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46)
150화. 역습 (2)
“…하아.”
공손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안도의 한숨이었다. 긴장이 풀리자 조여들었던 숨통도 비로소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공손수는 눈앞에 나타난 인물들의 면면을 다시 확인했다.
적사파의 사혈검 전사욱.
나살문의 탈혼백조 우진희.
일전의 호남 금강회에서 만났던 인물들로, 호남의 군소사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자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또한.
타앙.
“무하하핫! 이거 참 속 시원하군!”
호쾌하게 웃는 거한의 사내.
일전에 비룡대가 무적파에 들렀을 때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만나지 못했던 무적파의 문주, 호담철권 채무근이 바로 그인 듯했다.
즉, 지금 이 자리에 호남무림을 대표하는 사파의 세 절정고수가 모두 나타난 것이다.
부스럭, 타앗.
“크아아아앗—!”
“이 개자식들, 여기도 있다!”
그때, 파진성과 문주들이 튀어나온 수풀을 헤치며 세 명의 인영이 더 나타났다.
“문주님! 파 형님! 적은 어디—!”
“…아, 저기 우리 문주님이 깔고 앉아계신 것 같은데요……?”
“그, 그렇군.”
한발 늦게 나타난 세 사람이 기세를 드높이다 상황을 파악하곤 조용히 무기를 거두었다.
“…….”
그들은 각 문파의 대제자에 해당하는 표왕호와 음서희, 전강준으로 모두 비룡대와는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문주에 대제자들.
공손수는 생각했다.
머릿수는 많지 않으나… 사실상 호남 사파의 전력 대부분이 이 자리에 모여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케헤헤, 멀쩡하냐 쥐방울?”
그때, 파진성이 공손수에게 다가왔다. 나려타곤으로 흙범벅이 된 몰골은 퍽 엉망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건 꼭 나려타곤 때문만도 아닌 듯했다.
“…그러게요. 다시 보니 반갑긴 하네요. 근데 왜 이렇게 더러워요? 좀 씻고 다녀요, 쫌.”
피식, 공손수가 웃었다.
호남에서 이곳 안휘까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마도 먹고 자는 시간도 아끼며 달려왔을 테다.
일전에 호북에서 이벽, 송영영과 헤어져 함께 배를 타고 동정호를 건넌 두 사람은 사파무림에서 다시 갈라졌다.
그리고 자신이 강서의 암영각으로 향할 때, 파진성은 호남의 금강회로 향하였다.
‘어떻게든 설득하여 지원군을 데리고 오겠노라’며 떵떵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실제로 해냈다.
물론 쉬운 일이었을 리 없다.
제아무리 호남무림이 비룡대에 빚이 있다고 해도, 강을 건너 정파 무림까지 목숨을 걸고 찾아온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헌데.
“뭐, 멋있긴 했네요, 이번에도.”
“케헤헤! 에헤헤헤! …뭐라고?”
파진성에게는 의외로 인망을 끌어모으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은 이벽이나 자신, 그리고 언미희가 쉬이 해낼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소협, 잘 있었어요?”
그때 천소연이 끼어들었다.
동시에 그녀의 손은 바쁘게 움직이며 스스로의 상처를 지혈하고 있었다. 허나 표정은 태연했다.
“아, 안녕하심까 어머님! 케헤……!”
“이거 큰 신세를 졌네요~ 딸도 그렇고 저도.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하려나?”
“케헤헤, 아니, 케헤! 고것이……!”
막상 칭찬을 받으면 당황한다.
얼빠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던 파진성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퍽 진지한 얼굴을 했다.
“근데… 쥐방울, 그래서 우리 부대주는? 어떻게 됐냐?”
부스럭.
“…나 여기 있어요. 파 소협.”
그리고 반대편 숲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언미희가 때마침 나타났다.
“케헤! 좋았어! 그럼 그렇—!”
움찔.
파진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언미희의 위아래를 뜯어보며 일순 복잡한 표정이 스쳤으나 이내 곧 평소의 얼굴을 회복했다.
“…헹, 뭐야 이건? 뼈만 남고 삐쩍 곯았네. 지금 비무하면 내가 쉽게 이기겠는데?”
“아하하…….”
“…뭐, 일단은 꺼내왔으니 나머지는 나중 문제라고 치고. 그럼 대주는? 왜 안 보여?”
저벅.
“그래요. 우리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나살문주 우진희가 다가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호남무림의 구성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공손수에게로 쏠린다.
“…그게요.”
공손수는 상황을 설명했다.
구출 작전은 성공했으나 이벽과 공손욱은 아직 시내를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며, 조금 전 신호탄이 빗발쳤음을 이야기했다.
“…그렇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요.”
“음,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위험해지겠군. 너희들은 그쪽 분들을 모시고 먼저 이 근방을 벗어나도록 해라.”
우진희와 전사욱이 말했다.
대제자들이 잠시 침묵했으나 이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면전이 펼쳐지는 상황이라면 자신들로써는 도움이 되기 힘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 잠깐만요, 대협들. 그러다 공연히 길이 엇갈릴 수도 있어요! 무턱대고 가는 것보단 조금은 기다려보는 게—”
공손수가 황급히 말했다. 지금의 성내는 말 그대로 용담호혈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타앙.
허나 채무근이 다시 발을 굴렀다.
“무하핫! 그렇다면 직접 가서 은인의 안위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오면 그만이지!”
“…그, 그게.”
“걱정은 마시오! 이 몸이 뻗어있는 동안 비룡대주께서 내 제자들을 지켜준 것을 생각하면 망설일 이유가 없소!”
“맞아요. 은혜와 원수를 동시에 갚을 기회가 찾아왔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우스운 일이죠.”
훗, 우진희가 웃었다.
“그럼 지체 말고 갑시다.”
“무하핫! 좋소이다, 전 문주!”
순식간에 세 사람이 입을 모았다.
타다닷, 그리고 그대로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세 개의 인영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세상에.”
공손수는 조금 넋이 나갔다.
그 뒷모습들은 다소 지나치게 무(無) 대책으로 느껴졌다. 아니,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감히 걱정을 할 입장은 아니다.
어찌 되었건 저들은 한 성을 대표하는 고수들이다. 또한.
저만치에 피투성이로 널브러진 남궁하연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의 연계는 그림처럼 잘 짜여있었다.
“…그럼 저희가 모시겠—”
“아뇨, 괜찮아요, 저는. 아무래도 저 역시 다시 저 안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나살문의 대제자 음서희가 다가와 천소연을 부축하려 했다.
허나 천소연이 고개를 저었다.
“…뭐? 엄마? 어딜 가겠다고? 미쳤어? 그 몸으로 무슨 헛소리야?”
“괜찮아 이 정도는~ 지혈했으면 됐지, 긁힌 상처 가지고 뭘! 뭣보다 너희 미련한 아빠 아직까지도 못 나오고 있는 거 봐라. 쯧!”
“긁힌 상처 좋아하시네! 폭철사 썼잖아! 파편이 숭숭 박혀있는데 그깟 지혈이 무슨 의미야!”
“아, 그렇담 어머님! 함께 가시죠! 이 해남의 별이 안전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케헤헤!”
그때 파진성이 끼어들었다.
“어머, 고마워라~”
“…하아.”
공손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은 안도의 한숨이 아니었다.
* * *
“이제 어떡할 거야 아저씨?”
“…….”
송영영이 물었다.
양호명은 침묵했다.
조금 전 저만치에서 신호탄이 빗발친 덕분에 송영영과 양호명, 월향은 추격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허나 송영영은 그것이 이벽의 위기를 뜻하는 것일 수 있으므로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꺼냈다.
양호명은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기진맥진한 자신들이 합류한들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적들에게 붙잡혀 새로운 인질이나 되지 않는 것이 이벽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이다.
송영영은 불만이 있는 듯했으나 그 이상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 사람은 북문으로 향했다.
허나.
“일류가 열 명에… 절정고수 같은 사람도 하나 섞여 있네. 싸우면 죽기에 딱 좋지 않을까?”
북문에는 지키는 이들이 있었다.
개미 새끼 하나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듯 날카롭게 뜬 눈을 사방에 부라리고 있다.
“…….”
양호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추격자들이 지껄이던 ‘독 안에 든 쥐’란 말의 의미를 뒤늦게서야 이해했다.
이제 와 다른 방향의 문을 향한다 해도 어차피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득 월향을 돌아보았다.
“혹시…, 한 번 더 안 되겠소?”
“허억, 학… 네에?”
월향의 안색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양호명과 눈이 마주치자 힘겹게 웃어 보였다.
“…하, 할 수 있을…지도요?”
“…….”
음공을 통해 일시적으로 적의 내력을 끊어버린다. 그것은 자신이 알아 왔던 무공의 상식을 벗어나는 놀라운 힘이었다.
허나 당연하게도 손바닥 뒤집듯 쉽게 펼칠 수 있는 기교는 아닌 듯했다. 그녀의 내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또한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 역시 내력이 빠듯하며, 그것은 송영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쯧.”
양호명은 혀를 찼다.
골목에 몸을 숨긴 채, 양호명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허나 저 문을 무사히 넘어설 방법은 도저히—
“……!”
아니, 어쩌면.
양호명은 일행을 돌아보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바를 두 여인에게 침착 명료하게 설명한 뒤 이내 골목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벅.
“잠깐! 거기 누구냐—!”
“멈춰라! 금일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성문은 일시 봉쇄되었다! 잠자코 돌아가도록—”
“잠깐, 잠깐만 실례하겠소.”
일행은 두 손을 들어 적의가 없음을 드러내며 침착한 걸음으로 문을 향해 다가섰다.
“그만, 그만 다가오도록! 더 이상 다가오면 적으로 간주하고 발검하겠다!”
“…이거 미안하군.”
다섯 보 정도의 거리를 두자 절정고수로 추정되는 중년의 사내가 외쳤다.
일행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양호명이 입을 열었다.
“나 점창의 양호명이오. 동도들 사이에선 관일검이란 허명으로도 불리고 있소.”
“…저, 점창?”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렇소. 필요하다면 신분패라도 보여드리지. 좌우간 내 우연히 이 근처를 지나가면서 비무가 있다길래 구경이나 하려다 작금의 사태에 말려들고 말았소만.”
“…….”
“혹 괜찮으면 우리를 좀 내보내 줄 수 있겠소?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일이 있는데… 일정이 꼬여서 난처하군 그래.”
양호명은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자신이 조금 전 창검대주 남궁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이 벌써 여기까지 전해졌을 리는 없다.
고로 잘하면 먹힐 수도 있다.
“…좋소.”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호명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채앵.
“나는 대 남궁세가의 오장로 남궁열이오. 나가고 싶으시다면 내 시체를 밟고 가시길 바라오.”
“…….”
사내가 검을 뽑았다.
챙, 챙, 채앵.
그리고 여타 무사들 역시 앞다투어 검을 뽑았다. 양호명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안 되는데, 아저씨?”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소.”
쯧, 양호명은 다시 혀를 찼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길보다 흉이 심하게 많은 날이군.’
어쨌거나 이제 남은 선택지는 퍽 단순해졌다. 요행을 바라고 맞서 싸우거나, 혹은 순순히 제압당하거나.
어느 쪽이건 자신들을 감히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간신히 ‘죽지는 않은 수준’이 될 수도—
콰아아앙—!!
허나 그때였다.
“무, 무슨?!”
“크윽—!!”
느닷없는 굉음과 함께 성문이 산산조각으로 파괴되었다. 먼지와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타앗.
그 즉시 양호명은 월향을 안고 뒤로 물러섰다. 송영영도 황급히 몸을 빼었다.
파편의 방향을 보건대, 성문은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서부터 파괴된 것이다.
“치…침입자다!”
“막아라! 한 놈도 들여보내선—”
“비켜, 이 새끼들아!”
우르르, 퍼억, 퍽. 퍽!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필사적으로 방어진을 형성하려 했다. 허나 놀랍게도 그러한 시도는 침입자들 앞에서 빠르게 무너졌다.
콰득.
“…커흑!”
“크하핫! 여기가 남궁세가냐! 어디, 밥이 제법 맛있어 보이는 동네로구나!”
선봉에 선 침입자가 쓰러진 남궁세가 무인의 등을 거칠게 짓밟으며 외쳤다.
“자! 이게 얼마 만이냐—!! 어디 한 번 마음대로 날뛰어봐라 이 반토막짜리 거지새끼들아!”
“오오옷! 집의당주, 만세!”
“크핫! 똥개 똥구멍에 난 잡털 같은 새끼들아, 다 똑같은 성씨면 그게 개족보지 무슨 명문세가냐!”
그리고.
먼지 속에서 스물을 넘나드는 침입자들이 우르르 문안으로 몰려들었다. 입에 담기도 힘든 상소리들이 앞다투어 터져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양호명이 중얼거렸다. 허나 그때, 송영영이 앞으로 나섰다.
채앵, 퍽, 퍼억!
“크윽, 네놈들은 대체 누구—!”
“누구? 보면 모르냐?! 눈깔은 회 쳐 먹었냐? 아, 늙었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덤벼, 덤벼봐! 어쭈? 막아?! 그래, 계속 막아봐!”
선봉에서 몽둥이를 휘두르며 남궁가의 장로를 마구 몰아붙이는 얼굴이 시커먼 사내를 향했다.
“와, 거지 아저씨, 개빡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