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69)
174화. 언미희, 받아들이다 (2)
후우욱.
사슬에 오른팔을 묶인 언미희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무력하게 끌려갔다.
그 끝에서는 한 자루의 낫이 강기를 번뜩이고 있다.
흡사 거미줄에 묶인 먹잇감이 거미의 입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후우웅.
설상가상으로 등 뒤에서는 철괴의 봉이 따라붙었다.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베어지거나, 짓이겨지거나.
앞뒤 어느 쪽을 상대로도 언미희의 작은 몸이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타앙.
허나 그때였다.
무력하게 끌려가는 듯하던 언미희의 두 발이 힘차게 땅을 밟았다. 그 즉시 자리에 멈춰 섰다.
철컹!
오른팔을 구속한 사슬이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허나 언미희는 더 이상 끌려가지 않았다.
끼기긱.
잡아당기는 힘에 저항했다.
“이… 이년이 아직도?!”
“내게 맡겨라, 혈괴. 카하핫!”
일순 혈괴가 당황했다. 허나 그때, 마침내 철괴의 봉이 언미희의 지척까지 다다랐다.
“…….”
훅, 언미희의 왼팔이 위로 뻗어졌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철괴의 봉과 권갑이 충돌했다.
콰아앙—!!
거센 충돌이 일었다.
휘청, 언미희의 몸이 흔들렸다.
“…크.”
허나 그것이 전부였다.
타앙, 흔들리던 발이 재차 진각(震脚)을 밟았다. 땅을 한 치나 파고들었고 균형은 다시 확고해졌다.
끼기긱, 끼긱.
“무, 무슨 계집의 힘이……?!”
철괴의 봉이 왼팔을 짓누르고 혈괴의 사슬이 오른팔을 잡아당긴다.
허나 두 절정고수를 상대로도 언미희는 마치 제자리에 박힌 바위처럼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더는 흔들리지 않는다.
“당신들 혈교지?”
“……!”
문득 언미희가 말했다.
후욱, 철컹!
다음 순간 사슬에 묶인 언미희의 오른팔이 대차게 휘둘러졌다.
후웅.
“허어억—!”
그 순간, 오히려 사슬의 주인인 혈괴의 몸이 붕 떠올랐다. 철괴를 향해 쇄도한다.
“으, 으아악! 오지 마라!”
“이이익!”
날아드는 혈괴의 낫에 서린 강기를 본 철괴가 기겁을 했다.
혈괴가 허공에서 황급히 몸을 틀었고, 그 순간 사슬이 헐거워졌다.
철컹.
물론 언미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오른팔의 권갑이 구속을 빠져나갔다.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쿠웅!
“헛?!”
철괴의 봉이 애꿎은 땅을 찍었다.
힘껏 내리누르고 있던 언미희가 일순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허나 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언미희의 작은 체구는 이미 철괴의 몸 지척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뻐어억—!
“쿠웨엑!”
언미희의 무릎 차기가 솟구쳤다.
철괴의 명치를 파고든 순간, 척추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철괴의 입에서 피 섞인 토사물이 와락 쏟아졌다.
털썩.
“꺼윽… 어으으!”
그대로 쓰러진 철괴가 축 늘어졌다. 자신의 토사물에 얼굴을 처박은 채 바르르 경련한다.
“처… 철괴?”
단 일격에 무력화되었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언미희가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경련하던 철괴가 황급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언미희와 눈을 마주했다.
오싹.
그 무감정한 눈동자에서 철괴는 죽음을 직감했다. 마침내 발 그림자가 철괴의 머리를 뒤덮었다.
후욱, 채앵.
“아, 안 된다 이년—!”
그때, 혈괴가 황급히 달려들었다. 물론, 철괴가 죽으면 자신도 끝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훙훙!
한 쌍의 낫이 마구잡이로 휘둘러졌다. 제대로 된 초식의 흔적 따윈 없었으나, 그 위에 서린 강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
“…….”
훅, 언미희가 뒤로 물러났다.
타앗.
“순순히 놔줄 줄 아느냐!”
허나 혈괴는 필사적으로 따라붙었다. 결단코 지금의 공세를 빼앗겨선 안 된다고, 그의 본능이 속삭였다.
챙, 콰아앙.
마침내 권갑과 낫이 얽혀들었다.
바르르.
“……!”
한 쌍의 권갑과 한 쌍의 낫.
도합 네 개의 무기가 얽혀든 채 허공에서 경합을 이뤘다. 혈괴의 눈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핫.”
양호명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강기는 오직 강기로밖에 상쇄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무림의 상식이었다.
절정고수 한 명이 능히 일류 미만의 수십, 수백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런 이치에서인 것이다.
허나.
강기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언미희의 권갑은 부서지지도, 밀려나지도 않았다.
따지고 보면, 조금 전 철괴의 일격을 막아낸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답은 명백했다.
“강기로군.”
양호명이 말했다.
“…네?”
“네 동료가 강기를 쓰고 있다.”
“…케헤.”
공손수와 파진성의 눈이 흔들렸다.
허나 지금 이 순간 양호명의 눈에 보이고 있는 것은 단지 강기를 ‘쓰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무기와 무기가 충돌하는 찰나의 순간, 정확하게 일시적으로 강기를 일으키고 다시 거둬들인다.
내력의 낭비를 최소화한다.
‘…터무니없군.’
절정이란, 수백 명의 무인들 중 한 명 정도가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엿볼만한 경지이다.
앞서 비룡대주 이벽이 그저 강기를 쓴 것만으로 ‘천하제일 후기지수’란 칭호는 사실상 그의 것이 되었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괴물의 실력이 고작 그 정도가 아님은 양호명 역시 알고 있지만… 좌우간 절정이란 이 강호무림에서 그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헌데.
한 명이 더 나타났다.
심지어는 너무나 능숙했다.
그것은 마치 한순간에 두어 단계의 경지를 건너뛰어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아하하…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 하오문이 찾아낸 최고의 재능이라구요.”
“……!”
그때, 퍽 창백한 안색의 월향이 다가섰다.
어느새 연주가 멈춘 것조차 일행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훅. 콰앙.
그때였다.
“이제 끝내자. 포기해.”
“……!”
언미희의 왼쪽 권갑이 두 자루의 낫을 한 번에 막아내었다. 즉, 오른손이 자유로워졌다.
후욱.
그 즉시 언미희의 오른쪽 어깨가 한껏 뒤로 젖혀졌다. 혈괴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탓.
“크윽! 웃기지 마라!”
황급히 물러서는 한편, 혈괴는 강기가 서린 두 낫을 교차하며 자신의 가슴 앞을 가로막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는 이 어린 계집에게 속도에서도, 힘에서도 밀리고 있었다.
어설프게 피하려 드느니, 차라리 정면으로 막아서는 게 낫다. 그것은 분명 틀리지 않은 판단이었다. 허나.
후웅.
그 순간, 언미희의 오른쪽 권갑이 하얗게 빛났다. 그것은 명징하고도 확실한 강기였다.
타앗.
언미희의 오른발이 앞을 디뎠다.
언가권(彦家拳), 골타(骨朶).
콰아아아앙.
오른쪽 반신이 앞으로 나아가며, 주먹이 함께 쏘아졌다. 대번에 혈괴의 몸통을 두드렸다.
그리고.
“컥, 크으, 으어어어……!”
혈괴가 신음했다.
비척비척, 뒷걸음질 쳤다.
그의 손에 들린 한 쌍의 낫은… 자루만 남은 채 날 부분이 통째로 온데간데없어졌으며.
그 날에 의해 지켜지고 있던 그의 가슴팍에도 권갑의 크기만 한 구멍이 뚫려버리고 말았다.
“…….”
푸우우우.
이내 구멍에서는 피분수와 함께 뼈와 살, 내장조각 따위가 으깨진 계란마냥 줄줄 쏟아졌다.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힘이 모자랐을 뿐이다.
“마, 말도 안 되는…….”
털썩.
혈괴가 쓰러졌다.
그리고 절명했다.
허무한 최후였다. 허나.
콰드득!
그 즉시 언미희가 그 머리를 밟아 으깨버렸다. 혹여나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확실히 처리한다.
끼기긱.
그때였다.
몇 구 남지 않은 강시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언미희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퍽, 퍼엉.
물론 그리 큰 의미는 없었다. 달려드는 족족 강시들은 언미희의 권갑에 머리가 터져나갔다.
“……!”
허나 문득, 언미희는 강시들의 틈바구니 사이, 저만치에서 비틀거리며 달아나는 등을 발견했다.
“헉, 허억… 컥!”
그것은 철괴의 등이었다.
타앙.
그 즉시 언미희가 날아올랐다.
한 호흡 만에 철괴의 머리 위 부근에까지 이른 언미희가 휘릭,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으… 으아악! 괴물 같은 년—!!”
그 순간, 철괴가 봉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두 손으로 잡고 사력을 다해 강기를 일으켰다.
우우웅.
본능에 의한 방어행위였다. 허나.
언가권(彦家拳), 유성추(流星錘).
콰아아앙!
그 또한 힘이 모자랐다.
회전력을 실은 언미희의 발꿈치가 내려찍어진 순간, 철봉은 허무하게 두 동강이 났다.
푸슈욱.
물론, 그 아래의 철괴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머리가 터져버린 시신이 제자리에서 주춤거렸다.
털썩, 쓰러졌다.
탱그랑.
반 토막 난 철봉이 땅을 굴렀다.
그것은 혈괴보다도 더욱 허무한 최후로, 마지막 한 마디조차 남기지 못했다.
“…….”
일행들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퍽, 퍼억.
좌우간 언미희는 다시 강시들에게로 돌아갔다. 한 구 한 구 남김없이 머리를 터뜨렸다.
기계적인 동작이었다. 그리고.
뻐억.
마지막 강시의 머리가 터졌다.
마침내 적들 중에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포함해 움직이는 이는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우뚝.
그제서야 언미희는 멈춰 섰다.
“…하아.”
문득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마치 얼마간 호흡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마냥 속 깊은 호흡이었다.
그리고.
적들의 피와 살점, 체액 따위로 온통 범벅이 된 언미희가 자신의 두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
휘청.
언미희의 몸이 흔들렸다.
“…언니!”
탓, 공손수가 달려 나갔다.
언미희의 몸을 받아들었다.
“…수야.”
“괘, 괜찮아요……?”
공손수가 물었다.
그것은 퍽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 질문이었다. 언미희는 잠시 침묵했다.
“아니, 안 괜찮아.”
“…네?”
언미희가 힘없이 웃었다.
“배고파 죽겠어. 아하하.”
* * *
우웅.
이벽은 침상 위에 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내력을 다스린다.
실상 선천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그의 내력은 굳이 자세에 연연할 이유는 없으나, 오랜 버릇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이벽에게 있어 ‘자연스러움’의 일환이었으며 스스로의 내면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자세이기도 했다.
“…….”
몸은 말끔했다.
내상도 외상도, 아물었다.
앞서 이벽은 의혈맹주 권왕 황보혁에게 검을 뻗었으나 일권에 제압당했고, 결국 ‘최후’를 맞이했다.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벽은 다시 눈을 떴다.
그곳은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사천의 당가였으며, 이벽은 며칠에 걸쳐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천하제일 독문의 집대성된 의술과 이벽이 지닌 선천의 힘의 회복력이 만나, 죽음에 근접했던 상처는 불과 며칠 만에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
허나.
이벽의 마음은 퍽 복잡했다.
고문도, 심문도 없었다. 당가 측에서는 치료를 대가로 이벽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벽은 어느새 ‘추적대상’이 아닌 ‘독왕의 손님’이 되어있었으며, 당황스러울 만큼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입장은 애매했다.
섣불리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드르륵.
허나 그때였다.
예고도 없이 방문이 열렸다.
“응? 내가 방해를 했나?”
“…아니오.”
이벽은 작은 한숨과 함께 눈을 떴다. 헐헐, 야외의 햇살에 감싸인 노인이 흰 수염을 쓸었다.
“어때? 몸은 좀 괜찮은가?”
“물론, 덕분에 살았소.”
“허헛, 그럼 됐네! 뭐니 뭐니 해도 살아있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암!”
“…….”
성큼성큼, 노인이 다가왔다.
흠칫, 이벽은 동요했다. 그것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독왕 당평세였기 때문이다.
허나.
독왕에게는 공격 의사는 없었다.
물론, 있었다고 해서 달리 이벽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덥석, 독왕이 이벽의 어깨를 붙들었다.
“자, 그럼 어서 일어나시게! 몸도 좋고 날이 좋으니 우리 같이 뱃놀이라도 하러 가세!”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