게 고개를 향했다.
“뭐야, 어디 불편해?”
“아니, 아무것도 아냐.”
대답과는 다르게 이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주변을 살폈다. 불편해서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찍고 있는 것 같은….
‘진의 감각 같은 게 왜 지금 느껴지지?’
달리는 차 안에서 누가 그들을 찍나? 이안이 뒤 창문을 바라봤다. 가까이 붙는 차도 없었고 매니저의 평온한 운전으로 보건대 사생 택시가 붙은 것도 아니었다.
이주혁이 얼굴에 의문을 담았다. 이안은 그걸 무시하고 상체를 숙여 바닥을 더듬다가, 손에 무언가 잡히는 것을 느꼈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테이프 같은 것으로 고정되어 있나 보다. 이안은 그것을 소리 안 나게 떼고는 눈으로 살폈다.
‘이건….’
한 손에 쥘 수 있는 네모난 검은색 기계, 처음 봤지만 뭔지 한 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다 보고 있던 이주혁을 향해 이안은 검지를 들어 제 입가에 가져다 댔다. 이안은 조심스레 움직여 그것을 다시 제자리에 붙였다.
이안이 자신의 핸드폰을 두들겼다. 이주혁은 그 뜻을 알아채고는 이안에게 톡 메시지를 보냈다.
(이주혁6) 뭐야?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이안9) 내생각에는 녹음기? 같은데
(이주혁6) 헐 ㅅㅂ
(이주혁6) 매니저형한테 알려야하는거아냐?
(이안9) 잠시만
이안은 당장이라도 입을 열 것 같은 이주혁의 어깨를 잡고서 생각에 잠겼다.
아위의 숙소는 고가의 아파트니만큼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소속사가 숙소를 고르는데 가장 1순위로 고려했던 것이기도 했고, 많은 연예인이 아위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했다.
‘외부인일 가능성은 없어.’
외부인이 연예인 밴의 문을 따고 녹음기를 숨겨 둔다?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에서?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밴에 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건데…. 멤버들은 당연히 제외한다.
‘아위 전담팀이 새로 꾸려졌지.’
아위가 재계약을 하고 소속사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그만큼 직원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밴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은….
(이안9) 매니저가 범인일 수도 있지 않아?
이안의 메시지를 본 이주혁이 어깨를 들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