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93)
299화. 십절군자 당명오
“당 소저. 물러서시오. 이만 소저의 가족들 사이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군.”
“소, 소협! 잠깐……!”
“걱정은 마시오. 소저가 생각하는 ‘안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당려옥의 눈이 흔들렸다.
당대의 당가주이자 그녀의 아버지인 당명오는 이벽에게 ‘축객령’을 내렸으며.
이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면.
이벽을 ‘당가의 침략자’로 간주할 것이라 말했다. 말인즉슨 더 이상의 대화는 없음을 잘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려옥이 걱정하는 것은, 이벽이 아니라 오히려 당명오였다. 천하의 남궁세가주마저도… 이벽의 손에 목숨을 달리했다.
허나.
이벽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당려옥은 잠시 그 ‘어색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는 절대지경의 고수였고.
당가주와의 충돌에 앞서, 도리어 그의 딸인 자신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음’을 이해했다.
“…호홋.”
이내 당려옥의 얼굴에도 어색하나마 미소가 피었다. 슥, 당려옥은 고개를 숙였다.
“네 소협. 뭐랄까… 죄송해요.”
“딱히 죄송할 것은 없소.”
탓.
그리고 당려옥은 그 즉시 걸음을 뗐다. 좌측 세가의 무인들 사이로 빠르게 섞여들었다.
그저 ‘끼어들지 않는 것’이.
이벽과 당명오, 두 사람 모두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당의 중앙에는 이벽과 당명오만이 남았다. 이벽이 재차 포권했다.
“그러면… 한 수 부탁드리겠소.”
“…오만하기 짝이 없군.”
우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당명오의 소매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숨통을 틀어막는 듯한 기세가 본격적으로 주변을 내리눌렀다.
“허나…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오만함이겠지. 남궁세가주 남궁천승이 그대의 손에 죽었다는 이야기는 물론 전해 들었소.”
“…….”
스륵.
곧이어 당명오의 소매에서 몇 자루의 암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허나 그것은.
일찍이 겪어보았던 당평세의 만천화우처럼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압도적인 개수가 아니었으며.
우우우웅.
고작 열 자루에 불과했다. 허나.
크기도 길이도 제각각인 침들은, 또한 서로 다른 종류의 빛깔을 머금은 채 허공에 펼쳐졌다.
열 종류의 서로 다른 극독이.
열 종류의 암기에 깃들어 있다.
“나 또한 바보는 아니니… 내게 선공의 양보 따위를 기대하지는 마시오.”
“……!”
훅.
다음 순간, 당명오의 두 손이 뻗어졌다. 그와 동시에 열 개의 침이 일제히 쏘아졌다.
쐐애애액.
타앗.
이벽은 그 즉시 땅을 박찼다. 쏘아진 침들이 다가왔을 즈음, 이미 이벽은 허공으로 날아오른 후였다.
“…흥!”
허나 다음 순간.
당명오의 열 손가락이 꺾어졌다.
후욱.
동시에 침들 또한 방향을 꺾었다.
그 즉시 이벽의 뒤를 추격해왔다.
“……!”
이벽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열 개의 침 하나하나가 모두 이기어술에 제어되고 있으며, 하물며 그 전부가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을 지니기 시작했다.
후우우욱.
그리고 침들이 이벽을 맴돌았다.
포위망을 형성하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벽은 즉시 청강유엽신법을 밟았다. 곡과 변의 묘리를 통해 빠져나가려 했다.
후우욱. 채애앵.
허나 그 또한 실패했다.
빈틈을 타 벗어나려는 순간, 두 자루의 침이 정확히 이벽의 진로 앞에서 서로 부딪히며 움직임을 막아선 것이었다.
후욱.
다음 순간, 등 뒤에서 파고드는 서늘함을 감지한 이벽의 검이 황급히 뻗어졌다.
후우욱. 콰아아아아앙.
검이 한 자루의 침과 부딪혔다.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핫! 이게 무슨 추태요, 소협? 독왕이 아닌 이 당명오 따위는 언제든 손쉽게 벨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 * *
후욱, 훅.
허공에 발이 묶인 채 몰아치는 암기를 상대하는 한편, 이벽은 당평세를 생각했다.
과거, 노인의 손에서 펼쳐졌던 만천화우는 물론 당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절기였다. 허나.
구태여 그만큼의 암기를 다루지 않아도 ‘열 손가락’으로 다룰 수 있는 하나하나를 실올과 같은 섬세함으로 엮는다면.
능히 버금가는 절기가 된다.
하물며 그 하나하나에는 당가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맹독이 스며들어 있었다.
열 중 하나가 스치기라도 하는 순간, 제아무리 강대한 적이라 한들 찰나의 경직에 휩싸일 것이고.
그것은 즉.
나머지 아홉 자루가 파고드는 것을 모두 허용하게 된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맹독들이 적의 몸 안에서 증폭을 일으킴으로써 절명에 이르게 한다.
과연, 당명오는 강했다. 물론, 그는 사천당가의 가주였으며 또한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
따라서.
이벽은 조금 난처해졌다.
어찌 되었건, 등천의 힘을 통해 지금 당장 당가주를 쓰러뜨리거나 목을 베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장 생각나는 방법만.
여러 개가 있었다. 허나.
그것은 자신의 목적이 아니었다.
당명오는 자신을 ‘침략자’라 말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침략자가 될 수는 없다.
최소한… ‘아직은’ 아니었다.
고로 이벽이 해내야 하는 일은 단순히 상대를 베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대화할 생각이 없는 상대를.
대화에 나서게끔 만들어야 한다.
후우욱, 콰앙.
“하! 지금 뭘 하는 거요?! 남궁천승 그자가 고작 이 정도로 쓰러졌을 리가 없소―!”
“…….”
허나 상대는.
단순히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름으로써 쉽게 의지를 꺾고 마음을 굴복시킬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고로 이벽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적들을 상대해왔던 과거의 기억 속에서 한 가지 시도해볼 만한 방법을 떠올렸다.
후우욱.
다음 순간.
세침 하나가 은밀하게 측면을 파고들었다. 물론, 알아챈 시점에서 충분히 쳐낼 수 있는 공격이었으나.
이벽은 검을 뻗지 않았다.
퍼어억.
세침이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우우웅.
그 즉시 맹독이 이벽의 몸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움찔, 한순간 이벽의 몸이 경직했다.
퍼벅, 퍼버버벅!
그리고 예상대로.
당명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머지 아홉 자루의 침들이 이벽의 몸 곳곳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비틀.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지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소, 소협―?!”
어딘가에서 당려옥이 외쳤다.
“어처구니가 없군! 고작 이 정도 수준으로 그리 안하무인을 떨었단 말인가! 날고 기어봤자 결국은 애송이―”
허나.
코웃음을 치던 당명오는 하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것은 땅으로 내려온 이벽이 ‘두 발로 착지했기’ 때문이었다.
열 개의 급소를 찔렀고.
열 종류의 독에 중독되었다.
당장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의 기혈이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져야 정상이다.
허나.
안색은 거짓말처럼 태연했다.
“……!”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서로를 마주했다. 소리 없는 당황이 당명오의 얼굴 위를 스쳤다.
우우우웅.
한편.
이벽은 독기를 느꼈다.
열 종류나 되는 독에 노출되자 어느 곳은 얼음처럼 차갑고, 어느 곳은 불길처럼 뜨거우며, 어느 곳은 아예 감각이 사라지는 듯했다.
허나 그뿐이었다.
우우우웅.
선천의 힘이 몸 안을 흘렀고.
독들은 감히 활개를 치지 못했다.
툭, 투둑.
심지어는 몸에 꽂혀 들었던 침들이 하나둘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땅에 떨어진 침들은.
제 빛깔을 잃은 후였다.
“…이, 이게 무슨.”
그제서야 당명오가 말했다.
“가주, 독을 상대하는 것은… 내게는 그 어떤 종류의 무공보다도 제일 손쉬운 일이오.”
“……!”
당명오의 눈이 흔들렸다.
선천의 힘으로 후천의 내력을 유도해내는 이벽의 낙검진천신공은 그 어떤 가르침과도 궤를 달리하며.
동시에 이벽의 몸에 해를 끼치는 일체의 기운을 용납하지 않는 ‘해독의 공능’을 지닌다.
심지어는.
미처 등천의 영역에 이르기도 이전부터, 이벽은 이미 독왕의 내독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저항을 해냈던 기억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이것은 물론 ‘가벼운 수준’이었다.
우우웅.
허나 그때였다.
“…크아아압―!!”
모든 침들이 이미 땅에 떨어졌으나, 이벽의 갈빗대 부근에 틀어박혀 있던 마지막 침 하나가 거칠게 회전했다.
당명오의 모든 힘이 하나의 침으로 집중된 것이다. 독이 먹히지 않는 이상, 그대로 ‘꿰뚫어버릴’ 심산인 듯했다.
사락사락.
허나 물론.
이벽 또한 그러한 공격에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 기실 주변으로는 이미 투명한 나뭇잎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우우우웅.
“으으윽, 크으윽……!”
당명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허나 아무리 심력을 쏟아부은들 그 이상은 한 치도 이벽의 몸을 파고들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마지막 침이 ‘뽑혀 나가지 않게끔’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군.”
푸욱, 탱그랑.
허나 다음 순간.
이벽의 왼손이 침을 붙잡았다.
그대로 뽑아서 내팽개쳐버렸다.
“…커억!”
혼신의 기예가 파훼되며 상단전에 충격을 입은 당명오의 신형이 거칠게 흔들렸다.
* * *
“…….”
당명오는 입을 닫았다.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침묵 속에서 지금의 승부는 기실 ‘제대로 된 승부’조차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평생의 공부를 담은 비전의 독이… 상대의 몸 안에서 물처럼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상대는 기껏해야 자식뻘에 불과한 애송이였으나, 동시에 이미 자신의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절대자였다.
“…허헛.”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갔다.
“아니면… 조금 더 하시겠소?”
“…아니, 충분하오.”
스윽.
당명오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소협이 날 ‘죽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잘 알겠소. 이 이상 악다구니를 부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소? 손속에 감사할 따름이오.”
그에게도 물론 숨겨둔 초식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 ‘잔재주’로 넘어설 수 있는 격차가 아님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
반면, 이벽은 생각했다.
과거 맞서 싸웠던 암영각의 백룡강이나 당려옥의 숙부인 당청과 같은 독공의 고수들은.
지닌바 무공보다도 ‘자신하는 독이 파훼되는 순간’ 급격히 전의를 잃었던 것을 기억했다.
고로 이벽은 의도적으로 당명오의 독에 노출되었고, 눈앞에서 해독의 공능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행히 예상대로.
당명오 역시 기세가 꺾여 들었다.
“가주, 나는 대화를 하러 왔소.”
“…그렇겠지.”
당명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대화를 하러 온 게 아니었다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절대지경의 행보는.
절대지경 외에는 막을 수 없다.
“독왕께서 세가를 떠나셨다면 혹 어디로 향하셨는지… 혹은 언제쯤 돌아오실 예정인지 말해줄 수는 없겠소?”
“…유감이지만 여전히 드릴 말씀은 없소. 아버님께선 연중 본가에 머무르는 날보다 머무르지 않는 날이 더 잦을 정도이니 말이오.”
“…….”
“소협.”
당명오가 목소리를 달리했다.
“소협이 가진 용무란 게… 아버님 개인을 향한 거요, 아니면 우리 당가를 향한 거요?”
“……!”
“만일 후자라면… 이 당명오에게 말씀해주셨으면 좋겠군. 어찌 되었건 당대의 가주는 아버님이 아니라 바로 나이니 말이오.”
이벽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또한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잠시 당명오를 바라보았다.
유한 인상의 안쪽으로 극독을 품은 이 사내가 의혈맹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벽은 알 수 없었다.
허나.
언제 나타날지 모를 독왕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상황 또한 아니었다.
“…그렇군. 실례했소. 우선 자리를 옮기는 편이―”
“허허헛! 뭣들 하고 있나?”
그러나 그때였다.
하늘 저편에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훅, 이벽과 당명오를 비롯한 뭇 가솔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저만치 몇 장 바깥에는.
인영 하나가 허공에 떠 있었다.
후우욱.
그리고 다음 순간, 장내를 향해 내려서기 시작했다. 이내 눈 깜짝할 새 이벽과 당명오의 사이에 내려앉았다.
“…아버님.”
“허허헛! 가주, 아무래도 호된 꼴을 당한 모양이오? 그러니 내 일전에도 비룡대주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소?”
물론, 독왕 당평세였다.
웅성.
그리고 그 순간, 주변의 기세가 술렁였다. 존재만으로 그 아래에 선 모든 이들의 버팀목이 된다.
그것이 절대자였다.
“…당 노야. 강녕하셨소?”
“강녕이고 자시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지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데… 예까지 어쩐 일이신가?”
“…급한 일이 있어서 말이오.”
“일은 무슨 일? 아, 드디어 이 당평세의 손녀사위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 허허헛!”
“…….”
이벽은 신선과 같은 풍모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허나.
당명오와의 승부를 마무리 지은 순간, 노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헛!”
노인이 수염을 쓸었다.
퍽 능청스러운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