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37)
243화. 허공을 딛다
타앙, 쐐애애액.
이벽의 신형이 쏘아졌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혔다.
쾌보의 신속함은 목천의 힘을 얻고 초절정에 오른 무인이라 한들 쉬이 반응조차 하기 어렵다.
허나 물론.
현재 이벽의 상대는 그러한 수준마저도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였다.
“크핫! 정면돌파라, 이 풍마가 그리도 우습게 보였느냐?!”
콰아아앙.
이내 다시 바람이 날아들었다.
허나 그 순간 이벽은 다시 ‘흐름’을 몸 주변에 둘렀다.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 나뭇잎들이 몸을 감쌌다.
서걱.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스치는 순간 이벽의 몸 곳곳에 자잘한 상처가 일었다.
그것은 주변의 흐름을 자신의 ‘영역’으로 다루는 힘이 선우명처럼 숙련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쐐애애액.
허나 그 사이.
쾌보는 계속해서 쏘아졌고 다음 순간 이벽은 풍마의 다섯 보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크하!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짝.
허나 그때였다.
풍마의 양손이 손뼉을 쳤다.
콰아아아아앙.
“…커헉!”
동시에 이벽의 좌우에서 역풍이 불어닥쳤다. 두 성난 바람의 충돌에 끼인 순간.
바스락, 바삭.
몸에 두른 나뭇잎들이 바람에 짓이겨 흩어졌고, 삽시간에 이벽은 다시 맨몸이 되었다.
콰드득, 콰드득.
“큭… 크윽!”
온몸의 뼈가 짓이겨졌고.
쿨럭, 목구멍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그 일격만으로 이벽은 다시 빈사 상태가 되었다.
허나 예상했던 바였다.
또한 노리는 바이기도 했다.
후욱.
이벽은 지난 싸움과 마찬가지로 적파심공을 끌어올렸고, 이내 화영검무의 힘을 떠올렸다.
화아악.
이내 사방으로 꽃잎이 피어나며 바람의 기세가 주춤했다. 그 틈을 타 이벽이 충돌에서 벗어났다.
비틀.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타앙.
허나 다음 순간, 이벽은 다시 청강유엽공을 일으킴과 동시에 창공비검의 무리를 끌어올렸다.
재차 풍마를 향해 파고들었다.
“원,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미친놈이구나! 오냐, 이리 오거라! 내 기꺼이 네놈의 일검을 받아넘겨 주마!”
그리고.
풍마가 호기롭게 외쳤다.
물론, 그 또한 예상한 바였다.
거듭된 도전과 죽음 속에서.
풍마는 죽기 직전의 이벽이 짜내는 ‘최후의 일검’ 만큼은 단 한 번도 피하지 않고 몸으로 직접 받아내려 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
무인으로서의 규칙인 듯했다.
“…고맙군.”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벽이 찾아낸 그의 약점이었다.
후우우욱.
마침내 이벽이 풍마의 지척까지 이르렀다. 이내 정면을 막아선 바람의 장벽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벽은 눈을 감았다.
철컥, 우우웅.
뽑혀나온 검신에 강기가 서렸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다시 한번 ‘흐름’이 둘러졌다.
후우욱.
광야에 가득한 나뭇잎들이.
검신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푸욱.
그리고 이벽의 검이 쏘아졌다.
쩌저적.
장벽을 어렵지 않게 파고들었다.
나뭇잎을 두른 검이 바람을 찢어발겼고, 심지어 그 상처를 중심으로 빠르게 균열이 퍼져나갔다.
후우우욱.
이내 영역과 영역의 싸움에서 패한 바람의 장벽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산들바람처럼 흩어졌다.
“…이, 이놈—?!”
풍마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 즉시 두 손을 뻗어 이벽의 검신을 낚아채려 했다. 허나 물론, 그것마저 이미 계산에 있었다.
스윽.
그 순간.
이벽의 검신이 ‘휘어졌다’.
주변을 두른 흐름과 함께 곡의 묘리로 휘어지며 풍마의 손아귀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푸우욱.
풍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
믿기지 않는다는 듯, 풍마의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동공이 부르르 떨렸다. 크, 이내 그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진짜로 미친놈이었군 그래. 이런 일검이 있었으면 공격을 왜 몸으로 처맞았나? 원, 어처구니가 없군.”
덥석.
그리고.
한발 늦게나마 풍마의 두 손이 검신을 붙들었다. 입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허나… 홀로 죽어줄 수는 없지. 자, 네놈이 택하거라. 물러서던가, 같이 죽던가 둘 중 하나다.”
콰콰콰콰콰!
이내 두 팔을 휘감은 용권풍이 검신을 타고 이벽의 몸을 향해 옮겨붙기 시작했다.
허나 물론.
이벽은 검을 놓을 이유가 없었다.
“나쁘지 않소. 같이 죽읍시다.”
훗, 이벽이 가볍게 웃었다.
“…크하, 크하하! 크하하핫!”
풍마가 미친 듯이 웃었다.
“좋아! 저승길이 심심하지는 않겠군 그래! 훌륭하다 무명소졸, 목숨으로 이 풍마를 막아내었구나!”
“…….”
물론, 풍마는 본인이 이미 오십 년도 더 지난 과거에 죽어 없어진 고인이며, 스스로가 환영에 불과하단 사실을 알지는 못할 것이었다.
반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벽은 몸을 사릴 이유가 없기에, 이러한 전략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서걱.
“잘 가시오, 풍마.”
그리고.
풍마의 가슴을 관통한 이벽의 검이 그대로 위를 향해 사선을 그었다.
“…커헉!”
가슴과 어깨를 따라 사선으로 갈라진 풍마의 상체가 비스듬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
허나 그 순간, 풍마가 쥐어 짜낸 최후의 용권풍이 이벽의 온몸을 감쌌다.
콰드드드득.
“…커억.”
그리고 이벽은 짓이겨졌다.
* * *
콰드드드득.
풍마의 마지막 일격이 남긴 바람 속에서, 이벽은 또다시 죽음이 목전까지 다다랐음을 체감했다.
허나.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의지로 목숨을 붙들었다. 그리고.
풍마의 목숨이 먼저 끊어진 반면, 채 이벽의 목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그 미세한 순간.
우우웅.
시간이 멈추었고.
바람 또한 멈추었다.
보다 정확히는 여전히 이벽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으나, 바람은 더 이상 ‘불지’ 않았다.
“…….”
이벽은 내심 안도했다.
풍마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시간의 멈춤을 맞이했다.
이는 즉.
‘풍마를 쓰러뜨리는 것’이 진법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추측했던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는 의미였다.
비록 동귀어진에 가까웠으나.
‘조금 더 오래’ 살아있었으므로, 마침내 진법은 이벽의 승리를 인정해주었다.
파스스스.
다음 순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베어진 풍마의 시신이 흩어졌고, 바람이 흩어졌으며, 그 밖의 산 이와 죽은 이들 또한 흩어졌다.
스스슥.
이내 선우명의 모습을 한 이벽의 육신 또한 흩어졌고, 눈앞에 펼쳐졌던 광야 전체가 사라졌다.
후욱.
그리고.
시커먼 어둠이 다가왔다.
“…….”
허나 물론 ‘죽음’은 아니었다.
이벽은 자신의 호흡을 느꼈고, 상처 하나 없이 살아 움직이는 육신의 존재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선우명이 아닌 본래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벽은 진법을 발견했던 바로 그 동굴의 어둠 속에 스스로가 서 있음을 이해했다.
마침내 진법을 벗어났다.
“…핫.”
이벽은 작게 웃었다.
검치 선우명의 ‘유품’을 얻었다.
그것은 후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끝도 없이 죽음을 반복케하는 말 그대로의 무간지옥이었다.
과연, 미치광이다운 유품이었다.
허나 어쨌건 이벽은 그 힘으로 말미암아 심안(心眼)의 깨달음을 얻었고, 등천(登天)의 경지에 이르렀다.
스윽.
이벽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즉시 가부좌를 틀었다.
어쨌거나 시급한 것은 깨달음을 정리하는 일이므로, 굳이 동굴을 벗어나 시간을 지체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
동굴의 어둠 속에서는.
눈을 감건 뜨건 육안이 가려진 상태였기에, 심안의 시야는 오히려 더욱 환해지는 듯했다.
또한 동굴 안에는 더는 어떤 종류의 부자연스러운 기의 흐름도 남아있지 않았다.
진법은 제 역할을 다했고.
동굴은 평범한 동굴이 되었다.
사락, 사라락.
이윽고 어둠 속에서.
이벽은 주변에 가득 들어찬 나뭇잎의 존재를 느꼈다. 나뭇잎들은 청강유엽검식의 검로를 따라 춤을 추었다.
물론, 실체가 아니었다.
나뭇잎은 오직 이벽의 눈에만 보이는 환영임과 동시에, 등천의 힘을 다루게 해주는 열쇠이기도 했다.
“…….”
등천의 힘이란.
일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몸 바깥에 있는 기운을 다스림으로써, 주변의 공간 자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는 절대지경의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
심안의 개안을 통해, 자신의 주변에 흐르는 자연의 기운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허나 물론.
기운에는 정해진 형태가 없다.
고로 열 명의 절대고수가 있다면, 심안에 비치는 풍경은 그 각자에게 있어 모두 제각각일 터였다.
그것은 예컨대.
이벽에게는 ‘나뭇잎’이었으나.
풍마에게는 ‘바람’이었을 테다.
절정, 그리고 목천을 지나 등천에 이르기까지, 쌓아 올렸던 ‘자신만의 무리’가 곧 눈에 보이는 자연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절대자’의 싸움이란.
공간과 공간의 충돌이었다.
나뭇잎과 바람이 뒤엉키듯, 절대자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써 영역을 다스리며, 동시에 상대의 영역을 부정한다.
부르르.
이벽의 몸이 작게 떨렸다. 그리고 다시, 이벽의 심안은 그러한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가늠조차 할 수 없던 경지에.
이벽은 기어코 올라서고 말았다.
고요한 흥분과 성취감이 차올랐다. 허나 동시에, 이벽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충분히 강한가?’
그것은.
회택을 떠나오기에 앞서, 하오문주 월향이 이벽에게 던졌던 질문이었으며.
또한 여전히 쉬이 답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등천의 경지에 올라섰다. 허나.
환영 속의 풍마를 쓰러뜨린 것조차,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이점을 통해 억지로 승리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
지금, 혈마를 만난다면.
자신의 나뭇잎으로 예의 ‘붉은 뱀’을 벨 수 있을지는…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낙검.’
이진천의 마지막 일검은.
여전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말인즉슨, 등천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하늘은 끝없이 높고.
길은 아직도 멀다. 다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우우웅.
이벽이 뜻을 일으켰다.
그러자 나뭇잎들이 이벽의 몸 주변으로 와닿기 시작했고, 이내 흐름 속에 이벽은 함께 녹아들었다.
한동안 황홀경에 머물렀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육안의 눈을 뜨더라도 깨달음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스친 순간.
저벅.
이벽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출구를 향해 동굴을 가로질렀다. 이내 바깥의 빛이 서서히 동굴 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멈칫.
예의 이진천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근에서 이벽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
허나 다시 지나쳤다.
이내 동굴의 끄트머리에 섰다.
어느덧 동천에서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불현듯 밝은 빛이 육안을 찌르자 이벽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수도 없는 죽음을 겪었으나, 그것은 고작해야 하룻밤 정도의 시간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벽은 새 경지를 손에 넣었고.
해야 할 일 또한 정해져 있었다.
‘…다만 그 이전에.’
동굴의 끄트머리에서.
이벽은 그대로 한 걸음을 더 내뻗었다. 허나 동굴은 절벽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그곳에 발판 따위는 없었다.
우우웅.
그러나 다음 순간.
이벽의 발은 허공을 디뎠다.
후욱.
이내 창공 위로 솟구쳐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