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36)
242화. 마음의 눈
후우욱.
이벽의 검신이 바람의 장벽을 뚫고서 파고들었다. 기어코 풍마의 목을 향해 쏘아졌다.
덥석.
“핫! 죽으러 오느라 수고했다.”
허나.
다음 순간, 이벽의 눈에 들어온 것은… 풍마의 맨손에 ‘붙잡혀버린’ 자신의 검이었다.
휘오오오오오.
아니, 엄밀히 맨손은 아니었다.
소용돌이를 두른 풍마의 손아귀 안에서 창공비검이 부르르, 애처롭게 진동했다.
주륵.
그리고 검신을 타고 한 방울의 피가 흘렀다. 허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진동이 멈추었다.
창공비검은… 파훼되었다.
“…내 피를 흘리게 하다니. 역시 나쁘지는 않았다. 한 번만 더 묻지. 무명소졸, 네놈은 누구냐?”
“…그냥 죽이시오.”
“핫, 그런가? 그럼 그렇게 하지.”
그리고.
휘오오오오.
풍마의 팔을 감싸고 있던 소용돌이가 이내 검을 타고 올라오며 이벽에게로 옮겨붙었다.
우득, 우드드득.
“컥… 크아아악!”
이내 온몸을 감싼 소용돌이 속에서 이벽의 사지는 꺾어지고 짓이겨졌다. 두 번째 죽음이었다.
* * *
이벽은 죽었다.
눈앞이 깜깜해졌고, 몸은 한없이 가벼워졌으며, 이내 한 줌 흙으로 흩어져 땅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허나.
추락은 곧 멈추었고.
시간이 다시 되감겼다.
그렇게 또다시, 이벽은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풍마를 맞이했다.
“이거야 원, 무명소졸께서 이 천마신교의 우호법 풍마의 목을 가져가실 생각인가 보군.”
“…….”
이후 이벽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상대로 가진 모든 기예와 무공을 쏟아부었다.
파창!
도살지도, 혹은 적파도결은 한 호흡조차 버티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나 바람 속에 흩날렸고.
쩌저저적.
팔절구궁필법의 달 또한 공간을 지배하는 바람을 가두지 못한 채 갈갈이 찢겨나갔다.
후욱.
“…호오?”
그나마.
화영검무의 꽃으로 바람의 기세를 약화시키고 그 틈을 타 기습을 가하는 것만이 풍마에게 상처를 입힌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만 그마저도.
앞선 죽음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어서 자잘한 생채기를 내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
쿠우우웅.
“크… 으아악!”
우두둑, 후득.
“커헉……!”
그러한 시도들을 대가로.
이벽은 몇 번씩이나 거듭해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콰아아아아앙.
시간이 되돌려질 때마다.
자신에게는 실패의 경험이 계속해서 누적되는 한편, 풍마는 모든 기억을 잃는다.
고로 이처럼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약점을 찾아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처음 몇 번 죽음의 횟수를 헤아리고 있던 무렵까지는 이벽은 그런 생각을 했다. 허나.
콰아아아앙.
깨달음의 차이는 절벽처럼 두터웠고, ‘약점’ 따위로는 메꿔지지 않음을 곧 이해하게 되었다.
바람은.
철퇴이고, 칼날이며, 절벽이었다.
‘공간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자연을 다스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며.
절대고수의 힘이 ‘재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음을 이벽은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동시에.
자신이 지닌 일신의 무가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지, 이벽은 무수한 죽음을 통해 절감했다.
퍼어어억.
“커억… 큭.”
이벽은 죽고 또 죽었다.
몇 번이고 땅으로 끌어당겨졌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죽음의 충격이 뇌리를 뒤흔들었다. 서서히 정신이 무너지는 듯했다.
어쩌면.
그저 이 안에서 ‘영원한 죽음’을 반복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후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다.’
허나 그럴 때마다.
이벽은 죽어선 안 될 이유들을 되새겼다. 자신이 없어졌을 때, 주변인들이 짓게 될 표정을 생각했다.
콰아아아앙.
고로 이벽은 계속해서 싸웠다. 목숨을 걸고 가진 모든 가능성을 반복해서 시험했다.
허나 거듭되는 죽음은 심혼을 뒤흔들었고, 파도에 바위가 깎이듯 단단한 자아마저 서서히 깎여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어느덧 이벽은 몇 번을 죽고 다시 되살았는지조차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흥, 시시하군.”
문득 풍마가 말했다.
그리고 이벽은 오른팔과 왼 다리가 뜯겨나간 채 벌레처럼 땅에 널브러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
아직 ‘죽지는’ 않았다.
허나 곧 죽게 될 것이며.
그리고 다시 살아날 것이다.
저벅저벅.
저만치에서 풍마가 다가오는 걸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풍마의 얼굴이 이벽을 내려다보았다.
눈빛은 삭풍처럼 차가웠다.
무수히 많은 죽음을 겪었으나.
이처럼 가까이에서 풍마를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문득, 이벽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얼굴 같다는 느낌이 스쳤다.
허나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실재했던 풍마는 이미 오십 년도 더 전에 선우명에게 목이 베이고 한 줌의 먼지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했건만 역시나 쓰레기 같았다. 제법 재미있는 무공을 쓴다만… 어차피 그 정도가 중원의 한계이겠지. 죽어라.”
그리고.
스윽, 풍마의 손이 뻗어졌다.
후우웅.
이벽은 그 손끝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의 목숨’에서 이벽의 눈에 비친 마지막 장면이었다.
콰직.
이벽의 머리가 부서졌다.
죽음, 그리고 다시 주변의 모든 것이 시커먼 어둠에 둘러싸였다. 땅으로 빨려들기에 앞서, 몸이 서서히 흙으로 분해되어간다.
허나.
더는 공포조차 없었다.
오히려 죽음에 접어든 순간 모든 고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그것은 퍽 달콤하게 느껴졌다.
‘…피곤하군.’
이벽은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마치 이른 아침의 잠자리에 몸을 붙들리듯, ‘편해지고 싶다’는 유혹이 이벽의 뇌리를 휘감았다.
어쩌면.
이대로 모든 것을 놔버린다면… 진법 바깥의 자기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고 정말로 ‘편해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물론 그럴 수는 없다.
허나 부활을 거듭할 때마다 몸은 무거워졌고, 죽음은 공포보다 오히려 안식처럼 다가왔다.
욱씬.
갈등 속에서 두통이 일었다.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찌 되었건, 시간은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건 원치 않건, 다시 되감길 것이었다.
“……?”
허나 그즈음이었다.
문득 작은 위화감이 스쳤다.
‘두통?’
통증은 날카로웠다.
허나 그것은 생각해보면.
있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
조금 전, 이벽의 머리는 풍마의 바람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으며, 시간은 아직 되감아지지 않았다.
고로 이벽에게 머리는 없다.
존재하지 않는 머리가 통증을 느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팔랑.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나뭇잎이 눈에 들어왔다.
“……?”
그것은 퍽 뜬금없는 광경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텅 빈 광야에 어째서 나뭇잎 따위가 떠다니는지, 이벽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한 장이 아니었다.
후우욱.
어느덧 무수한 나뭇잎들이 광야 전체를 떠돌고 있었다. 나뭇잎은 마치 나비처럼 허공을 거닐었으며.
팔랑팔랑.
“……!”
이내 이벽은.
그 한 장 한 장이 모두, 자신이 익혀왔던 청강유엽검의 검로를 그리고 있음을 이해했다.
찌이잉.
“…큭!”
순간, 두통이 극심해졌다.
허나 동시에 이벽은 직감했다.
그것은 과거, 이벽이 처음으로 목천의 영역에 발을 디뎠을 때의 감각과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영역에 눈을 뜬 순간.
상단전은 찢어지고 확장된다.
우우우웅.
존재하지도 않는 머리가 다시 으깨지는 듯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이 감각을 결코 놓쳐선 안 된다는 직감이 스쳤다.
머리가 없음에도 두통을 느끼고.
눈이 없음에도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저 아래로 땅 위에 널브러진 자신의 시신, 그리고 그 시신을 내려보고 있는 풍마의 모습마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가.’
자신은 죽었음에도, 하늘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또 한 명의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늘에 붙어있는 그 눈은.
곧 마음의 눈(心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 속에서는.
나 자신과 세상의 경계마저 흐릿해졌다. 흩날리는 나뭇잎 하나하나가 모두 나 자신이었으며.
나아가서는.
그 나뭇잎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흐름 또한 나 자신이었다. 마침내 이벽의 의식은 흐름에 도달했다.
우우웅.
서서히 두통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이벽은 황홀경에 빠졌다.
* * *
후욱.
그리고 시간이 되감겼다.
이벽은 스스로가 다시 되살아났으며, 풍마와 대치하는 상황으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허나 그럼에도.
이벽은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지 않아도 광야의 풍경은 손에 잡힐 듯 전부 보이고 있었으며.
오히려.
육신의 눈을 뜨는 순간, ‘그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나뭇잎과 함께 흐름 속에 스스로가 녹아든 이 황홀경이 꿈처럼 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후욱. 콰아아아앙.
허나 그때, 어김없이 바람의 주먹이 날아들었고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방해받고 싶지 않다.’
생각을 떠올린 순간.
이벽은 팔을 뻗어 몸 주변의 ‘흐름’을 다루었다. 무수한 나뭇잎들이 유의 묘리로 이벽의 몸을 둘렀다.
후우욱.
이벽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풍마의 바람은 이벽에게 작은 상처도 입히지 못한 채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
풍마의 표정이 흔들렸다.
“네놈… 역시 조금 전의 한 수는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
물론, ‘조금 전의 한 수’라고 해도 풍마에겐 이벽을 상대한 기억 따윈 남아있지 않을 터였다.
고로 지금 그가 말하는 것은, 이벽이 깃들기 전의 선우명이 펼친 일검을 말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 말은 즉.
지금, 이벽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어느덧 선우명의 그것과 ‘같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허나.
그러한 신위를 어떻게 펼쳤는지는, 이벽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저 ‘신체의 일부’처럼, 흐름이 뜻에 따라주었을 뿐이다.
“…크핫!”
이내 풍마가 웃음을 흘렸다.
“그래, 아주 좋구나 무명소졸! 네놈이라면 나를 즐겁게 해줄 자격이 충분한 것 같군!”
후우우욱.
그리고 그 두 어깨를 용권풍이 휘감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이벽은 눈을 떴다.
“…….”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대로, 육신의 눈을 뜨자 심안의 시야가 흔들렸다. 주변의 ‘흐름’으로부터 와닿는 감각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찌이잉.
그리고 다시 두통이 일었다.
후우우욱.
“자, 오거라 무명소졸! 네놈이 가진 전부를 이 풍마에게 쏟아내 보거라!”
“…….”
어찌 되었건.
이벽은 이해했다. 풍마 덕분에 이벽은 심안의 눈을 얻었고, 그를 통해 마침내 등천(登天)의 초행길에 올라섰으며.
얼추 ‘동등한 적수’가 되었다.
허나.
지금의 이벽에게 필요한 건 검을 나눌 적수가 아닌, 그러한 깨달음이 빠져나가 버리지 않도록 홀로 정돈할 시간이었다.
고로.
‘…방해가 된다.’
저벅.
이벽은 걸음을 떼었다.
동시에 가장 빠르면서도 확실하게 풍마를 벨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리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지난 수십 번의 죽음 속에서.
이벽은 이미 풍마라는 사내의 성격이나 습관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했으며.
‘약점’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단지 여태까지는 그걸 알면서도 이길 수 없었으나, 지금의 자신에게는 가능하리라 확신했다.
저벅저벅, 타앙.
다음 순간, 이벽은 땅을 박찼다.
신형이 쾌보의 묘리로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