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12)
320화. 비룡대 재회 (2)
“벽아.”
“…혁대웅.”
공손수, 파진성, 그리고.
이내 혁대웅이 마당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퍽 놀랍게도 세 사람은 이미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허나 물론.
사패련이란 소속으로 묶여있는 세 사람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또한.
조금 전, 공손수는 혁대웅을 향해 ‘대주’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내 이벽은 자초지종을 짐작했다.
사패련 후기지수들의 연합 무력대인 비룡대는… ‘새로운 대주’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뭉치게 된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본래의 주인’을 찾아간 것이다.
“우선… 다시 한번 물을게. 너 우리 낙검문은 어쩌고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다시 혁대웅이 말했다.
그것은 조금 전, 혜성처럼 나타나 혈마를 찍어누름과 동시에 혁대웅이 이벽에게 던졌던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허나 이벽은 여전히 답할 말이 궁색했다.
“…사형과 사저가 둘 다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갔는데…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건 역시 이상하지 않나?”
“그럼 우리 문파는 어쩌고?”
“…….”
즉시 질문이 되돌아왔다.
“이벽, 너는 낙검문주잖아. 문주님의 무공과 유지를 이은 수제자잖아.”
“…석두에게 맡겼다.”
“…….”
장석두는.
스스로 2대 낙검문주 이벽의 ‘수제자’를 자청하며, 이벽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낙검문을 맡아두겠노라 했다.
“…그럼 수련이는?”
혁대웅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벽은 다시 할 말을 잃었다. 가늠하기 어려운 침묵이 마당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였다.”
“…….”
혁대웅의 표정이 흔들렸다.
와락, 미간이 찌푸려졌다가 후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휘저었다. 이벽을 바라보는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공손 소저. 파 형.”
“네, 대주님~”
“케헤, 왜 부르시나?”
“저 망할 자식… 꽉 붙들어요.”
“네 대주님~”
“존명! 케헤헤!”
훅, 덥석, 덥석.
“……!”
다음 순간, 이벽은 두 사람에게 양팔을 붙들렸다.
물론 생각지 못한 기습이었으나, 그것을 감안해도 두 사람의 움직임은 예상 이상으로 민첩했다.
“잠깐, 이거 놔라. 왜 나를―”
“죄송해요, 오라버니~ 제 마음은 항상 오라버니 편이지만… 그래도 이제 대주님은 아니잖아요?”
“그래, 힘없고 약한 우리가 뭘 어쩌겠어?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해야지, 케헤헤헤!”
“…….”
훗, 혁대웅이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스치는 싸늘한 배신감 속에서 쿵, 쿵, 거구의 몸이 이벽에게로 다가왔다.
“이… 머저리 같은 사제 놈아―!”
뻐어어어억.
“…커억―!”
그리고.
그대로 솥뚜껑과 같은 주먹이 뻗어졌다. 이벽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 * *
단 한 방의 주먹질.
심지어는 내력조차 실리지 않은 일격이었으나 혁대웅의 완력은 그 자체만으로 인외의 영역이었고, 충격은 뼈와 장기에 스며들었다.
털썩.
최소한 혈투에 지친 이벽의 육신을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다. 마루에 드러누운 이벽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머리 위로는.
밤하늘이 수놓아져 있었다.
돌연 낮에 펼쳐졌던 처절한 혈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고민거리들도 주춤하는 듯했다.
“…핫.”
이벽은 웃음을 흘렸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불쑥, 공손수의 얼굴이 나타났다.
“지금 설마 웃는 거예요? 배를 맞았는데… 왜 머리를 다친 거 같지?”
“케헤헤, 실성했냐, 대주? 아니, 대주는 아니고… 이제 이쪽은 뭐라고 불러야 되냐?”
“글쎄요, 잘생긴 퇴물?”
“…….”
벌떡.
이벽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다시 혁대웅을 마주했다.
“아프다, 혁대웅. 차인 건 나인데 왜 때리나? 내 맘은 생각도 안 하나?”
“…에효효.”
혁대웅이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벽아, 마음 같아선 하루 온종일 두들겨주고 싶지만… 솔직히 나도 잘한 건 없으니까 이걸로 그만할게. 아무튼 미안해.”
“…….”
“무엇보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너는 이제 사저를 만나는 순간,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요절할 목숨이니까.”
“…그건 좀 무섭군.”
“그러게, 사형 말 들었어야지.”
훗, 혁대웅이 마주 웃었다.
그리고 이벽은 마침내 실감했다.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의 사형제인 혁대웅이며, 또한 오랜 벗인 공손수, 파진성이었다.
마침내 당황을 지나.
서서히 반가움이 일었다.
“…공손수, 파진성. 일단은 건강해 보이는군. 그간 별일 없이 잘들 지냈나?”
“그야 물론이죠~ 비룡대 화폐 탑승에 오 년 버텼더니 말 그대로 하늘을 뚫고 떡상했잖아요?”
“케헤헤, 말해 뭣하나? 이제는 해남의 뻣뻣한 늙은이들도 이 떠오르는 샛별 파진성 님께 허리를 굽신거린다고.”
퉁, 파진성이 가슴을 두드렸다.
“그래! 이제는 정말로 나만 봤다 하면 해남의 여인네들이 온통 우르르 몰려나와서 줄을―”
따아악.
그때, 공손수가 파진성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파 소협, 우리 일 절만 해요~ 아무도 그런 지저분한 이야기까진 안 물어봤잖아요?”
“…케헤, 아무튼 그렇다고.”
“…하핫.”
일찍이 비룡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는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벽과 공손수, 파진성은 잠시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오 년의 거리감은 아무것도 아닌 양 빠르게 좁혀졌다.
“근데 오라버니, 혹시… 언니가 어디에서 뭘 하고 사는지 오라버니도 아는 바가 없나요?”
“……!”
이벽의 표정이 작게 흔들렸다.
물론, 공손수가 말하는 ‘언니’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는 모르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흑천방주를 쓰러뜨린 이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까지 갑자기 사라져버려서요. 오라버니라면 혹시 뭔가―”
“…나도 아는 바는 없다.”
이벽은 언미희를 찾지 않았다.
물론, 일찍이 그녀를 제자로서 데리고 있던 하오문주 월향이라면 그 행방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무림을 떠나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찾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다시 만난다고 해도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군.”
“…….”
공손수가 뚱한 눈빛을 했다.
“…진짜 너무하네요. 예나 지금이나 목석같은 인간이라니까? 솔직히 무림에 다시 나와서 우릴 찾지 않은 것도 꽤 섭섭하거든요?”
“아하하… 소저가 이해해요. 우리 사제가 좀 그래요. 제 딴에는 남 신경 쓴다면서… 최종적으로는 얼간이 같은 결론을 내리거든요.”
다시 혁대웅이 끼어들었다.
“…혁대웅, 너야말로 사저의 행방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게 있나?”
이벽은 화제를 돌렸다.
흠칫, 그러자 이번에는 혁대웅의 어깨가 흔들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이벽을 향했다.
“…아니, 몰라. 전혀.”
이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망할 우리 아버지가… ‘자격’을 증명하기 전까진 절대로 사파무림을 못 벗어나게 했거든. 그래서 계속 붙들려 있었어.”
“…그럼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어떻게는 뭐… 한동안 그냥 시키는 대로 살았지. 빡세게 수련하고… 비룡대주가 되고, 암영각에 오르고, 쏘다니는 김에 혈교나 녹림의 잔당들 좀 해치우고…….”
“…….”
그리고 그즈음.
이벽의 소식이 전해졌다.
정확히는 개방 측에서 이벽의 이름으로 하오문에 지원을 요청해왔고, 그와 같은 소식이 사패련의 귀에도 걸려든 것이다.
“나 원, 얌전히 집 지키고 있는 줄 알았던 막내가 느닷없이 남궁세가주를 베고 심지어는 혈혈단신으로 당가로 향했단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얼척이 없었는 줄 알아?”
“…….”
“뭐, 아무튼 그래서… 한 방 먹여주려고 부랴부랴 달려온 거야. 물론, 노인네가 그래도 안 보내주려 하길래 한 번 뒤집어엎긴 했지만.”
혁대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허나 말인즉슨, 그의 아버지인 혁군악의 뜻을 꺾고 이곳까지 달려왔다는 말이 된다.
철탑패왕 혁군악은.
일찍 사파무림에 숨어든 혈마의 음모에 의해 내상을 입고 전성기의 힘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었다.
물론.
지금의 혁대웅에게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은 혈마와의 싸움을 통해 이미 충분히 확인한 바였다.
“강해졌군. 혁대웅.”
“어디 너만 하겠어?”
훗, 사형제가 다시 웃었다.
한때 단전을 잃은 폐인에 불과하던 이벽과 혁대웅은 제각각의 마음과 기예를 통해 마침내 하늘에 다다랐다.
물론, 그 연원에는.
낙검진천신공이 있었다.
“아니, 아무리 절대고수라도 그렇지… 서로 그런 말 하면 좀 머쓱하지 않아요?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시골 문파래?”
“…….”
* * *
“벽아. 그렇다는 건 너도… 사저의 행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거구나?”
혁대웅이 되물었다.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화정촌을 나선 이벽은 천향루주이자 하오문주인 월향에게 사형제들의 행방에 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사패련으로 향한 것이 확인된 혁대웅과는 달리, 제갈소미는 정파무림으로 향한 뒤 섬서 부근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단 말이지.”
혁대웅이 침음했다.
제갈소미는 마을을 나서며 스승의 원수를 찾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갚아내겠노라 말했다.
그리고.
우연이건 혹은 그렇지 않건, 이벽과 혁대웅은 각자의 여정 끝에 마침내 그 ‘원수’와 일전을 치르게 되었다.
허나 힘을 합쳤음에도.
끝끝내 그 목숨을 끊지 못했고, 혈마를 놓치고 말았다. 하물며 당평세의 심독이 아니었더라면… 외려 목숨이 위험했을 터였다.
“…….”
사형제들의 원수는.
당연하게도 터무니없이 강했다.
허나 걱정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뤄두었던 걱정거리 중 하나가 이벽의 뇌리를 스쳤다. 제갈소미의 행적은 섬서 부근에서 끊어졌다고 했다.
허나 그 말은 즉.
그녀는 섬서와 호북의 경계 부근에 위치한 자신의 본가인 제갈세가로 돌아갔을 공산이 컸다.
그리고 제갈세가는.
남궁세가, 당가와 마찬가지로… 오대세가의 일원이자 명실상부한 ‘의혈맹 소속의 무가’였다.
“…뭐, 사저는 분명 괜찮을 거야. 우리 둘이 합한 것보다 머리가 훨씬 좋으니까. 그렇지?”
그러한 이벽의 생각을 짐작한 듯, 혁대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도… 무턱대고 혈마한테 덤벼들진 않을 거야. 어쩌면 지금쯤 어딘가에서 우리의 행보를 낱낱이 전해 듣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군.”
이내 이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마따나 제갈소미는 충분한 힘을 얻기 전까지 결코 무모한 싸움에 나서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혈마 말인데… 숨통을 끊지 못한 건 안타깝지만, 제 놈이 달아난다고 해서 달리 어디로 갔겠어?”
다시 혁대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뻔히 정해져 있잖아?”
슥.
그리고 돌연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이내 금실이 수놓아진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갑자기 그건 뭔가?”
“실은… 막 사패련을 떠나려던 찰나에 서신이 한 장 도착했거든. 무려 의혈맹주 황보혁의 인장이 찍힌 서신이야.”
“……!”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근데 이게 안에 적힌 내용이 아주 골 때린단 말이지.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
핫, 혁대웅이 다시 웃음을 흘렸다. 허나 조금 전과는 달리 그 입꼬리의 끝은 비틀려있었다.
“이 판국에… 천하의 권왕께서 무려 ‘친선 비무회’를 열겠다고 하더라고.”
“그게 대체 무슨―”
저벅.
그때였다.
객당의 문 너머에서 다시 인기척이 느껴졌고, 일행의 시선이 움직였다. 이내 문틈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인영을 발견했다.
“당 소저.”
“…소협.”
그녀는 당려옥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스쳤다.
그녀의 숙부인 당청은 목숨을 잃었고, 조부인 당평세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함부로 할 말을 찾기 어려웠으나, 이내 이벽은 당평세의 안위를 물으려 했다. 허나 그때였다.
후욱.
“……!”
돌연 암기가 쏘아졌다.
타아앙.
이벽이 그 즉시 검을 뻗었다. 당려옥을 노리고 쏘아지던 암기가 검신에 가로막혀 땅에 떨어졌다.
“…갑자기 무슨 짓을 하는 건가?”
“무슨 짓은요, 그냥 가벼운 인사죠~ 그렇죠, 당 소저? 오 년 만에 뵙네요.”
훗, 공손수가 웃었다.
당려옥이 마주 웃었다.
“…공손 소저.”
이내 당려옥이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 당가는 암영각을 비롯한 뭇 사파의 무인들께 큰 신세를 졌어요.”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본가를 대표해 인사드릴게요. 당가는… 여러분들께 입은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거예요.”
“…흥, 뭐야? 재미없어졌네.”
공손수가 어깨를 으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