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20)
123화. 남궁과 모용 (1)
“크핫, 크하하핫! 으하핫!”
과하게 호쾌한 웃음이 이어졌다.
이벽은 호남의 비무를 떠올렸다.
눈앞의 사내가 당시 정파 측 후기지수의 대표로서 나왔었던 창천옥룡 남궁환임을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치 친우를 대하는 듯한 어투.
허나 이벽을 바라보는 눈 밑에는 그늘이 자리했으며 조금 야윈 얼굴은 미미하게 뒤틀려있었다.
“…뭐, 오랜만이라 말할 정도로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군.”
“아, 그게 그렇게 되나? 크하핫!”
이벽이 답하자 남궁환이 어깨를 으쓱했다. 일거수일투족이 과장되어 보이는 언행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자네는 잘 지낸 모양이니 말일세! 허나 내게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네. 자네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말야!”
“그렇군.”
이벽은 남궁환의 눈을 마주했다.
“남궁환, 그날 떨어뜨린 검을 이제야 다시 주울 생각이 들었나?”
“……!”
흠칫, 남궁환이 동요했다.
비룡대주 이벽이 남궁세가의 창천옥룡과 점창의 일섬룡을 꺾고서 사파무림 내에서 낙검신룡이란 별호를 얻게 되었음은 이미 정파무림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헌데 내 눈에는 아직은 새로 보여줄 게 없어 보이는군. 무리하지 말고 몇 년쯤 더 정진한 후에 오는 편이 낫지 않겠나?”
“크—”
파르르.
남궁환의 눈꼬리가 잘게 떨렸다.
“크하핫! 못 당하겠군!”
남궁환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다시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마치 유쾌함을 위장하여 터져 나오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모양새였다.
‘줍지 못했군.’
이벽은 생각했다.
남궁환의 검을 떨어뜨린 것은 분명 자신이다.
허나 그걸 다시 줍고 말고는 결국 남궁환 본인의 마음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남궁환은 분노와 악다구니에 휩싸여 스스로 심마를 키워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도와줄 생각은 없다.
그럴 의리는 없는 상대였다.
“크하—!”
우뚝, 웃음이 멎었다.
남궁환이 송영영을 향했다.
“반갑소, 소저. 나 창천옥룡 남궁환이오! 그간 이야기로만 듣던 무당의 태극무봉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소!”
“…왜?”
송영영이 반문했다.
“날 만나서 왜 기쁜데?”
“그야 이를 말이겠소? 본의는 아닐지라도 오룡삼봉이란 이름으로 한데 묶여 서로를 마음의 벗으로 흠모한 지도 퍽 오래되었으니 말이오! 이 또한 귀중한 인연이—”
“아니, 나는 흠모 안 했는데.”
“…….”
이벽은 웃을 뻔했다.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남궁환의 입꼬리가 바르르 흔들렸다. 가까스로 웃는 낯을 유지한 남궁환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헌데 말이오. 어찌 도가의 여협께서 저런 삿된 이를 따르고 계시오? 괜찮다면 이 내게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소?”
“싫어. 뭔 상관이야?”
타앙!
남궁환이 소리 나게 발을 굴렀다.
“소저, 정신 차리시오!”
“…….”
“상관이 있으니 하는 말이 아니오?! 자고로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하였소! 놈은 사마외도요. 소저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가까이 있으면 소저 역시 그 혼탁함에 물들어버리고 말 것이오!”
별안간 호통을 쳤다.
묵직하고도 우렁한 목소리는 그 백옥과 같은 자태와 맞물려 영웅적인 후광을 자아내는 듯했다.
“그래, 솔직히 당금의 무림에서 우리 의혈맹과 정도맹이 그리 편한 관계는 아니지. 허나 그 또한 방향성의 차이일 뿐, 결국은 천하를 바른길로 이끌고자 하는 백도의 동지가 아니오?”
은근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남궁환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소저, 부디 이쪽으로 오시오.”
슥, 그리고 손을 뻗었다.
“답하기 어렵다면 내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겠소. 허나 나는 소저를 해하고 싶지도, 정도맹의 뜻을 거스르고 싶지도 않소. 다만 부디 무당의 혜안으로 벗과 벗 아닌 이를 분별해주시길 청하오.”
“…….”
표정과 어투가 퍽 간절해졌다.
“내 약속하지. 이대로 내 벗이 되어준다면, 내 남궁가의 이름을 걸고서 털끝 하나 다칠 일 없이 무당까지 안전하게 보내드리겠소.”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정사에 선을 긋고 송영영을 자신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세 치 혀로 무당과 정도맹이라는 부담스러운 존재감을 적진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면, 물론 남는 장사일 테다.
이벽은 굳이 나서지 않았다.
휙, 송영영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는데, 나 어쩔까?”
“…….”
문득 이벽은 생각했다.
송영영이 자신과 함께하는 것은 그저 그것이 정도맹주의 뜻이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다만.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우기도 했다.
무너지는 지하 분타에서 자신을 부축하고 함께 걷던 송영영의 옆모습을 생각했다.
“네 선택이겠지.”
“…안 붙잡아?”
“어찌 되었건 열세인 것은 분명한 상황이다. 네 입장이 정확히 어떤지도 모르는데 날 위해 목숨을 걸어달라고 부탁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아.”
송영영이 드물게도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이.”
“…….”
“아까 한 얘기 있잖아.”
불현듯 송영영은 딴소리를 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지극히 개인적인 얘길 하고 있었다.
“…말했듯이 내게는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다. 그 사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
“…….”
이벽은 재차 입장을 정리했다.
송영영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네가 ‘벗’으로서 날 초대하겠다면 객의 자격으로 들를 수는 있겠지. 그 정도의 친분은 생긴 것 같군.”
“그래. 잘났어.”
송영영이 이벽의 눈을 잠시 일견했다. 휙, 매몰차게 고개를 돌려 남궁환을 향했다.
“정말로 집에 보내줄 거야?”
“물론! 이 창천옥룡이 대 남궁세가의 이름을 허투루 거는 못난이는 아니라오!”
“그래. 그럼 나 갈래. 안녕.”
송영영이 작별을 고했다.
그 표정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너무 진지해서 이벽은 또다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벅저벅.
송영영이 걸음을 옮겼다.
이벽에게서 멀어졌고, 이내 남궁환의 옆에 섰다. 뒤를 돌아 다시 이벽을 돌아보았다.
“크, 크큭……!”
부르르, 남궁환이 몸을 떨었다.
덥석,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으나 역부족인 듯했다. 곧 괴소가 터져나왔다.
“크하, 크하하하핫! 비룡대주, 한 방 먹었군, 그래! 믿고 있던 벗으로부터 등을 돌려지는 기분이 어떤가? 응?!”
저벅.
남궁환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만면의 미소를 넘어 일그러지다시피 한 그 얼굴은 정도 영웅의 역할마저 잠시 잊어버린 듯했다.
“자, 이젠 슬슬 후회가 되나?! 허나 이젠 늦었다네. 이곳엔 소림도, 개방도 없어! 그러게 적당히 설치는 게 좋지 않았나?!”
“…….”
“하지만 걱정 말게! 우리가 어디 보통 인연인가?! 내 특별히 자네에게도 살길을 열어줄 터이니! 자, 어서 이리 오게! 내 앞에서 검을 내려놓고서 무릎을 꿇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 문득, 남궁환의 뒤틀린 표정에서 이벽은 선우협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 검을 이리 가져오십시오. 형님께서 직접, 이 아우에게 바치시는 겁니다. 그리고 네발로 기어서 이 자리를 떠나십시오.
“…….”
피식, 이벽은 웃었다.
결국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남궁환, 그러고 나면 네 검을 주울 수 있을 것 같나? 천만에, 오히려 예전이 훨씬 나았다.”
“…뭐라?”
이벽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일전의 패배를 설욕하고 싶다면야 세가에 의존하지 말고 네 힘으로 덤벼보도록. 그 정도 깜냥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움찔, 남궁환의 얼굴이 굳었다.
말의 의미를 생각하듯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이내 허리를 숙인 채 얼굴을 감싸 쥐었다.
“크윽, 큭, 이 새끼가 기어코……!”
부르르, 웅크린 등이 떨렸다.
타앙! 다음 순간 땅을 박찼다.
“내가 못 할 줄 아느냐아아—!!!”
“고, 공자! 자중하시게! 창검대여! 공자를 도와 놈을 포위—!”
지켜보고 있던 남궁청이 황급히 외쳤다.
허나 그보다 남궁환의 속도가 더 빨랐고, 다시 그보다도 무당의 검이 뻗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서걱. 쿠당탕!
“끄아악!”
남궁환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송영영의 검끝이 등을 벤 것이다.
“왜, 왜……?”
“…난 약한 놈이랑 친구 안 해.”
* * *
“뭐, 뭣들 하느냐!”
송영영이 남궁환의 등을 베었다.
쓰러진 남궁환이 신음을 흘렸다. 급변한 상황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남궁청이었다.
“창검대! 어서 공자를 구해라!!”
챙, 채앵!
남궁세가 측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남궁청 본인이 선봉에서 땅을 박찼다.
타앗.
이벽도 즉시 자리를 박찼다.
남궁환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송영영 혼자서는 자신의 몸을 빼내는 것조차 쉽지 않을 테다.
송영영과 남궁환이 자리한 위치는 이벽보다는 남궁세가의 무인들 쪽이 좀 더 가까웠다.
허나 걱정할 것은 없다.
타다닷.
“헉!”
“아, 암기다!”
그 순간 천장에서 암기 다발이 쏟아졌다. 남궁세가 무인들의 발치에 틀어박혔다.
채앵!
“큭, 같잖은 짓을!”
남궁청이 암기를 쳐냈다.
허나 걸음이 반 박자 늦어졌고, 그 순간, 작은 그림자가 쓰러진 남궁환 위로 떨어져 내렸다.
“네, 인질 확보~”
덥석. 휙.
공손수가 남궁환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황급히 뒤로 몸을 뺐다.
“아, 안 돼! 빌어먹을!”
“큭, 한심한 작자들 같으니!”
남궁청이 황급히 쇄도했다. 그제야 상황이 심상찮음을 이해한 모용삭도 함께 땅을 박찼다.
남궁과 모용.
강호의 무수한 검가 중에서도 천하제일검가를 다투는 두 가문의 고수들이 동시에 검을 뽑으며 쇄도했다.
허나 그때는 이미 이벽이 송영영의 지척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채앵, 후욱.
송영영의 검이 태극을 그렸다.
성급하게 내뻗어진 남궁청의 검을 부드럽게 흘려버리며 자연스럽게 뒤로 후퇴했다.
또한.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회검제삼식(回劍第三式).
유검(柔劍).
챙, 스윽.
“아, 아니……?!”
이번에는 이벽의 검이 모용삭의 검을 흘려냈다. 그 모습은 놀라울 만큼 송영영의 검과 유사했다.
타앗!
“크, 감히 어딜 내빼려 하느냐—!”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남궁청이 재차 파고들었다.
그대로 몸을 빼내는 송영영과 이벽을 몰아치려 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좌우를 둘러싼다. 허나.
푸욱.
“커, 커허헉… 어억!”
“네, 대협들 동작 그만!”
공손수가 외쳤다.
그 사이에 이미 객잔의 가장 안쪽 탁자까지 몸을 빼낸 공손수가 보란 듯이 남궁환을 내밀었다.
목덜미에 침이 꽂혀있었다.
빳빳하게 굳은 채 신음을 흘린다.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듯 입이 한껏 벌려져 있으나 소리는 맘대로 나오지 않는 듯했다.
“네, 네 이녀어언!! 감히 무슨—!!”
“아, 걱정 마세요, 대협. 그냥 점혈이라서 뽑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어요~ 물론 여기서 반 치만 더 깊게 들어가면 사망이지만요!”
공손수가 침끝을 만지작댔다.
“끄어억, 어억…….”
남궁환이 침을 줄줄 흘렸다.
“아 무서워라~ 대협들 기세가 너무 흉흉해서 손이 미끄러워질 것 같은데 좀 물러나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