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68)
274화. 연결고리 (1)
“혈교에는 수많은 사술이 있소. 그리고 아무래도 그중에는… ‘타인의 육체를 빼앗아 영원히 생명을 이어가는’ 저주받은 사술 또한 존재하고 있는 것 같더군.”
흔들리는 촛불 속에서.
혜공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말했다.
까마득한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강호무림의 역사 속에 존재해왔던 모든 혈마는… ‘동일 인물’이다.
“…….”
그리고 그 순간.
불현듯, 이벽의 머릿속에서는 사패련의 지하에서 목도 했었던 혈마의 최후가 스쳤다.
—주, 죽을 수 없다! 죽을 수 없어! 모, 몸을 내놔라, 이노오옴—!!
이진천에 의해 궁지에 몰리고.
마침내 팔 하나를 잃어버린 혈마는 돌연 이진천을 도외시한 채 바로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허나 이내 패왕 혁군악의 창에 허리가 꿰뚫리고, 이진천의 검에 의해 목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벽은 의식을 잃었으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화정촌의 낙검문으로 옮겨진 후였다.
고로 이벽은.
굳이 이미 죽어 없어진 악적이 남긴 ‘최후의 말’ 따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평범한 삶을 되찾기 위해 세월 속에서 흘려보냈던 기억의 일부에 불과했다.
허나 어쩌면 그때.
혈마는 정말로… ‘자신의 몸’을 빼앗으려 했으며, 또한 ‘그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물론,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허나 이내 이벽은 혜공의 말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그것은 그다지 놀랍게 느껴지지조차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마음 한켠에서 이미 스스로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을 지도 모른다.
화정촌으로 돌아온 이후.
이벽은 낚싯대를 드리우던 이진천에게 구배지례를 통해 등천의 가르침을 청하는 한편,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저는… 물고기를 낚기 위한 ‘미끼’였습니까?
그리고.
이진천은 부정하지 못했다.
허나 미끼란, 먹음직스럽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몸을 갈아타며 삶을 지속하는 혈마에게 있어… 가장 탐이 나는 미끼는 다른 무엇도 아닌 ‘젊고 재능이 넘치는 육체’인 것이다.
때문에.
이진천은 단전을 잃고 다 죽어가던 자신을 구해주었고, 가르침을 주었으며, 무림으로 내보냈다.
그것이 바로.
‘심부름’의 의미였다.
“…시주?”
그때 다시 혜공이 말했다.
이벽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선사의 말씀이 실로 옳은 것 같습니다. 제게도 짚이는 것들이 없지 않군요.”
“…과연 그렇구려.”
혜공이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문헌의 내용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덧붙였다.
육체가 노화하고 수명이 다할 즈음, 혈마는 자신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후계자’를 지목하며.
이내 ‘의식’을 치르게 된다.
“그렇게 며칠에 걸친 의식이 끝난 후, 전대 혈마의 육신은 죽지만… 이내 새로운 몸을 통해 그 힘과 기억이 계승되어 다시 영원할 삶을 이어간다 하더군.”
“…….”
그렇게.
혈마는 손수 맘에 드는 다음번의 ‘그릇’을 선택하여… 까마득한 오랜 세월을 살아남아 악행을 반복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업이었다.
허나 이내 이벽의 생각은 ‘아직 설명되지 않은 부분’에 이르렀다.
그것은 분명.
까마득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에 존재해왔던 모든 혈마가 동일 인물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였다.
허나.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계파의 두 혈마가 동일 인물이라 말할 만한 근거는 되지 못했다.
끌끌, 혜공이 웃었다.
물론, 그러한 이벽의 의문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설명을 이었다.
“내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놈들은 교에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스스로의 세력을 두 쪽으로 나누어 어떻게든 살아남아 왔소.”
“…….”
“그래, 보다 구체적으로는… 그러한 위기의 순간마다 ‘두 명의 후계’를 골라 동시에 의식을 치렀다 하더군.”
“……!”
슥, 혜공의 하나뿐인 손이 수염을 쓸었다.
“마음과 기억을 몸에서 떼내어 다른 몸으로 옮길 수가 있다면… 그 마음을 두 개로 갈라 두 명의 몸으로 갈아타는 것 또한 불가능할 이유는 없지 않겠소?”
이내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그래, 말하자면… 제 몸과 머리를 반으로 갈라놓는 게지. 머리가 두 개 달린 뱀처럼 말이오.”
쌍두사(雙頭蛇).
이벽은 또 한 명의 혈마와 스승 이진천과의 일전 속에서 목도했던 예의 ‘붉은 뱀’을 기억했다.
그것은.
혈마가 지닌 ‘등천의 영역’이었다.
“물론, 제 자신을 두 쪽으로 갈라놓는다는 게 놈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지. 그렇게 갈라진 양쪽 모두, ‘온전한 혈마’는 아니었을 거요.”
“…….”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둘 중 한쪽은 대개 추적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쪽 역시 수십 년가량을 잠자코 숨어 힘을 키워야 했으니 말이오.”
마침내 이벽은.
혜공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큰 흐름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마교와 혈교의 세력다툼 속에서.
혈교는 위기에 처했고, 이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혈마는 스스로 ‘두 명’이 되었다.
그렇게 둘 중 하나는 마교에 흡수되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현재의 사파무림인 장강 이남에 몸을 숨겼다.
허나 어찌 되었건.
이번에는 ‘둘 모두’ 살아남았다.
그리고… 스승 이진천은 이벽이란 미끼를 통해 독사의 머리 하나를 쳐냈으나.
이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던 나머지 머리에게 뒤를 물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자신이 쫓고 있는 스승의 원수이자 ‘또 한 명의 혈마’는 다름 아닌 마교에 속해 있으며.
당대의 마교는.
“…의혈맹.”
“바로 그렇소.”
끌끌, 혜공이 다시 웃었다.
“시주께서는 역시 지혜롭기가 흐르는 물과 같아 스스로 막힘이 없으시구려.”
“…….”
“즉, 소협이 찾고자 하는 혈마, 그리고 이 늙은이가 무찌르고자 하는 마교, 나아가서는 당금의 천하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의혈맹’으로 귀결된다는 얘기요.”
노인이 말했다.
* * *
저벅.
이벽은 소림 경내를 가로질렀다.
주지승방을 나선 뒤, 일행들이 머무르고 있을 객당으로 향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났음에도 내부의 경계는 퍽 삼엄했다. 물론, 당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무승 하나가 안내 역할을 자처했으나 길을 기억하고 있으므로 이벽은 거절했다.
“…….”
혜공선사는.
생각이 정리된 이후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든다면, 다시 자신을 찾아와달라 말했다.
그 또한.
오 년 전의 그때와 같았다.
그 당시 혜공이 머무르고 있던 암자가 위치한 절벽을 오르던 와중, 이벽은 취풍신개로부터 난데없는 공격을 받았고.
절벽에서의 가르침을 통해.
마침내 목천의 힘에 눈을 떴다.
그리고… 등천의 영역에 눈을 뜬 지금, 혜공은 자신에게 ‘반백 년의 세월을 내어 주겠노라’ 말했다.
비록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헤아릴 수는 없었으나… 노승에게는 지금의 이벽에게 전해줄 만한 ‘가르침’이 있는 모양이었다.
또한 이벽은.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예의 ‘불상’을 본 이상, 혜공선사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차고 넘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스스로가 충분히 강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확답할 수 없는 이벽으로서는, 마다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벽은 섣불리 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물론, 노승의 말을 어디까지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애당초 노승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전, ‘문헌에 의한 추측일 뿐,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은 이야기’라 스스로 말했다.
‘두 명의 혈마, 그리고… 혈교와 마교의 연결고리.’
그러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벽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사실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혈마에 관한 기억에 비추어 볼 때, 큰 틀에서의 진실은 그리 다르지 않으리란 직감을 느꼈다.
다만 확실하지 못한 것은.
‘마교와 의혈맹의 연결고리’였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오만… 솔직히 그에 대해서도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오.”
노승은 머쓱한듯 웃었다.
“마인이란 스스로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알아내기가 참으로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오.”
허나 그것은.
앞서 소림으로 오는 길목에서 충돌을 빚었던 서천무존 정룡이 해주었던 말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보게. 자네는 무슨 마교 놈들이 마빡에 마교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줄 아나? 아니, 사실은 그런 미친놈들도 없지는 않네만… 대개는 그렇지가 않단 말이지!
때문에.
그 역시 마인을 식별해내기 위해선 ‘부딪혀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궁색하나마 몇 가지 이야기를 드리자면… 우선은 사파무림에서 달아난 혈교의 잔당들이 ‘너무 쉽게’ 의혈맹으로 흡수되었단 점이 있소.”
그것은.
앞서 철면개에게서 이미 전해 들은 바 있는 이야기였다. 허나 혜공은 그에 결론을 덧붙였다.
“모시던 혈마가 죽었어도, 나머지 반쪽에 해당하는 또 한 명의 혈마가 의혈맹에 있음을 알고 있다면… 잔당들이 그를 따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소?”
“…….”
“뿐만이 아니오. 과거, 나와 신개가 시주를 이곳 소림으로 불러 혈교의 추적을 부탁하고자 했을 때… 그때의 일은 기억하고 계시겠지?”
“…물론입니다.”
“그때, 이상하게도 권왕은 의혈맹의 무가들을 움직여 소협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방해하려 들지 않았소?”
“……!”
“그 또한 돌이켜보면… 퍽 이상한 일이었소. 마치 시주를 막아 사파와 녹림에 숨어있던 혈교를 ‘돕는 것’ 같은 모양새였지.”
그것은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허나 돌이켜보면, 그 결과 이벽은 남궁세가를 치게 되었고, 나아가 전쟁을 막기 위해 취풍신개와 함께 황보세가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권왕이 손수 기다리고 있었으며, 취풍신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구 무림맹의 몰락의 시작이었다.
“…….”
그 당시.
어째서 그토록 자신을 추적했느냐는 이벽의 질문에, 권왕 황보혁은 ‘검치 선우명’의 후손인 이벽의 피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노라 말했다.
그리고 이벽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말의 진의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허나.
“어쩌면.”
다시 노승이 말했다.
“오십여 년 전, 정사연합이 마교를 무찌른 그 순간부터… 놈들의 씨앗은 이미 정파 내부에 심어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소.”
“…….”
그 순간.
무언가 ‘스산한 바람’이 이벽의 마음을 스쳤다. 허나 감각은 찰나와 같았으며, 이벽은 그 이유를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이벽과 혜공의 대화는 일단락되었고, 이벽은 주지승방을 떠났다.
저벅.
어두운 경내를 가로지르는 한편.
이벽은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허나 결국은 어느 것도 정황에 불과할 뿐, 의혈맹과 마교가 연결되어 있다는 분명한 근거가 되지는 못했다.
다만 어찌 되었건.
의혈맹에는 ‘무언가’가 있다.
훅, 덥석.
그때였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이벽에게 날아들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이벽의 손이 꼬챙이를 낚아채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무슨 짓은요, 챙겨주는 건데요. 소협, 아까 나랑 정 소저 때문에 밥도 먹는둥 마는둥 했잖아요?”
“…….”
이내 저만치 어둠 속에서 당려옥이 나타났다. 그제서야 이벽은 낚아챈 꼬챙이에 고기 조각이 꿰여있음을 발견했다.
“천수법룡 덕수 소협께서 가져다 주시더라구요. 실제로 뵌 건 처음인데… 절간에서 고기라니, 역시 오룡삼봉이니 뭐니 해도 천년소림의 제자는 객을 대하는 마음부터가 다른 것 같아요.”
이벽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이곳은 소림의 경내이며, 굳이 말하자면 의혈맹 소속의 무인인 그녀에게는 적진 한복판이었다.
삼엄한 경계 속에서.
주변이 신경 쓰이지 않을 리 없다.
허나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바깥으로 나왔다는 건…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일 터였다.
“소협.”
“말씀하시오.”
“결국은… 소협께선 우리 의혈맹과 부딪힐 생각인 거죠?”
“…….”
“소협과 다른 분들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대강은 알 수 있어요.”
물론, 그녀는 의혈맹과 마교의 연결고리 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있는 듯했다.
허나 이곳 소림까지 오는 길목에서 겪은 흑시와 관련한 일만으로 그녀로서는 심경이 퍽 복잡한 듯 했다.
“하아.”
당려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어쩌면 좋을까요?”
“…….”
허나 그것은.
이벽으로서도 답해줄 말이 마땅치 않은 문제였다. 한층 더 무거워진 침묵이 감돌았다.
일찍이 당려옥은.
권왕은 천하제일인이며, 따라서 이벽이 그에 맞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벽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소저, 하나만 물어도 되겠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요.”
“소저께서는 어째서 예나 지금이나… 권왕이 천하제일인이라 그렇게까지 확신하시는 거요?”
“…왜겠어요?”
당려옥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께서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당금의 무림에서 맹주님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요.”
“…….”
“소녀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는데… 어떻게 반박을 하겠어요?”
물론, 이해 못 할 말은 아니었다.
허나 그렇다면 천하의 독왕이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지, 이벽은 거듭 궁금해졌다.
애당초.
의혈맹이 혈교, 혹은 마교와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다면… 맹주인 ‘권왕 황보혁’의 정체는 대체—
“아.”
그때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린 듯, 당려옥이 다시 운을 떼었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께서 선우세가의 초대가주이신 선우명 대협의 이야기를 같이 하셨던 적도 있었네요.”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오?”
“만약에 그분이 살아계셨더라면, 어쩌면… 그분만큼은 맹주님을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