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24)
230화. 자격 증명 (1)
“모두들, 이 자리를 떠나세요.”
지소약이 말했다.
이벽의 입에서 ‘하오문주’라는 말이 튀어나온 순간, 나른함이 감돌던 여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예, 예이?”
이벽을 둘러싸고 있던 무인들이 맹한 소리를 내었다.
“루, 루주님? 그게 무슨……?”
“지금 당장요. 이 이상 ‘들어선 안 될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저로서도 여러분들의 안위를 보장해드릴 수 없어요.”
“…헉!”
“예, 예 알겠습니다요—!”
그제야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무인들이 부리나케 움직였다.
무인이라고 해도 고작 주루의 경호를 설뿐인 이들이며, ‘진짜 무림의 일’에 얽혀선 안 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타다닷.
이내 무인들은 전각 안으로 사라지거나, 혹은 대문 밖으로 발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주루의 마당에는 이벽과 지소약, 그리고 지소약의 호위인 젊은 여인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솔직히 난처하네요. 아하하.”
다시, 지소약이 웃었다.
“공자, 퍽 오래전에 드린 말씀인지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문주님에 대해서는 저희 하오문도들조차—”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
다시 지소약의 표정이 흔들렸다.
과거, 지소약은 사패련으로 향하던 마차 안에서 하오문주 및 하오문의 권한 체계에 대해 이벽에게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하오문주에 대해서는.
문도라 해도 직접 알현할 권한이 없으며, 심지어는 그 ‘진짜 정체’를 아는 이조차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허나.
그와 동시에 하오문 수호대란.
무림세력으로서의 하오문의 힘을 상징하는 무력대임과 동시에, 문주를 알현할 자격을 지닌 바로 그 ‘극소수’의 문도들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이내 지소약이 다시 말했다.
이벽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일이라면… 스승의 유지를 이어 수호대의 일원이 되는 것도 마다할 생각은 없습니다.”
“…….”
“물론, 지금의 하오문이 ‘제가 알고 있는 예전의 하오문’과 같은 집단이라면 말입니다.”
이벽이 단호하게 말했다.
흠칫, 지소약이 몸을 떨었다.
과거, 하오문은 녹림의 탈을 쓴 혈교의 뒤를 파헤쳤으며, 현재 이벽은 혈마를 찾고자 무림으로 나온 처지였다.
이해관계가 같다면.
단순히 정보를 얻는 차원을 넘어 함께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다.
“어떻습니까, 루주님? 아니면 혹시… 이마저도 ‘답을 주시기 어려운 사항’입니까?”
“…….”
지소약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서히 긴장감이 차올랐다. 철컥, 지소약을 호위하는 여인이 검을 붙들었다.
“채령아, 괜찮아.”
지소약이 여인을 제지했다.
“…하아.”
그리고 지소약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를 체념한 듯,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오호호, 오호호홋!”
지소약이 아닌 그 등 뒤에서.
퍽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것은 이벽에게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
이벽의 시선이 움직였다.
지소약의 어깨너머로, 전각의 정문 안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한 명의 호리호리한 인영을 발견했다.
새벽녘의 어둠 속에서도.
허옇게 분을 칠한 얼굴은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초 대협!”
“이거 정말 놀랄 노 자로군요!”
사내, 초연서가 다가왔다.
“때마침 제가 회택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 공자가 찾아오다니… 이런 걸 운명적인 재회라고 하나요? 오호호홋!”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며 초연서가 다시 경박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자, 루주께서는 밤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 쉬셔요. 이것은 우리 수호대의 일이니… 저희끼리 알아서 하도록 하지요!”
지소약에게 눈짓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대협.”
지소약이 군말 없이 답했다.
꾸벅, 초연서와 이벽에게 번갈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돌아서서 호위와 함께 전각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만이 남은 마당에서 이벽과 초연서가 서로를 마주했다.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말 그대로 갑작스런 재회였다.
적잖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쩜… 역시나 제 생각대로 공자께선 더욱 멋진 사내로 성장하셨군요.”
초연서의 눈이 이벽의 위아래를 흝었다. 훗, 이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간 무탈했어요, 공자?”
“…덕분에 무사했습니다.”
“덕분에라뇨? 빈말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한 게 없는걸요.”
“…….”
초연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이벽에게 만월무변심공, 그리고 팔절구궁필법을 전수해준 장본인이며, 분명 반가운 얼굴들 중 하나였다. 허나.
“그래, 할 말은 많지만… 사적인 건 우선 나중으로 미루지요. 공자께서 우리 수호대와 한솥밥을 먹고 싶다구요?”
마냥 반가워하고 있을 상황은 아님을 서로가 알고 있었으므로, 초연서는 대뜸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것이 하오문주를 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래야만 하겠지요.”
다시 이벽은 답했다.
초연서라면, 어찌 되었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있는 하오문이라면 충분히 함께할 수 있었다.
또한.
굳이 옛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당금의 무림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이 불확실함 속을 헤매고 싶지는 않았다.
“흠흠, 그렇군요.”
초연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녜요. 우리 수호대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딱 두 가지 요건만 갖추면 되거든요.”
척, 손가락 두 개를 뻗어 보였다.
“바로 ‘신분’과 ‘무력’이죠.”
“…….”
“그리고 공자라면… 뭐, 신분은 증명된 거나 마찬가지죠. ‘수호대주’의 제자이시니… 공자가 아니면 천하의 어느 누가 그 자격이 있겠어요?”
“…다행한 일이군요.”
“또한 무력에 대한 요건 역시 마찬가지죠. 저를 포함해서… 현 수호대원들 중 공자를 홀로 맞상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이야기는 퍽 긍정적이었다. 허나.
초연서의 표정으로부터, 모든 일들이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임을 이벽은 직감했다.
“허나.”
초연서가 목소리를 달리했다.
“정말로 유감이지만… 그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한들 공자를 우리 수호대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답니다.”
“…이유를 말해주시겠습니까?”
“그건 간단해요. 혹시라도 공자가 하오문에 찾아오거든… ‘절대로’ 요청을 들어줘선 안 된다는 ‘윗선’의 명령이 있었거든요.”
“……!”
* * *
‘…윗선의 명령.’
이벽은 생각했다.
수호대란, 하오문주 직속의 비밀 무력대이자 천하의 모든 하오문도들을 동원할 권한을 지닌 이들이다.
즉, 다시 말해서.
그러한 수호대에게 직접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윗선’이란… 단 두 명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오문주 혹은.
‘수호대주.’
이내 이벽은 깨달았다.
이진천은 어떻게든 이벽이 마을을 떠나 다시 무림으로 나오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고.
명령을 ‘묶어둔’ 모양이었다.
“어때요? 제가 공자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 정도가 전부인데… 상황을 좀 아시겠나요?”
“…대강은 알겠습니다.”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훗, 초연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요. 그럼 일이 그렇게 되었으니… 부디 다시 돌아가 주시겠어요?”
“…….”
이벽은 다시 생각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혈마를 벰으로써 마을을 떠난 사형제들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이진천의 유언을 따르는 길이 되었다.
그것이 자신의 판단이었다. 허나.
이 자리에서 말로써 초연서를 설득하려고 한들 의미는 없을 것이었다. 또한.
이벽은 초연서를 바라보았다.
천연덕스러운 미소는 여전히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했으며, 딱히 이벽을 재촉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
애당초.
정말로 이벽의 행보를 막고자 했다면… 이렇듯 직접 나서서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줄 이유는 없다.
그것은 즉.
자신이 ‘말로 해줄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이벽이 스스로 깨우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요한 침묵 속에서.
이벽은 초연서의 몇 마디 말들을 하나씩 곱씹어보았고, 이내 결론에 이르렀다.
“보통의 수호대원이 아닌… 수호대주가 되기 위해선 어떠한 요건이 필요합니까?”
“…훗.”
초연서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리고 이벽은 자신이 다다른 결론이 그릇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전(前) 수호대주가 남긴 명령은.
수호대주가 거두어들일 수 있다.
허나 조금 전, 초연서는 이벽을 가리켜 ‘전 수호대주’가 아닌 ‘수호대주의 제자’라고 말했다.
말인즉슨.
이진천이 세상을 떠난 지금에도.
수호대주의 자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계승되지 않은 채,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그 또한 일반 수호대원들과 딱히 다르지는 않지요. 역시 신분과 무력의 증명이 필요하죠. 다만.”
그리고.
서서히, 초연서의 주변에 무형의 기세가 어리기 시작했다. 사이하고도 친숙한 그 기운은 물론.
만월무변심공의 기척이었다.
“…훨씬 더 엄격할 뿐이죠.”
타닷.
그리고 그때였다.
이벽은 새벽의 어둠 저편에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서는 새로운 인기척을 감지했다.
타앗.
이내 천향루의 담장을 넘어.
인영 하나가 좌측에 내려앉았다.
“허헛! 이거 소문으로만 듣던 대주님의 제자를 직접 뵙게 되다니, 오늘 이 안 모가 퍽 운이 좋구려!”
이벽은 고개를 돌렸다.
호리호리한 체구의 콧수염을 기른 중년인을 마주했다.
“…대협께선?”
“허헛, 나야 안겸이라고 하는 작자이오만, 딱히 대단할 거 없는 이름이오! 그저 이런저런 상행에 빌붙어 표사일 하면서 근근이 먹고 사는 사람이지. 허헛!”
“…….”
허나 하는 말과는 달리.
이벽은 그 기세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직감했다. 사내의 주변으로는 바람과 같은 향이 맡아졌다.
사내 역시.
수호대의 일원임을 이해했다.
저벅, 저벅.
“……!”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이벽의 우측에서 또 하나의 인영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으며.
피 안개처럼 흘러넘치는 기세를.
감출 생각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노야, 여전하시구려.”
“…….”
가타부타 대답은 없었다.
과거, 이벽에게 도살지도와 적파심공을 전수해주었던 노인은 여전히 이렇다 할 표정 또한 없었다.
이벽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측의 ‘백정’ 고 노야.
정면의 ‘환쟁이’ 초연서.
그리고 좌측의 ‘표사’ 안겸.
세 명의 수호대원들이 각자의 방위를 점한 채 이벽을 둘러쌌으며, 포위를 당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무인으로서의 이벽은 이러한 상황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를 읽지 못할 정도로 둔하지 않았다.
“저희가 비록 수호대의 전원은 아니지만요.”
다시 초연서가 말했다.
“뭐… 아직 살아 남아있는 이들 중에선 그럭저럭 ‘가장 강한 축’에 속한다고 할 수는 있을 거예요.”
“…무력의 증명.”
이벽이 말했다.
초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공자께서 저희 셋을 동시에 쓰러뜨릴 수 있다면… 정말로 ‘수호대주’가 된다 해도 이의를 표할 대원은 아마 없지 않을까요? 뭐, 결정은 결국 우리 문주님께서 하실 일이지만요.”
“…그렇군요.”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 년 전부터 이곳 천향루에 머무르고 있었던 고 노야는 제쳐두고서라도.
초 연서와 더불어 안겸이라 하는 새로운 인물까지 기다렸다는 듯 천향루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우연’치고는 공교로웠다.
철컥, 이벽은 검을 잡았다.
초연서 역시 철필을 꺼내 들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적당히는 없을 거예요. 아시죠? 공자의 스승님이었다면 저희 셋 정도는 십 초 안에 쓰러뜨렸을 테니까요.”
“허허헛! 이거 참, 이 안 모가 우리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함께 손발을 맞추게 되다니 퍽 부담스럽구려!”
안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나 그 가벼운 음성과는 달리 세 방향에서 각자의 기세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고, 공기는 빠르게 무거워졌다.
저벅.
그리고 고 노야가 움직였다.
마당을 산책하듯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허나 그 손에는 이미 도가 쥐어져 있었으며.
붉은 강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한 명씩 빠르게.’
타앙.
찰나의 순간, 이벽은 판단을 내렸다. 고 노야를 향해 거리를 좁히며 이내 검을 뽑았다.
그 순간.
고 노야의 도가 번뜩였다.
도살지도의 삼 초식 참이었다.
우웅.
“……!”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과 도가 채 맞부딪히기도 전이었다. 이벽은 등 뒤에서 뻗어지는 또 하나의 기척을 감지했다.
기척은 희미했다. 허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팔절구궁필법, 삭월이었다.
“…큭.”
직선의 도와 곡선의 철필.
두 개의 선이 이벽에게 쏘아졌다.
채애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