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21)
124화. 남궁과 모용 (2)
“…크으.”
남궁청이 이를 갈았다.
허나 물러서는 수밖에 없다.
“…창검대, 물러서라.”
“쳇.”
남궁청이 명을 내리자 무인들이 검을 거두었다. 이내 모용삭도 혀를 차며 함께 추격을 멈추었다.
그렇게 이벽과 송영영은 몸을 빼내었고, 공손수에게 합류했다.
“송영영, 연기가 제법이더군.”
“맞아요~ 위에서 몰래 지켜보는데 순간 진짜로 배신당한 줄 알았다니까요?”
“…흥.”
송영영이 팩 고개를 돌렸다.
수줍어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피식,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벽과 공손수는 작게 웃었다. 세 사람은 탁자에 둘러앉아 막간의 한숨을 돌렸다.
반면 남궁과 모용의 무인들 사이에선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뿌드득.
남궁청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남궁과 모용을 합해 스물이 넘는 일류 이상의 무인들이 모여있음에도 눈 뜬 채로 당하고 말았다.
물론, 원인은 명백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남궁청이 음산한 목소리를 내었다. 핏발이 선 눈은 송영영을 향해 있었다.
“그래도 정파로서의 연을 생각해 기껏 도리를 베풀려 했건만 뒤에서 암습? 의혈맹과 정도맹을 떠나 이게 정녕 정도방파가 할 짓인가?”
“…….”
“내 미처 몰랐군, 그래. 천하의 무당이 불과 몇 년 사이 이렇게나 사파에 물들어 썩어빠졌을 줄은—”
휘익.
남궁청의 입에서 ‘무당’이란 말이 뱉어진 순간, 송영영의 목이 소리 나게 꺾여졌다.
“나야말로.”
가라앉은 눈이 남궁청을 향했다.
“이게 남궁세가의 뜻이라고 봐도 될까? 자신 있어? 정말 괜찮겠어?”
빠악!
“커윽!”
송영영이 남궁환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네, 네 이년—!!”
“도리 좋아하시네. 너희가 그렇게 잘났어? 무당이 우스워? 아님 태극검존이 우스워? 이런 얼간이 내세워서 입바른 말 몇 마디 하면 내가 넘어갈 줄 알았어?”
“무, 무슨, 감히—!”
“나는 장문인의 뜻에 따라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빌어먹을 산적 좀 잡아보자고. 너희가 안 치우는 앞마당에 쓰레기 비룡대주랑 같이 치워보자고 여기 있다고. 근데 왜 이렇게 나대는 거야? 의혈맹 미쳤어? 돕지는 못할망정 왜 이리 지랄 발작을 해대냐고?”
빠악! 빠악! 빠악!
“컥, 윽, 꺼윽……!”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어질 때마다 송영영의 주먹이 연신 남궁환의 머리통을 두드려댔다.
“그, 그만! 그만하지 못—!”
빠아악!
“꺼억, 억…….”
“입 닥쳐, 이 남궁둥아. 한 마디만 더 반박하면 창천옥룡이고 뭐고 오늘 옥구슬 쪼개지는 거야.”
후욱.
일순 송영영의 흐릿한 표정 너머로 광기에 찬 눈빛이 스쳤다. 꿀꺽, 남궁청은 말문이 막혔다.
허세가 아니다.
진짜로 죽일지도 모른다.
“…송 소저가 이렇게 흥분하는 거 처음 보네요. 아니, 오늘따라 좀 까칠하다고 해야하나……?”
공손수가 다소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아직도 술이 덜 깬 것 같군.”
이벽이 답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선천의 힘으로 술기운을 털어냈지만, 송영영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술을 처음 마셔봤기에, ‘숙취’라는 것 자체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흥, 딸꾹!”
뻐억!
“꺼억……!”
마침내 남궁환의 눈이 돌아갔다.
“그, 그만 때려요, 소저. 그러다 진짜 죽어버리면 더 이상 인질이고 뭐고—”
송영영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짜증 나. 머리 깨질 것 같아.”
“…….”
벌떡. 저벅저벅.
문득 송영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찔, 무인들이 일제히 반응했으나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일행이 앉은 곳 바로 옆 탁자에는 앞서 도망친 손님들이 먹다 남기고 간 음식들이 늘어서 있었다.
덥석.
송영영이 국수 그릇을 집어 들었다.
벌컥벌컥, 냉큼 국물을 들이켠다.
“크어어.”
“…….”
* * *
“…뭐 좌우간에요.”
일다경의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귀한 인질을 확보한 덕에 당장의 교전은 면했으나, 전력의 열세는 여전히 명백하다.
공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협상을 시작해야겠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협들?”
“…그렇군.”
남궁청이 말을 받았다.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우리의 실책을 인정하지. 허나 애시당초 우리는 그저 의혈맹의 차원에서 그대들을 황보세가로 안내하려 했을 뿐, 해치러 온 게 아니오.”
“…….”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공자를 넘겨주고 순순히 따라온다면 이 이상 피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오. 허나 그렇지 않다면—”
“아니, 협박 말고 협상을 하자니까요? 대화가 겉도는 게 어쩜 이렇게 당가 때랑 똑같지?”
하아, 공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덥석.
불현듯 공손수가 남궁환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손등을 탁자 위로 펼쳐놓는다.
스륵, 공손수의 소매에서 비수가 흘러나왔다.
“무, 무슨 짓을—!”
타앙!
비수가 남궁환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꽂혀 들었다. 움찔움찔, 남궁환이 경련했다.
“제발 헛소리 좀 하지 마요, 대협. 또 상황 파악 못 하고 헛소리하면 그때마다 손가락 하나씩. 알죠?”
“크—”
“아, 가까이 오지 마시구요. 거기 가만히 계세요, 그냥. 다가와도 손가락 하나. 물러서도 손가락 하나. 뭐, 열 개나 있으니 시험해보고 싶으면 한두 번 움직여보시던가요.”
공손수가 생긋 웃었다.
“…어린 소저가 심성이 간악하기 짝이 없군. 추후 내 검이 잔혹하다 원망하지 않길 바라겠소.”
“뭐래. 나 사파인 거 몰랐어요?”
“…….”
남궁청은 이를 악물었다.
허나 남궁가 직계혈통인 남궁환의 목숨은…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희생이 아니다.
들끓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다시 침착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허면 대체 어쩌잔 말인가?”
“흐음, 글쎄요. 어쩜 좋으려나~”
공손수는 좌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에는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바깥에도 부하 몇 명 있죠?”
“…아니, 없소. 우리가 전부요.”
“흠, 그럴 리가 없는데? 퇴로 차단한답시고 발 빠른 몇 명은 바깥에 남겨놨을 텐데?”
“…….”
남궁청은 내색하지 않았다.
허나 사실은 그 말대로였다.
창검대의 부대주 남궁평이 대기 중이며, 이미 내부의 상황변화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 터이다.
혹여 이대로 놈들이 남궁환을 납치한 채 달아나려 한다면, 문을 나서는 순간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뭐, 좌우간 저희 요구는 간단해요. 여러분들 전원, 물러나 주세요. 남궁 소협은 저희가 충분히 멀어졌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풀어드릴 테니까요.”
“…하! 웃기는군.”
남궁청이 딱 잘라 말했다.
“무사히 풀어주겠단 말을 대체 우리가 어찌 믿나?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나온다 해서 굴복할 거라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오.”
“호오, 정말요?”
공손수가 탁자에 꽂힌 비수를 만지작댔다. 움찔, 남궁청의 시선이 흔들렸다. 허나.
“…무인으로 태어나 임무 중에 목숨을 잃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
“억, 어억, 억……!”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남궁환이 다급히 신음을 흘렸다. 허나 누구도 들은 체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이 자리에서 남궁의 피가 흐르게 된다면, 누군가는 천배 만배로 갈기갈기 찢겨서 죗값을 치러야 할 테니.”
“어머, 무서워라~”
공손수는 턱을 괴었다.
협상의 기본은 상대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다. 무리해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게 한눈에 드러난다.
‘하긴, 천하의 남궁세가가 언제 이런 상황에 처해 봤겠어?’
저 정도 수준이라면 손가락을 한두 개를 자르는 것만으로 충분히 흔들어놓을 수 있다.
다만.
공손수는 이벽을 바라보았다.
눈빛에선 신뢰가 느껴졌으며, 공손수는 가급적 그 신뢰에 보답하고 싶었다.
‘협객’인 이벽을 따르고 있는 이상, 자신 역시 조금은 성가신 길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뭐, 지금은 굳이 피를 안 봐도 될 것 같고.’
탓! 퍽, 퍼억, 쿵, 콰앙!
그때, 객잔 바깥에서 요란한 소란이 터져 나왔다. 허나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리고.
퍼어억!
“커허헉!”
인영 하나가 객잔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대로 땅에 널브러진 채 피를 토했다.
“부, 부대주……!”
창검대의 부대주, 남궁평이었다.
“어디, 남는 밥 좀 있나?”
불쑥, 그리고 거지 한 명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그것은 일행들에게 있어 반가운 얼굴이었다.
“안녕하신가, 여러분? 나 개방의 철면개요. 밥 좀 얻어먹으러 왔소. 참고로 바깥에 있던 녀석들이 자꾸 막아대길래 좀 때려놨는데 일행이라면 사과하지.”
“케헤헤, 그리고 나는 덤이시다.”
이어 파진성이 함께 뒤따랐다.
흉흉한 실내를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가로지른 두 사람이 이내 비룡대 일행의 탁자에 앉았다.
“모시고 오느라 수고했어요, 파 소협~ 걸개, 몸은 이제 좀 괜찮으신가요?”
“음, 안 그래도 거지 팔자에 며칠을 좋은 침상에서 놀고먹었더니 오히려 찌뿌둥하던 차인데 마침 잘 됐지 뭐요?”
앞서 객잔이 포위되기 직전, 수상한 기척을 눈치챈 공손수는 파진성을 창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대로 의원으로 향한 파진성이 내상을 회복 중이던 철면개에게 소식을 알리고 함께 찾아온 것이다.
“…….”
남궁청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진짜 못 해 먹겠군.”
그리고 그때였다.
마침내 모용삭이 입을 열었다.
“남궁 당주. 대체 어쩔 셈이오? 그쪽 잘난 도련님께서 얼간이 같은 짓거릴 하는 바람에 전부 망쳐놨잖소?”
“…모용 대협.”
“애초에 우리끼리 쓸데없는 다툼을 피하고자 함께 하기로 한 거지, 이렇게 발목을 붙잡히기 위해 함께한 것이 아니오.”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 순간, 공손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곧바로 떠오른 말을 입으로 옮겼다.
“과연, 옳으신 말씀이군요. 모용 대협.”
“뭐라? 그 입 닥쳐라. 네까짓 사마외도의 계집이 지금 나를 모멸하려는—”
“아뇨, 진심이에요.”
공손수가 모용삭을 향했다.
“그러지 마시고 부디 저희 입장을 한 번만 헤아려 주세요. 애초에 저희 역시 진심으로 의혈맹과 맞설 생각은 없어요. 고작해야 이 인원수인데, 아무렴 저희가 사파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개념이 없겠어요?”
“…….”
“단지… 믿을 수가 있어야죠? 당가고 남궁이고 대화 운운하면서도 먼저 칼을 들이대는데 대체 어떻게 믿고 뒤를 따르겠냐구요?”
모용삭은 생각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모용 대협. 이럼 어떨까요?”
모용삭의 미미한 표정 변화를 감지하며 공손수가 얼른 말을 이었다.
“저희는 절대로 남궁세가를 믿을 수 없어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남궁세가가 물러나도록 대협께서 도와주세요.”
“…뭐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 비룡대는 대협과 모용세가의 중재를 믿고서 모용세가와 함께 황보세가로 향하겠어요.”
“……!”
쿠웅, 장내에 충격이 일었다.
모용삭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그렇다는 건… 저 계집의 말대로라면 결과적으로 공을 독차지하는 모양새가 된다.
“하! 모용 대협! 저따위 젖비린내 나는 사파 계집의 허접한 이간질에 넘어갈 생각이오?!”
남궁청이 황급히 외쳤다. 허나.
“…내 생각에 허접한 이간질은 조금 전 당신네 잘난 도련님이 먼저 한 것 같군.”
“뭐… 뭐라?!”
“오룡삼봉입네 뭐네 하더니 뭐요, 저 꼴이? 애초에 저런 등신 같은 애송이를 대체 왜 데려온 거요?”
“이… 이익!”
“우리는 양보할 만큼 양보를 한 것 같군. 저쪽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니, 이쯤에서 남궁세가에서도 한 발쯤 물러나 주는 게 어떻소?”
그리고.
좌우로 나란히 선 남궁가와 모용가 무인들 사이에서 기묘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