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09)
317화. 용과 범 (3)
훅, 벌떡.
예상치 못한 강시의 습격에 일순 균형을 잃고 말았던 당가주 당명오는 이름 모를 젊은 여인의 도움에 의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허나.
“…누, 누구시오?”
목이 반쯤 잘려 나간 강시를 밀쳐낸 뒤, 당명오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직감적으로, 상대가 ‘당가의 진영’에 속한 무인이 아님을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상대는 고작해야 자신의 딸뻘에 불과한 어린 여인이었다. 허나 조금 전 강시의 목을 베어낸 비수에는… 강기가 서려 있었다.
“설명하자면 조금 긴데요. 적은 아니에요~ 뭐, 가주님의 따님과는… 제법 악연이 좀 있지만요.”
“…그게 무슨.”
“저희 ‘오라버니’를 도우러 왔어요.”
여인이 작게 웃었다.
눈 밑의 점 하나가 흔들렸다.
콰아아아앙!
그때, 사방에서 접전의 충격이 전해져왔다. 그제야 정신을 수습한 당명오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
그리고.
예의 난전 속에, 조금 전까지는 이 자리에 없었던 정체불명의 낯선 이들이 끼어들었음을 확인했다.
눈앞의 여인과 마찬가지로.
흑의무복을 입은 무리들이었다.
챙, 채애앵, 콰아아앙!
허나 다행히도.
흑의인들은 이성을 잃은 적들에 의해 연신 수세에 몰리고 있던 아군 무인들을 돕고 있었다.
최소한 ‘적은 아닌’ 모양이었다.
훅, 후욱, 채애앵.
마침내 당명오는 깨달았다.
그림자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수와 암기를 다루는 솜씨는 결코 범상치 않았다.
물론, 천하무림에 이 정도의 고수들을 갖췄으면서 당가와 유사한 정체성을 지닌 세력은 흔치 않다.
‘…강서 암영각!’
그것은 사패련의 일원으로서, 당금의 사파무림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대세력의 이름이었다.
또한 여인은 조금 전, ‘오라버니’를 도우러 왔노라 말했다.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를 당명오는 비로소 이해했다.
당명오는 다시 여인을 향했다.
“…소저, 물러서시오!”
끼기기기긱.
허나 그 순간, 다급히 외쳤다.
여인의 등 뒤 저편에서 두 구의 강시가 허공을 가르며 달려들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스륵.
동시에 당명오는 비수를 고쳐 쥐었다. 남은 내력을 긁어모아 그 즉시 강시들을 요격하려 했다.
허나 곧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서걱, 서거걱.
다음 순간.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날아오른 강시들이 채 땅에 내려앉기도 전 그 온몸에 그물과 같은 실선들이 빼곡히 그어졌다.
파아앗, 후두두둑.
그리고.
이내 실선을 따라 수도 없는 고깃 조각으로 파훼된 강시의 육신들이 비처럼 땅에 떨어졌다.
탓.
그리고 그 뒤로 검을 쥔 젊은 사내가 착지했다. 훅, 좌수에 쥐어진 검을 털어내며 피를 흩뿌렸다.
또한 명백한 강기가 서려 있었다.
“케헤헤! 쥐방울, 정신 안 차릴래?! 예나 지금이나 나 없으면 대체 어떡하려고 그러냐? 아앙?”
“뭐래? 파 소협, 깝치지 마요.”
피식,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해남검파.”
다시 당명오가 말했다.
암영각이 나섰다면, 물론 사패련에 속한 다른 세력이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휙.
“…뭐라?!”
그러자 그때였다.
“거기 아저씨, 지금 뭐라 했어?!”
해남검파의 사내가 고개를 꺾으며 날카로운 눈으로 당명오를 돌아보았다.
저벅저벅, 다가오기 시작했다.
탕, 타앙.
“커흠, 커흐흠! 케헤헤! 거 아저씨… 우리 해남의 검을 단박에 알아보다니 정파무인치고는 제법 눈썰미가 있으시군 그래!”
그리고 다짜고짜 다가온 사내가 대뜸 당명오의 등을 두드렸다. 심지어는 그 어깨에 손을 둘렀다.
“…그야 물론이지. 천하 무림에 그 정도 수준의 좌수검을 쓰는 세력이 달리 어디 있겠소?”
“케헤헤헤! 역시 그렇지? 응?! 생긴 것도 점잖은 게, 맘에 드는 아저씨로구만! 근데… 아저씨는 어디의 누구야?”
“아, 인사드리세요, 소협. 당가의 가주이신 십절군자 당명오 대협이세요~”
“…케헤.”
스륵, 손이 빠져나갔다.
“케헤헤… 그, 그렇구만. 이거 조금 실수했네. 나 독침 놓을 거 아니지? 그래도 도와주러 왔는데 말야.”
“…….”
콰아아아아아앙.
다음 순간, 전황은 다시 일변했다. 암영각에 이어 해남검파의 검객들이 전장에 가세했고 적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당가가 오늘 큰 신세를 지는군. 어쨌거나 자세한 이야기는 우선 이 싸움을 마무리 지은 후에 마저 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소?”
“케헤헤! 좋은 생각이야!”
“네, 그렇게 해요, 대협~”
타앗, 타앗.
그리고.
세 인영이 각자 날아올랐다.
채앵, 콰아아앙.
“커어억―!!”
카아아아앙.
한편, 암영각과 해남검파가 가세했음에도 당가 측 무인들은 좀처럼 승기를 가져오진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달려들던 적들이 심지어는 ‘죽은 이후에도’ 되살아나 참전을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시의 육신은 절정에 이르지 못한 무인들의 공격으로는 파괴하기 어려울 만큼 단단해진다.
하물며 죽은 이들에게는 독은 통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는 당가의 무인에게 있어 가장 난적이었다.
훅, 푸욱.
끼기기기긱.
잠시나마 한숨을 돌린 당명오의 암기가 다시금 춤을 추며 강시들의 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털썩, 털썩.
두어 구의 강시가 쓰러졌다.
허나 이미 적의 두개골 안으로 파고든 암기를 이기어술로써 도로 회수하는 것은 적잖은 내력을 필요로 했다.
서걱, 서걱.
“케헤헤! 얼마만의 손맛이냐!”
“파 소협, 적당히 주변 좀 봐 가면서 날뛰어요! 정신… 사납다구요!”
그러나.
예의 후기지수들은 어느새 적진 한복판에 뛰어든 채 산 적과 죽은 적을 가리지 않고서 마구잡이로 베어 넘기고 있었다.
다시 당명오의 시선이 흔들렸다.
서걱, 서걱.
“…커어억―!!”
해남검파의 파도와 같은 공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암영각의 그림자가 그 빈틈을 메꾸었다.
허나 마냥 한 쪽이 다른 한쪽에 의존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카아아앙.
“…에이씨, 짜증 나게.”
“케헤헤! 수련 부족이다, 쥐방울!”
서걱.
그림자가 적의 강기에 발목을 붙잡힐 때는 파도가 뒤를 돌아보며 다시금 적진을 휩쓸고 지나갔다.
서로가 서로의 무공을 알고.
적합한 때에 서로를 보완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루 이틀의 수련으로 나올 수 있을 만한 수준의 합격이 아니었다.
또한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건 이미 후기지수라 불릴 만한 수준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타다다닷.
그리고 마침내.
적들이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혈기에 눈이 먼 상태에서도 힘의 균형이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버렸음을 직감한 것이다.
허나 물론, 그것은 살아있는 적들의 이야기였을 뿐 강시들에게 ‘물러선다’는 개념은 없었다. 허나.
끼기기긱.
콰아아아아아앙!
“으아아―!! 죽어, 죽어어―!!”
최전선에서 범상치 않은 기세의 고수 한 명이 미친 듯이 날뛰며 강시들을 마구 요격하고 있었다.
타다닥, 콰아아아아앙!
몇 자루의 비수가 강시의 눈과 코, 귀에 꽂혀 들었고, 그대로 폭발하며 머리를 통째로 으깨놓았다.
“케헤헤! 쥐방울, 너네 삼촌 왜 저렇게 흥분했냐? 앞뒤 안 가리고 절기를 막 쏟아내는데?”
“저 인간… 예전에 암영각에서 우리 뒤통수를 친 데다가 한때 흑천방 편에 서려고 했었잖아요? 본인이 살려면 어떻게든 오라버니한테 예쁘게 보여야죠~”
“케헤헤, 하기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허나 그때였다.
여타의 충돌음을 전부 잡음으로 짓뭉개버리는 거대한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었다.
“…하기는 진짜 미친 거 같네요. 저런 싸움을 보고… 사람이 어떻게 겁을 안 먹어요?”
이내 싸움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가운데, 땅으로 내려선 공손수와 파진성의 시선이 충격의 진원지로 향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곳에서는 말 그대로 경천동지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적의 수괴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있는 장본인들은.
다름 아닌 ‘두 명의 비룡대주’였다.
“…케헤헤.”
낙검신룡 이벽. 그리고.
소패왕(小覇王) 혁대웅.
패왕 혁군악에 의해 각각 초대 비룡대주와 이대 비룡대주의 자격을 받은 두 사람은, 여전히 약관을 갓 벗어난 후기지수에 불과했다.
허나 현재 그러한 두 사람의 합공에 짓이겨지고 있는 것은… ‘혈마’라고 일컬어지는 천하무림의 거악이었다.
“…쥐방울, 무슨 생각 드냐?”
“뭐랄까… 오 년 전에 암영각이 결국 오라버니가 아니라 흑천방의 편을 들었었다면… 저 공격이 지금쯤 우리 암영각을 신나게 때려 부수고 있었겠죠?”
“…케헤헤! 그건 그렇네.”
부르르, 공손수가 작은 몸을 떨었다. 이내 암영각주이자 자신의 외조모이기도 한 무영객 천막심의 말을 떠올렸다.
일찍이 저 두 사람을 가리켜.
용 새끼와 범 새끼라 하였다.
때문에 암영각은 오 년 전, 세력의 기반을 잃고 다 무너져가던 패왕가에게 끝끝내 등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은 아주 정확했다.
과거, 초대 비룡대주 이벽은 어딘가로 종적을 감춘 패왕가의 적자를 대신하여 패왕 혁군악의 뒤를 잇는 역할을 자처했다.
이후 약관조차 되지 못한 어린 몸으로 절정을 넘어서는 성취를 이뤄 ‘천하제일 후기지수’의 칭호를 얻게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흑천방에 점거된 사패련에 혈혈단신으로 맞서 흑천방주 맹철극을 쓰러뜨리고 끝끝내 사파무림을 구해내기에 이르렀다.
그 업적에 대해서는.
더는 말할 것조차 없었다.
그리고 지난해, 돌연 사패련에 나타난 패왕의 적자 혁대웅은 다시 그러한 이벽의 역할을 이어받겠노라 선언했다.
패왕과 함께 폐관에 들어갔고.
반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암영각의 등반에 도전하여, 한 자루의 창으로 모든 마을의 촌장과 더불어 무영객 천막심마저 쓰러뜨리는 기염을 토해내었다.
그렇게, 다음 대 사파무림의 지존이자 세 번째 패왕으로서의 자격을 완벽하게 입증해냈다.
그렇게, 용과 범은.
더는 ‘새끼’가 아니게 되었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도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한편, 자신들을 키운 스승의 원수를 함께 물어뜯고 있었다.
―알겠냐, 수야? 어느 쪽이라도 괜찮으니… 둘 중 하나는 어떻게든 꼬셔 보거라, 흘흘!
“네 할머니, 노력은 하는데요. 둘 다 철벽이 너무 단단해서… 아마 안 될 것 같아요.”
피식, 공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뻐억.
돌연 옆에 선 파진성을 걷어찼다.
“케윽, 뭐야, 왜 갑자기 시비야?”
“아무튼 파 소협은 나한테 평생 감사하세요. 맹우강한테 개털리고 길바닥에서 나뒹굴던 거… 비룡대로 받아준 건 나잖아요?”
“…케헤.”
과거, 파진성은 비룡대 선발 친선비무에서 처참한 패배를 겪은 뒤, 방황하던 중 비룡대의 일원이 되었고 해남검파에서 ‘버린 자식’이 되고 말았다.
허나 그 결과.
지금의 입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비룡대주 이벽이 흑천방주 맹철극을 쓰러뜨렸고, 그 이면에 숨어있던 혈마와 녹림의 음모가 전면에 드러난 순간.
파진성은 말 그대로 해남검파의 별이 되었다.
이벽을 도와 함께 싸워왔던 그의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자칫 해남검파 또한 사파무림의 ‘공적’으로 몰렸을지도 모른다.
“뭐, 여전히 결정적인 도움은 안 되지만… 그래도 밥값은 했으니 오늘은 술이 꽤 맛있겠구만. 케헤헤!”
슥, 파진성이 코를 쓸었다.
* * *
스으으으으.
흙먼지가 시야를 어지럽혔다.
이벽의 만월무변곡검에 의해 혈마가 발목을 붙잡힌 찰나, 혁대웅은 일대 전체를 향해 쉴 틈 없이 맹공을 내리찍었고.
그 결과, 불과 조금 전까지 공터에 불과했던 당가의 앞마당에는 마치 지옥의 입구와 같이 시커먼 ‘구덩이’가 생기고 말았다.
“후우… 후!”
허공 저만치에서 혁대웅이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이벽은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끼이익.
혁대웅의 등 뒤에서 회전을 지속하던 물레바퀴의 움직임이 마침내 잦아들기 시작했다.
응축된 힘이 바닥난 것이다.
물론, 그 한 번의 힘을 쏟아낸 것만으로 주변의 지형은 통째로 달라져 버렸고, 혈마의 기운 또한 끊어졌다.
“…대단하군.”
이벽은 조용히 감탄했다.
허나 주변을 포위한 만월무변곡검의 원을 풀지는 않았다. 혈마의 죽음을 분명히 확인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허억, 후우… 허억! 뭐가 이렇게 딴딴해? 벽이 네 말마따나 혼자서 했었으면 아마 못 이겼겠지 싶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스스스.
그리고 숨을 고르는 한편, 혁대웅의 신형이 서서히 아래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말마따나 이벽에게는 놈의 숨통을 끊어놓을 결정적인 힘이 모자랐고, 혁대웅에게는 혈마의 뒤를 추격할 능력이 모자랐다.
고로 사형제는 힘을 합쳤다.
그렇게, 스승의 원수를 갚았―,
우우우웅.
허나 그때였다.
구멍의 저 아래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었다. 그리고 끊어진 듯했던 혈기가 다시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하네.”
이벽과 혁대웅의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뜻이 전달되었다. 물론, 서로의 무공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덕분이기도 했다.
“괜찮겠어, 벽아?”
“그야 물론이다. 혁대웅 너야말로 그렇게나 힘을 쏟아붓고도 더 버틸 수 있겠나?”
“핫, 이 정도야 뭐… 후우! 밭 좀 갈았다고 엄살을 부리면… 사저한테 큰 호통을 듣지 않겠어?”
“…핫.”
두 사람은 마주 웃었다.
어쨌거나 지금과 같은 맹공을 퍼부었음에도 죽지 않았다면… 그 이상 시도해볼 만한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콰아아아아아앙!
사아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구덩이의 깊은 어둠 속에서 혈마가 솟구쳤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혁대웅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허나 더는.
도마뱀의 형상이 아니었다.
너덜너덜하게 짓이겨진 혈마의 몸은 다시금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조금 전 당평세를 노렸을 때처럼 오직 머리뿐이었다.
사아아아아아.
허나 ‘무언가’를 씹어 삼키기 위함이라면, 머리만으로도 목적을 이루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쩌억.
아가리가 벌어졌다.
다시, 어금니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