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39)
143화. 화영검무
저벅.
다가오는 남궁천승을 바라보며 이벽은 적파심공을 일으켰다.
양호명과의 비무를 떠올렸다.
그때.
적파심공의 강기를 끌어올린 이벽은 결국 혈기에 잠식되었고, 비무는 곧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생사결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이벽을 막기 위해 송영영이 끼어들었다. 산산이 부서진 적파심공의 강기가 송영영을 향해 쏟아졌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월향이 화영지정의 곡조를 연주했고, 적파심공이 주춤하며 이벽의 머리가 식었다.
찌직, 찌지직.
송영영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한 순간, 이벽은 혈기로 물든 선천의 힘을 억지로 찢어발겼다.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고.
‘뜻하지 않은 성취’를 얻었다.
“이보게. 혹여나 해서 하는 말하네만, 객기를 부리는 거라면 지금 그만두게. 자네가 죽어버리면 내 입장이 난처해져서 말일세!”
남궁천승이 이죽거리듯 말했다.
어느새 거리는 다섯 보 앞으로 좁혀져 있었다. 제왕검형의 강기가 고요한 울음으로 공기를 밀어냈다.
“…….”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물론 그 ‘성취’로도 저 터무니없는 강기를 막아설 수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정면승부를 피해 이리저리 몸을 빼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가능한 시간을 벌어야만—
“……!”
그때 문득, 이벽은 남궁천승의 등 뒤로 자리한 청중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얼굴.
허나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이벽은 비로소 안심했다. 그의 존재는 마침내 자신이 할 일을 끝냈다는 ‘신호’였다.
“…아니, 쓸데없는 걱정이오.”
저벅.
이벽은 오히려 다가섰다.
더는 시간을 벌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 편해지자 비로소 판단은 확고히 굳어졌다. 쓰러뜨리지는 못하더라도.
남궁천승의 붉게 물든 오른쪽 어깨를 바라보았다. 한 번 정도는 더 닿을 수 있다면.
“핫! 그런가? 노파심이라니 나도 늙긴 늙은 모양이구만! 그럼 사양 안 하고 가겠네!”
저벅, 다시 일 보가 좁혀졌다.
훅, 이벽은 분노를 끌어올렸다.
그것은 언미희의 야윈 등을 생각하면 힘든 일조차 아니었다. 적파심공의 혈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우우웅.
이내 이벽의 검 위로 붉은빛의 불안정한 강기가 어렸다.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분노가 이성을 잠식하려는 찰나의 순간, 이벽은 선천의 힘을 찢어발겼다.
쩍, 쩌적!
적파심공의 흐름에 빠져 들끓기 시작한 선천의 힘은 좀처럼 쉽게 갈라지지 않는다.
허나… 불가능하지 않음을 이미 겪어보았다. 이내 쪼개어진 선천의 힘 중 한 갈래가 머리로 스며들었다.
우우웅.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탓.
느려진 시간 속에서 이벽은 재차 걸음을 내디뎠다.
살심에 사로잡히는 한편, 목천의 영역 속에서 그러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실낱같은 이성을 보호한다.
적파심공의 강기는 분명 ‘맨정신’으로는 다룰 수 없는 힘이었으나, 목천의 영역은 ‘분노와 이성의 공존’을 가능케 했다.
물론 그러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잠깐에 불과하지만, 일 검을 펼치기에는 충분하다.
후우웅!
그리고 남궁천승의 검이 운석처럼 떨어졌다. 이벽은 반대로 검을 짓쳐 올리며 적파심공의 강기를 맞부딪혔다.
퍼어억.
검과 검이 충돌했다.
태산과 같은 압력이 쏟아졌다.
“…커억.”
째앵.
이벽의 신형이 흔들렸다.
허나 그와 동시에 이벽의 강기가 그 즉시 산산조각이 났다.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허어?”
남궁천승의 눈썹이 흔들렸다. 강기의 파편들이 남궁천승을 향해 후두둑 쏟아졌다. 허나.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이 압력을 버틸 수 없다.
적파심공의 강기가 남궁천승에게 닿기 이전에, 자신이 짓이겨지는 게 더 빠르리란 판단이 스쳤다.
그 즉시 화영지정을 떠올렸다.
휘이이이.
목천의 영역으로 보호된 한 줄기 이성 속에서 이내 청아한 피리 소리의 곡조가 흐르기 시작했다.
일찍이 월향은 ‘음공이란 무리를 넘어 마음에 직접 닿는 힘’이라고 말하였다.
훅, 혈기가 주춤했다.
적파심공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화아악.
다음 순간, 꽃이 피었다.
그것은 더 이상 환영이 아니었다.
적파심공이 사그라든 순간 이벽의 검끝에 머물던 강기가 선홍빛 꽃잎이 되어 송이송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후욱.
비무대 위로 꽃바람이 흩날렸다.
“이, 이게 무슨… 어찌?”
남궁천승이 황망한 낯을 띄웠다.
허나 그것은 남궁천승뿐만이 아니었다. 비산하는 꽃잎들은 비무대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눈을 한순간에 빼앗아버렸다.
“…헛!”
꽃이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 남궁천승은 대경하며 몸을 비틀었다.
넋을 놓을 때가 아니다. 이것이 강기의 일종이라면 몸을 베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허나.
꽃잎은 남궁천승을 베지 않았다.
강기로 빚어진 꽃잎이되, 그것은 마치 진짜 꽃잎처럼 아무런 상처조차 남기지 않았다.
“허, 허헛…….”
남궁천승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내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허나 남궁천승은 비무대 위에서 적을 앞에 두고 마음이 풀어지는 것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또한.
꽃잎에 닿은 제왕검형의 기세가 눈에 띄게 옅어졌다는 것 역시 눈치채지 못했다.
“…….”
훅, 압력이 대거 줄어들었다.
움직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든 순간, 이벽은 마지막 심력을 긁어모아 용천혈로 땅을 붙들었다.
타앙.
그리고 몸을 내던졌다.
취풍신개의 일보를 사용했다.
그 즉시 이벽의 몸이 쏜살처럼 튕기며 남궁천승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서걱.
베는 감각이 스쳤다.
이벽은 검끝으로 그 감각을 느꼈다. 노림수가 성공했음을 직감하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허나.
터엉, 쿠당탕!
그 즉시 목천이 영역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벽의 몸이 제 속도를 못 이기고 나뒹굴었다.
이벽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허나 이벽은 걱정하지 않았다.
타앗.
그리고 그때, 청중들 사이에서 인영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왔다.
그대로 이벽의 몸을 받아들었다.
* * *
슥.
이벽의 몸을 받아든 인영이 다시 비무대를 박찼다. 사람 하나를 짊어지고 있음에도 발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날아오른 인영이 모여든 인파의 한가운데로 착지했다.
그리고 모습을 감추었다.
“어… 어?”
잠깐의 정적이 지났다.
이내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 어디 갔어?”
남궁천승과 이벽의 검이 부딪힌 마지막 순간, 비무대 위로 반투명한 꽃이 너울너울 피어났다.
생경한 그 모습에 모두가 넋을 놓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헌데.
다음 순간 이벽의 몸이 쏜살처럼 튕겨 나갔고, 다시 그 몸을 누군가가 받아들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이벽도, 이벽을 받아든 인영도.
웅성웅성.
“아, 아무도 움직이지 마시오!”
그제서야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나섰다. 부랴부랴 인파를 통제하려고 했다.
“비무는 끝났소! 간악하게도 놈이 여러분들의 사이에 숨어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는 모양이니 섣불리 경거망동하지 말고—”
퍼엉.
허나 그때였다. 군중들 사이의 이곳저곳에서 폭발음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으아아악! 독이다! 콜록, 커헉!”
“사, 살려줘! 숨 막혀! 으아아악!!”
연기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치솟았다.
“으… 으아아아악!”
“도, 도망쳐!!”
군중들이 일제히 혼란에 빠졌다. 저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지, 진정하시오! 모두들 진정하고 통제에 따라주시오! 모두 이쪽으로—”
“비켜어!!”
퍼억.
무사들이 황급히 모여들었다.
허나 공황에 빠진 군중을 통제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퍼억, 인파들이 무인을 밀치고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채앵!
“이익! 이것들이 진짜!”
밀려난 무인이 땅을 뒹굴었다.
일어나자마자 분개하며 곧장 칼을 뽑아 들었다.
“그… 그만! 무슨 짓이냐! 양민들을 상대로 칼을 휘두를 셈이냐!”
“으아아악!”
“도, 도망쳐어어!!”
동료 무사가 황급히 만류했으나 이미 뽑혀버린 칼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번쩍이는 칼날 앞에서 혼란은 마침내 폭발했다.
남궁세가의 대연무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
홀로 비무대 위에 선 남궁천승은 잠자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욱씬.
그때, 옆구리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그것은 기억 속의 오래된 고통이 아닌 생생한 오늘의 고통이었다.
남궁천승은 시선을 내렸다.
상처는 퍽 깊었다. 놈이 마지막 순간 남기고 간 검상에서는 적지 않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대체 뭐였지?’
있을 수 없는 속도였다.
한순간 놈을 놓치고 말았다.
허나…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마지막의 그 일 보뿐만이 아니었다.
휘날리는 꽃.
그것은 일견 화산파의 무공을 떠올리게 했다. 허나 꽃은 자신을 베지 않고 지나갔다.
그렇기에 더욱 놀라웠다.
‘…어쩌면 그것은.’
약관조차 되지 않은 나이에 절정에 오른 것만으로 천하제일 후기지수라 부르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헌데 어쩌면.
부르르, 남궁천승은 몸을 떨었다.
“…핫, 대충 알겠소. 황보 가주.”
타닷.
그때, 비무대 위로 인영 하나가 황급히 올라섰다. 즉시 엎드려 부복했다. 외당주 남궁청이었다.
“왜 그러느냐?”
“그, 그게…….”
“그 아이가 사라졌다고?”
“……!”
흠칫, 엎드린 남궁청의 등이 흔들렸다. 허나 남궁천승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뭘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뿐이지 않느냐?”
“…소, 송구합니다.”
세가의 내부 경계는 느슨했다.
그것은 명실상부 천하제일 검가로서 지난 오십 년간 누구에게도 침략을 당하지 않았던 관성에 찌든 탓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외부의 침략자가 남궁세가의 ‘영역’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남궁천승은 다시 웃었다.
“겨우 그 정도의 속셈이었다면 오히려 실망이군. 좌우간 빼앗긴 것이 있으면 다시 되찾으면 그만이지. 그렇지 않나?”
“그, 그렇습니다……!”
“난 우선 지혈을 좀 해야겠군. 자네는 천천히 움직여보도록 하세. 어르신들께 너무 수고를 끼쳐도 곤란하니 말일세.”
* * *
“…연막탄이라니, 요란한 짓을 하는군.”
공손욱이 말했다.
어깨에는 이벽이 실려있었다.
남궁세가의 대연무장이 아수라장이 된 그때, 두 사람은 이미 남궁세가를 벗어나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
어깨에 실려 운반되는 한편, 이벽은 뒤편을 돌아보았다.
폭음과 함께 남궁세가 쪽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하오문도들의 짓일 테다.
군중 속에 하오문도가 섞여 있음은 이미 월향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물론 진짜 독 연기는 아닐 테지만, 혼란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문득 일행들이 걱정스러워졌다.
무사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지금의 송영영과 양호명은 반쯤은 정도맹을 대표하는 입장이므로 남궁세가로서도 함부로 손댈 수는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때 자네, 몸은 괜찮나?”
그때, 공손욱이 말했다.
“…버틸 만합니다.”
“그거참 다행이군. 너무 늦었다고 딸애한테 바가지는 안 긁히겠어.”
공손욱이 답했다.
짐짓 무미건조한 목소리에는 미약하게나마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탓, 탓.
남궁세가를 벗어난지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연기는 어느새 먼 산처럼 아득하게 보이고 있었다.
추적의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경이로운 속도이지만, 그야말로 암영각의 2호이자 남촌의 촌장임을 생각하면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
언미희는 한창 비무가 치러지던 도중 세가 내부로 잠입한 공손수와 천소연에 의해 구해졌다고 했다.
물론, 암영각을 대표하는 고수들이 사파무림을 떠나 이곳 남궁세가까지 이벽을 도우러 나선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었을 리 없다.
‘부모를 대동하다니…….’
이벽은 공손수를 생각했다.
정말로 ‘어떻게든’ 해주었다.
탓.
이내 공손욱의 걸음이 어느 후미진 곳의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한켠에 이벽을 내려놓았다.
“우선은 이쯤에서 안사람들과 합류하는 게 낫겠군. 잠깐 운기라도 하게나.”
“…알겠습니다.”
이벽은 잠자코 가부좌를 틀었다.
말마따나 몸은 엉망이지만, 진탕이 된 혈로만큼은 언제나처럼 선천의 힘에 의해 회복이 이뤄지고 있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 전투가 가능한 상태로는 만들어두는 편이 좋으리라는 판단이 스쳤다.
콰아앙!
허나.
채 일각이 지나기도 전이었다.
별안간 충돌음과 함께 지붕이 흔들렸다. 지붕 저만치가 터져나가며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두 명의 인영이 쏜살처럼 솟구쳐올랐다.
훅.
그 즉시 공손욱이 팔을 뻗었다. 소매에서 뻗어나간 비수가 섬광처럼 번뜩였다.
채앵.
“어이쿠 이런!”
허나 튕겨졌다.
“깜짝 놀랐네! 원, 다짜고짜 칼을 던지면 심장 약한 노인네들 무서워서 어찌 살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