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43)
147화. 안경 탈출 (4)
후웅!
“받아라 이노옴—!!”
노인이 일갈하며 검을 뻗었다.
유감스럽게도 강기가 서려 있었다.
“…….”
카앙, 스윽.
마찬가지로 강기를 품은 이벽의 검이 노인의 검을 부드럽게 받아내었다.
청강검식, 회검식 유의 묘리였다.
“아, 아니?!”
흠칫.
노인의 검이 잠시 비껴 나갔다.
그것은 파고들기에도 애매한 찰나의 빈틈에 불과했으나 이벽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탓.
이벽은 연엽보를 밟았다.
재빨리 간격을 벌렸다. 이벽의 공격이 이어질 듯하자 노인이 황급히 방어를 준비했다. 허나.
“노인네 기운도 좋군. 왜들 그렇게 흥분하시오? 칼 들고 싸울 나이는 지나지 않았소?”
“…뭐, 뭣이?!”
훅, 이벽의 강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타앗.
공격을 감행하는 대신 미련 없이 옆으로 빠진 것이다. 이벽이 딛고 있던 지붕을 벗어나 다른 지붕으로 향했다.
탓, 타앗.
저만치 공손욱의 뒤를 따랐다.
“크학! 이 앙실방실한 노옴—!!”
등 뒤에서 노인이 일갈했다.
따라붙는 기척이 느껴졌으나 물론 붙잡혀줄 생각은 없었다. 오래 상대해줄 이유도 없다.
현재, 이벽과 공손욱의 뒤에 따라붙은 이는 비단 그 노인 한 명만이 아니었다.
타다닷.
“게 섰거라, 이 솜털도 안 마른 쥐새끼 놈!!”
“내 늙은 검강의 매운맛을 똑똑히 보여주겠노라—!!”
“…….”
전원 노인들이었다.
남궁한중, 남궁한명과 마찬가지로 은퇴한 전대 장로로 추정되는, 꼬리에 달라붙은 노인들이 어느덧 네 명째였다.
튀어나오는 족족 밀쳐내고 도망치기를 반복한 결과였다.
어느덧 절정 미만의 추적자들은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간 모양이지만, 어쨌건 둘러싸였다간 좋은 꼴을 보기 힘들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제는 신물이 날 만큼 남궁세가의 검로에 익숙해졌으므로 어디서 또 새로운 이가 튀어나온들 대처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또한.
“헉, 허억! 이런 말도 안 되는!”
“저따위 천둥벌거숭이가 어찌!”
이벽은 나이 든 추적자들이 숨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같은 원로 배분이라고 해도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던 남궁한중, 남궁한명과는 달리 은퇴 후 실력이 다소 녹슬어버린 모양이었다.
타다닷.
어쨌거나 이벽과 공손욱에겐 다행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나아갔다.
“…묘하군.”
문득 이벽은 생각했다.
기혈의 상태는 퍽 양호했다.
물론, 이벽의 내력은 선천의 힘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경신법 정도에 고갈을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허나… 불과 조금 전 남궁가주 남궁천승을 상대로 비무를 펼쳤던 것을 생각하면 꽤 이상한 일이었다.
제왕검형에 맞섰고.
분명히 내상을 입었다.
심지어는 그 상태에서 적파심공의 강기를 꺼내 들었고 목천의 영역 속에서 화영검무를 펼쳤다.
또한 취풍신개의 일보를 뻗어 남궁천승에게 일검을 먹였고, 그 대가로 공손욱에 업힌 채 간신히 세가를 벗어났다.
헌데.
‘회복이 빠르다.’
굳이 자리에 앉아 운기를 하지 않더라도, 선천의 힘은 모든 순간 스스로 내력을 회복하고 내상마저도 가다듬는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얼마 전 강시들을 상대했던 진량현에서의 싸움을 생각하면, 그 때의 이벽은 목천의 힘을 사용한 대가로 한동안 드러누워야 했다.
‘이유가 뭐지?’
지난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상단전의 활용에 조금은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서걱.
“커억!”
또다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앞장선 공손욱의 비수가 정면을 가로막고 선 추적자들을 베어내는 소리였다.
훅, 서걱.
비수가 스치면 피가 터져 나왔다.
기실 가로막은 적들 대부분을 공손욱이 베어 넘긴 덕분에 이벽은 더욱 검을 쓸 일이 없었다.
“…….”
공손욱의 움직임은 놀라웠다.
자신처럼 내력이 끊이지 않는 것도 아닐 터인데 아무리 달리고 베어도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그 발걸음에는 마치 무게가 없는 듯했으며, 기의 운용은 아름다울 만큼 낭비가 없었다.
‘무흔(無痕)의 공손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문득 암영각의 동촌장 목일령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파라라락.
“흐앗! 기다렸다 이노옴!”
“어디 한 번 받아쳐 보거라—!!”
허나 그때였다.
이벽의 양측 아래쪽 길에서 별안간 두 명의 노인이 각각 옷자락을 휘날리며 날아올랐다.
강기를 품은 검이 이벽을 향했다.
“……!”
역시 눈에 익은 자세였다.
그것은 남궁환과 남궁천수, 심지어는 가주 남궁천승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펼쳐 보였던 창궁무애검법이었다.
“크!”
이벽은 검을 잡았다.
동시에 만월무변심공을 일으켰다.
허나 두 명에 의해 동시에 펼쳐지는 초식을 상대로 같은 대응이 먹힐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오오, 훌륭하오, 두 사람!!”
“좋소!! 그대로 붙드시오—!”
등 뒤에서 다른 노인들의 화색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이벽은 도주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쯧.”
푹, 푸욱.
허나 그때였다.
“억!”
“끄윽!”
늙은 새들이 채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어깨에 침이 날아가 박혔다. 초식이 멈춘 그때. 덥석, 공손욱이 이벽의 옷덜미를 붙들었다.
“잔말 말고 업히게.”
“…알겠습니다.”
이벽은 공손욱에게 매달렸다. 훅, 그 상태로 공손욱이 다시 땅을 박찼다.
“자네, 검이나 내력에 비하면 경신공은 그저 그런 수준이군. 수련을 게을리했나?”
“…배움이 얕습니다.”
“명심하게. 이 강호에서 적을 베는 건 강한 검이지만 나를 살리는 건 빠른 발일세.”
“…….”
말마따나.
속도는 새삼 거짓말 같았다.
자신의 무게까지 더해졌음에도 공손욱의 속도는 느려지기는커녕 오히려 빨라졌다.
표정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동안은 뒤따르는 자신을 배려하여 낼 수 있는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한 듯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또한.”
“……?”
“나보다 느린 놈에게 내 딸은 줄 수 없네.”
“…….”
이벽은 다시 침묵했다.
어렵사리 할 말을 끄집어내었다.
“…사위 찾기가 힘드시겠군요.”
“핫.”
공손욱이 작게 웃었다.
다행히도 농담이 맞는 듯했다.
발이 느린 자신을 기다려주고 가로막은 적들을 대신하여 베어준다. 심지어는 업고 달린다.
‘아버지…라.’
그러한 관계는 어색했다.
문득 선우세가의 가주 선우각이 이벽의 머리를 스쳤다. 허나 곧 지워버렸다. 그러자 낙검문주 이진천이 떠올랐다.
“…….”
타앗.
그때였다.
공손욱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여기까지군.”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벽은 상황에 맞지 않는 상념들을 털어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더는 이러는 의미가 없어졌네.”
공손욱의 시선이 남쪽을 향했다.
“딸이 신호를 보냈네. 이만큼이나 주의를 끌었건만 그럼에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일세.”
“…!”
이벽은 물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허나 그에게만 들리는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탓, 타앗.
“헉, 허억, 이, 이놈드을!”
그리고 부리나케 쫓아오던 노인들이 마침내 이벽과 공손욱의 근처에 하나둘 착지했다.
“더, 더는, 도망칠 생각 마라!”
“…헉, 후욱! 각오, 헉, 허억!”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면서도 노인들은 황급히 두 사람을 둘러쌌다.
“…….”
어쨌건 위기는 위기였다.
결코 얕잡아볼 상대들이 아니다.
아니, 심지어는 저만치 남궁세가 쪽에서 범상치 않은 이들 몇몇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원로들이 아닌 현역 장로들마저 신호탄을 보고서 이곳까지 도달한 모양이었다. 허나.
“꽉 붙잡게.”
공손욱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이벽은 직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공손욱의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상단전이 활성화되며 목천의 영역에 접어든 것이다.
탓.
공손욱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후욱.
이벽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이 일그러졌다. 목천에 들어서지 않은 의식으로 목천의 속도를 체감하자 현기증이 일었다.
“헛?!”
“자… 잔상!”
남궁한중, 남궁한명과 마찬가지로 노인들은 그 속도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공손욱은 그림자처럼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대로 두 사람의 몸이 쏜살처럼 남쪽을 향해 뻗어졌다.
“안 되지, 안 돼.”
채앵, 퍼억!
허나 다음 순간.
공중에서 충돌이 일었다.
“…큭!”
일순 공손욱이 신음을 흘렸다.
튕겨나간 공손욱과 이벽의 몸이 지면으로 추락한다. 황급히 균형을 회복한 공손욱이 두 발로 착지했다.
“……!”
허나 주저앉았다.
이벽은 공손욱이 허벅지에 검상을 입었음을 확인했다. 황급히 공손욱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했다.
불현듯 날아든 인영이 공손욱을 쳐냈다. 목천의 속도를 따라잡고서 공격을 적중시켰다.
“…….”
그렇다는 것은, 상대 역시.
후욱. 탁.
그리고 맞은편에 초로의 사내가 착지했다. 물론, 공손욱을 공격한 이가 틀림없었다.
“흐음… 호오?”
사내가 턱을 어루만졌다.
흥미로운 듯 이벽과 공손욱을 바라보았다. 이벽은 섣불리 반응할 수 없었다.
탁, 타앗.
“오오, 대장로! 이게 누구요!”
“헉, 허억, 형님 마침 잘 오셨수!”
그리고 등 뒤로 예의 지긋지긋한 노인들이 다시 따라붙는 기척이 느껴졌다.
“…….”
외견상으론 눈앞의 사내는 초로에 불과하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에게 ‘형님’이라 불리고 있다.
그 의미는 다시 명백했다.
“헐헐, 우리 새끼 가주님의 피를 흘리게 하고 늙은 아우들을 괴롭힌 게 고작 이런 핏덩이란 말이지? 헌데 이 날쌘 녀석은 또 누구란 말인가?”
“…….”
이벽은 침음했다.
은퇴하고 모습을 감춘 전대 가주 검왕, 그리고 현 가주 천중일검 남궁천승.
남궁세가의 구성원들 중 공식적으로 절정을 초월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는 두 명이었다. 허나.
한 명이 더 있었던 모양이었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좌우간 아해들아, 무기를 버리거라. 이제는 본가를 어지럽힌 벌을 받아야 하지 않았느냐?”
“…….”
아니, 어쩌면.
‘숨은 고수’가 있으리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측을 했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벽은 천하제일검가의 무게를 느꼈다.
* * *
타다닷.
“헉, 후욱!”
양호명과 송영영은 시내를 가로질렀다.
마침내 양호명의 호흡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월향을 업고 달리자 체력이 급격히 소모된 것이다.
“핫! 거기 서라 이놈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다!!”
허나 멈출 수는 없었다.
등 뒤에서는 성난 창검대의 일부를 비롯해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우르르 쫓아오고 있었다.
제아무리 양호명이라 한들 상대하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 그것도 누군가를 지키면서까지 저 인원을 감당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아저씨 괜찮아?”
“…죄송해요. 짐이 되었네요. 정 힘드시면 저는 괜찮으니 지금이라도 저를 놓고—”
“헉, 부탁이니, 후우, 말 걸지 마시오!”
“응, 알았어.”
송영영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불과 반 각도 지나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떡하지 아저씨? 아까 붙잡혔으면 그냥 좀 갇혀있다 돈 받고 풀려났을 텐데 지금 잡히면 많이 맞을 것 같은데.”
“…….”
양호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존경하는 정도맹주의 뜻을 따라 이곳으로 온 것에 후회는 없지만, 다소 지나치게 개입한 경향은 있었다.
‘사서 고생을 하는군.’
펑, 퍼엉! 퍼엉!
허나 그때였다.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멈칫.
도망치는 일행들도, 쫓아오던 무인들도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신호탄이 하늘을 수놓고 있음을 확인했다.
“…쳇, 저쪽으로 간다!”
“잔챙이들은 버려라! 어차피 놈들은 달아날 수 없다!”
우르르.
다음 순간, 양호명들을 추격하던 이들이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신호탄을 향해 일제히 몰려갔다.
“…….”
양호명과 송영영은 다리를 멈추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크게 호흡을 내뱉었다.
“잔챙이라서 살았다. 흑흑.”
“자, 잔챙이…? 이 양호명이?”
큭, 양호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허나 그 이상 불만을 표할 순 없었다. 양호명이 숨을 가다듬었다. 자세한 영문은 알 수 없으나 말 그대로 일단은 한숨을 돌렸다.
“…뭐가 되었건 지금은 얼른 이 동네를 빠져나가도록—”
“근데 아저씨.”
허나 다시 송영영이 말했다.
“우리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신호탄이 터진 쪽을 가리켰다.
“아마도 우리 대주가 쫓기고 있는 것 같은데…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르잖아.”
“…….”
양호명은 잠시 침묵했다.
근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소. 무엇보다 때가 되면 ‘알아서’ 빠져나가라고 말을 한 건 비룡대주가 아니오?”
“…하지만 대주가 당하면 우리 장문인이 언짢아할 텐데.”
“에헤이!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