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44)
148화. 남문의 싸움
훅.
“호호홋! 뻔하군요, 어쩜!”
“…쳇.”
천소연이 혀를 찼다.
탓, 황급히 다시 땅을 박찼다.
벌써 몇 개의 암기를 던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추적자’를 제대로 맞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의미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암기를 통해 어떻게든 다시 벌려놓았고, 그 덕에 천소연과 공손수는 아직 따라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허나.
후웅.
“슬슬 시시해지는군요! 공격은 암기술이 다인가요?! 오호홋! 그렇다면 퍽 실망이군요!”
“쳇, 목소리 거슬리네, 할망구가.”
“그러게. 엄마가 술 취하고 흥분해서 아빠 갈굴 때 같아.”
“…넌 이따 보자.”
슬슬 한계였다.
추적자의 외견이 어떻건,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심지어 암기를 피하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듯했다.
천소연과 공손수가 안경의 남문을 뚫고서 도시 바깥으로 나선 순간, 추적자는 돌연 ‘하늘에서 내려왔다’.
추측건대 성벽 위에서 아래를 주시하다 남문의 변고를 보자 곧장 뛰어내린 모양이었다.
“오호홋, 그래도 달리기 하나는 제법이네요! 마음에 들어요! 복면을 쓰긴 했지만 보아하니 그쪽도 여인들 같은데 통성명이라도—”
“아, 짜증 나게 끈질기네.”
타앗, 후두둑.
천소연이 다시 튀어 올랐다.
허공을 한 바퀴 구르자 몇 자루의 비침들이 뒤편의 적을 향해 쏘아졌다.
“오호홋! 어림도 없죠!”
허나 이번에도 헛방이었다.
“오호호, 안됐군요! 이 천리비연(千里飛燕) 앞에서는 암기 따위 한낱 장난감에 불과한 것을! 이 내가 지키고 있던 남문을 택한 불운을 탓하세요!”
“…….”
천리비연 남궁하연.
그것은 강호무림의 주요 인물들을 꿰고 있는 천소연과 공손수 모두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남궁세가의 장로였다.
허나 천하제일 검가의 핏줄에 맞지 않게 검술보다도 경신공에 집착하는 괴짜로 유명했다.
파라락.
“하하핫, 오호호홋!”
과연 그 경신공은 대단했다.
두 사람을 추적하는 그 모양새는 새처럼 표홀하여 땅에 발을 딛지도 않고 줄곧 하늘을 나는 듯했다.
심지어는 허공에서 몇 번이고 방향 전환을 하며 천소연의 암기를 손쉽게 피해 다닐 정도였다.
암영각의 천소연과 공손수 역시 경신공에 있어선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지만, 그저 따라잡히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차라리 어두운 밤이었으면 모르되, 지금처럼 밝은 대낮, 그것도 탁 트인 길에서의 달리기 경주는 암영각의 영역이 아니었다.
“하아.”
천소연이 한숨을 쉬었다. 스륵, 그리고 그녀의 소매에서 비수가 튀어나왔다.
“안 되겠다. 먼저 가.”
“…싫어요. 왜 굳이 그런 짓을 해요? 할 거면 같이 해요. 호각을 불었으니 아빠도 곧 올 거고—”
“59호, 임무에 집중해라.”
문득 천소연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움찔, 공손수의 어깨가 흔들렸다.
공손수는 이를 악물었다.
어깨는 가볍지 않았다. 현재 공손수의 등 뒤에는 언미희가 업혀 있었었으며 그것이 곧 자신의 ‘임무’였다.
“…알겠습니다.”
탓, 부스럭.
공손수가 방향을 꺾었다.
왼편의 풀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오호홋, 맹랑하군요! 숲속으로 들어가면 본인들에게 유리할 거라 생각하나요? 오호호!”
그 즉시 남궁하연이 뒤를 따르려 했다. 허나.
챙!
자리에 남은 천소연이 돌아서서 쇄도했다. 휘둘러지는 비수를 남궁하연이 검으로 막아섰다.
“좀 조용히 싸우는 게 어떻소? 속도에 퍽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 한 번 제대로 부딪혀보지.”
천소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인임을 이미 들켰다고 한들 굳이 정체의 단서를 드러낼 이유는 없다.
“…호홋, 드디어 다른 걸 보여주실 생각이 드셨나요? 이거 기대되는군요!”
훅, 충돌의 힘을 이용하듯 남궁하연이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저만치 뒤로 사뿐히 착지했다.
“뭐, 좋아요. 어차피 목적지는 뻔하니까요.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사파무림으로 돌아갈 생각이겠죠?”
“…….”
천소연은 상대를 가늠했다.
경신공이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술이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장로란 직책이 그리 호락호락할 리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주변 지형을 살폈다.
탁 트인 길이지만, 양측으로는 나무가 우거지게 자라고 있었다. 발디딤의 역할로는 충분하다.
“이대로 당신을 쓰러뜨리고 쫓아가도 충분하겠지요. 오호홋! 같은 여인끼리 미안하지만, 그 아이는 우리 가주님께서 퍽 탐을 내시니 순순히 보내줄 순—”
훅.
천소연이 다시 파고들었다. 허나.
“그렇게 정직한 기습엔 안 당한답니다! 오호홋!”
그때 이미 남궁하연은 다시 날아올라 있었다. 그녀의 몸이 제비처럼 허공을 휘저었다.
탓, 타닷.
허나 천소연 역시 시작일 뿐이었다. 땅과 나무, 바위 등을 짓밟으며 그녀의 몸이 사방으로 튀었다.
반면 남궁하연의 몸은 바람을 타듯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방향을 틀며 우아한 곡선을 그었다.
직선과 곡선.
두 선이 얽히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챙, 채앵!
얽힐 때마다 충돌음이 터졌다.
허나 범인의 눈으로는 그저 희미한 잔상만이 보일 뿐, 승부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오홋, 오호호홋! 즐거워라!”
“…망할. 생각보다 더 강하네.”
천소연은 침음성을 삼켰다.
순간 속도만큼은 역시 자신이 위였다. 허나 그것은 승부에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창궁비연검(蒼窮飛燕劍).
하늘을 점하는 남궁세가의 검으로, 창궁무애검법처럼 패도적이지는 않되 날렵함과 유연함에 방점을 둔 검공이었다.
무거움은 가벼움을 겸한다.
중검의 묘리를 중시하는 남궁세가이기에, 가벼운 검에 대한 이해 역시 결코 낮지 않은 것이다.
챙, 채앵!
“오호홋, 오호호홋!”
또한 그 검은 남궁하연의 성향과도 아주 잘 맞는 듯했다.
“…….”
천소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해도, 정작 충돌의 순간 검을 다루는 격의 차이를 메꿀 수는 없다.
천가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암기술이며, 비수를 다루는 것은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챙, 서걱.
“…망할.”
이내 천소연의 몸에 검상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상성이 안 좋아도 지나치게 안 좋다.
찌익.
천소연의 뺨에 검상이 스쳤다.
복면이 찢어져서 너덜거리기 시작하자 천소연은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복면을 뜯어 팽개쳐버렸다.
탓.
“어머나. 어쩜……!”
그러자 문득 공격이 멈춰 섰다.
훅, 거리를 벌린 남궁하연이 저만치에 착지했다. 잠시 멍한 얼굴로 천소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요, 할 말 있소?”
“오호홋!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예쁜 여협이시네요! 맘에 쏙 들어요! 조금만 더 어렸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좋아라~”
“…미친 할망구가.”
어찌 됐건 뜻밖의 여유였다.
천소연은 남은 수를 재고해보았다. 허나 이렇다 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암기는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몇 자루 남지도 않았다.
“헌데.”
남궁하연이 다시 말을 꺼냈다.
“보아하니 꽤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것 같은데…, 조금 전에 먼저 보낸 분은 제자인가요? 아니면 딸?”
“그건 당신이 알아서 뭐하게?”
“아뇨! 그냥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요. 오호홋! 그런데…, 딸이라면 얼굴도 닮았겠네요?”
슥, 남궁하연의 혀가 입술을 핥았다. 그 즉시 천소연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미친년이 진짜 빡돌게 하네!”
천소연이 이를 악물었다.
타앗, 재차 땅을 박찼다.
챙, 챙!
직선과 곡선이 다시 뒤엉켰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열은 명확해졌다. 아무리 암기로 견제를 한다 해도 근본적인 검의 차이를 메꿀 수는 없었다.
“오홋, 오호홋!”
일방적으로 상처를 입는다.
천소연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마침내 천소연의 눈빛에 서서히 비장함이 서렸다.
‘답이 없네, 이거.’
이 이상 상처가 늘었다간 움직임이 둔해져서 시간마저도 끌 수 없게 될 것이다.
우웅.
이내 비수 위로 희끄무레한 강기가 번뜩였다. 훅, 그러자 남궁하연이 다시 거리를 벌렸다.
“어머, 괜찮겠어요? 강기를 쓰면 예쁜 피부에 피가 나는 것 정도론 안 끝날 텐데?”
“…….”
탓, 천소연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다시 쇄도했다. 그러자 이내 남궁하연 역시 날아올랐다.
그녀의 검에도 강기가 서렸다.
휙, 파파팟.
그 순간 천소연이 왼팔을 휘두르자 암기 다발이 빗발쳤다. 허나 남궁하연은 당연하다는 듯 몸을 틀어 피해버렸다.
“오호홋! 미안하지만 당신이 주는 선물들은 너무 뾰족해서 받아줄 수가 없군요!”
“…….”
허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두 번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채앵!
그 사이 지척까지 날아든 천소연이 비수를 휘둘렀고 남궁하연은 검으로 막아섰다.
훗, 마침내 천소연이 웃었다.
“받아줄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내 몸으로 직접 찾아가서 배달해드려야지.”
“그게 무슨……?”
부르르.
그 순간, 검과 경합하던 비수가 잘게 떨었다. 천가 암기술의 비전, 폭철사의 전조였다.
“피나는 정도론 안 끝날 거요. 물론 우리 둘 다.”
퍼어엉—!!
* * *
탓, 부스럭.
“언니, 조금만 참아요.”
공손수가 말했다.
풀숲을 헤쳐나가는 걸음은 바람처럼 쾌속했다.
지면과 나무 위를 오고 가며 이따금씩 비수로 방해가 되는 것을 베어내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지난 며칠간 고생 많았죠? 미안해요. 우리 모두 실책이 컸어요. 어서 가서 무공도 회복하고 살도 다시 찌우고—”
“…공손 소저.”
그때 언미희가 말했다.
그것은 남궁세가를 벗어난 이래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앗, 깨어있었어요? 잠든 줄.”
“…어떻게 감히 잠을 자겠어요? 이런 상황에서.”
“그, 그러네요. 아하하.”
잠시 머쓱한 공기가 오고 갔다.
공손수가 늘어놓던 말들은 기실 언미희에게 하는 말이 아닌, 스스로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지껄이던 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퍼어엉!
그때였다.
등 뒤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푸드득, 소리에 놀란 새들이 사방에서 요란하게 날아올랐다. 허나 놀란 것은 새들 뿐만이 아니었다.
“공손 소저, 괜찮아요?”
“…어? 뭐, 뭐가요?”
공손수가 황급히 대답했다.
허나 그녀는 쾌속하게 나아가던 자신의 발걸음이 제자리에 멈췄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타앗, 다시 땅을 박찼다.
“공손 소저, 다시 돌아갈까요?”
허나 그때 언미희가 다시 말했다. 목소리는 상황에 맞지 않게도 퍽 담담했다.
“…에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불안해서 그래요? 언니도 우리 엄마 알잖아요? 저딴 할망구한테는 안 져요. 심지어 아빠도 곧 올 거고 우리 오라버니도—”
“수야.”
흠칫.
공손수의 걸음이 느려졌다.
언미희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구하러 와준 거 고마워. 진심으로. 심하게 폐를 끼쳐서 솔직히 어떻게 갚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어, 언니……?”
“…이런 식으로 짐이 되는 게, 너도 기분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
“…….”
저벅. 탓.
마침내 공손수의 걸음이 다시 멈추었다. 허나 뭐라고 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로서는 드물게도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지금의 난 싸움에 끼어든다고 해도 아무짝에 쓸모 없을 거야. 결국은 발목이나 붙잡겠지.”
언미희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넌 강하잖아?”
“…하아.”
“유사시에 내 몸은 내가 지킬게. 그 정도는 가능할 거야. 그러니 돌아갈 때에는 다 같이 가자. 어머니를 저렇게 두고 가선 안 돼. 그러면 의미가 없잖아?”
“…그러게요.”
공손수가 답했다.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물론, 지금의 언미희에게 스스로를 지킬만한 힘 따윈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누가 봐도 허세였다.
허나 동시에 그것은.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불복종으로 엄마한테 된통 깨지겠네. 그래도 언니가 반 년만에 드디어 나한테 말을 놨는데 이걸 쌩까면 엄청 삐질 거죠?”
“아하하, 그럴지도 몰라.”
“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휙, 타앗.
공손수가 몸의 방향을 돌렸다.
지나온 길을 향해 땅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