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27)
335화. 환야의 전언
천하가 가을로 접어드는 무렵.
황보세가주, 의혈맹주 황보혁은 ‘천마’의 이름을 자처하며 천하 각지에 돌연 친선 비무회의 개최를 알려왔다.
이에 온 천하는 고요해졌다.
오십여 년 전, 중원 땅을 침공하여 걸음걸음마다 시산혈해를 이루었던 마교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모든 중원인들에게 있어 떨쳐내기 어려운 악몽과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 옛날 중원을 지켜내었던 정파무림의 한 축이 스스로 ‘마교의 후예’임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후웅.
충격적인 소식은 채 대비하지 못한 때이른 삭풍과 함께 중원의 전역을 강타했다.
겁에 질린 양민들은 문을 걸어 잠갔고, 각지의 무림세력들조차 저마다의 자잘한 마찰을 멈춘 채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구 무림맹과 사패련을 비롯해, 무림을 대표하는 여러 세력들이 황보세를 향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한 명 한 명이 모두 각자의 세력을 이끄는 절정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추수가 끝난 들판 위로.
천하는 전운에 휩싸였다.
덜커덩, 덜컹.
또한 섬서와 하남을 잇는 여느 길목에는 한 대의 마차가 발 빠르게 산동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벽과 비룡대를 실은 채 정검문주 양호명에 의해 이끌어지는 마차였다.
“실은 봉우리 아래에서 자네들을 기다리는 동안… 환야께서 직접 내게 전언을 남기셨네.”
“……!”
갈 길을 서두르는 한편, 쉬어가는 틈틈이 양호명은 이벽과 일행에게 전언을 풀어놓았다.
‘…환야.’
이벽은 이름을 되뇌었다.
그것은 물론, 화정봉에서 일행의 발목을 붙들었던 만류일원진의 술자에 해당하는 이름이었다.
“그래, 우선은 돌아가는 상황이 급박하여 자네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먼저 떠나는 것에 대해 면목이 없노라 하시더군.”
“…그렇구려.”
이벽은 본론을 기다렸다.
험, 양호명이 헛기침을 했다.
“놈들… 황보세가가 제남의 시내 한복판에 한창 ‘비무대’를 만들고 있다고 하네.”
“……?”
그리고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말의 의미를 선뜻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양 대협, 그게 무슨 말씀이죠?”
이내 공손수가 되물었다.
안휘의 안경 시내에 남궁세가가 자리하고 있듯, 황보세가는 산동 제남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허나 물론, 천하의 황보세가가 고작해야 비무대 하나가 없어 이제와 부랴부랴 만들고 있을 리는 없는 것이다.
“황당하지만… 말 그대로라네.”
양호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남 한복판의 민가와 거리들을 모조리 밀어내고… 그 위로 비무대를 만들고 있다는 말이네.”
“……!”
잠깐의 침묵이 스쳤다.
“…케헤, 과연. 어차피 정체까지 까발린 마당에 더는 거리낄 것도 없다 이거지?”
파진성이 헛웃음을 흘렸다.
무림세력은 가능한 관과 얽히지 않으며, 또한 그렇기에 양민들에게 공연히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사무림을 막론하고 표면적으로나마 지켜져 왔던 무림의 철칙이기도 했다.
“관은요? 백주대낮에 양민들을 밀어내고 터전을 빼앗는데… 하물며 스스로 마교를 자처하는데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단 말예요?”
다시 공손수가 되물었다.
“뭐, 그쪽이야 하는 말이 늘 뻔하지 않나? ‘사사로운 무림의 일’에는 나서지 않겠다더군.”
양호명이 쓴웃음을 흘렸다.
흠칫, 공손수의 표정이 흔들렸다. 허나 이내 그녀의 얼굴 위에도 양호명과 비슷한 웃음이 감돌았다.
“…하긴 뭐, 그렇겠네요.”
“잠깐, 공손 소저? 미안한데… 뭐가 그렇다는 거죠? 나한테도 설명 좀 해줄래요?”
혁대웅이 되물었다.
“네, 대주님. 생각해보면 관군이 나서지 않는 건 퍽 당연한 일이에요~ 놈들은… 마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의혈맹이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
“무가 출신의 방계 혈통들이나 속가제자들이 관에 진출한 거야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니까요~”
“…….”
이내 나머지 일행들 또한 상황의 전말을 이해했다.
만에 하나.
의혈맹이나 황보세가가 아닌 다른 어떤 세력이 스스로 ‘마교의 후예’임을 주장하고 나섰다면… 물론 관군 또한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을 터였다.
허나.
악적을 쫓아야 할 몸통이 스스로 천마가 되었다. 그리고 관은 이것을 ‘정파무림’ 내의 소요사태라 판단한 것이다.
혹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 년 전, 흑천방에 의해 점령당했을 무렵 사패련 본단이 자리한 귀양 시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림과 비(非) 무림의 경계가 생각처럼 견고하지 않음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오십여 년 전과는 달리 무림은 외적에게 침공받은 것이 아니며, 적들은 중원의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피아의 경계는 흐릿하고.
명분은 통일되지 않는다.
고로 마교의 이름 하에 양민들이 고통받는 와중에도 관은 움직이지 않는 길을 택했다.
그것은 마치.
마교를 ‘받아들이는 듯’했다.
―우리는, 당금의 강호무림은… 실은 마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오.
돌연 이벽의 머릿속으로 당평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다시금 스치고 지나갔다.
“어쨌거나… 한 가지만큼은 분명한 것 같네. 놈들은 진심으로 비무회를 열 생각이란 거네.”
다시 양호명이 말했다.
“그야 물론 다른 꿍꿍이가 없지는 않을 테지만… 환야께서도 별다른 사술 따위의 낌새를 찾을 수는 없었다고 하시더군.”
“…그렇군요.”
다시 공손수가 답했다.
말마따나 그와 같은 실력을 지닌 절대지경의 술법가가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면, 우선은 믿는 수밖에는 없다. 허나.
‘친선 비무회.’
이제와서 후기지수들 간의 비무 따위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결국은… 누가 먼저 감춰둔 꿍꿍이를 드러내느냐의 문제일 뿐, 제남은 전쟁터가 될 것이다.
“…잠깐, 양 문주. 헌데 비무대가 황보세가의 바깥에 설치되고 있다면 그것 역시 문제가 아니오?”
이벽은 다른 의문을 던졌다.
일전의 검존은 이벽과 일행으로 하여금 만류일원진을 직접 겪어보게 하며, ‘황보세가 일대에 같은 진법을 펼칠 준비를 마쳤노라’ 말하였다.
허나 싸움이 펼쳐지는 장소가 황보세가가 아닌 제남의 시내라면, 자칫 ‘진법이 준비된 자리’를 벗어나 버릴 수도 있다.
혹은 어쩌면.
황보세가 역시 ‘무언가의 존재’를 눈치채고서 장소를 옮긴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사실은 그게 본론이라네.”
양호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진법이 발동될 위치가 다소 흔들리는 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문제라 하셨네.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일이라 하시더군.”
“…그렇다면야 다행이오만.”
양호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일 환야께서 직접 제남에 잠입하여 진법의 위치를 조율하실 것이고, 또한 내부에서 ‘핵의 역할’을 맡을 이 또한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네.”
만류일원진은.
절대지경에 이른 적들마저 무력화시키는 천고의 절진이지만, 동시에 이쪽에서도 등천에 이른 절대고수가 핵의 역할을 맡아야만 하며.
물론, 그 역할을 맡을 이가 도가의 무공을 익힌 절대고수여야 하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이었다.
허나 검존과 무존은 ‘직접 싸움에 나서야 하는 입장’이므로,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맡아야만 한다.
“…….”
그리고 이벽은.
예의 화정봉에서 숲속에 모습을 감춘 채 검선을 대신하여 진법의 핵을 유지하던 ‘검선의 전인’을 떠올렸다.
이내 대강의 정황을 이해했다.
“다만… 그렇지. 환야께서 진법의 재조정을 위해서는 당일 날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네.”
양호명이 말을 이었다.
“즉, 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건… 우리로서도 정말로 비무회에 응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겨버린 것이네.”
말인즉슨.
비무를 통해 ‘시간’을 번다.
“…그렇군.”
이내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들과 시선을 맞춘 뒤, 다시 양호명을 향했다.
“딱히 이견은 없소. 기왕에 이렇듯 함께하게 되었으니 웬만하면 정도맹 측의 뜻에 따르겠소.”
“핫, 그거 다행이구만.”
물론 이벽과 일행이 구 무림맹이나 사패련 등 정도맹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세력’의 뜻을 온전히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설득이라면 가능하다.
최소한 이벽은 진법을 활용하여 적들의 힘을 무력화하는 정도맹 측의 계획에 어깃장을 놓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은 계획대로만 된다면.
가장 적은 피를 흘리면서도 가장 확실한 승리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임에 분명했다.
또한 어찌 되었건, 적에게 알려져선 안 되는 진법의 존재를 이벽에게 드러낸 점에서, 정도맹은 충분한 신뢰를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도맹 측에선 우리가 비무에 나서주기를 원하는 거요?”
“아니, 그건 아닐세.”
양호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나 자네의 동료들은… 무늬만 후기지수지 이미 각 세력의 핵심 전력에 해당하는 이들이 아닌가?”
“케헤헤, 좀 그렇긴 하지?”
파진성이 코끝을 문질렀다.
물론, 이벽과 혁대웅은 말할 것도 없으며 파진성과 공손수 또한 더는 후기지수라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임에는 분명했다.
“말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법을 발동하기까지의 ‘시간을 버는 일’이네. 자네들이 비무대에 올라 순식간에 끝내버려도 외려 난처하단 말이지.”
“…하핫.”
혁대웅이 머쓱하게 웃었다.
물론, 하고자 한다면 의혈맹 측의 후기지수를 상대로 적당히 힘을 아끼며 시간을 끌 수는 있겠으나.
천하 각지의 고수가 모인 자리에서 티가 나지 않도록 손속에 사정을 두는 것도 그것대로 어려운 일일 터였다.
“그러니… 비무에 나서는 것은 우리 정도맹 측의 제자들이 될 것이네. 고로 자네들은 그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아도 좋네.”
“…….”
이벽은 잠시 고민했다.
“양 문주의 뜻은 잘 알겠소만… 상황에 따라서는 비무에 나서는 후기지수들이 퍽 위험해지지 않겠소?”
상대측에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면, 비무대에 오르는 것은 물론 적잖이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핫, 말이야 고맙네만. 무인이 전쟁터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
“또한… 우리 정도맹의 제자들 역시 그리 나약하지는 않다네. 자네, 내 사질인 창성을 기억하나?”
“…물론이오.”
점창의 일섬룡 창성.
오룡삼봉의 일원으로, 과거 호남 무림의 주도권을 놓고서 정파 측의 대표로서 이벽과 비무를 겨뤘던 적이 있었다.
“자네에게 패배한 이후, 그 아이 역시 지난 오 년간 절치부심하여 나름의 성취를 이뤘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걸세.”
양호명의 얼굴 위로 은연 중의 자부심이 스치고 지나갔다. 허나 다음 순간, 목소리를 달리했다.
“무엇보다도… 정말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적’들은 비무대에 오를 후기지수들 따위가 아니지 않나?”
“…그야 그렇기는 하오만.”
“그러니 진법이 발동되기 전까지는… 자네들은 주변에 산재하고 있을 적들의 동태에 주의를 기울여줬으면 하네. 돌연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말일세.”
“…알겠소.”
“그리고 진법의 준비가 무사히 완료되면 그때에는… 자네의 벗인 무당의 송 소저께서 비무대에 오를 것이네.”
“……!”
이내 이벽은 납득했다.
다른 후기지수들이야 어쨌건.
절정마저 넘어 목천의 끝에 다다른 송영영이라면 분명 후기지수 선에서 그녀를 당해낼 수 있는 이가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즉, 그녀가 비무대에 오르면… 그것이 곧 ‘비무회의 끝’이자 ‘진법의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생각하게나.”
양호명이 마저 설명을 이었다.
진법이 무사히 발동되고 나면.
비무대를 중심으로 내려앉은 안개에 의해 진법의 ‘안팎’이 확연하게 나눠질 것이며.
검존과 무존을 비롯한 정도맹의 무인들은 곧장 ‘안쪽’의 제압에 나설 것이다.
“고로 진법이 발동된 이후, 자네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외려 ‘바깥쪽’의 싸움일세.”
“…….”
진법이 노리는 것은 물론.
가능한 많은 적들을 가둠으로써 그들이 제힘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이 손쉽게 제압하는 것이다. 허나.
최우선사항은 물론 황보혁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적지 않은 수의 적들이 진법의 영역으로부터 비껴가게 될지도 모른다.
“운 좋게 진법을 벗어난 적들이 있다면… 눈치가 빠른 놈들은 어떻게든 진법을 깨려 들겠지. 그 와중에 환야께서 위험해 처하실 수도 있고 말이네.”
“…그렇군. 대강 이해했소.”
다시 이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존을 비롯한 정도맹의 고수들이 진법에 가둔 황보혁과 적들을 제압하는 동안, 자신들은 그 바깥에서 진법과 환야를 지킨다.
그것은 말마따나.
퍽 합리적인 역할의 배분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벽과 일행들은 여전히 진법 안에서 가진 힘을 전부 내지는 못하며.
사패련, 구 무림맹을 비롯한 여타 무인들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
고로 진법 안쪽에서 공연히 정도맹 측의 방해가 되느니, 바깥쪽의 전장을 담당하는 것이 응당하다.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자세한 사항은 개방주 등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겠소만…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보겠소.”
“그야 이를 말이겠나? 허나… 가능한 진법에 대한 이야기는 신중하게 꺼내줬으면 하네. 듣는 귀는 어디에나 있으니 말일세.”
“물론이오.”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기, 대협?”
그때 공손수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응? 왜 그러나?”
“그게요… 하시는 말씀은 대강 알겠는데요. 저희는 환야라는 분을 직접 뵌 적이 없는데… 만일의 경우 대체 저희가 어떻게 그분을 지켜드려야 하는 거죠?”
“핫, 난 또 뭐라고. 그런 걱정은 지금은 할 필요가 없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어련히 자네들에게 접촉하실 테니 말일세.”
“아… 그런가요?”
공손수의 물음은 퍽 합당한 의문이었으나, 양호명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헌데 표정을 보아하니… 소저께선 아직도 신경 쓰이는 게 남았나 보군. 그렇다면 시간이 있는 지금 얼마든지 물어보시게.”
“뭐… 그분에 대한 건 그렇다 치고요. 가능성이 낮다는 건 알겠는데… 만약에 비무회고 자시고 전부 놈들의 뻥이고 그냥 다짜고짜 싸우자고 덤벼들면 어떡하죠?”
“…그럼 뭐 다른 방법이 있겠나? 개싸움을 벌이든 어떻게든 환야께서 진법을 준비하실 시간을 벌어야겠지.”
“…아하하. 역시 그렇군요.”
공손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핫, 너무 걱정은 말게. 놈들이 그 무엇을 얼마나 감추고 있건… 결국은 진법의 완성까지 버티기만 해도 이기는 싸움이 아닌가?”
“…….”
이후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어찌 되었건 일행은 계획에 관해 각자의 생각을 정리했다.
진법이 발동되기 전까지는 적들의 동향을 주시하며, 그 이후에는 신속히 바깥의 적을 맡는다.
물론, 전장 한가운데에서 적들의 목숨에 손속을 두고 있을 여유는 없을 터였다.
황보혁이 천마를 자처한 이 순간까지 의혈맹의 편에 남아있는 이는 모두 한통속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덜커덩, 덜컹.
마차는 계속해서 달렸다.
계획은 퍽 명료했으며, 진법의 힘 또한 직접 겪어보았으므로,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아가 겉으로 드러난 전력만을 생각하면 설령 진법이 없다 해도 충분히 승리를 점칠 수 있는 전력이었다.
결국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절대고수 간의 싸움이며, 이쪽에는 검존과 무존, 그리고 이벽과 혁대웅이 버티고 있는 반면.
적진에는 권왕 황보혁뿐이다.
“…….”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겉으로 드러난 전력’의 우위일 뿐, 힘을 드러내지 않은 절대고수가 숨어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적들은 ‘바로 그’ 마교였다. 또한.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전 무림을 상대로 초대장을 보낸 것에는… 응당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시 이벽은 혈마를 생각했다.
여전히 그 행적은 오리무중이었으나, 지난 정황들을 생각하면 물론 그의 존재가 의혈맹과 무관할 리 없다.
그리고.
제남에서의 싸움은 사실상 차후 무림의 운명을 결정하는 ‘총력전’에 해당하므로… 독왕의 심독을 극복했다면 그 역시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나타나지 않으면 외려 곤란하다.
‘…천마. 그리고 혈마.’
다시금 혜공선사와의 대화가 이벽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안개 속을 더듬는 듯한 불안이 스쳤다.
덜커덩, 덜커덩.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이벽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적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으며, 의혈맹을 잠식한 그 뿌리가 어느 정도의 깊이로 파여있을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어쨌거나 이제 와서 일전을 피할 수는 없으며, 정도맹 측에선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
고로 혁대웅의 말마따나.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이다.
우우웅.
이내 이벽은 생각을 달리했다.
불안을 떨쳐내듯, 지닌 기예들을 머릿속으로 차례차례 점검했고 이내 검선의 마지막 매화로부터 얻었던 화두를 다시금 떠올렸다.
사라락.
마음속에서 매화가 피어났다.
작은 실마리가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