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85
85
World tour in Seoul. (3)
“아까 내려갈 때 인이어 뺐는데 팬들 함성 장난 아니더라.”
“좋아하시면 돼… 됐어.”
골반을 튕기는 안무가 생각이 나서 이안과 조태웅이 끄악 소리를 질렀다.
막상 무대는 실수 없이 잘했는데 무대 아래로 내려가면서 진한 현실 자각 타임이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얘들아 아주 잘 했어. 멋있더라.”
“진짜요? 숭하진 않았어요?”
“괜찮아. 잘했어.”
박동수가 목까지 새빨개진 박서담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박동수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어차피 이런 것도 한두 번 부끄러워하다가 곧 익숙해질 것이다.
“무대 다시 올라가야 하니까 진정하고.”
그들은 장식이 화려한 제복 형식의 의상과는 다른 나풀거리는 소재의 셔츠와 면바지로 갈아입었다.
땀을 닦으며 세트 리스트를 살피니 앞으로 남은 곡은 앵콜까지 3곡, 이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뭘 했다고 벌써 끝나지?’
팬들의 응원 덕분인지 몸이 들떠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난이도 있던 아크로바틱 안무도 가볍게 성공했을 정도였다.
중간 VCR이 끝나고 멤버들이 스탠드 마이크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 곡은 잔잔한 발라드 수록곡 ‘기다릴게’였다.
‘…뭐지?’
이안이 객석을 살폈다. 아까까지만 해도 홈마들이 만든 개인 슬로건이나 공식 굿즈 슬로건을 들고 있었던 팬들이 다 똑같은 슬로건을 들고 있었다.
이안이 한쪽 인이어를 빼고, 슬로건의 문구를 살폈다. 그 순간, 무대에서 팡!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 꽃가루가 흩날렸다.
언제나 너희들의 곁에
영원히 사랑해
‘와….’
이다솔이 공연 시작 전에 입구에서 받았던 슬로건은 바로 팬들의 이벤트 슬로건이었다.
팬들은 아위 멤버들이 워낙 웹 서핑을 잘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걸리지 않게 따로 비밀 커뮤니티를 개설해서 인증받은 팬만 가입하게 했다. 그 비밀 커뮤니티에서 팬들은 콘서트 이벤트에 관한 것들을 논의했다.
일단 팬들이 소속사에 보낸 이벤트 제안을 소속사가 승낙하면, 팬들이 슬로건의 디자인과 문구의 후보를 정하고, 투표를 통해 뽑는다.
소속사는 그 최종본을 인쇄해 공연장에서 팬들의 안내를 돕는 스태프들에게 나눠 주게 하는 것이다.
[아이돌 콘서트 하면 이런 건 다 해.]‘그래도….’
꽃가루가 흩날리는 공연장과 사방을 메우는 팬들의 떼창 소리, 흔들리는 응원봉의 불빛. 그리고 팬들이 다 같이 똑같은 슬로건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그림같이 느껴졌다.
‘…난 이런 걸 꿈꿨어.’
다이아몬드 김용민으로서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순간.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아마 앞으로 많이 겪게 되겠지. 그 생각을 하게 되니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이 슬로건 뭐예요?”
“다 같이 준비하신 거에요?”
노래가 끝나자, 이주혁과 박진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스탠딩 구역으로 다가갔다.
“우와….”
이안의 앞에 있는 팬들이 가져가라고 슬로건을 내밀고 있었지만 이안은 눈치껏 받지 않았다. 이 슬로건 하나도 소중히 간직할 팬들을 위해서였다.
“와 진짜… 너무 감동이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김주영의 눈동자가 벌써 촉촉해져 있었다. 이주혁은 프롬프터에 뜬 진행 문구를 읽었다.
“정말 아쉽게도, 저희 무대가 이제 딱 하나 남았어요.”
팬들에게서 아쉬움의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멤버들이 팔자 눈썹을 만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저희도 막차 끊길 때까지 우리 아위덤이랑 있고 싶어요.”
스탠딩 구역에서 ‘그럼 가지 마!’라고 외쳤다. 멤버들이 하하 웃었다.
“그러고 싶은데… 우리 스태프들을 야근시킬 수는 없잖아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자, 마지막 곡입니다!”
“그럼 우리 신나게 달려 볼까요?!”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반주가 나오고 멤버들이 가볍게 춤을 추며 마지막 곡을 불렀다.
“여러분 안녕!”
“고마워요!”
곡이 끝나고, 멤버들이 백스테이지로 내려갔다.
공연장이 암전되는 사이 팬들이 앙코르를 외쳤다.
“아 아쉽다.”
“내일도 있잖아.”
이안이 멍하니 중얼거리자, 조태웅이 대답했다.
“그래도 오늘은 오늘로 끝이잖아.”
“그건 맞아.”
첫 콘서트의 첫 회차인지라 더 의미 있는 날이었다. 조태웅이 이안의 등을 톡 쳤다.
“이제 올라갈 시간이야.”
약 1분의 시간을 팬들의 함성 소리를 듣던 아위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앵콜 무대는 모여서 춤을 추지 않는다. 아위 멤버들은 노래를 부르며 저마다 돌출 무대로 흩어졌다.
“이안아! 이안아 여기!”
스탠딩 구역의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이안이 팬들의 손을 잡았다. 핸드폰을 내밀며 사진을 찍는 팬들에게는 씨익 웃으며 포즈를 취해 주기도 했다.
“부럽다…. 이쪽엔 안 오려나?”
“올 거 같은데요? 지금 스태프들 계단 앞으로 모여 있어요.”
2층에서 그 광경을 부러운 시선으로 지켜보던 이다솔과 장민희가 발을 동동 굴렀다.
“헉!”
“진짜 와요, 언니!”
이안이 돌출 무대와 연결된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 2층의 팬들이 저마다 핸드폰을 들었다. 이안이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안아!”
“와 줘서 고마워요!”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슬쩍 훑었다. 마음 같아선 팬들이 내민 손 하나하나 다 잡아 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안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반대쪽 돌출 무대로 향했다. 그 와중에 팬들이 던지는 슬로건과 인형을 하나씩 주웠다.
반대쪽에도 팬 서비스를 마친 이안이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멤버들은 다 같이 손을 잡고 팬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 * *
공연이 사고 없이 무탈이 끝나고, 대기실 복도 쪽에는 이미 아위 멤버들이 초대한 가족 및 지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엄마!”
박진혁이 후다닥 뛰어갔다.
가족들은 국민 가수인 김희상과 먼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째 멤버들보다 김희상을 더 반기는 듯했다.
“선생님 귀찮게 한 거 아니지?”
“아니야!”
박진혁이 엄마와 실랑이를 하는 사이 이안이 김희상의 앞으로 다가갔다.
“선생님, 와 주셔서 감사해요.”
“아냐, 나도 즐거웠어.”
김희상이 멤버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춤도 잘 봤고.”
“…아!”
멤버들의 얼굴이 빨개지자 김희상이 웃었다. 김희상과 단체 사진을 찍은 멤버들이 허리를 숙였다.
“난 이만 가 봐야겠어. 언제 작업실 놀러 오고.”
“들어가세요, 선생님!”
이젠 가족들 차례였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멤버들의 가족과 사진을 찍었다. 이안은 한국에 가족들도 친구들도 없어서 주로 사진을 찍어 주거나 벽에 멍하니 서 있었다.
“저기… 같이 사진 좀.”
그의 주위를 맴돌며 같이 사진 찍을 각을 재고 있었던 박진혁의 누나 박서현이 수줍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누나, 나랑은 셀카 안 찍어?”
“넌 싫어.”
이안이 냉큼 박서현의 핸드폰을 받아 사진을 찍었다. 이안과 밀착한 박서현의 얼굴이 붉어지자 박진혁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
“형, 우리 동생들이에요.”
“안녕.”
박서담의 동생들과도 즐겁게 사진을 찍던 이안이 복도 끝에서 누군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빽녀 왔다.]그 무리들이 가까워지자 박동수가 한숨을 쉬었다.
“얘들아 고생해라.”
“넵.”
박동수는 멤버들의 가족 지인들을 인솔하고, 멤버들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야 했다.
공연 관계자나 소속사 관계자를 통해 들어온 이 사람들은 인맥을 이용해서 연예인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들로, 팬들 사이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빽녀’로 부르기도 했다.
[S사 예능국장이다. 딸이 너네 팬인가 봐.] [오, B기업 손녀도 있네.]거절하기도 곤란한 사람들도 있어서, 대부분의 소속사는 이런 사람들을 들여보내 주고는 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들과 사진을 찍는 1순위는 바로 이안이었는데, 이안은 마치 하이터치회에 온 것처럼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바로 다른 사람과 사진을 찍기를 반복했다.
물론 빽녀뿐만 아니라 빽남도 있었다. 젊은 남자가 이안에게 슥 다가와서는 악수를 청했다. 진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코웃음을 쳤다.
[얘네랑은 어울리지 말아라.]‘왜?’
그 이유는 진이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안에게 공연 잘 봤다는 인사를 한 남자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안 씨, 혹시 가상화폐 하세요?”
“네?”
“이제 월투 들어가면 돈도 잘 벌 텐데 자산은 미리 미리 투자를 해야 하죠. 저희가 이번에 개발한 가상화폐가 있는데….”
이건 어디서 들어온 이상한 놈이야? 이안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쟤네 유명해. 연예인이나 기업 자녀들 무리에 부득불 껴서 인맥 만들려고 용 쓰거든. 대부분 가상화폐로 돈 좀 만진 졸부들이야. 그 맛을 못 잊고 판 벌이려는 꾼들이지.]‘별 이상한 사람들도 꼬이네.’
[인기가 많아지면 이런 꾼들도 붙는 법이야. 너네 멤버들 단속 잘해라. 어? 어디 저 사람뿐이겠어? 가족이 더 무서운 법이다. 빚투알지?]남자는 계속해서 헤파코인인지 헤파필터인지 모를 들어 본 적도 없는 가상화폐의 투자 가치를 설파하고 있었다.
이런 개소리를 들어 줄 여유가 없었다. 이안이 에둘러 거절하려는 그때, 그들의 사이를 어떤 여성이 비집고 들어왔다.
“저도 같이 셀카 찍어도 될까요?”
“네 당연하죠.”
이안이 냉큼 여성의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남자는 아쉬운 듯 돌아서서 다른 멤버들에게 향했다. 저거 말려야 할 텐데.
다행히, 이주혁에게 간 남자는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서고 있었다.
[T그룹 막내딸이네.]이안의 옆에서 사진을 찍는 여성을 본 진이 말했다. 어디 기업 회장도 아니고, 자녀들 얼굴을 뭐 이렇게 잘 알아?
‘너 어디 정치부 기자도 했었냐?’
[이런 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야 뻔하지.]여성과 사진을 찍은 이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안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아….’
이안은 아까까지만 해도 콘서트에 찾아 준 팬들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의 인맥으로 손쉽게 연예인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며 씁쓸해져 왔다. 여기서 아위의 진정한 팬이 몇이나 될까? 팬클럽도 가입 안 했겠지?
‘내 감동 돌려내….’
이안은 사진 요청을 전부 들어준 뒤에야 그 장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 * *
“언니 내일도 와요?”
“콘서트는 올출 아니겠니?”
“와 저도요! 그럼 내일 또 봐요, 언니.”
“그래, 연락해.”
장민희와 헤어진 이다솔이 지하철역 앞에서 김은하를 기다렸다.
“빨리 나왔네?”
몇분 뒤 김은하가 이다솔의 어깨를 툭 쳤다.
“어우 내 쪽 스탠딩에 누구 쓰러져 가지고 난리 났잖아.”
“진짜?”
“애들 돌출로 올 때 스탠딩 사람들 무대로 몰렸잖아. 그때 낑겨 가지고 숨을 잘못 쉬었나 봐.”
“와 그래? 위험했겠네.”
“너 내일 스탠딩이라며? 웬만하면 앞에 있지 마. 뒤에 빠져 있어도 애들 얼굴 잘 보이니까.”
김은하의 충고에 이다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다솔은 아직도 콘서트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녀는 SNS에 들어가 홈마들의 콘서트 프리뷰 사진을 보는 족족 핸드폰에 저장했다.
‘애들 봐서 좋은데 좀… 허무하네.’
반면 김은하는 콘서트 현타를 제대로 맞고 있었다. 콘서트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무대도 완벽했고, 최애의 얼굴도 비교적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공연장을 채운 수많은 팬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체감하자 기분이 아리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랑은 진짜 먼 사람들이었구나….’
김은하는 자신의 집 현관에 들어서면서도 그 기분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비교적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최애의 얼굴도 사실은 너무나 멀리 있는 존재라는 그 괴리감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