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04)
312화. 맹독과 뱀 (2)
스스스스, 움찔.
독왕과의 경합에서 밀린 혈마는 이내 땅에 쓰러졌고, 무형지독에 기혈을 침식당한 채 온몸이 시커멓게 삭아버렸다.
분명히 숨이 끊어졌다. 허나.
다음 순간, 경련을 시작했다.
일순 당평세는 당황했으나, 그 즉시 수십 자루의 암기를 쓰러진 혈마의 몸에 재차 박아넣었다.
스스스스.
허나 그러고도.
혈마의 경련은 멈추지 않았다.
쩌저저저적.
다음 순간, 오히려 암기가 박힌 지점들 사이로 시커멓게 죽은 피부가 갈라지며 안에서 시뻘건 속살이 드러났다.
“……!”
죽어버린 피부 안쪽에서.
새로운 피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마치 허물을 벗는 뱀처럼 기괴한 모습이었다. 이내 당평세는 혈마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이해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당평세가 침음했다.
독왕은 물론, 용독술의 정점에 선 이로서 의술에도 결코 가볍지 않은 조예가 있었다.
허나 굳이 그러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눈앞의 광경은 지나치게 상식 밖이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사술’ 외의 무엇도 아니었다.
슥.
당평세는 그 즉시 비수를 꺼냈다.
영문을 알 수 없되, 이대로 놈이 ‘되살아나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확신이 스쳤다.
우우우우우.
독왕은 남은 힘을 쥐어짰다.
이내 무형지독이 비수의 날을 감싸며 희미한 형체를 이루었다. 그 즉시 독왕은 온힘을 다해 비수를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허나.
가로막히고 말았다.
“…크.”
당평세의 비수는.
혈마의 손을 관통하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쓰러져 있던 혈마의 오른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여 들며 그 진로를 손으로 가로막은 것이다.
쩌저저저적, 쩌저저저적.
심지어는.
그 충격으로 인해 시커멓게 죽은 ‘허물’들이 혈마의 몸에서 본격적으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다시 혈마가 몸을 떨었다.
스륵.
이내 비수에 관통당한 오른손마저 마치 미끄러지듯 비수의 날을 빠져나갔다.
번쩍.
그리고 마침내 되살아난 혈마의 눈이 뜨여졌다. ‘네 발’로 땅을 짚은 채 고개가 위로 꺾어졌다.
당평세와 눈을 마주했다.
“킥… 키킥!”
핏줄이 모두 겉으로 드러난 듯한 흉측한 얼굴 위로 미소가 피었다. 끝이 갈라진 뱀의 혀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며 입술을 핥았다.
어느 모로 보아도 그 모습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큭!”
타앙.
그리고 그 순간.
당평세는 황급히 물러섰다.
허나 물론, 몰골의 흉측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덧 혈마의 주변으로… 다시금 ‘뱀의 형상’이 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아아아아아.
“그아아아아아―!!”
그리고 뱀과 혈마가 동시에 울부짖었다. 훅, 시산혈해의 악취와 같은 기세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찌르르르.
당평세의 등줄기에 오한이 스쳤다. 그 괴성 속에는 조금 전의 격전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충만한 기세가 담겨있었다.
반면 당평세는 이미.
대부분의 힘을 소모하고 말았다.
스윽.
되살아난 재앙 앞에서, 당평세는 미간을 찌푸렸다. 비수를 갈무리하며 어떻게든 다음 수를 생각해내려 했다.
허나 그때였다.
채애애앵, 콰아아아앙!
“커억… 허억!”
“이, 이런 빌어먹을―!!”
설상가상으로.
등뒤에서 소란이 일었다.
흘끗, 당평세가 뒤를 곁눈질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듯하던 무인들 간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확인했다.
되살아난 혈마가 울부짖은 순간.
기세에 짓눌려 굳어있던 배신자들이 다시 선공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아아아앙.
“크오… 으오오오오―!!”
심지어 그 모습은.
되살아난 혈마의 기운에 모조리 심혼을 빼앗긴 듯, 제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과격한 형태가 되어 있었다.
콰아아아앙.
“큭… 정신들 차리시오! 수는 이쪽이 더 많으니 공연히 휘둘릴 이유가 없소―!!”
이내 당가주 당명오를 비롯한 각 세가의 우두머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분전을 시작했다.
허나 이러한 압박감 속에서는 제 실력을 내기는커녕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을 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황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외통수로군. 허헛!”
이내 당평세는 웃었다.
헝클어진 수염을 쓸었다.
이미 지쳐버린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혈마를 이길 수 없음이 분명했다. 허나 식솔들을 생각하면 물러서는 선택지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우득, 우드득.
그리고 혈마의 몸이 움직였다.
관절이 뽑히고 다시 붙기를 반복하듯 기괴한 모양새로 몸을 비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저벅.
두 발로 섦과 동시에, 당평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걸음걸이는 마치 마실을 나온 듯 평온했다.
그리고 당평세는 이해했다.
혈마는… 조금 전과 같은 방식으로 다시금 자신의 팔을 붙든 채 ‘정면승부’를 펼칠 생각인 것이다.
아니, 승부가 아니다.
한 번의 죽음을 겪고 나서도.
여전히 혈마에게 있어 자신은 동등한 적수가 아니라 ‘먹잇감’으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핫! 그래, 그렇단 말씀이로군.”
허나 그것은.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결국 놈의 비늘을 뚫어낼 자신이 없다면…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벌어진 아가리’에 독을 처넣어주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슥.
고로 당평세는 물러서지 않았다.
잠시 당가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안쪽에 있을 식솔들, 그리고 손녀딸과 은인을 닮은 젊은 사내를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제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끝끝내 대화를 원하던 그 아이가 당가를 버릴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내 노인은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다시 혈마를 향했다.
슥, 이내 스스로 팔을 내밀었다.
“자, 여기 있소.”
노인의 입가에 주름이 그어졌다.
“혼자 먹다 죽어도 포기를 못 할 만큼 이 늙은이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기꺼이 내어드려야지. 자, 어서 와 잡숴보시오.”
“…….”
혈마의 시선이 팔을 향했다.
스스스스, 덥석.
다음 순간, 혈마의 신형이 훅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내밀어진 독왕의 팔을 그대로 붙들었다.
사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쩍 벌어진 뱀의 아가리가 다시 독왕의 머리 위로 내려찍어졌다. 역시, 조금 전과 완벽히 똑같은 모양새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이내 어금니가 독왕을 물었다.
비틀.
당평세의 신형이 흔들렸다.
억지로 쥐어 짜낸 필사의 무형지독이 거칠게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방어가 와해될 듯했다.
허나 노인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그어져 있었다. 심신은 이미 한계였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을 죽이되 자신은 살아남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였다.
함께 죽는 것을 각오한다면.
아직 마지막이라 할 수는 없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다시 충돌이 반복되었다.
우드득.
“…커억!”
이내 곳곳의 방어가 무너지며 조금 전과 달리 당평세의 육신에 본격적으로 충격이 누적되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독왕은 필생의 힘을 다해 뱀의 아가리 속으로 무형지독을 밀어 넣었다.
다만 동귀어진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
스으으으.
“……!”
허나 그때였다.
불현듯, 당평세의 눈이 다시 혈마를 스쳤다. 그 흉측한 눈가가 웃음을 그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조금 전과는 달리, 자신의 팔을 붙든 그 손끝에는 중독의 기미가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
“…키키킥!”
오싹.
그 순간.
당평세는 무서운 예감이 스쳤다.
어쩌면… 눈앞의 괴물은 그저 ‘다시 되살아나기만 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번의 중독과 탈피를 거쳐.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운 거라면.
‘설마 무형지독을 삼키고 죽음을 자초한 것마저… 일부러였단 말인가?’
콰아아아아아아앙.
휘청.
독왕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 * *
후욱.
이벽은 마음속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일검일검마다 응어리져 있던 것들이 꽃잎이 되어 흩날렸다.
마음은 정돈되었고.
기예 또한 정립되었다.
“소협… 왜 울어요?”
허나 그즈음, 당려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벽은 그 목소리가 더는 환영이나 꿈 따위가 아님을 이해했다.
마비된 청각이 돌아왔다.
말인즉슨, 마음속에서 검을 가다듬는 동안 몸 안에 똬리를 틀었던 무형지독 또한 꽃잎이 되어 모두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마침내 이벽은.
천하제일의 극독에 뿌리를 내리고도 탐스런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의 기예를 얻게 되었다.
이내 이벽은 눈을 떴다.
“그냥… 옛날 꿈을 좀 꾸었소.”
슥, 당려옥을 돌아보았다.
“…힉!”
움찔.
당려옥이 뒷걸음질쳤다.
“…왜 그러시오, 소저?”
“아, 아니요, 그냥. 호홋……!”
당려옥이 머쓱한 미소를 보였다.
콰아아아아아앙.
허나 그때였다.
천지를 뒤흔드는 파동과 함께 자욱한 혈기가 일대를 내리눌렀고, 당려옥의 안색이 흔들렸다.
“……!”
그리고 그 순간.
이벽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것은 ‘너무 익숙한’ 기운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한순간 아직까지도 스스로가 환영 속에 갇혀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허나 당려옥의 표정에서.
이내 현실감을 재확인했다.
“…….”
이벽은 주변의 분위기를 읽었다.
당가의 마당에는 더는 당평세의 모습이 없었으며, 남은 이들 사이에서는 혼란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찌르르르.
이벽의 몸이 잘게 흔들렸다.
마치 피 웅덩이에 온몸이 담가진 듯한 감각이 온몸의 신경을 타고 흘렀다.
“…그렇군.”
이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즉시 자초지종을 이해했다. 그렇게나 뒤를 밟으려 해도 꼬리조차 밟히지 않았던 ‘원수’가.
제 발로 직접 찾아온 모양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다시 충돌이 일었다.
물론 누군가가 저 문 바깥에서 ‘그 자’를 상대하고 있다면… 독왕 외의 다른 이일 리 없다. 허나.
“노야께서 위험하신 것 같군.”
“……!”
당려옥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걱정 마시오. 다녀오겠소.”
훅.
그리고 그 순간.
이벽이 사라졌다.
그대로 날아오른 것이다.
다음 순간, 이벽의 신형은 이미 당가의 담장을 넘어서 있었다. 그리고 저만치에서 당평세를 집어삼키려 하는 ‘거대한 뱀’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답무용으로 검을 뻗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다음 순간.
이벽의 몸이 빛살처럼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여섯 개의 묘리가 일검에 모여들며 이벽이 지닌 가장 위력적인 기예가 펼쳐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붉은 뱀의 허리를 두드렸다.
사아아아아아아.
뱀이 괴성을 내질렀다.
쿠우우웅.
언덕만 한 크기의 뱀의 몸체가 옆으로 기울어졌고, 그 안에 가려져 있던 혈마의 몸 또한 저편으로 밀려났다.
허나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손에 전해지는 감각은… 베어지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천년 묵은 고목을 몽둥이로 두드린 듯 뭉툭했다.
사아아아아.
“비… 비룡대주! 조심하게―!!”
그때였다.
저 아래에서 독왕이 외쳤다.
후우우우우웅.
“……!”
이내 이벽은 뱀의 꼬리가 휘둘러지며 자신에게로 날아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피하기엔 늦었다.
그 즉시 이벽은 직감했다.
그 두께는 집채와 같았으나 속도는 섬전과 같았다. 찰나의 순간, 이벽은 방어를 택했다.
사라락.
콰아아아아아앙.
“컥―!”
그대로 꼬리에 적중당한 이벽의 몸이 대번에 땅을 향해 추락했다. 이벽은 서둘러 몸을 가누었다.
터어어엉.
가까스로 두 발로 착지했다.
나뭇잎으로 방어를 둘렀음에도.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벽은 또다시 목구멍으로 피가 치솟는 것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후우욱.
사아아아아아.
그리고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다시금 뱀이 포효했다. 이벽은 바로 옆에 선 인영을 바라보았다.
“노야, 몸은 괜찮소?”
“…자네야말로 괜찮나?”
당평세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허나 물론, 이벽의 몸 또한 결코 좋은 상태라 말할 수는 없었다.
당평세와 이벽은 접전을 펼쳤고, 서로의 힘을 소모시켰다. 무엇보다 이벽은 이제 막 무형지독의 구속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마음의 성취를 얻었다고 해도.
소모된 체력이 돌아오진 않는다.
스스스스.
서서히 안개가 걷혔다.
이벽은 다시 뱀을 마주했다.
“…….”
그리고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드러난 뱀의 모습이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력을 다한 기예였다. 허나.
고작해야 허리의 ‘비늘 몇 장’을 긁어내는 데 그쳤을 뿐, 혈마의 본체에는 전혀 닿지조차 못했다.
사아아아아아.
그 순간, 혈마 또한 고개를 돌려 이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벽은 실뱀과 같은 핏줄이 드러난 그 얼굴 위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았다.
사라락.
나뭇잎이 흔들렸다.
차가운 분노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