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11)
319화. 비룡대 재회 (1)
“그래, 천하의 대마두께선 ‘업보’란 게 대관절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알고는 계시오?”
독왕 당평세가 말했다. 그리고.
타아앙.
“크, 카아아―”
바로 등 뒤에서 그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 순간, 혈마는 그 즉시 자리를 박차려 했다.
허나 독왕의 손은.
혈마의 발보다 빨랐다.
투욱.
이내 당평세의 손끝이 혈마의 태양혈을 두드렸고, 그 위에 맺혀있던 반투명한 암기가 혈마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허헛! 아마도 잘 모르실 테지? 그러니… 이참에 이 늙은이의 마지막 한 수를 겪어보시길 바라오. 어차피 그대는 줄곧 내 힘을 탐내지 않았소?”
“크… 크으… 으으으―!”
물론 그것은.
당평세의 절기, ‘심독’이었다.
비틀.
혈마의 몸이 흔들렸다.
“크… 으으아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땅에 쓰러졌다. 머리를 움켜쥔 채 발작에 가까운 난동을 부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급기야 제 머리를 마구 땅에 처박았다. 뱀의 형상을 한 등천의 영역마저 위태롭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또한 이벽은 직감했다.
불과 조금 전 같은 기예를 겪어본 입장에서, 혈마가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어찌 되었건.
‘지켜보고 있을’ 이유가 없다.
훅, 콰아아아아앙―!
이벽은 그 즉시 검을 뻗었다.
“헉… 크으… 크으으―!!”
허나 그 와중에도 혈마는 팔을 뻗어 일검을 막았다. 비늘은 쉬이 베어지지 않았다.
고로 이벽은.
창공비검의 절초를 펼치려 했다.
“크… 으아아아아―!”
부르르르.
허나 그때였다.
우드득, 우득.
괴성과 함께 혈마의 온몸이 뒤틀렸다. 그것은 마치 거죽 안쪽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몸’이 난동을 부리듯 기괴한 모양새였다.
후욱.
그리고 다음 순간.
불거진 실핏줄로 인해 줄곧 뱀처럼 일그러져 있던 혈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사람의 얼굴’이 얼핏 드러났다.
흠칫.
“……!”
눈이 마주친 순간.
이벽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찰나의 황망함이 스쳤고, 애써 끌어올린 창공비검을 펼칠 절호의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타앙.
“…으으, 그으으―!”
그리고 혈마가 네 발로 땅을 박찼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몸이 벼룩처럼 튀어올랐다.
훅,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흐아아아아압―!!”
다음 순간, 거친 기합과 함께 혈마의 옆구리에 태산과 같은 충격이 꽂혀 들었다.
혁대웅의 창끝이었다. 허나.
“…크으―!”
그 즉시 혁대웅은 직감했다.
손에 전해지는 감각은 지나치게 가벼웠다. 창끝에 꿰인 것은 또다시… 허물과 같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타아앙, 쐐애애액.
다시 허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 시뻘건 고깃덩어리가 충격을 발판 삼아 멀어지기 시작했다.
타아앙.
허공에서 한 번 몸을 틀었다.
추진력을 얻은 뒤, 섬전과 같은 속도로 일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 저만치의 작은 점이 되고 말았다.
“…….”
이벽은 그 점을 바라보았다.
제 부하의 목숨을 흡수하여 약간의 힘을 회복했으나, 당평세의 심독에 상단전을 잠식당한 혈마는 결국 도주를 택했다.
그리고.
‘뒤쫓기에는 늦었음’을 직감했다.
그와 같이 너덜너덜한 모양새가 되어서도 경신법을 펼치는 혈마의 쾌속함은 바람과 같았으며.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벽이 지닌 쾌보와 다르지 않았다. 고로 사력을 다해 달아나는 놈을 앞지르기에는… 늦고 말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제기랄! 이렇게 놓친다고?!”
혁대웅의 창대가 땅을 두드렸다.
“…….”
그리고 이벽은.
한동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바로 조금 전, 자신에게는 혈마의 목을 노릴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허나… 한순간 마음이 흔들렸고 창공비검을 펼치지 못했다.
‘대체 왜?’
그리고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핏기가 가신 혈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섬뜩함’이 검을 옭아매었다.
“…쿨럭!”
허나 그때였다.
무거운 기침과 함께 당평세의 신형이 무너져내렸다. 주저앉은 노인이 피를 쏟기 시작했다.
타앙.
“…노야!”
“후우… 후, 허헛!”
이벽이 그 즉시 다가섰다.
자리에 앉아 독왕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당평세는 숨을 몰아쉬는 한편, 힘겨운 웃음을 흘렸다.
“이거… 면목 없게 되었구려. 약속대로 ‘대화’를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게 남은 시간이… 커억―!”
“…그만, 그만 말씀하시오.”
덥석.
이벽은 무너지려는 당평세의 신형을 붙들었다. 독왕은… 심력을 과하게 소모하고 말았다.
이미 탈진에 이른 상태에서.
또다시 필생의 절기를 짜내었다.
그리고 그 덕에, 이벽과 혁대웅은 승산을 점치기 어렵게 된 혈마와의 혈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허나 그로 인해.
마침내 당평세 본인은 한계를 넘고 말았다. 이벽은 노인의 실낱같은 호흡에서 위험을 직감했다.
“소협, 내 식솔들을 부탁드려도 되겠소? 나는… 나는 정말로 어쩔 수가 없었소.”
“…노야, 되었소.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은 어서 내기를 다스려야―”
이벽은 당평세를 부축했다.
즉시 당가로 옮기려 했다. 허나.
덥석.
“아니, 시간은 지금뿐이오.”
그 순간, 당평세의 메마른 손이 이벽의 어깨를 강하게 붙들었다. 흠칫, 노인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벽의 움직임이 굳었다.
“하찮은 변명이지만… 권왕의 안뜰에 들어서는 것 외에… 내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소.”
스윽.
문득 당평세의 얼굴이 이벽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노인은 오로지 이벽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속삭였다.
“……!”
이벽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훗, 이내 당평세의 입가에 복잡한 주름이 그어졌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함부로 믿지는 마시오. 다만… 부디 지금처럼… 짊어진 목숨들을…….”
투욱.
허나 당평세의 말은 채 끝맺어지지 못했다. 이내 의식을 잃은 노인의 고개가 이벽의 어깨를 두드렸다.
* * *
전투는 마침내 일단락되었다.
혈기를 드러내며 당가를 배신한 무가의 적들은 대부분 죽거나 구금되었고, 강시들 또한 빠르게 처리되었다.
이내 당가주 당명오는 당가 및 살아남은 무인들을 이끌고서 전투 현장의 뒷수습을 시작했다.
독왕 당평세는.
이벽에게 몇 마디를 남긴 직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이벽은 그 즉시 당가의 담을 뛰어넘은 뒤, 약당 안에 당평세의 몸을 누였다.
이후 이벽은 객당으로 안내되었다. 마루에 앉아 생각에 잠겼고, 서서히 해가 저물었다.
―우리는, 당금의 강호무림은… 실은 마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오.
독왕 당평세는.
의식을 잃기 직전, 이벽의 귓가에 그와 같은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벽은 내내 혼란에 잠겨 들었다.
오십여 년 전, 정사무림연합은.
마교의 침공에 맞섰고, 각 세력을 대표하는 절대자들의 목숨을 건 접전 끝에 마교주 천마를 쓰러뜨렸으며, 살아남은 마교도들 또한 자멸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이후, 정사무림 간의 협상을 통해 무림맹과 사패련을 중심으로 한 각자의 질서가 무림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다만 그 이후의 사패련은 나름 대로의 내홍을 겪었고, 무림맹 또한 세 조각으로 나뉘는 첨예한 갈등을 겪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채 절멸되지 않은 혈교, 혹은 마교도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이벽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허나.
애당초 과거의 무림이 ‘마교에게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지금껏 이벽이 알아 왔던 것과는 황당할 정도로 궤를 달리하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었음에도, 이벽은 도무지 당평세가 남긴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허나 물론, 되물을 수는 없다.
당평세는 의식을 잃었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어떨지조차 알 수 없는 엄중한 상태가 되었다.
심신의 혹사로 말미암아.
상단전을 포함한 노인의 모든 내력은 말라붙었고, 마침내 의식을 붙들 최소한의 기력조차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천하의 어떤 명의라 한들 그와 같은 ‘절대자의 탈진’을 쉬이 고칠 수는 없을 터였다.
설령 어떻게든 기력을 차린다 해도 날짜를 기약할 수 없으며… 어쩌면 노인은 일평생을 쌓아온 무공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독왕 당평세는.
당가에 찾아든 혈마라는 재앙에 맞섰고, 가문과 식솔들을 지켜내었다. 허나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 모양새는.
스승 이진천과 다르지 않았다.
“…….”
꾸욱.
이벽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허나 이제와 분노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혈마는 달아나버렸고, 자신은 그 목을 치지 못했다.
고로 이벽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그와 같은 위중함 속에서 노인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가 결코 가벼운 의미였을 리 없다.
따라서 고심을 거듭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억측만이 쌓여갔고, 생각은 서서히 뒤엉키기 시작했다.
이내 어둠이 내려앉았다.
“…후우.”
이벽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현듯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검 혹은 무공에 대한 것과는 별개로, 단서를 통해 자초지종을 유추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벽이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또한.
알 수 없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림으로 다시 돌아온 이래 해결되지 못한 채 쌓여온 의문점들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스윽.
허나 그때였다.
불현듯 이벽은 객당의 담장 위로 정체불명의 흑의인 하나가 도둑처럼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목도했다.
철컥.
그 즉시 검을 잡았다.
어둠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잠깐, 멈추시오. 누구―”
슥.
허나 이벽의 말이 채 뱉어지기도 전, 흑의인은 다짜고짜 이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날렵한 몸이 소리도 없이 날아들었다.
“와! 오라버니!”
“……!”
이벽의 표정이 흔들렸다.
검을 잡은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덥석.
다음 순간.
눈앞의 인영이 잔상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이벽은 자신의 오른팔이 인영에게 붙들렸음을 느꼈다.
“…공손수?”
“네, 저예요~”
이벽은 검에서 손을 놓았다.
흘끗,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멋대로 팔짱을 낀 흑의의 여인과 눈을 마주했다.
“…어떻게 여기에?”
“어떻게는요~ 오라버니가 보고 싶어서 찾아왔죠. 오라버니는 이 어여쁜 수 매가 한 번도 보고 싶지 않으셨어요? 네?”
“…….”
이벽은 말 그대로 당황에 빠졌다.
어둠 속에서 공손수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오 년의 세월이 흘렀고, 소녀는 여인이 되었다.
허나 분명.
이벽이 기억하는 그녀가 맞았다.
“와, 그런데 표정 보니까 진짜로 모르고 계셨나 보네요? 우리도 나름대로 싸움터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는데… 하기사 오라버니의 입장에선 보이지도 않았겠지만요~”
“…우리?”
“네, 우리요.”
타앙.
“이리 오너라! 케헤헤!”
정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저벅저벅.
이내 또 한 명의 인영이 객당 안으로 당당하게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건장한 사내였다.
이벽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사내 또한 이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슥, 이내 사내가 손가락으로 코밑을 쓸었다.
“케헤, 이거 막상 다시 만나니 쬐끔 머쓱하구만?”
“…….”
물론, 파진성이었다.
“뭐, 이기진 못하더라도 비무라도 도전해볼까 싶었는데… 조금 전 싸우는 걸 보고 나니까 엄두도 내기 싫어졌다 이 말이야. 케헤헤!”
이벽은 두 사람에게 할 말을 찾으려 했다. 허나 재회는 지나치게 갑작스러웠고, 쉽사리 입은 열리지 않았다.
쿡.
공손수가 이벽의 뺨을 찔렀다.
“와, 잘 보니까 더 잘생겨졌네요. 이젠 정말 어엿한 사내가 됐어요. 오라버니, 오 년 만에 하는 얘기인데 이제 슬슬 후사를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일단 좀 떨어지지 않겠나?”
“싫은데요~”
“…….”
“휴가랍시고 집에 보내놓고 오 년씩이나 독수공방을 시킨 전(前) 대주 말은 안 들어요~”
“커흠! 흠!”
그때, 헛기침이 들렸다.
어느덧 또 한 명의 인영이 열린 문 너머에 서 있었다. 인영은 문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공손 소저, 그쯤 했으면 인사로는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떨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네 대주님~”
그제사 공손수가 팔짱을 풀었다.
“아하하…….”
그리고 혁대웅이 허리를 숙이고서 문틈을 넘어왔다. 머쓱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으며 다가왔다.
“벽아.”
“…혁대웅.”
물론, 두 사람은 조금 전 혈마를 상대로 함께 전투를 치렀다. 허나 혈마는 물러났고, 마침내 두 사형제는 다시 서로를 마주했다.
나눠야 할 얘기는.
물론 적지 않았다.
“우선… 다시 한번 물을게. 너 우리 낙검문은 어쩌고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