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18)
121화. 귀가 명령
언미희는 눈을 떴다.
서서히 몸의 감각이 돌아왔다.
의식과 무의식의 흐릿한 경계에서 언미희는 권법가의 감각으로써 몸의 상태를 단번에 파악했다.
“…살아있구나, 나.”
몸은 거짓말처럼 양호했다.
부상이라 하기에도 어려운 자잘한 상처들 뿐이었으며 이렇다 할 고통조차 없었다.
단지… 기력이 없다.
마치 며칠 정도 굶은 것만 같은—
“아, 눈을 뜨셨군요, 소저!”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언미희는 몸을 일으켰다. 침상 한켠에서 의녀로 보이는 차림새의 젊은 여인을 발견했다.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나요?”
“말도 마세요. 벌써 사흘째인걸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하도 일어날 기미가 안 보여서 내심 머리를 다치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
“아, 내 정신 좀 봐! 이럴 게 아니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일행분들께 소식을 알려드리고 올게요!”
드륵, 타다닷.
“아, 잠, 잠시—”
언미희는 여인을 붙잡으려 했다.
허나 그때 여인은 이미 쾌속하게 방을 떠나버린 후였다. 순식간에 혼자 남겨지고 말았다.
“…….”
여인은 ‘일행’이라고 했다.
그것은 물론 이벽을 비롯한 비룡대원들을 가리키는 말일 테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경위를 거쳐 또다시 병상에 이르렀는지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다.
움찔.
“어라……?”
그 순간, 몸이 떨렸다.
기억을 더듬기 시작하자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잠가둔 문을 실수로 건드린 듯한 감각이었다.
“대체 무슨—”
언미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의 끄트머리를 더듬었다.
진량현에 도착했고, 지하에 위치한 분타를 찾아 일행과 함께 진입했다. 그리고.
시신들과… 일전을 벌였다.
—아…버지……?
찌릿.
“큭!”
언미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릿속이 곤죽으로 짓이겨지는 듯한 두통 속에서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붕대에 칭칭 감긴 ‘시신’.
그 움직임은 분명 언가권이었다.
그 사실이 가리키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허나 뿐만이 아니다.
언미희는 몸을 떨었다.
전투 중에 일행을 공격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드르륵.
그때, 문이 열렸다.
일순 언미희는 숨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차마 일행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허나 숨을 곳 따윈 없었고, 시선을 피할 수도 없었다.
들어서는 네 사람을 마주했다.
“…….”
“…….”
이벽과 공손수, 파진성과 송영영.
언미희는 들어선 네 사람을 살펴보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허나 언미희도 네 사람도, 어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기묘한 침묵 속에서 복잡한 표정들이 오고 갔다.
철컥, 후욱.
챙, 채애앵—!!
허나 그때였다.
찰나의 순간 검들이 엉켜 들었다.
“송영영, 이게 무슨 짓이냐.”
“케헥, 깜짝이야! 아, 미쳤냐고!”
송영영의 검이 언미희를 향해 쏘아진 순간, 이벽의 검과 파진성의 검이 동시에 뽑아졌다.
두 검이 대각선으로 교차하며 송영영의 검로를 완벽하게 봉쇄했다.
“…소저,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아니에요. 부탁이니 검을 거두어주세요.”
송영영의 배후를 점한 채 비수를 꺼내든 공손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흥.”
끼기긱!
송영영이 엉켜 든 칼을 빼내었다.
도로 납검한 뒤, 언미희의 눈을 마주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속에서 언미희는 깊은 분노를 느꼈다.
“야.”
“…네.”
“덕분에 우리 다 죽을 뻔했어. 알아?”
“…….”
언미희는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송영영의 시선이 이벽과 파진성, 공손수를 한 바퀴 훑고 지나갔다.
“흥, 하나같이.”
휙, 저벅저벅.
송영영이 돌아섰다.
홀로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 * *
며칠 뒤, 그럭저럭 부상의 회복을 마친 일행은 의원을 떠나 객잔으로 처소를 옮겼다.
다만 언미희와 더불어 내상이 유독 위중한 철면개는 여전히 의원에 남겨둔 채였다.
어찌 되었건, 모두가 회복을 마치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 모처럼의 여유가 생긴 셈이었다.
일행은 각자 몸을 추슬렀다.
송영영과 파진성은 검을 나누었으며, 공손수는 사라졌다가 밥때에만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이벽은 처소에 틀어박혔다.
명상 속에서 지난 전투를 되새겼다. 새로 얻어진 깨달음과 의문점들을 정돈한다.
“…….”
목천의 영역을 생각했다.
선천의 힘으로 상단전을 활성화하여 생각의 속도를 마음의 영역까지 끌어당긴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강기를 쓴다 해도 세 초식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잠영난봉 당려옥의 만천환을 제압했을 때와는 달리, 예의 시신을 상대로는 단 일검조차 버거웠다.
이유는 명백했다.
당가와의 싸움은 퍽 여유로웠으나, 분타에서의 싸움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목천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강대한 적과 목숨을 걸고 맞선다는 극한의 상황은 그 자체로 심력을 소모시킨다.
우우웅.
이벽은 선천의 힘을 일으켰다.
이내 흐름은 두 갈래로 나누어졌고,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며 익숙한 두통이 스쳤다.
‘…단련할 방법은 없나?’
상단전은 연약했다.
마치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의 다리처럼, 심력은 순식간에 소모되었고 탈진에 이르렀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이제 겨우 활용하는 법을 깨우친 신체부위일 뿐이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듯, 시간과 경험 속에서 튼튼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은… 여유롭지 않다.’
지하 분타에서의 일전 이후, 이벽은 다시금 초조함을 느꼈다.
맞닥뜨리는 적들은 시시각각 강해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이벽의 성장에 맞추어 한 발자국씩 앞서 있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절정의 끝에 이르러 그 위에 다시 하늘이 있음을 목도했음이니, 이를 ‘목천’이라 한다네.
—…그다음에는 뭐가 있소?
—그야 뻔한 거 아니겠나? 하늘을 목도하고 그 안에 자신을 비추었음으니, 무인이라면 응당 언젠가는 그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겠지.
이벽은 취풍신개와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허나 대체 어떻게 하면 하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 그 방법은 알 수 없다.
다만.
쓰러진 언미희의 몸 위로 천장의 파편이 떨어질 때, 이벽은 불현듯 취풍신개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목천의 영역 속에서 거짓말처럼 깨달음이 몸을 앞질렀고, 난생처음 겪는 속도의 일 보를 내디뎠다.
“…….”
어쩌면…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허나 거기까지였다. 생각은 겉돌다가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탁 풀어졌다.
이벽은 목천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리고.
“…재미있나?”
문득 시선을 의식했다.
이벽이 천장 한구석을 향했다.
“네, 엄청요~”
탁.
공손수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오라버니는 보면 볼수록 재밌어요. 역시 잘생긴 게 최고야. 늘 새로워요. 짜릿해.”
“…….”
공손수의 존재감은 날이 갈수록 흐릿해졌다. 이제는 이벽조차 집중하지 않으면 잡아채기가 어렵다.
즉, 무공의 경지가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제가 이렇게 몰래 숨어서 오라버니를 몰래 지켜볼 수 있는 것도 다 오라버니 덕분이지만요.”
“…복잡한 기분이군.”
“에이,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이것도 수련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훔쳐보려는 자와 간파하려는 자의 대결이요.”
피식, 이벽은 웃었다.
그리고 본론을 기다렸다.
공손수에겐 달리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벽으로서도 대강 예상이 갔다.
“언니에 대한 거, 진심이에요?”
“물론이다.”
앞서 사흘 만에 의식을 차린 언미희는 병상 위에서 돌연 송영영의 공격을 받았다.
물론, 송영영 역시 진짜로 언미희를 베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만 의사 표현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송영영은 방을 떠났다.
—괘, 괜찮아요, 언니?
—아, 네. 괜찮아요. 아하하…….
—…….
언미희는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벽은 알 수 있었다.
그 어색한 웃음은… 정말로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그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뿐이다.
이벽은 고민했다.
허나 그리 길지는 않았다.
—언 소저, 몸 상태가 나아지면 천향루로 돌아가시오. 이것은 대주로서의 명령이오.
“하아.”
공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붙들더니 언니한테는 참 칼 같네요. 물론 오라버니의 판단에 따를 테지만… 솔직히 조금은 착잡해요.”
“…….”
무어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허나 이벽이 언미희의 표정에서 읽어낸 것은 명백한 심마의 기척이었다.
그것은 악몽에 사로잡힌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얼어붙은 겨울의 냇물에 몸을 던졌던 과거의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죽음의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은 분명 모든 무인의 숙명이다. 하지만.
확실시되는 위험을 피하지 않는 것은 비할 바 없이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언미희, 혹은 어느 누구에게도.
“케헥, 케헤헥…! 커흑!”
그때였다.
창밖에서 느닷없이 익숙한 목소리가 스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창가로 향했다.
“에잉! 젊은 게 벌써부터. 쯧쯧!”
“얘야, 엄마 손 잡아! 빨리! 애들은 저런 거 보면 안 돼!”
객잔 바깥의 대로변에서는 인파들이 혀를 차며 길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초저녁부터 술에 취해 엉금엉금 땅을 기고 있는 인사불성의 사내가 있었다.
“…아는 사람이군.”
“정확히는 알아버린 사람이네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죄송해요, 오라버니. 어쨌건 제가 키운다고 데려왔으니 제가 책임은 져야죠.”
두 사람은 피식 웃었다.
휙, 창가를 뛰어넘었다. 사뿐히 착지한 뒤 파진성에게로 다가갔다.
빠악!
“파 소협, 그 며칠을 못 참고 또 술 처마신 거예요? 생각이 있어요? 상처가 참 잘도 낫겠다, 그쵸?”
공손수가 그 뒤통수를 두드렸다.
파진성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화색이 피었다.
“쥐, 쥐방울! 나 좀 살려— 케헥!”
덥석, 휙!
허나 그때였다.
인파 속에서 튀어나온 손 하나가 파진성의 목덜미를 붙들었다. 휙 잡아당기자 파진성의 몸이 그대로 무력하게 딸려갔다.
질질질, 끌려가기 시작한다.
“사, 살려 달라니깐…! 쥐방울! 대주! 케헤헥, 케헥!”
“…대체 무슨 상황이죠?”
“…나도 모르겠군.”
이벽과 공손수는 멈칫했다.
허나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이상 섣불리 나서기는 어려웠다. 파진성을 끌고 가는 손의 주인이 다름 아닌 송영영이었기 때문이다.
질질질.
이벽과 공손수는 끌고 가는 송영영과 끌려가는 파진성의 뒤를 따랐다.
송영영은 객잔에 들어섰다.
탁.
술병이 나뒹구는 탁자의 자리에 파진성을 억지로 앉혀놓은 뒤, 본인은 맞은편에 앉았다.
슥, 술잔을 내밀었다.
“따라. 빨리.”
“케흑, 그만… 이제 그만……!”
“…….”
쪼로록.
이벽은 술병을 들어서 잔을 채워주었다. 휙, 그제서야 송영영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
이벽은 당황했다.
송영영이 활짝 웃고 있었다.
“언제 왔어, 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