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35)
241화. 풍마
피식, 피시식.
“크… 아악!”
덥석, 이벽은 피가 쏟아지는 어깨를 부여잡았다. 신경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통증은 생생했으며.
결코 진법이 비치는 환영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진짜’로 어깨가 잘려 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어이가 없군.”
그때 풍마가 말했다.
“그래도 한 수가 있는 놈인 줄 알았건만… 적을 앞두고 정신이 팔려 그리도 쉽게 팔을 내어주면 뭐 어쩌자는 건가?”
후욱.
압축된 바람이 재차 날아들었다.
타앙.
이벽은 땅을 박찼다. 어깨를 부여잡은 채 허공에서 선천의 힘을 이끌었고, 창공비검을 끌어올렸다.
후우욱.
가까스로 날아올랐다. 허나.
당연하게도 오른팔이 없으면 검을 잡을 수조차 없다. 이길 수 없으므로, 달아나야 한다.
‘허나 어디로?’
이벽은 답을 내리지 못했다.
진법으로 펼쳐진 이 드넓은 광야의 어디에 숨은들, 저 바람을 다스리는 절대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후우욱.
고통 속에서.
이벽의 발이 허공을 노닐었다.
가까스로 풍마의 공격을 몇 번 더 피했으나 어깨의 출혈을 막을 새조차 없었고 체력은 빠르게 저하되었다.
“…허억, 헉!”
입에서 단내가 났다.
“…짜증 나는군. 그만 죽어라.”
이내 서서히 이벽의 속도가 느려졌다. 허나 물론, 풍마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퍼억, 퍼어어억.
이내 공격들이 스치듯 이벽의 몸을 두드렸고, 그때마다 바람에게 갉아 먹히듯 이벽의 몸 곳곳이 뜯겨나갔다.
후욱.
만신창이가 된 이벽의 몸이 추락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이벽을 향해 다시 바람이 날아들었다.
“…….”
피하기는커녕.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퍼어어억.
이벽의 머리가 으깨어졌다.
후욱, 털썩.
그리고 머리를 잃은 몸이 마침내 땅 위에 추락했다. 힘없이 널브러졌다.
* * *
‘끝…이라고?’
찰나의 순간.
이벽은 최후를 인지했다. 바람의 형상을 한 채 닥쳐오는 죽음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퍼어어어억.
이내 머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죽여왔던 그 모든 적들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잃은 몸이 땅에 널브러졌다.
죽음이란.
참으로 한순간의 일이었다.
문득,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넘겨왔던 과거의 그 모든 순간들이 허망하게 다가왔다.
‘…안 돼.’
물론,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사형제들, 그리고 화정촌의 동생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죽어선 안 되는 이유였다.
허나 ‘이미 죽은 목숨’은.
어떻게 할 도리도 없었다.
이내 감각에 와닿는 주변의 모든 것들은 시커멓게 물들었고, 몸은 한 줌의 물처럼 땅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손을 뻗고자 했으나.
뻗을 손조차 남아있지 않다.
저항할 수 없는 추락이었다.
그리고 의식마저 서서히 흩어—
멈칫.
“……!”
허나 그때였다.
돌연 추락이 멈추었다.
그리고 죽음에 잠식되며 흐릿해지던 의식이 거짓말처럼 또렷해졌다.
스으윽.
다음 순간, 땅속으로 가라앉던 이벽의 몸이 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이 밝아졌고, 감각이 돌아왔다.
어느새 이벽의 몸은.
다시 허공에 떠 있었다.
우선 산산조각 난 머리가 다시 붙었으며, 그것을 시작으로 엉망으로 찢겨나간 살과 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건……!’
그리고 이벽은 이해했다.
또다시, 시간이 되감아지고 있다.
“…허억!”
그리고 이내.
맨 처음 터져나간 오른팔이 다시 어깨 위로 자라난 순간, 이벽은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시간이 되감기를 멈추고.
다시 앞을 향해 움직인다.
“허억… 헉!”
호흡을 가다듬는 한편, 이벽은 몸 곳곳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처 하나 없는 몸을 통해 ‘되살아났음’을 실감했다.
허나 그말인즉슨.
분명히 한 번은 죽음을 겪었다.
부르르르.
이벽의 몸이 잘게 떨렸다.
죽음의 생생한 감각이 스쳤다.
퍼어어엉.
허나 그때였다.
타앙.
이벽은 본능적으로 땅을 박찼다.
조금 전, 자신의 오른팔을 터뜨려버렸던 바람의 일권이 발아래를 스치고 지나갔다.
“훗, 제법 날래구나 무명소졸.”
물론, 풍마였다.
콰앙, 콰아앙.
느긋하게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풍마의 주먹은 다시금 뻗어졌고, 이벽은 그대로 허공에서 창공비검의 묘리를 일으켰다.
후우욱.
그리고 허공을 노닐었다.
방심의 결과가 어떠한지는 이미 겪어보았으므로, 단 한 순간조차 자리에 멈춰있을 수 없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크핫, 그래! 그렇게 나와줘야지!”
도망칠 곳은 없다. 그리고.
하물며 이 환영 속에서는 맘대로 ‘죽을 수’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고로, 어떻게든 저 풍마를 베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퍼엉, 파아아앙.
허나.
여전히 그것을 ‘어떻게 해내야 할지’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공격은커녕, 저 아래에 선 풍마의 근처까지 접근조차 할 수 없다.
그저 바람을 타 넘기며 충격을 흘려보내는 것이 이벽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공간마저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는 절대자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말그대로 ‘몸부림’ 뿐이었다.
‘…등천의 경지.’
선우명은.
창공비검을 휘두르면서도 몸 주변에 ‘자신만의 흐름’을 두르고 있었고, 그 힘으로 말미암아 풍마의 바람을 베어냈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벽이 펼치는 창공비검과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승리와 패배, 그리고 생사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콰아아앙, 슥, 서걱.
“…큭!”
“핫! 퍽 흥미로운 무공을 펼친다만… 그리 도망만 다녀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때, 이벽의 몸 곳곳에서 살갗이 벌어지고 피가 튀었다. 잠깐이나마 상념에 빠져든 대가였다.
바람은 철퇴와 같다가도.
때로는 칼날이 되기도 했다.
비록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상처가 계속 누적된다면 결국은 조금 전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뿐이다.
‘…죽음.’
고로.
이벽은 계속 생각해야 했다.
허나 물론, 선우명의 일검을 눈으로 봤다고 해서 그와 같은 힘을 흉내낼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목천(目天)과 등천(登天).
그저 ‘목격했을 뿐인’ 자와 ‘나아가기 시작한’ 자의 차이는 여전히 두터웠으며, 깨달음은커녕 실마리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한다면.
‘가진 힘’으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다.
“…흥, 슬슬 질리는군.”
그때 풍마가 말했다. 그리고.
바람을 어루만지듯 오른손으로 허공을 휘젓는 가운데, 여지껏 가만히 있던 왼손을 들어 올렸다.
짝, 두 손이 맞부딪혔다.
가벼운 손뼉에 불과했다. 허나.
콰아아아아아앙!
“…커헉!”
이벽의 몸이 충격에 휩싸였다.
풍마의 두 손이 부딪힌 순간 두 갈래의 ‘역풍’이 양쪽에서 이벽을 감쌌고, 서로 충돌하며 나뭇잎을 짓이긴 것이다.
콰앙, 콰지직, 우드득.
“큭, 끄아아아악!”
그리고 이벽의 온몸이 가공할 압력에 휩싸였다. 마치 손바닥 사이에 끼인 벌레처럼 짓이겨지기 시작했다.
“죽어라.”
“…커헉!”
이벽은 피를 토했다.
삽시간에 다시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허나 그때까지도 이벽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상대는 절대자이다.
경지의 차이 앞에서는 어떤 잔재주를 부려도 큰 소용이 없다. 만일 이것이 ‘진짜’였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허나.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의 이벽은, 이 모든 게 환상이며 ‘죽어도 진짜로 죽지 않음’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동귀어진’은 곧 ‘승리’이다.
우우우웅.
가루가 되는 듯한 압력 속에서.
이벽은 과감하게 청강유엽공의 내력을 포기했다. 그리고 적파심공을 일으켰다.
후우욱.
다음 순간.
짓이겨지는 이벽의 몸 안에 혈기가 들어찼다. 삽시간에 몸이 뜨거워지며 가까스로 의식을 붙들었다.
그리고.
화아아악.
사방으로 꽃잎이 흩날렸다.
“…호오?”
풍마가 작게 감탄했다.
이벽이 지닌 화영검무의 힘은 자신의 힘은 물론, 적의 힘조차 꽃잎으로 승화시키는 공능을 지닌다.
스르륵.
일순 바람의 압력이 약해졌다. 그리고 그사이 붙들려있던 이벽의 몸이 빠져나왔다.
아래로 추락을 시작했다.
“…….”
이벽은 몸의 부상을 실감했다.
짓이겨진 것은 잠깐에 불과했으나, 그것만으로 이미 또 한 번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더는 움직이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으나 물론, 이대로 숨이 끊어진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동귀어진.’
빙글.
이벽은 가까스로 몸을 돌렸다.
검을 아래로 향한 채, 다시금 청강유엽공을 일으켰다. 죽어가는 몸 안에서 혼신의 힘을 쥐어 짜내었다.
우우우우웅.
의지할 수 있는 초식은.
역시 단 한 가지뿐이다.
허나 ‘위’가 아닌 ‘아래에 있는 적’을 향해 추락하는 창공비검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문득.
그날, 혈마를 상대로 펼쳐졌던 이진천의 마지막 일검이 뇌리를 스쳤다.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창공비검의 묘리를 ‘거꾸로’ 풀어내었고, 이내 이진천의 검은 가공할 기운에 휩싸였었다.
물론.
이벽은 여전히 그 ‘검은 기운’의 정체를 알지 못하며, 하물며 등천의 경지에조차 이르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 펼치는 것은.
그저 조잡한 흉내에 불과했다.
우우우웅.
허나 어쨌건.
이내 이벽의 검 안에서 창공비검의 묘리가 나름대로의 진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쐐애애애액.
이내 이벽의 몸이 쇄도했다.
창공비검이 아래로 쏘아진다.
물론 그 끝은 풍마를 향해있었다. 다만 그 시점에서 이미 이벽의 의식은 안개처럼 흐릿했으나 혼신을 짜낸 창공비검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웠다.
콰아아아앙!
다시 풍마가 일으킨 바람이 정면에서 날아들었다. 허나 이벽은 피하지 않았다.
섣불리 피하려다 최후의 일검이 흐트러지면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콰아앙, 서걱.
그리고.
검이 바람을 갈랐다.
풍마의 눈썹이 흔들렸다.
“…크핫! 다 죽어가는 버러지라도 짓누르면 꿈틀하는 재주 정도는 있는 모양이구나!”
물론 바람을 갈랐다고 해서.
선우명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풍마의 공격을 완전히 무위로 돌린 것은 아니었다.
콰앙, 콰아앙!
그저 두 갈래로 갈라진 바람이 조금 약화된 위력으로 이벽의 좌우 양쪽을 두드릴 뿐이었다.
“…쿨럭.”
허나 이벽은.
더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몸의 어디가 어떻게 부서졌는지도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한 검, 그리고 검을 쥔 오른팔이 남아있었으므로,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이벽의 눈앞에는 풍마의 머리 위를 두텁게 감싼 ‘바람의 장벽’이 다가와 있었다.
마침내 추락은 끝이 났다.
“크핫, 오거라! 목숨을 쓰레기처럼 내던지는 모습이 퍽 맘에 드는구나! 내 기꺼이 받아주마!”
“…….”
다행히도 풍마는 ‘피하지 않고 받아칠’ 생각인 듯했다. 어찌 되었건 이벽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푸우욱.
이벽은 그대로 추락하는 힘을 실어 장벽의 안으로 검을 박아넣었다.
찌지직, 찌직!
물론,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장벽은 쉬이 갈라지지 않았다.
우우우우웅.
허나 그 순간 창공비검이 진동하며 여섯 개의 무리를 토해내었고, 이내 장벽 위로 간신히 검신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을 뚫어내었다.
푸욱.
마침내 안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