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03)
311화. 맹독과 뱀 (1)
콰아아아아아앙.
지진과 같은 충격이 번져나갔다.
당가를 둘러싼 담이 출렁거렸다.
“으… 으으……!”
당가의 대문 밖.
혈마와 독왕의 기세가 부딪힌 순간, 여타 무인들 간의 싸움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부르르.
보다 정확히는.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었다.
이 순간, 뭇 무인들의 곤두세워진 기감은 날카롭다 못해 마치 통증처럼 느껴졌고, 온몸이 움츠러들며 팔다리가 뻣뻣해졌다.
무공을 펼치기는커녕.
거동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콰아아아아앙.
지척에서 펼쳐지는 고래와 고래의 충돌 앞에서, 격랑에 휩쓸린 새우들은 그저 숨을 죽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크… 당가의 무인들은 들어라―! 더러운 배신자들을 제외한 동도들을 도와… 어서 이리로 물러서도록 해라―!”
당가주 당명오가 외쳤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피아가 식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허나 물론, 그것이 부하들에게 있어 결코 쉬운 명령이 아님은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초절정에 이른 자신마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판국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당명오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그의 아버지인 독왕과 의문의 악적은 여전히 처음의 대치 상태 그대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악적은 독왕의 팔을 붙들었고.
독왕 또한 뿌리치려 하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허나 충격은 연신 번져나갔다.
텅빈 허공 위에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조차 않는 천외천의 충돌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당명오는 조금 전, 비룡대주 이벽과 독왕의 싸움이 얼마나 ‘절제된 것이었나’를 뼈저리게 체감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아버님.’
당명오는 이를 악물었다.
어찌 되었건 믿는 수밖에 없다.
또한 아버님께서는 자신에게 식솔들과 무인들을 데리고 달아나라 명했다.
식솔들을 지키는 것은.
물론 가주로서의 의무이다.
탓, 당명오는 몸을 움직였다.
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앙―!!
“…크으.”
한편, 독왕 당평세의 이 사이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대치가 시작된 순간, 혈마의 주변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뱀은 그대로 아가리를 벌린 채 자신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것은.
당대의 천하십대고수 중 일인인 자신을… 동등한 적이 아니라 한낱 ‘먹잇감’으로 보고 있기에 가능한 공격임을 모르지 않았다.
사아아아아.
허나 독왕은.
상대의 그 광오함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뱀의 아가리 속에서, 연신 턱이 다물어지며 윗니와 아랫니가 자신의 몸을 두드렸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때마다.
온몸이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영역을 두른 채 어떻게든 버티고 있으나, 잠깐이라도 긴장을 놓았다간 그대로 짓이겨지고 말 것임을 독왕은 직감했다.
절대지경을 이룬 고수 사이에서.
다시 세분화된 경지를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허나 그 힘을 ‘갈고닦은 세월’만큼은 곧 영역을 담는 그릇의 크기와 비례한다.
그리고 독왕은.
상대가 지닌 ‘뱀의 크기’에서… 자신보다 훨씬 더 까마득히 오랜 시간 등천의 영역을 갈고닦은 존재임을 직감했다.
그것은 한낱 인간이 어찌 그렇게 오랜 시간을 존재해올 수 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광대함이었다.
콰아아아아앙.
“크윽……!”
허나 다음 순간.
신음을 내뱉은 노인의 입가에 돌연 미소가 피었다. 마침내 ‘기별’이 오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아아아아아!
“그래… 맛이 좀 어떻소?”
기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뱀의 턱이 다물어질 때마다 독왕이 일방적으로 충격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평세의 영역이 흔들린 순간, 그 영역을 이루고 있던 무형지독이 흐트러지며 뱀의 목구멍 안쪽으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아아아아아.
뱀이 흉포하게 몸부림쳤다.
고작해야 한 입 거리에 불과한 인간임에도, 아가리가 다물어지지 않는 것에 짜증이 인 것이다.
쩌적, 쩌저적.
다음 순간, 심지어는 오히려 뱀의 얼굴을 감싼 비늘 위로 자잘한 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뱀은 분명 천하의 재앙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독왕의 무형지독 또한 이미 충분히 ‘재앙의 영역’이었다.
스으으으.
그리고 독왕의 팔을 붙든 혈마의 손 또한 시커멓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혈마의 미간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허헛! 보아하니 그다지 입맛에는 맞지 않으신가 보구려? 그거 참 유감이오.”
독왕이 다시 말했다.
짐짓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허나 기실 독왕 또한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절대지경에 오른 이래, 이처럼 힘에 부치는 상황에 처한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일생의 깨달음을 담은 절기, 심독으로 비룡대주를 재워두려 했으나, 이내 오판임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내면의 강인함은.
오히려 겉으로 드러난 힘을 압도할 정도였으며, 한낱 약관에 불과한 비룡대주의 심력 앞에 자신의 절기는 제힘을 쓰지 못했다.
심지어 바로 그 순간.
당평세는 가주를 비롯한 여타 식솔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당가의 문밖에 당도했음을 직감했고.
타아아앙.
마음이 동요한 순간.
심독이 ‘파훼되고’ 말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왕은 그 즉시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먼저 비룡대주를 묶어둔 독을 거둬들여야 할지, 아니면 그 즉시 문밖의 재앙을 맞이해야 할지 찰나의 망설임이 스쳤고.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조카 당청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또한 결국은 비룡대주에게 쏟아부은 힘마저 거둬들이지 못한 채, 재앙과 일 대 일로 싸워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크하압―!!”
당평세는 남은 힘을 쥐어 짜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았다’.
만일 상대가 자신을 ‘동등한 적’으로 인식하고 소모전을 펼치려 했다면, 십중팔구는 패배했을 터였다.
설령 비룡대주와 일전을 치르지 않은 최상의 상태였다고 한들, 독왕은 저 뱀의 비늘을 ‘바깥에서’ 뚫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허나.
상대는 자신을 먹이로 보았고.
대뜸 아가리를 벌린 채 다가왔다.
콰아아아아아앙!
천하제일의 독인을 상대로.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었다.
사아아아아아.
“허헛… 허허헛! 이거 어쩐지 고마운 마음이 다 드는구려! 그 마음을 담아… 내 기꺼이 가진 모든 힘을 먹여드리겠소!”
그리고.
혈마와 독왕 양쪽 모두, 이제 와 이 경합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
먼저 힘을 거두는 순간.
십중팔구는 죽음에 이른다.
파아아아아앙, 쩌적쩌적.
“그으으으… 그아아―!”
이내 영겁과 같은 일각이 흘렀다.
혈마는 사람의 음성이 아닌 듯한 비명을 내질렀고, 당평세의 안색 또한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콰드드드드득, 쩌저저적.
허나 결국.
먼저 한계를 드러낸 것은 혈마였다. 머리부터 꼬리에 이르기까지, 뱀의 온몸을 뒤덮은 비늘에 빗살과 같은 금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주륵.
“…크으, 크아아압―!”
당평세의 입가에도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노인의 머리칼을 동여맨 끈이 삭아 없어지며 백발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파아아앙, 파아아앙.
그리고 마침내.
갈라진 뱀의 거죽이 폭발했다. 비늘이 마구 으스러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아아아아아.
형편없는 몰골이 된 뱀이 마구 몸부림쳤다. 허나 이빨마저 삭아 없어지자 더는 당평세를 깨물지조차 못하게 되었다.
“하아압―!!”
사실상 승패가 갈라졌다.
허나 물론, 당평세로서는 거기에서 멈출 이유가 없었다. 이내 기세에서 밀린 혈마의 몸으로 독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스스스스.
당평세를 붙든 손에서 시작하여 팔을 지나 어깨로, 혈마의 우측 반신이 삽시간에 시커멓게 물들었다.
“크아아아, 크아아아아―!”
혈마가 다시 괴성을 내질렀다.
“…천하의 가장 뿌리 깊은 재앙 중 하나를 내 손으로 끝내게 되는군. 무인으로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소. 그럼 안녕히 가시오.”
파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아!”
그리고 다음 순간.
뱀이 형상이 폭발했다.
스륵.
그리고 마침내 온몸이 시커멓게 죽어버린 혈마의 손이 당평세의 팔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털썩.
그대로 쓰러졌다.
고요함이 일었다.
이내 독왕은 혈마에게서 생명의 징조가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마침내 숨이 끊어진 것이다.
“…후우.”
그리고 당평세는 호흡을 몰아쉬었다. 자신의 늙은 몸 또한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다.
허나 아직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내 살아남은 절대자의 시선이 장내를 훑었다. 슥, 스산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거… 늙은이가 재앙을 막아버렸군 그래. 혹여라도 이것과 다른 결과를 기대하며 우리 당가에 칼을 들이댄 거라면 퍽 아쉽게 되었소. 허헛!”
“…….”
“자, 그럼 지금부터 자세한 자초지종을 알아봐야 할 것인데… 기대해도 좋소. 우리가 어떤 무가인지는 그대들 또한 잘 알고 있겠지? 내 단언컨대 당가의 핏값은 결코 가볍지 않다오.”
“으… 으으.”
이내 당가를 배신한 무가들 사이에서 침음성이 흘렀다. 제아무리 혈기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힘에 눈을 떴다고 한들, 저항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허나 그때였다.
스스스슥.
“아, 아버님―!! 조심하십시오!”
인파 속에서 당명오가 외쳤다.
“……!”
물론, 당평세 역시 등 뒤에서 ‘기척’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고 그 즉시 다시금 뒤를 향했다.
스스스, 움찔, 움찔.
이미 죽은 혈마의 몸이.
돌연 경련하기 시작했다.
‘…사후경직?’
아니, 그러나 다르다.
한순간 당평세는 당황했다.
그것은 천하의 독왕인 자신이 죽은 이와 산 이를 분별해내지 못할 리 없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당황이었다.
스스스스.
허나 달랐다.
움직임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허나 분명한 것은, ‘죽은 자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후욱.
“핫… 과연 곱게 가지 않는군―!”
허나 어찌 되었건.
아직도 죽지 않은 것이라면… 다시금 죽이면 그만이다. 당평세의 소매가 단호하게 휘둘러졌다.
후두두두둑, 푸욱.
그와 동시에 무형지독을 머금은 암기 수십 자루가 일제히 쏘아졌다. 검게 물든 혈마의 온몸이 삽시간에 벌집이 되었다.
움찔움찔, 스스스스.
허나 그럼에도.
경련은 멈추지 않았다.
쩌저저저적!
다음 순간, 오히려 암기가 꽂혀 든 지점과 지점 사이로 선이 그어지듯 시커멓게 죽은 피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시뻘건 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
스스스스.
그것은 마치.
‘허물을 벗는 뱀’과 같았다.
* * *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소.”
당가의 일장로, 당진이 말했다.
독왕과 비룡대주 이벽이 소리 없는 접전을 이어가던 와중, 문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고.
이내 가주 당명오와 젊은 무인들이 잇달아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히 소란은 잦아들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스으으.
다음 순간, 섬뜩한 ‘피 냄새’가 당가의 안팎을 짓눌렀고, 거의 동시에 독왕이 비룡대주를 뒤로한 채 험악한 얼굴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앙.
지진과 같은 전투의 충격이 터져 나왔다. 이에 장로들을 비롯해 내부에 남은 무인들은 일제히 자리를 지켰다.
후우욱, 콰아아아아앙.
이내 상황을 이해했다.
당가에 ‘재앙’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쩌면… 천하의 독왕조차 그 재앙을 막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쳤다.
“‘움직인다’니… 일장로께서는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허나 그때 오장로 당세옥이 말을 받았다.
“설마… 우리더러 지금 본가를 비우고 달아나기라도 하잔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렇소.”
“…제정신이에요? 우리가 지금―”
“가주와 태상가주가 나섰음에도 힘에 부친다면… 우리가 가세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왜 모른단 말이오?”
“…….”
“또한… 우리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들 의미가 없는 건 마찬가지요. 그러니 우린 식솔과 아이들을 데리고 어서 달아나야만 하오. 설령 당가의 현재가 무너진다 해도, 미래를 위해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겁쟁이 같으니! 도망치려면 당신이나 혼자 도망치세요!”
“오장로! 말조심하시오!”
이내 장로들 사이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허나 분분한 의견 속에서 결론은 쉬이 내려지지 않았다.
재앙은 갑작스러웠고.
이성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꾸욱.
소란 속에서 당려옥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당가는… 어쩌면 의혈맹에서 ‘버림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이내 당려옥이 시선을 돌렸다. 독왕의 독에 봉인된 채 정좌하고 앉은 비룡대주 이벽을 바라보았다.
“……?”
한순간, 당려옥의 눈이 흔들렸다. 문득 이벽에게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뚝, 뚝.
이벽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소협… 왜 울어요?”
당려옥이 물었다.
물론, 대답이 돌아올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이내 그녀가 이벽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일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쳤으나, 동시에 어째서인지 괜찮으리란 확신이 스쳤다.
스으으.
그리고 지척까지 다가선 순간.
“…어머.”
당려옥의 눈이 다시금 흔들렸다. 이벽의 주변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꽃향기가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은은한 수준이었으나.
동시에 일대에 내려앉은 피 냄새를 지워버리는 듯했으며, 또한 거짓말처럼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저벅.
당려옥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돌연 당가의 무인으로서, 향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번뜩.
허나 바로 그 순간, 이벽의 두 눈이 떠졌다. 슥, 고개가 꺾어지며 당려옥을 향했다.
“그냥… 옛날 꿈을 좀 꾸었소.”
“…힉!”
움찔.
당려옥이 뒷걸음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