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5)
15화. 뜻밖의 충돌 (1)
여름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하지만 짐수레를 끄는 이벽의 이마에는 연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호흡은 자연히 거칠어졌다.
끼익, 끼익!
생각해보면, 처음 이진천을 따라 화정촌을 향할 때도 이벽은 수레를 끌고 산길을 올라야 했다.
하지만 수레의 무게를 지탱하며 산길을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도 더욱 힘든 일이다.
슥.
“오빠, 괜찮아요?”
작은 손이 다가왔다.
손수건으로 이벽의 이마를 훔쳤다. 그리고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이벽을 마주했다.
“목말라요? 물 마실래요?”
“…….”
마을을 나선 이후 줄곧 왕수련은 행여 뒤처질세라 종종걸음으로 이벽에게 따라붙었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익숙해질 법도 했으나 이벽에게는 여전히 어색한 거리감이었다.
“야! 왕수련! 얼른 안 떨어져?!”
그때, 거친 목소리가 외쳤다.
그리고 저 위에서 한달음에 뛰쳐 내려온 덩치가 이벽과 왕수련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네, 네가 뭔 상관—!”
“상관있지! 형님께 방해되잖아!”
“…….”
“힘겹게 체력단련 하시는데 자꾸 옆에서 귀찮게 달라붙지 말란 말이야!”
장석두가 으름장을 놓았다.
꾸벅, 이벽에게 고개를 숙였다.
“형님! 이까짓 수레, 제가 대신 끌어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것도 다 고수가 되기 위한 수련 같은 거죠? 그쵸?”
“…….”
이건… 잘 모르겠군.
이벽은 생각했다. 시켜서 끌고는 있지만, 과연 이런 게 무공 증진에 도움이 되는 걸까?
끼익, 끼익.
앞뒤로는 이벽이 끄는 것 이외에도 여러 대의 수레가 산길을 나란히 내려가고 있었다.
모두가 화정촌에서부터 출발하여 산 아래의 도시를 향해 가는 수레들이다.
장시가 열리는 시기에 맞추어 수확물이나 약초 등을 내다 팔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해간다.
그것이 마을의 생활양식이었다.
음머~
“…….”
물론, 당연하게도 가축에 의해 운반되는 수레들이었다.
앞뒤의 우마들 사이에서 홀로 인간인 이벽은 장석두의 말을 믿고 싶어졌다.
“힘들게 고생하시는 만큼! 장시에 도착하는 대로 제가 확실하게 대접하겠습니다!”
퉁, 장석두가 가슴을 두드렸다.
장석두의 살가운 태도 역시 이벽에게는 다소 어색했다. 대답할 말을 찾기 어렵다.
“…석두 너, 혹시 머리를 다친 건 아니지? 갑자기 무언가에 눈을 떴다거나…….”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장석두의 태도 변화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건 이벽뿐만은 아닌 듯했다.
“아, 아니, 그보다도! 너 설마, 장시에 도착해서 오빠랑 같이 붙어 다닐 셈이야?!”
“응? 그야 당연하지. 내가 아니면 누가 형님을 모셔?”
“아, 안 돼! 넌 가서 애들이랑 놀아! 벽이 오빠는 나랑 둘이 다닐 거야!”
“뭐야?! 누구 맘대로?!”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이벽의 향후 점유권을 둘러싸고 논쟁이 시작되었다.
쨍알대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이벽은 숨을 들이마셨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온몸의 힘이 빠질 것 같다.
“푸후후, 우리 막내 인기 많네~ 촌장댁과 돈독해졌으니 잘하면 몇 년 정도는 관비 걱정 안 해도 되겠는걸?”
“그보다 저거, 진짜 괜찮아요?”
그리고 아이들이 선 곳과는 반대편에서 이진천과 제갈소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응? 뭐가?”
“곰탱이야, 곰탱이니까 괜찮았지만, 저 비리비리한 꼬맹이한테 수레를 맡기는 건…….”
“에이, 설마. 우리 막내가 덩치는 작아도 대웅이가 하는 걸 못하겠어? 대웅이가 밥 먹듯이 하던 일인데? 에이 설마 동갑인데 그렇게 차이가 날라고?”
“…….”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옮긴다.
“왕수련, 너 돈 얼마 있냐?”
“나, 나 돈 많거든?! 오늘을 위해 용돈 전부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왔단 말야!”
와중에도 아이들의 입씨름은 이어지고 있었다. 왕수련이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냈다.
훗, 장석두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품 안에 손을 넣어 엽전꾸러미를 꺼내들었다.
“뭐, 뭐야, 그 돈은?!”
“아니 뭐~ 별 건 아니고. 아버지한테 특별 용돈 좀 받아왔거든? 형님께 왕창 대접하고 남겨오지도 말라고 하시더라고?”
“어, 어…….”
“후하하, 그것도 돈이냐? 콩 한 쪽 사면 거지 되겠네~ 돈 없는 어린애는 가서 당과나 사 먹거라~”
“크읏!”
왕수련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메롱메롱~ 거지래요~”
장석두가 왕수련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경박하게 혀를 내밀었다.
왕수련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탁!
다음 순간 장석두를 떠밀쳤다.
“어, 어어……?”
깨방정을 떨던 장석두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이벽은 황급히 손을 뻗어 장석두의 등을 떠받쳤다.
“…조심해라. 산길이다.”
“혀, 형님! 제 목숨을 한 번 더 구해주셨군요!”
장석두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이벽은 차마 그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하얗게 질린 왕수련을 마주했다.
“오, 오빠, 수, 수레! 수레요!”
덜컹덜컹!
이벽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벽이 손을 뗌과 동시에 붙드는 힘이 없어진 수레는 자연스레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가속도가 붙었다.
쿠르르릉, 콰아앙!
“…아.”
따악!
돌멩이가 이벽의 뒤통수에 정확하게 작렬했다. 제갈소미의 솜씨였다.
“아, 같은 소리하네. 멍청이가!”
* * *
“소금이요 소금!! 소금 사시오!!”
“자!! 고관대작 나으리들도 없어서 못 마시는 찻잎!! 향이라도 한 번 맡아보고 가시오!!”
아직 정오가 지나지 않은 시각, 화정촌 일행은 지역의 상업 중심지인 회택에 도착했다.
동서로 길게 펼쳐진 거리는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행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으와, 사람 엄청 많다…….”
“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뭘 처음 와보는 것처럼 굴어?”
왕수련이 얼이 나간 목소리를 내자 장석두가 즉시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눈이 돌아가는 것은 장석두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맞이인 두 사람이 그럴진대 낙검문의 다른 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끼익, 끼익!
“자자, 그럼 이따 봅세들!”
마을 사람들은 인사를 나눈 뒤 각자 수레를 끌고 흩어졌다. 정해진 자리에 가서 물건을 사고팔아야 한다.
본래 장시로 향하는 것은 마을 어른들의 일이며, 아이들이 따라나서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그러나 낙검문이 화정촌에 정착한 이후, 아이들은 낙검문의 주도하에 해마다 한 번 정도 이렇듯 구경을 나올 기회가 생겼다.
“이야~ 역시 우리 대제자가 최고라니깐? 빠릿빠릿한 제자를 둬서 편하네~ 그럼 이따 보자?”
이진천 역시 이벽이 끌고 온 수레를 끌고서 냉큼 사라져버렸다.
범 가죽을 사줄만 한 거래처를 돌아본다는 명분이었다.
“저 인간, 분명 기루에 갈 거야.”
“…….”
“다 팔아먹고 술 처먹고 거스름돈이나 남겨오면 다행이지. 에효효, 내 팔자야.”
제갈소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눈빛을 달리했다. 짝! 손뼉을 치며 넋이 나간 아이들을 향한다.
“자자, 정신들 차려! 괜히 넋 놓고 있다 길 잃지 말고! 짝지어서 손잡아!”
우르르르, 아이들이 제갈소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제갈소미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왕수련, 장석두.”
“네, 언니!”
“너희들은 다 컸으니 너희들끼리 알아서 놀다 와. 언제 어디로 모이는지 알지?”
“넵! 물론이죠, 누나!”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이벽이었다.
“너도야, 이벽.”
“…아니, 그럴 건 없다.”
이벽은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잔뜩 흥분한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을 혼자서 데리고 있는 게 쉬운 일일 리 없다.
“나도 같이 돕겠—”
“하, 무슨 소리야? 너도 애잖아.”
“…….”
“한 명이라도 줄이는 게 내가 편해. 그니까 시끄럽게 하지 말고 손이나 내밀어.”
슥, 이벽이 손을 내밀자 제갈소미가 그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벽의 손바닥에 동전 몇 개가 놓였다.
“…….”
제갈소미가 피식 웃었다.
“용돈, 많이는 못 준다. 까불지 말고 가서 놀다 와.”
훠이훠이, 용건은 끝났다는 듯 제갈소미가 손을 휘저었다.
그리곤 아이들을 이끌고서 인파들 사이로 사라진다.
이벽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작해야 두 살 차이. 방년조차 되지 못한 소녀임에도 그녀는 낙검문의 실질적인 살림을 전부 떠받들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무공, 진법, 학문에 이르기까지.
알아갈수록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새삼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과거를 거쳐 그녀가 낙검문에 이르렀는지—
덥석
“흠, 흠!”
왕수련이 이벽의 팔을 붙들었다.
“오빠, 얼른 놀러 가요!”
“…뭘 어떻게 논다는 거지?””
“그야 물론 뻔하죠, 형님!”
장석두가 말을 받았다.
그리고 왕수련과 장석두의 눈이 부딪혔다. 으흐흐, 하고 동시에 웃음을 흘렸다.
* * *
“닭꼬치구이다!”
타다닷, 와구와구.
“앗! 팥경단! 깨도 있어!”
타다닷, 와구와구.
“어멋, 전병! 저건 꼭 먹어야 해!”
타다닷, 와구와구.
“…….”
아이들의 먹성은 끝이 없었다.
장석두야 그렇다 쳐도 왕수련의 작은 몸 어디로 저 많은 게 들어가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물론, 이벽도 함께 해야만 했다.
이벽이 입을 대지 않으면 아이들은 흘끗흘끗 눈치를 보았다.
장석두의 돈은 이벽을 위해 쓰여야만 한다. 고로 이벽은 어떻게든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던 것.
“헤헤. 맛있죠, 오빠?”
“…….”
이벽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같이 기름기와 단맛으로 범벅이 된 것들이었다.
고작 한 입씩 먹었을 뿐이지만, 이벽은 순식간에 더부룩해졌다.
“…곧 저녁을 먹어야 할 텐데.”
“응? 하지만 오빠. 밥이랑 간식은 다른 배에 들어가는데요?”
“다 키로 갑니다! 드십쇼, 형님!”
“맞아. 오빠도 많이 먹어야 해요!”
우걱우걱 음식을 밀어 넣으며 언제 다퉜냐는 듯 대화를 척척 주고받는 두 사람.
한 마을에서 자라난 동갑내기라면 죽이 잘 맞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석두야! 저기 저쪽에도!”
“오오, 좋았어! 잘 따라와!”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인파가 모여있는 곳이라면 기어코 비집고 들어가서 무언가를 쟁취해오곤 했다.
마치 주변에 챙겨줘야 할 다른 동생들이 없어지자 두어 살씩 더 어려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나쁠 것은 없다.
기왕에 쓰라고 받은 돈이다.
마을에서 먹는 음식의 양이야 늘 정해져 있고, 양보해야 할 동생들도 없다면 하루 정도 과식을 한들 큰일 날 것은 없다.
“형님!”
“벽이 오빠!”
무엇보다도 즐거워 보였다.
두 사람은 이벽의 양팔을 붙들고서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끌고 다녔다. 이벽은 순순히 따랐다.
—형님! 여기요!
“…….”
다만 못내 아이들과 완전히 같은 기분이 될 수는 없었다. 기억은 사사건건 연결되어 있다.
언젠가는 그럴 수 있겠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북적북적
그리고 저만치에서 또다시 한 무리의 인파를 발견한 아이들이 이벽을 이끌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뜻밖에 아는 사람을 발견했다.
“어섭쇼! 어섭쇼, 여러분!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더 이상 밤이 두렵지 않다! 꼬부랑 영감님마저 벌떡 일으켜버리는 명약! 범의 뼈를 통째로 갈아만든 호령단!”
“우우, 거짓말!”
“아, 거 속고만 사셨나! 이 이 모가 이 회택에서 약장사를 삼 년째 했습니다! 아, 이게 참. 사내한테 정말 좋은 건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
“…….”
아이들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조금 민망해진 세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채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들은 다시 활발해졌고, 이곳저곳을 활개쳤다.
“구웨엑. 더는 못 먹어……!”
“크윽, 워, 원통하, 우웨엑!”
그렇게, 한이 들린 듯 먹어대던 아이들은 정오를 한참 지나고 나자 마침내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아직 못 먹은 게…….”
“어, 얼마만의 외출인데! 반드시 저녁도 객잔에서 먹어야만 해……!”
유달리 볼록 튀어나온 배를 잡고서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모습이 한 쌍의 오리 같았다.
“…….”
“…어? 벽이 오빠, 웃었어요?”
휙, 왕수련의 시선이 급하게 뒤를 돌며 이벽을 마주했다.
이벽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대박… 오빠 웃는 거 처음 봐.”
“형님! 웃으니까 더욱 인물이 삽니다! 앞으로도 많이 많이 웃으십쇼!”
“…….”
난처하군.
이벽은 과하게 집중되는 두 쌍의 시선을 피해 맞은편의 거리에 시선을 두었다.
웅성웅성
문득 저편에서 소란이 일었다.
저만치에서부터 거리의 인파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다급하게 길이 트이고 있다.
“형님—”
따가닥! 따가닥!
말발굽의 진동을 느낀 순간, 이벽은 황급히 아이들을 왼쪽 구석으로 떠밀며 함께 물러섰다.
따가닥! 따가닥!
그리고 이벽들이 물러서기 무섭게, 말에 올라탄 일련의 무리가 바로 좀 전의 자리를 밟고서 지나쳤다.
열 명 남짓한 사내들.
당연히 알아서 피하리라는 듯, 인파가 가득한 길을 말 위에서 내달리면서도 주변을 신경 쓰는 기색은 없다.
“킁! 냄새 하고는. 어지간히 시골이네요. 대체 이런 산골짜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거람?”
선두에 선 청년이 소매로 코를 가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언행에 신경 써라, 우학! 여긴 사천 땅이 아니다. 어떤 이들이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에헤이, 장로님도 참 깐깐하기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을 뿐이잖아요?”
어깨를 으쓱하는 청년.
그리고 저들끼리 낄낄대며 일행은 빠르게 멀어졌다.
물론, 이벽을 포함해 부딪힐 뻔한 행인들에게는 눈길조차 스치지 않는다.
“…….”
“뭐, 뭐야. 저 사람들?”
왕수련이 벙찐 소리를 내었다.
이벽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갈한 도사의 복장. 무엇보다도 허리춤에 하나같이 검이 걸려있었다.
무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