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8)
18화. 뜻밖의 충돌 (4)
챙챙챙!
“웬 놈이냣?!”
청성의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원 안으로 들어선 낯선 사내를 향해 살기를 품는다.
“아하하, 약장수라니깐 그러네~”
그러나 사내는 태연하기만 했다.
터벅터벅, 가벼운 걸음으로 공터를 가로질렀다. 우학의 앞을 지나쳤다.
움찔
찰나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우학은 한 발자국 물러섰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사내는 그대로 우학을 지나 이벽에게 이르렀다. 목검으로 몸을 지탱하고 선 이벽을 봤다.
“끌끌, 쉬어라, 이놈아.”
“…….”
풀썩, 이벽이 무너졌다.
정신력으로 간신히 붙들고 있던 한 줌의 의식이 마침내 끊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사내는 다시 걸었다.
저만치의 제갈소미에게 다가갔다.
찢어진 의복과 상처로 엉망이 된 제갈소미가 힘겹게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슥
사내가 무명의 외투를 벗었다. 무릎을 굽혀 앉으며 제갈소미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고생했네, 막내 챙기느라고.”
슥슥, 머리를 쓰다듬었다.
꾸욱, 제갈소미의 두 손이 외투를 붙들었다. 어깨가 작게 움츠러들었다.
“…죄송해요. 사고 쳤어요.”
“아, 괜찮아, 이 정도는. 애들이 원래 사고치면서 크는 거지. 아무튼 죽지만 않으면 돼.”
끌끌, 사내가 혀를 차며 웃었다.
이내 다시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사내, 이진천이 주변을 둘러싼 청성의 제자들을 슥 둘러보았다.
“이보시오, 귀하의 정체를 밝히시오! 지금 스스로가 감히 청성의 행사에 끼어들고 있음을 알고는—”
“아, 잠깐요. 대화는 좀 있다가.”
이상한 공기를 느낀 공명자가 한 발 나서며 외쳤다. 그러나 이진천은 손바닥을 펼쳐 말을 끊었다.
성큼성큼, 우학에게로 다가섰다.
“크… 흐아아아압!!”
우학은 검을 뻗었다.
그의 검 끝에서 청풍검법이 다시 한번 폭발적으로 펼쳐졌다.
그것은 등줄기에 스며드는 싸늘한 감각을 애써 부정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뎅겅! 휘리릭!
그러나 이진천이 팔을 휘두른 순간, 그의 손날과 부딪힌 우학의 검이 허무하게 반토막 났다.
저만치로 날아가 땅에 박혔다.
“…어?”
덥석, 우학의 멱살이 붙들렸다.
콰앙!
“커헉!”
그리고 망설임 없는 손이 우학을 지면에 메다꽂았다. 안면부터 처박힌 우학이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끝난 것은 아니었다.
쾅! 쾅! 쾅! 쾅! 쾅! 쾅!
“크헉! 컥 으헉! 컥! 커억!”
불과 한 호흡 만에 우학의 얼굴과 지면이 셀 수 없이 부딪혔다.
콧날이 주저앉고 퍽 준수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괴물처럼 짓이겨졌다.
쾅! 쾅! 쾅! 쾅! 쾅! 쾅!
이진천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으깨어진 잇조각이 흘러나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마저 끊어진 듯, 더 이상 신음 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 이 악독한!!”
“쳐라!! 사형을 구해!!”
다음 순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청성의 제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 그만둬라!! 멈춰!!”
공명자가 외쳤다.
그러나 늦은 외침이었다.
휘익!
“억?!”
달려드는 청성의 제자들을 향해 이진천은 우학을 내뻗었다. 휘둘러진 칼들이 애매하게 흔들렸다.
뻐억! 뻐억! 뻐억!
그 빈틈을 타고 어김없이 이진천의 주먹이 파고들었다.
한 번의 주먹질에 한 명씩의 제자가 쓰러진다.
휘익! 따악!
“크헉!”
간혹 그 틈을 파고든 제자들에게 이진천은 우학을 무기처럼 휘둘렀다.
이마와 이마가 부딪혔고 의식이 깨끗이 사라졌다.
그렇게, 청성의 제자들이 모두 땅에 드러눕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상황을 구경하던 인파들 사이에서 정적이 감돌았다.
툭, 털썩!
그제야 겨우 이진천의 손에서 풀려난 우학의 몸이 걸레처럼 힘없이 땅에 널브러졌다.
“자, 애들 싸움, 끝.”
탁탁, 이진천이 손을 털었다.
그리고 시선이 공명자를 향했다.
“자, 이제 어쩔깝쇼, 대협? 대화할까? 아니면 애들 싸움 끝났으니 어른 싸움으로 넘어갈까?”
“…….”
공명자가 침음성을 흘렸다.
사내는 칼을 쓰지도 않았다. 그렇다 한들 딱히 권법가의 움직임도 아니었다.
그저 휘두르고, 뻗었다.
그것만으로 데려온 제자들 모두가 손도 써보지 못한 채 당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기세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렇다는 건 자신이 감당할 상대가 아닐 공산이 크다는 뜻.
“…정체를 밝히시오. 대답 여하에 따라 그대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오.”
“약장수라니까요, 대협? 귀가 영 어두우시네. 아직 그럴 정도 연세는 아니신 것 같은데?”
이진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근데 하나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동네 무관 하나 작게 운영하고 있습니다요. 저기 쓰러진 애들이 그 무관 제자들이고.”
툭툭, 이진천이 발끝으로 우학을 건드렸다.
“좌우간 이 자식이 우리 애들을 갈아댄 모양이니 나도 좀 갈아 버렸수다. 혹시 꼬우면… 아시죠, 대협?”
“…….”
악몽 같은 상황이다.
공명자는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래, 보아하니 정체를 밝히기 힘든 모양인데. 허나 청성의 제자에게 손을 댔다는 게 강호에서 어떤 의미인지 모르진 않을 테지?”
“아, 후달리니까 뒷배로 한 번 비벼보시겠다?”
“우리 청성은, 나아가 정도맹(正道盟)은 그대의 이런 처사를 결코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외다.”
“어휴, 정도맹까지 튀어나와? 세게 나오시네.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지. 어디 보자~”
뒤적뒤적, 이진천이 품 안에 손을 넣었다. 한참을 뒤적거리다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훅, 집어던졌다.
탱그랑!
물건이 공명자의 발치에 떨어졌다.
공명자는 그것을 조심스레 주워들었다.
“……!”
눈이 크게 치켜 떠졌다.
[하오문 下汚門] [수호령주 守護令主]강호무림의 정보를 다루는 세력 중 정파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개방이 있다면, 사파에는 하오문이 있다.
그러나 ‘거지’라는 통일된 정체성을 가진 개방과는 달리 하오문의 구성원들은 중원 각지에서 무수한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저잣거리의 상인이나 잡배, 표국의 표사, 악공, 대장장이, 심지어는 기녀에 이르기까지.
하오문의 눈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뻗어져 있으며, 그 시선에서 벗어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허나 그뿐이다.
정보집단으로서 개방과 견주어질 뿐, 무력에 있어서는 구파일방의 당당한 일원인 개방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문도라 한들 실상 무공을 아예 익히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이며, 그나마도 제대로 된 독문무공을 지니지조차 못했다.
제대로 된 무림세력이라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집단. 그것이 하오문이었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지.’
허나 근래의 하오문은 달랐다.
문주 직속 무력부대인 ‘수호대’.
정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하오문의 문주가 손수 영입한 것으로 알려진 신원불명의 고수들.
지난 몇 년간 중원 각지에서 악적들을 추적하고 민초를 구하는 등 협행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며 하오문의 이름을 한껏 드높였다.
그 머릿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뤄낸 업적으로 미루어 그 무력은 결코 명문의 고수에 못지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것이… 그 신분패인가.’
물론, 공명자가 이 물건을 본 적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이야기가 그렇게 된 거라면 납득이 간다.
과장된 이야기라 생각했건만, 저자를 보면 오히려 과소평가가 되었던 것 같다.
훅, 공명자가 패를 다시 집어던졌고, 이진천이 가볍게 받아들었다.
“…오해가 있었군, 그래. 하오문에 적을 두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밝혔다면 좋았지 않소?”
공명자는 웃었다.
힘겨운 웃음이었다.
“오해는 얼어 죽을. 내 제자들은 하오문이랑 전혀 관계없수다. 그냥 내가 저잣거리에서 약 팔다 명예직 하나 받은 것뿐이지.”
“…….”
“뭐, 시키는 일 안 하고 사시사철 직무유기 중이었는데 이럴 땐 쓸모가 있네.”
이진천이 끌끌 웃었다.
“그쪽이야말로, 산골에서 도나 닦던 도사님께서 이 운남 땅까지 왜 오셨을까? 내가 한 번 맞춰볼깝쇼?”
이진천의 눈빛이 달라졌다.
“의혈맹(義血盟) 때문이지?”
움찔, 공명자의 어깨가 움직였다.
“이 운남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림세력 판도의 공백지였지. 귀주, 양광의 사파무림, 그리고 새외와의 경계지역이기도 했고.”
“…….”
“그런데 선우세가니 뭐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촌구석 잡것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의혈맹에 가담을 한단 소식이 들리니 불현듯 등골이 서늘해진 거지?”
“…그만. 이런 자리에서 나누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얘기인 것 같소만.”
“뭐가 적절하지 않아? 당신네 정파들, 요새 정도맹이니 의혈맹이니 편 갈라서 서로 견제하느라 바쁘잖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당가가 호응하는 것도 같고.”
으득, 공명자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저자의 입을 틀어막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참에 사파무림에 안면 좀 트고 비위 좀 살살 맞춰서 이이제이로 견제 좀 해보자, 뭐 이런 심보 아닙니까?”
화악!
공명자가 기세를 끌어올렸다.
“모두들! 이 자리를 떠나시오! 계속해서 남아 지켜보는 자들은! 빈도와 청성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하겠소!”
으름장을 놓자 구경하던 인파들이 황급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진천은 말을 잇는다.
“근데 이를 어쩌나? 사파에 아쉬운 소리 하러 온 주제에 내 제자들을 건드렸네?”
그리고 순식간에 한적해진 공터에서, 공명자는 팍 늙어버린 얼굴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미스러운 일은 사과하겠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는가?”
“아니, 딱히 해줄 건 없고. 귀주까지 먼 길 가실 것 없이 여기서 내가 딱 말씀드리지. 돌아가쇼. 사파무림은 당신네들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요.”
훠이훠이, 이진천이 손을 내저었다. 빠드득, 공명자는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청성의 장로인 그가 무력으로 열세인 상황을 자주 겪어봤을 리가 없다.
“…자네에게 그럴 자격이 있나?”
공명자가 힘겹게 말을 짜냈다.
“자네의 말을 전부 인정하는 것은 아니네만, 설령 그렇다 한들 그것은 사패련과 정도맹의 일일세. 일개 하오문도가 사패련을 대표하는 척 나서는 건 역시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피식, 이진천이 웃었다.
팔짱을 끼며 고개를 까닥거린다.
“아, 그럼 알아서 하시던가. 내가 사패련주와 밥도 먹고 목간도 같이 한 사이인데, 장담컨대 가봤자 별로 좋은 얘긴 못 들을걸?”
“…….”
거짓인가? 아니면?
공명자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판단을 내리기에 가진 정보가 너무 모자라다.
다만, 저자는 강하다.
지나치게. 비상식적으로.
저벅.
다음 순간, 이진천이 발을 뗐다.
공명자는 황급히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이진천의 걸음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했다. 쓰러진 이벽에게 다가간 뒤 어깨로 들쳐 업었다.
“거, 대협께서 아까부터 말귀가 어두우시네. 관짝에 담겨서 표국 편으로 운송 당하고 싶으신가?”
“…….”
방법이 없다.
실책이 컸다.
“…알겠네. 여기서는 이만 물러가지. 허나 내 장담컨대 자네는 곧 이날을 후회하게 될 걸세.”
공명자가 말했다.
그것은 갈기갈기 파헤쳐진 자존심의 마지막 발로였다.
그러나, 크나큰 실책이었다.
“아, 곧 죽어도 자존심을 세우시겠다? 그러고 보니 저기 누운 소협께서 한 칼하던데 청성의 미래 뭐 그런건가?”
저벅저벅.
이진천이 다시 우학에게로 다가갔다. 툭, 발끝으로 우학을 건드렸다.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칼 중 한 자루를 주워들었다.
“그럼 팔 하나만 잘라갑니다?”
“그, 그만! 안 돼!!!”
채앵!
공명자가 칼을 뽑아 들었다.
이길 수 없음은 알고 있다.
그러나 설령 자신이나 다른 제자들이 상하더라도 우학만은 꺾여선 안 된다. 결단코.
“왜? 그쪽도 내 제자한테 멋대로 가르침을 줬잖아? 그러니까 이 소협도 사파의 가르침 하나쯤 가슴에 품고 가셔야지?”
“아, 알겠네!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뜰 테니!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게! 내 다시는 운남에 얼씬도 하지 않겠네!”
꾸욱.
그때, 누군가 이진천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진천의 시선이 움직였다.
“문주님. 하지 마요.”
제갈소미였다.
엉망이 된 몸과 함께 이진천을 바라보는 시선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문주님이 마치 다른 사람 같다.
그러나 제갈소미는 알 수 있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을 만큼, 화가 난 것이다.
마치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뒤숭숭하니까 이제 그만 가요. 꼬맹이 칼 맞은 거 빨리 꼬매 줘야할 것 아냐.”
“…그래. 알았다, 소미야.”
이진천이 돌아섰다.
후우, 공명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만은 면했—
“그럼 힘줄 반만 자르자.”
스걱!
칼의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다.
툭, 우학의 오른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였다.
탱그랑!
이진천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이익! 우, 우, 우학아!”
공명자가 황급히 땅을 박찼다.
그러나 그때 이진천의 신형은 이미 몇 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이벽과 제갈소미를 안아 든 채 순식간에 멀어졌다.
“아, 걱정마쇼, 대협. 잘 치료하면 숟가락은 들 수 있을 겝니다. 그보다 무거운 건 잘 모르겠지만.”
“으아아아아악!! 네 이놈!!! 감히, 잘도 감히!!! 내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을 용서치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