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75)
281화. 우두머리 싸움 (1)
후욱.
“개방주께서 쓰러지면… 과연 이번엔 누가 나서서 그 구차한 목숨을 구해주려나?”
남궁세가주, 천중일검 남궁천승의 헌앙한 얼굴 위로 또다시 뿌리 깊은 악의가 스쳐 지나갔다.
움찔.
철면개의 미간이 흔들렸다.
바로 그 순간, 마주 선 상대에게서 악의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맹수의 그림자’가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 역시 찰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남궁천승의 얼굴에는 다시 언제나와 같은 여유로운 미소가 자리했으며, 그림자 또한 사라졌다.
‘…대체 무슨?’
꿀꺽, 철면개는 침을 삼켰다.
그것은 환영이되 단순한 허상은 아니었으며, 또한 ‘몸을 웅크렸을 뿐’ 여전히 남궁천승의 안에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림자의 정체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 대신 철면개는 이내 다른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남궁천승의 여유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실 앞의 두 승부 따윈… 결과가 어떻게 되건 별다른 상관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승리는 당연한 결과이며.
어차피 모든 적들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으므로, 굳이 목숨을 빼앗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 뭘 하고 계시오, 걸개? 어서 들어오시오. 내 기꺼이 선공은 양보해드릴 터이니.”
다시 남궁천승이 말했다.
허나 그 눈빛은 결코 ‘적수’를 바라보는 눈이 아니었다.
‘…먹잇감.’
애써 악의를 숨긴 채.
침을 뚝뚝 흘리며, 먹잇감이 제 발로 입 안에 걸어들어오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헹, 그렇단 말이지?”
퉤엣, 철면개는 두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콰악, 그리고 타구봉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스승께서 ‘잠시 맡겨두었던’ 타구봉은 다시 돌려드리지 못하게 되었고, 고스란히 자신의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과연 자신에게 이 타구봉을 휘두를 만한 자격이 있는지, 철면개는 자신할 수 없었다. 허나.
타구봉(打狗棒)이라 함은.
개방의 신물이기 이전에, 본디 힘없는 거지들을 해치는 거리의 들개와 같은 ‘맹수’를 때려잡기 위한 물건이다.
타아앙.
“하아압!”
철면개는 땅을 박찼다.
남궁천승을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아아앙!
이내 소리도 없이 남궁천승의 검이 뽑혀 들었고, 그 즉시 강기가 맺혀들었다.
강 대 강.
최초의 충돌과 함께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콰아아앙, 콰앙, 콰아앙!
허나 물론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 근거리에서 타구봉과 검이 마구잡이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허헛! 어디 그럼, 신임방주의 실력 좀 구경하겠소!”
휘리릭.
그리고 다음 순간, 남궁천승의 검이 그물처럼 사방을 조여들기 시작했다.
대연검법은 남궁세가의 뿌리에 해당하는 검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검로를 통해 상대의 공격이 뻗어질 공간 자체를 앗아버리는 검공이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과연, 타구봉을 내뻗는 철면개의 투로는 서서히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마냥 엉켜 들기 시작했다.
의도를 잃고 엉망이 되어간다.
퍼어어어억, 퍼엉!
“…하! 설마 이 정도가 실력의 전부는 아니겠지? 만일 그렇다면 내 실망을 금할 수가 없겠소만!”
“헹!”
허나 철면개는 이렇다 할 대답 없이 콧방귀를 꼈다. 그리고 계속해서 몽둥이를 휘둘렀다.
“……!”
그렇게 십여 합이 흘렀다.
이내 남궁천승은 깨달았다.
언뜻 보기에 철면개의 투로는 대연검법의 검로에 휩쓸려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검은 정작 상대의 공간을 전혀 빼앗아오지 못하고 있다.
얼핏 막무가내처럼 보이는 그 움직임 속에는… 알아채기조차 어려운 현묘함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개방의 절기, 타구봉법이었다.
“…좋소! 그 정도는 해줘야지!”
남궁천승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쾅, 콰앙, 콰아아아앙!
그리고 접전이 계속되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검과 몽둥이가 부딪치기를 반복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몇 합이나 흘렀을까.
다시 공기를 찢어놓는 충격파와 함께, 검과 몽둥이가 대각선으로 교차했다.
부르르르.
서로의 움직임을 묶어둔 검과 몽둥이가 경합을 이룬 채 허공에서 잘게 떨었다.
그 순간.
각자의 몸에서 병장기에 이르기까지의 거리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오 할 대 오 할이었다.
즉, 동수를 이룬 것이다.
“과연, 다행이오. 공진스님을 앞세우고 마지막에 나올 만한 실력은 되는 것 같군!”
핫, 남궁천승이 미소를 지었다.
“뭐, 어찌 되었건 ‘탐색’은 이 정도면 서로 충분하겠지, 그렇지 않소?”
우우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검을 둘러싼 강기의 빛깔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짙어지다 못해 흡사 바위처럼 선명한 회잿빛을 띄었다.
부르르르.
“……!”
철면개의 눈이 흔들렸다.
천근과 같은 압력이 몽둥이를 찍어누르며 동수를 이루던 힘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훅, 콰아아아아앙.
철면개는 황급히 몸을 뺐다.
후우웅.
신형이 갈대처럼 뒤로 밀려나며 붕 떠올랐고, 동시에 상대를 잃어버린 남궁천승의 잿빛 강기가 맨땅을 두드리자 흡사 지진처럼 땅이 흔들렸다.
울컥.
허공을 회전하는 한편, 철면개는 목구멍으로 핏물이 솟구치는 것을 애써 삼켰다.
저 ‘회잿빛 강기’는.
일전에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천하에서 가장 무겁기로 손꼽히는 남궁세가의 절기, ‘제왕검형’이었다.
‘…탐색이라.’
철면개는 쓰게 웃었다.
개방에는 물론 여느 세력에 못지않게 많은 절기가 있으나, 애석하게도 자신은 그 많은 것을 익힐 만큼 재주가 좋지 못했다.
고로 소림의 공진과는 달리, 이 정도의 강적을 상대로 내세울 만한 ‘공격 초식’은… 자신에게는 오직 타구봉법 하나뿐이었다.
허나 그 타구봉법이.
고작해야 ‘탐색전’에 쓰여버렸다.
—에라이, 이 주제도 모르는 거지 놈아! 뻗댈 곳을 보고 뻗어야지… 쪽박 깨지고 싶어서 안달이 났느냐?!
불현듯 스승의 목소리가 스쳤다.
과거, 스승 취풍신개는 저 말도 안 되는 검을 무려 ‘맨손’으로 붙잡았고, 심지어는 내력으로 압도해버렸다.
그리고 그에 비하면.
비교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지금의 자신은 형편없이 약했다. 자질의 차이는 엄격했고, 스승의 등은 멀기만 했다.
허나 스승은.
바람처럼 떠나버렸고, 더는 이 세상에는 없는 듯했다. 고로… 굶주린 거지 떼의 목숨은 자신의 어깨 위에 달려있다.
—에라이, 이 멍청한 놈! 아둔한 놈! 제발 부탁이니 네놈 목숨이나 흘리지 말고 챙기란 말이다!
“…시끄럽다고요, 이 노친네가!”
타아앙.
이내 철면개의 두 발이 땅을 디뎠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남궁천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훙, 후웅.
바람 소리와 함께 몽둥이가 다시 휘둘러졌다. 조금 전과 다를 바 없는 타구봉법의 묘리였다.
“…흠? 뭘 하자는 거요?”
남궁천승 역시 마주 검을 뻗었다.
물론, 그 검에는 여전히 제왕검형의 태산과 같은 기운이 서려 있었으며.
고로 이와 같은 충돌은 조금 전의 무의미한 반복이 될 뿐이었다.
타아앙, 타앙.
“……!”
허나.
제왕검형과 부딪히고도 타구봉은 일방적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제대로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틀.
“크아아아압—!!”
캉, 카아아앙.
타구봉을 펼치는 철면개의 신형이 마구잡이로 비틀거렸다.
상체와 하체가 따로 움직이는 듯한 그 움직임은 마치 취객을 닮아 퍽 볼품없는 모양새였으나.
또한 묘리를 담고 있었다.
취팔선보는 개방을 대표하는 절기 중 하나로, 허허실실의 동작을 통해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보법이었다.
카아아아앙, 콰아아앙!
정면을 당해낼 수 없으므로.
측면에서 두드려 힘을 깎는다.
타구봉법과 취팔선보가 함께 펼쳐지자 그 움직임은 더욱 괴랄해졌고, 남궁천승으로서도 쉬이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허나 그것은 마치.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았다.
찰나의 순간,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빗나간다면 그대로 제왕검형의 무게에 눌려 내상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철면개는 망설이지 않았고.
타구봉법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호오.”
남궁천승이 작게 감탄했다.
“뭐, 그럭저럭 재미는 있소만. 가능하면… 뭔가 슬슬 새로운 걸 보고 싶군 그래?”
허나 그 순간.
검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후우우우웅.
본래 제왕검형이란 그 자체로 태산과 같은 무게를 지니므로, 검의 속도는 그리 기민할 수 없었다.
허나 절정을 넘어선 순간.
목천의 기예는 그 거대한 산을 쥐고도 ‘빠르게 휘두르는 것’마저 가능케 되며.
타구봉법이 지닌 기괴막측한 움직임으로도 결국은 그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었다.
터어어어어엉.
“커헉—!”
이내 타구봉이 밀려났다.
충격을 받은 철면개의 몸이 거칠게 흔들렸고, 심지어 손아귀를 빠져나간 타구봉이 저만치로 훅 날아가 버렸다.
“…핫. 뭐, 이 정도인가?”
남궁천승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마치 장난을 치듯, 가진바 무공과 기예들 중 조금씩 더 강한 것을 차례대로 꺼내 들었고.
마침내, 오 년 전 취풍신개를 상대로 굴욕을 겪었던 제왕검형을 통해 철면개를 꺾기에 이른 것이다.
후우우웅.
“그럼 잘 가시오, 걸개. 지옥에 가면 스승께는 내가 보냈노라 꼭 말씀드리고.”
“……!”
그리고.
창백하게 질린 철면개의 얼굴 위로 제왕검형이 무심하게 내려찍어졌다.
“아… 안 돼—!!”
“크윽, 방주님—!!”
절체절명의 순간, 개방 측 무인들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허나.
타구봉을 손에서 놓치고도 정작 철면개의 눈빛에는 체념이 서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털썩.
다음 순간, 철면개는 망설임 없이 땅 위에 등을 깔고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고.
버둥버둥.
나려타곤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저 스치기만 해도 능히 뼈와 살을 으스러뜨려버릴 제왕의 검 앞에서 나려타곤을 펼친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콰아아아아앙!
허나 도박은 성공했고.
빗나간 검신이 땅에 꽂혀 들었다.
“……!”
남궁천승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 즉시 검을 회수하려 했다.
타아앙.
허나 그때는 이미 철면개의 신형이 튕기듯 땅을 박차며 자리를 벗어난 후였다.
데구르르.
그리고 검이 도로 뽑혀 들기까지의 찰나를 틈타, 철면개의 몸이 땅을 구르며 거리를 벌렸다.
“…하핫! 어처구니가 없군. 지금 내게서 도망가는 거요? 이 많은 보는 눈앞에서? 그런다고 대체 무슨 의미가—”
남궁천승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나 목소리는 도중에 멈추었다.
그것이 그저 ‘아무 의미도 없는 도망’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덥석.
이내 이 장 가까이 거리를 벌린 철면개가 근처를 나뒹굴던 또 다른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조금 전, 남궁하연에 의해 두 동강이 났던 비견개의 대나무 몽둥이의 일부분이었다.
타아앙.
“핫! 미안하지만 거지 명줄이란 게 박복하긴 해도 그리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라서 말이오!”
그리고 그 즉시.
철면개는 다시 땅을 박찼다.
그만한 목숨의 위기를 넘기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재차 남궁천승을 향해 쇄도했다.
“…구질구질하군.”
허나.
그런 철면개를 바라보는 남궁천승의 눈빛은 낮게 가라앉았다. 스윽, 제왕검형을 겨누었다.
“잔재주라면 그만 됐소. 아무래도 더 보여줄 게 없는 듯하니 다음 일검으로 확실히 끝을—”
흠칫.
콰아아아아앙!
허나 그때였다.
다음 순간, 남궁천승의 검이 황급히 등 뒤로 휘둘러졌다. 그리고 소리 없이 날아든 타구봉이 쳐내어졌다.
“……!”
그것은.
이기어술이었다.
‘어, 어느 틈에?’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조금 전 타구봉을 손에서 떨어뜨렸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 ‘내력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움찔.
남궁천승의 등줄기로 서늘함이 스쳤다. 그것은 일전이 시작된 이래 그가 처음으로 느끼는 ‘위기감’이었다.
타앙, 쐐애애액.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저만치에서 달려들던 철면개의 신형이 돌연 화살처럼 잔상을 남기며 급격하게 가속했다.
흡사 땅을 밀쳐내듯 쾌속을 이끌어 내는 그 걸음걸이는… ‘취풍신개의 발걸음’을 닮아있었으며.
또한.
전면에는 반토막 난 대나무 몽둥이의 뾰족한 단면이 강기를 머금은 채 앞세워져 있었다.
“……!”
막아내야 한다.
허나 가속화한 철면개의 속도는 남궁천승의 생각보다도 훨씬 빨랐고, 제왕검형은 태산처럼 무거웠으며.
타구봉을 쳐낸 검을 채 도로 회수하기도 전, 철면개의 신형은 이미 남궁천승의 지척까지 도달해있었다.
그리고.
씨익.
철면개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에라, 나도 한 방, 네놈도 한 방이다, 요놈아—!”
“…크윽!”
퍼어어어어어억.
흡사 죽창처럼 날카로운 끝이.
남궁천승의 복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