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41)
145화. 안경 탈출 (2)
저벅.
이벽과 공손욱이 문밖으로 나서자 이내 거리와 집을 수색하던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곧장 눈이 마주쳤다.
“…어?”
무인들의 눈이 흔들렸다.
저벅, 이벽에게로 다가왔다.
“이봐 너, 혹시 수상한 녀석을 못 봤나? 아마 알고 있겠지만, 본가의 비무에서 패배한 비룡대주가 이 근방으로 도망쳤다!”
“…….”
이벽은 잠시 침묵했다.
“봤소. 실은 나요.”
“…뭐라고?”
“내가 비룡대주라고.”
“그, 그게 무슨—”
무인들의 시선이 이벽의 위아래를 훑었다.
복장과 허리춤의 검, 그리고 남궁천승과의 비무 중에 생겨난 자잘한 검상을 눈으로 확인했다.
“…노, 놈이다!!”
“놈을 찾았다! 포위하라!!”
그제서야 무인들이 반응했다. 우르르 몰려든 채 이벽과 공손욱의 주변을 포위했다.
퍼엉, 펑!
그리고 몇몇 무인들이 신호탄을 터뜨렸다. 이벽은 하늘로 솟구치는 불빛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라는 바다.
“다 쐈소?”
“다, 닥쳐라, 이놈!!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싸, 싸울 것이다!”
“좋소. 싸우도록 하지.”
철컥, 이벽은 검을 뽑았다.
무사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챙, 서걱.
이벽은 다짜고짜 적의 한복판으로 치고 들어갔다. 이내 이벽의 검에 두 명이 맥없이 쓰러졌다. 허나.
챙, 채앵!
“거… 겁먹지 마라!”
“놈은 이미 지친 몸이다!”
이내 적들은 곧 진형을 갖추었다.
그리고 이벽의 전방 곳곳에서 잘 짜여진 검들이 빗발쳤다. 이벽은 청강검식을 휘둘렀다.
챙, 채앵!
적들은 약자들이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실질적인 전력에 해당하는 무인들이었으며, 숭무관의 제자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이벽의 상대는 되지 않았으나, 간혹 섬찟할 만큼 날카로운 검들이 연계 속에서 빈틈을 찌르고 들어왔다.
“…핫.”
이벽은 작게 웃었다.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벽은 내상조차 잊고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빗발치는 남궁세가의 검들 속에서 남궁천승과의 비무를 복기했다.
화영지정의 검을 생각했다.
아니, ‘화영검무’를 생각했다.
그것은 일찍이 양호명과의 비무에서 그 꽃이 처음 피어났을 때 월향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적파심공의 살기에 잠식당한 순간, 이벽은 목천의 영역 속에서 화영지정의 곡조를 떠올렸고 살기는 사그라들며 강기는 꽃이 되었다.
꽃은 그 무엇도 베지 않는다.
허나 동시에 나와 적을 가리지 않고 그 순간의 충돌에 담긴 기를 ‘빨아들이며’ 계속해서 피어났다.
꽃은 적파심공의 강기를 먹고 피어났으며, 심지어는 제왕검형의 강기마저도 그 기세를 약화시켰다.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허나.
월향은 이를 두고서 ‘자신의 음공이 이벽의 마음에 스며들어 검공으로 변형된 것’이라 설명하였다.
—무릇 기예란 스스로의 마음을 다른 무언가로 표현하는 데 도리가 있지요. 그것이 피리이건, 붓이건, 혹은 검이던 간에요.
—…….
그것은 일찍이 초연서에게서 전해 받았던 만월무변심공의 가르침과도 어느 정도 맥락이 닿아있는 듯했다.
허나 결코 같지는 않다.
그 무리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앞으로 이벽이 알아가야 할 문제였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오문 수호대원으로부터 또 하나의 무리를 건네받았으며, 그것은 당연하다는 듯 낙검진천신공의 일부로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퍼억!
“끄… 끄윽.”
그때, 정면의 적이 쓰러졌다.
그리고 이벽은 어느새 두 발로 서 있는 적이 한 명도 남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한창 몰입 중에 미안하네만, 그리 기분을 낼 때는 아닌 것 같네.”
“…그렇군요.”
훅, 공손욱이 비수를 털어내며 말했다. 이벽은 잠시 쓰러진 이들을 일견했다.
죽이지는 않았다. 다만.
“찾았다! 놈들이다!!”
“삼조가 당했다! 빌어먹을—!!”
허나 그때, 쓰러뜨린 보람이 없게도 길 맞은편에서 다시 일련의 적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탓.
두 사람은 땅을 박찼다.
근처의 지붕 위로 올라간 뒤, 지붕과 지붕을 타고 뛰어넘기 시작했다.
우르르.
“쪼, 쫓아라!”
“놓쳐선 안 된다!”
이내 온 거리가 들썩거렸다.
사방에서 적들이 두 사람을 향해 몰려들었다. 신호탄이 쉴새 없이 하늘을 수놓았다.
“우선 적당히 외곽을 돌지. 조금만 더 고생하세. 반 시진 정도면 안사람들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겠지.”
“알겠습—”
“흐아앗!”
“타앗!”
그때, 양측에서 날아오른 두 명의 무인이 두 사람을 향해 쇄도했다.
퍽, 퍼억.
“커윽!”
허나 그대로 튕겨 나갔다. 이쪽에게 닿기도 전에 공손욱의 암기가 그들에게 먼저 닿은 것이다.
“…….”
이벽은 원통한 얼굴로 아래로 추락하는 이들을 지켜보았다. 암기에 당했으나 치명상은 피한 듯했다.
‘슬슬 강해지는군.’
탓, 타앗.
두 사람은 한참을 도망쳤다.
가로막히면 베어냈으며, 달려든다며 튕겨내었다. 그렇게 길을 열고 무작정 내달리기를 이 각 정도가 흘렀다.
“노오오옴!!”
“잘도 저질렀구나!!”
이내 서슬퍼런 목소리가 울렸다.
절정고수로 추정되는 노인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궁한중, 남궁한명과 마찬가지로 남궁세가의 원로에 해당하는 이들이 마침내 등장한 것이다.
“슬슬 위험하군.”
“그렇군요.”
이벽은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다.
“힘들면 말하게. 업어주겠네.”
“…괜찮습니다.”
* * *
훅.
천소연과 공손수가 지붕과 지붕 사이를 내달렸다. 언미희는 천소연의 등에 업혀있었다.
발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기척은 그림자처럼 흐릿하다.
벌건 대낮에 지붕 위를 지나다니고 있음에도 두 사람의 존재를 제대로 눈치채는 이는 없었다.
“…아무래도 뭔가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나 보네. 그럼 우리 먼저 얼른 탈출해야겠다.”
목적지는 안경의 남문이었다.
본래 이벽을 빼 오기로 한 공손욱과의 합류를 계획했으나, 신호가 오지 않았으므로 천소연은 빠른 판단을 내렸다.
“…알았어. 가자.”
공손수는 잠자코 따랐다.
적진에서의 작전 수행 중 일행에게 발목을 붙잡히는 것은 하책이다. 그것은 공손수 역시 암영각 출신으로서 잘 알고 있는 바였다.
허나 목소리는 조금 굳어있었다.
“딸, 그 사이 경공 좀 늘었네?”
탓, 허공을 가르는 한편 천소연이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어. 좋은 거 얻어먹었거든.”
“어휴, 누군 좋겠네. 근데 목소리는 왜 그래? 불안해? 설마 네 아빠를 못 믿어서 그래?”
“응. 사실은 별로.”
“…….”
공손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도 뭐, 괜찮겠지. 우리 오라버니가 같이 있으니 어떻게든 해줄 거야.”
“…어쭈? 이년이?”
그리고 두 모녀는 짐짓 태연하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허나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절정고수라도 만나지 않는 이상 움직임을 들킬 일은 없지만, 공손욱이 발목을 붙잡혔다는 건 결국 ‘그만한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탓.
이내 세 사람은 무사히 남문까지 도착했다. 허나.
“에엑, 뭐야 이게?”
근처의 지붕 위에 납작하게 엎드린 채 문 쪽을 주시하던 천소연이 난처한 소리를 내었다.
“말도 안 돼. 왜 이렇게 빨라?”
말마따나 굳게 닫힌 문 주위로는 벌써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개미 한 마리도 내보내지 않겠다는 듯 경계는 삼엄하다.
“…….”
공손수는 생각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자신들보다 빠를 리 없다. 그렇다는 건.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상주하고 있던 인원이 있었나 보네. 혹은 도시 전체에 퍼져있었다거나.”
“하아.”
이번에는 천소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려 언미희를 바라보았다.
“그러네, 진짜. 소저 말대로네요. 어쩐지 내부 경계가 너무 허술하더라니, 썩어도 준치라고 오대세가 이름값은 하네.”
“…….”
언미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 준 이들에게 달리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아, 어쩌지? 정면 돌파는 힘들 것 같은데…….”
천소연이 성가신 기색을 내비쳤다.
기척으로 보건대 문을 지키는 이들 중에는 절정으로 추정되는 중년인이 두 명 정도 눈에 들어왔다.
“그냥 성벽을 오를까?”
“…너무 무모한 거 아냐, 엄마?”
암영각의 무공이 제아무리 은밀하다고 해도 성벽을 타고 오르는 이상 그 모습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은 근처에 있던 고수들이 우수수 함께 벽에 달라붙을 것이고, 성을 벗어나서도 한참을 추적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할 수 없지. 어떻게든—”
펑, 퍼엉!
허나 그때였다.
느닷없이 요란한 폭발음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일행은 일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신호탄이 번쩍이고 있었다.
펑, 펑! 퍼엉! 펑!
심지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처음의 몇 발을 필두로 신호탄들이 일정 간격으로 계속해서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웬 불꽃놀이래.”
천소연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허나 그때였다.
우르르.
“가자!!”
성문을 지키던 인원들 중 태반이 황급히 성문을 뜨기 시작했다. 신호탄을 쫓아 우르르 몰려간다.
걔 중에는 절정고수도 있었다.
비록 둘 중 한 명은 그대로 성문 쪽에 남았지만, 심리적 부담은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어쩜, 네 아빠가 일하나 보다.”
“그러게. 우리 오라버니가.”
“이년이 진짜?”
두 모녀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복면을 쓴 얼굴을 각자 유심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저 고수는 해결할 수 있겠어?”
“얘는. 한 방이면 충분하지.”
“됐네, 그럼. 자, 그럼 언니는 이리 와요. 내가 업어줄 테니까 꽉 잡아요~ 세상에 무게가 아예 없네.”
“…….”
이내 공손수가 언미희를 업었다.
“단숨에 간다. 알겠지, 딸?”
“응.”
그리고 두 모녀는 잠시 호흡을 골랐다. 흡, 호흡을 들이마심과 동시에 일제히 땅을 박찼다.
후두둑.
“뭐, 뭣?!”
“커, 커억!”
공손수가 소매를 흔들자 우수수 암기가 쏟아졌다. 문 앞을 지키던 무인들 서넛이 풀썩 쓰러졌다.
채앵.
“스, 습격이다!!”
“정신 차려라!!”
남은 무인들이 부랴부랴 칼을 뽑아 들었다. 탓, 땅을 박차며 공손수에게로 쇄도했다.
허나 공손수의 그림자 밑에 숨어있던 또 한 명의 인영에 대해선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이 패인이었다.
훅.
공손수의 그림자 속에서 천소연이 왼팔을 흔들었다. 우수수, 또다시 암기가 흩뿌려졌다.
“커억!”
“무, 무슨!”
발아래의 사각에서 날아든 암기는 남은 무인들마저 모조리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남문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 중 두 발로 서 있는 이는 단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채앵, 챙!
“핫! 이까짓 것!”
검이 벼락처럼 춤을 추며 암기들을 튕겨내었다. 물론 그는 절정고수로 추정되는 중년 사내였다.
허나 그때, 천소연의 오른손에는 이미 비수가 쥐어져 있었다. 우웅, 비수가 작게 진동하며 희미하게 강기를 품었다.
휙.
천소연이 비수를 집어던졌다.
“더러운 것들! 할 줄 아는 건 이딴 잔재주뿐이냐! 죽을 각오는—”
퍼어엉!
사내는 자신 있게 막아내려 했다.
허나 검과 비수가 닿기 직전, 비수가 별안간 폭발했다. 천가의 비전무공 폭철사였다.
파사사삭.
“커, 커헉!”
파편들이 중년 사내의 몸을 파고들었다. 삽시간에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휙, 휙!
“네, 수고하세요~”
이내 세 사람이 지나쳤다.
서걱, 쿠웅.
비수가 몇 번 오고 가자 잠금쇠가 허망하게 추락했다. 세 사람은 열린 성문 바깥으로 나섰다.
훅, 훅.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렸다.
“좋아, 이대로 강까지 달리면—”
“오호홋! 어딜 그리 급히들 가시나요?”
허나 그때였다.
“어머나, 등에 업은 그 소저는 우리 가주께서 점찍은 아이 같은데… 어딜 멋대로 데려가시고요?”
누군가가 머리 위에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천소연이 황급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뭐, 뭐야 이 할망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