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10)
318화. 용과 범 (4)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이벽의 만월무변곡검이 혈마의 발을 묶어두었고, 그 머리 위로 혁대웅의 창끝이 무자비하게 내리꽂혔다.
사형제의 합공에 의해.
혈마는 무참하게 짓이겨졌다.
“헉… 허억!”
그리고 혁대웅의 물레바퀴에 축적된 힘이 다했을 즈음, 혈마가 서 있던 대지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우우우웅.
허나.
마침내 두 사람이 혈마를 쓰러뜨렸다고 판단한 순간, 구멍의 저 아래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었다.
그리고 끊어진 듯했던 혈기가 다시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형을 통째로 바꿔놓는 맹공 속에서도… 혈마는 끝끝내 뱀과 같은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이다.
찰나의 순간.
사형제는 시선을 교환했고, ‘다음번의 공격’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하나로 모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사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구덩이의 깊은 어둠 속에서 혈마가 솟구쳤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혁대웅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허나 더는.
도마뱀의 형상이 아니었다.
너덜너덜하게 짓이겨진 혈마는 다시금 거대한 뱀의 형상을 두르고 있었으나.
조금 전 당평세를 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꼬리와 몸통이 잘려 나간 채, 오직 머리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쩌억.
아가리가 벌어졌다.
다시, 어금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통의 대부분을 잃었으나 그렇기에 오히려 독기로 가득 찬 뱀의 흉악한 이빨이 그대로 혁대웅을 집어삼킬 듯했다.
훅, 덥석.
허나 혁대웅의 눈빛은 침착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제자리에 그대로 멈춰선 채 두 손으로 창대를 붙들었다.
훙훙훙.
“전륜패왕창, 집륜.”
그리고 전면으로 뻗은 창대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혁대웅의 등 뒤에 머무르고 있던 물레바퀴가 미끄러지듯 전면으로 흘러나오며 창대 위로 겹쳐졌다.
훙훙훙훙훙.
회전하는 창대 위로.
하나의 벽을 형성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위로 뱀의 머리가 부딪쳤다.
“…크으윽!”
거센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혁대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순 창대의 회전이 주춤했다. 허나 혁대웅의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고, 회전 또한 멈추지 않았다.
카가가가가가가강!
이후, 날카로운 굉음 속에서 회전하는 철창과 그 철창을 통째로 씹어 삼키려 하는 혈마의 어금니 사이로 경합이 벌어졌다.
물론 그 뱀의 아가리는 조금 전, 독왕 당평세의 만천화우조차 어거지로 씹어 삼켜버린 힘이었다.
카가가가가가가강!
허나 혁대웅은 밀려나지 않았다.
패왕가의 비전, 전륜패왕창의 핵심 묘리는 회전을 통해 심신을 초월하는 패왕의 힘을 축적하는 것에 있다.
훙훙훙, 카가가가가강!
심지어 그 회전의 동작마저도.
결코 ‘빈틈’이라 할 수 없었다.
회전하는 철창은 곧 철벽이 되며, 그 자체로 천하의 어떤 가르침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견고한 수비 초식이 되기 때문이었다.
공수의 완벽한 조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사파를 천대하는 정파무림조차 패왕을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으로 놓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카드드드드드득.
“크으윽!”
허나.
혁대웅의 안색이 흑빛이 되었다.
서서히 한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경합이 길어지며 회전으로 끌어모으는 힘보다 수비에 소모되는 힘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었다.
쩌적, 쩌저적.
이내 창대 위로 겹쳐진 물레바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뱀의 턱이 조금씩 다물어졌다.
“…하핫!”
허나 혁대웅은 웃었다. 물론,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후욱.
이내 저 아래를 바라보았다.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로 검을 쥔 사제에게서 느껴지는 묘리의 깊이는 선뜻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허나 분명한 것은.
당황스러울 만큼… 스승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좀 더 일찍이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 부럽네.’
찰나의 순간 눈이 마주쳤다.
혁대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앙, 그와 동시에 이벽이 땅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쐐애애액.
이벽의 몸이 솟구쳤다.
한 장의 나뭇잎이 겹쳐졌다.
조금 전 혁대웅이 맹공을 퍼붓는 동안, 이벽은 상대적으로 힘을 아낄 수 있었고, 그 덕에 조금이나마 심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또한 머리 위를 가로막은 적을 노리는 것은 창공비검의 절초를 온전히 쏟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구도이기도 했다.
훅.
“카아아아아아―!!”
그제서야 혈마가 아래를 보았다. 솟구치는 이벽의 존재를 눈치챈 동시에 혁대웅과의 경합에서 벗어나려 했다.
카가가가가가강!
“핫, 어딜 가시려고―?!”
허나 그 순간, 혁대웅의 창이 회전의 방향을 역으로 바꾸었다. 튕겨 나가던 혈마의 몸이 오히려 창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움찔.
혈마의 발이 묶였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마침내 이벽의 검이 다다랐다.
* *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사아아아아아아.
창공비검이 충돌한 순간.
혈마의 뱀이 괴성을 내질렀다.
허나 물론, 그 뱀의 형상은 고작해야 머리만이 남아있을 뿐, 목 아래로는 텅 빈 구멍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걱, 서거걱.
그리고.
이벽의 창공비검이 그 구멍 안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여섯 개의 묘리가 뱀의 머리를 안쪽에서 갉아내기 시작했다.
카가가가가가가강!
“하아아아아압―!!”
혁대웅 또한 사력을 다했다.
창대에 서린 물레바퀴의 형체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마지막 힘을 짜내며 혈마의 몸을 짓이겼다.
카아아아아아악!
카드드득, 찌직, 까가가각!
안과 밖, 그리고 위와 아래.
두 사형제의 공격 사이에 끼인 혈마가 비명을 내질렀다.
뱀의 비늘이 으깨어지고, 그 안의 혈마의 육신 또한 뒤틀리고, 뼈와 장기가 진흙처럼 으깨어졌다.
퍼어어어어억.
뱀의 머리가 폭발했다.
말 그대로 ‘짓이겨졌다’.
서걱.
그리고 다음 순간, 이벽의 검에 육신을 베어 넘기는 명확한 감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콰아아아아앙.
이내 이벽의 검과 혁대웅의 창대가 충돌했다. 말인즉슨, 사이에 끼어있던 혈마의 육신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후우욱.
그리고.
상체와 하체, 두 조각으로 나뉘어진 혈마의 육신이 양쪽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허나.
“…뭔가 이상하군.”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형제의 시선이 교차했다.
만일 정말로 혈마의 힘이 다한 거라면, 그 육신은 두 사람의 초식에 짓이겨진 채 천참만륙이 되었어야 한다.
허나 혈마는.
‘단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물론,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시점에서 이미 즉사에 이르고도 남았을 터였다. 허나.
혈마는 당평세의 맹독을 버텼고, 혁대웅의 맹공에 짓이겨지면서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으며.
일찍이 낙검문주 이진천이 펼친 최후의 일검에 형체를 잃고도 땅을 기어 달아난 인외의 존재였다.
훅.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아래를 향했다. 그리고 잘려 나간 채 추락하는 혈마의 상반신을 쫓았다.
“……!”
쐐애애액.
허나.
혈마의 상반신은 단순히 ‘추락하고’ 있지 않았으며, 명백히 방향성을 지닌 채 아래로 쏘아지고 있었다.
또한 그 방향은.
당가를 비롯한 여러 세가의 무인들이 뒤엉켜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 복판을 향하고 있었다.
“…큭!”
탕, 쐐애애액.
이벽은 나뭇잎을 밟았다.
위기의 순간, 허물을 벗는 것으로도 달아날 수 없게 되자 혈마는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하체’를 버린 것이다.
스스스스.
허나 그 즈음, 흉측하게 짓이겨진 뱀의 머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혈마의 주변을 감쌌다.
뿐만이 아니었다.
타앙, 탕!
“크, 으아아아! 명왕… 재림……!”
“오오, 거룩한 명왕이시어―!”
다음 순간, 넘실거리는 혈기를 두른 적 무인들 십수 명이 추락하는 혈마를 향해 스스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사아아아아.
뱀의 아가리가 열렸다.
콰드득, 빠득, 콰드드득.
무인들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콰드득, 빠드드득!
“……!”
움찔.
섬뜩함이 이벽의 등줄기를 스쳤다. 급기야 혈마는 제 부하를 뜯어먹으며 힘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쐐애애애액.
허나 물론,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찰나의 순간, 뱀의 머리가 무서운 기세로 다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심지어는 잘려 나간 허리 아래로.
하체가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적파직검(赤派直劍).
쩌저저적.
다음 순간, 이벽은 적파직검을 일으켰다. 나뭇잎들이 겹쳐지며 몇 자루의 붉게 물든 칼을 형성했고 일제히 쏘아졌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뱀의 비늘을 두드렸다.
물론, 그 영역을 뚫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잡아먹히고 있는 쪽’을 벰으로써 힘의 흡수를 멈추려는 계산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허나 ‘먹잇감’을 지키듯 혈마의 비늘이 적파직검을 막아섰다. 물론, 그로 인한 충격이 없지는 않은 듯 혈마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
콰드득, 콰득!
허나 다음 순간.
적파직검이 으깨어지며 무수한 파편이 되었고, 뱀의 아가리는 그 파편들마저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큭!”
그 순간.
이벽은 ‘실수’를 직감했다.
적파직검은 적파심공에서 비롯된 기예이며, 그렇기에 ‘일말의 혈기’를 품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혈기가 얽혀든 기예는.
혈마를 상대로 제힘을 쓸 수 없다. 그것은 이벽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적파직검의 맹점이었다.
후욱, 쐐애애애액.
다음 순간, 무언가가 이벽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혁대웅의 철창이 회전을 품은 채 쏘아진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혈마의 비늘 위를 두드렸다.
쿠구구구구구.
이내 지진과 같은 충격이 번지며 주변의 무인들이 균형을 잃었다. 허나 그 주변의 무인들로 인해 혁대웅 또한 전력을 쏟지 못했다.
고로 혈마에게 있어서는.
‘버틸만한 공격’이 되고 말았다.
탱그랑.
끝끝내 비늘을 뚫지 못한 창이 땅을 굴렀다.
파스스스스.
그리고 다음 순간.
뱀의 아가리에 스스로를 던진 무인들의 육신이 먼지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 이진천과 혈마가 싸움을 벌이던 산속의 공터를 뒤덮고 있던 것과 같은 ‘붉은 모래’였다.
힘을 빼앗긴 희생양들은.
형체를 잃고 모래가 된다.
“크크… 카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어느덧 ‘두 발로 선’ 혈마가 괴소를 내질렀다. 잘려 나간 다리가 거짓말처럼 다시 자라난 것이다.
이벽과 혁대웅은 침음했다.
두 사람은 적잖이 지쳤으나.
혈마는 힘을 회복하고 말았다.
아니, 그러나 곧 생각을 달리했다. 고작해야 부하 몇몇을 흡수한 정도로는 지니고 있던 모든 힘을 온전히 이끌어낼 수는 없을 터였다.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화영변검을 다시―
“……!”
스윽.
허나 그 순간.
이벽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혈마의 등 뒤로 먼지가 되지 않은 인영 하나가 기척을 숨긴 채 서 있었다.
“하압―!”
길게 생각할 여유는 없다.
이벽은 그 즉시 기합을 내지르며 재차 몸을 날렸다. 혈마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붙들어두기 위함이었다.
“크크… 크큭!”
훅.
혈마의 뱀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달려드는 이벽을 향해 아가리를 뻗으려던 찰나였다. 흠칫, 혈마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래, 천하의 대마두께선 ‘업보’란 게 대관절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알고는 계시오?”
혈마의 등 뒤에 선 것은.
창백한 안색의 독왕 당평세였다. 또한 그 오른손 위로는 반투명한 형상의 암기 한 자루가 맺혀있었다.
물론 그것은.
조금 전, 이벽의 상단전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뒤흔들고 악몽에 빠지게 했던 바로 그 ‘심독’이었다.
이벽과 혁대웅이 일전을 펼치는 사이, 잠깐이나마 심신을 다스린 당평세가 다시금 필생의 절기를 꺼내 든 것이다.
타아앙.
“크, 카아아―”
그 즉시 혈마가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허나 그때 이미 독왕의 손은 기척도 없이 뻗어지고 있었다.
투욱.
혈마의 태양혈을 두드렸다.
암기가 물처럼 스며들었다.
“허헛! 아마도 잘 모르실 테지? 그러니… 이참에 이 늙은이의 마지막 한 수를 겪어보시길 바라오. 어차피 그대는 줄곧 내 힘을 탐내지 않았소?”
“크… 크으… 으으으―!”
비틀.
혈마의 몸이 흔들렸다.
“크… 으으아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땅에 쓰러졌다.
머리를 움켜쥔 채 발작에 가까운 난동을 부리며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