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42)
350화. 파도와 그림자 (1)
“벽아, 그냥 내가 나가면 안 돼?”
“…혁대웅.”
남궁환과 모용양을 상대로, 우학과 덕수는 선전을 펼쳤으나 그 역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내 검존과 이벽이 몇 마디를 주고받던 와중 잠자코 비무를 지켜보던 혁대웅이 목소리를 냈다.
“부탁해. 마공이고 자시고,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모조리 도륙내 버리고 올게.”
“…….”
이벽은 혁대웅을 돌아보았다.
짐짓 담담한 사형의 목소리 안쪽으로 활화산과 같은 분노가 힘겹게 억눌려있음을 직감했다.
물론,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사저인 제갈소미는 현재 권왕의 바로 옆에서 ‘누구보다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아니, 소협. 참아주시게.”
이벽은 얼른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고로 답한 것은 이벽이 아니라 검존이었다.
“기실 이런 ‘애들 싸움’에 끼어들 수준이 아닌 것은 자네나 낙검신룡이나 다를 게 없지 않나?”
“…….”
물론.
‘계획’에 대해서라면 이벽과 혁대웅 모두 이미 숙지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조금 전, 권왕은.
죽일 것과 살릴 것의 ‘선별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쪽의 목숨을 거두지 않겠노라 하였다.
이는 즉.
최소한 이 비무회가 치러지는 동안에는 전면전을 일으킬 생각은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적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이쪽에서 먼저 비무회를 끝낼 명분을 줄 이유 또한 없다.
최소한.
환야가 진법의 마무리를 끝내기 전까지는, 비무대 위를 압도적인 무력으로 ‘찍어눌러 버리는 것’은 결코 상책이 아닌 것이다.
“…적당히 힘 빼면서 싸울게요. 좌우간에 엎어치든 메치든 시간만 벌면 되는 거잖아요?”
다시 혁대웅이 말했다. 허나.
“허헛, 말이야 그렇네만… 그렇다면 소협께서는 놈들의 눈을 속여넘길 자신이 있나?”
검존이 비무대 저편을 턱짓했다. 물론, 그 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권왕과 검왕이었다.
기실 지금 당장이라도.
권왕이 변덕을 부린다면 비무회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며, 그 즉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시작될 수 있다.
매 순간순간이.
절체절명의 위기와 같은 것이다.
“…쯧, 그렇다고 대체 언제까지 이딴 식으로 적의 눈치나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혁대웅이 다시 항변했다. 물론, 그 역시 검존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화가 났을 뿐이다.
또한 정도맹 측은 제갈소미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들에게 미리 귀띔해줄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또한.
제갈소미의 의지였을 공산이 크기에, 혁대웅은 이를 악문 채 가까스로 분을 삭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야… 적의 변덕에 잠깐 어울려주는 것으로 아군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겠나?”
허헛, 검존이 웃었다.
“…….”
이내 혁대웅의 말문이 막혔다. 더는 억지로라도 노강호의 말을 반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혁대웅, 우선은 침착해라.”
그 틈을 타 이벽이 나섰다.
“모든 입장을 떠나서… 사저에게 아무 생각이 없을 리 없잖나?”
“…벽아.”
“지금 함부로 나서는 것은, 외려 사저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
“또한 이제 곧… 우리 모두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할 테니까. 아직은 우리 차례가 아닐 뿐이다.”
“…하아.”
이내 혁대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럼 어쩔 건데?”
어찌 되었건.
비무대 위의 상황은 점점 더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우학과 덕수의 다음 차례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어쩌긴 뭘 어째. 당연히 원래 계획대로 내가 나가는 거지. 이 무식하게 힘만 센 덩어리야.”
다시 송영영이 끼어들었다.
“…….”
혁대웅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 봐, 이 사파의 주구야. 그런 눈으로 본다고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 건방지게 어디에다 대고 우리 장문인한테 따박따박 말대꾸야?”
송영영과 혁대웅의 눈이 부딪혔다. 화정봉에서의 충돌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감정이 별로 좋지 않은 듯했다.
“…잠깐, 두 사람.”
이벽이 중재하려 했다. 허나.
스윽.
“커흠! 케헤헤!”
헛기침과 함께, 이벽보다 먼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인영이 있었다.
“자자, 대주랑 송영영. 둘 다 진정하고… 한배를 탄 사이에 좋게 좋게 가자고! 나중에 내가 거나하게 한 잔 살 테니까. 응?”
다가선 인영은 파진성이었다.
“그보다 내 생각에 말야! 어쩌면 이 해남의 별이 사파무림을 넘어 중원무림의 용으로 거듭날 기회가 온 것 같은데… 어찌들 생각하시나? 응?”
“……!”
“왜, 괜찮은 생각 아냐? 케헤헤!”
씨익, 파진성이 웃었다.
“나이 제한 안 걸리지, 강기도 잘 쓰지. 그렇다고 우리 대주들처럼 ‘지나치게’ 세지도 않지… 이 상황에서 나만 한 적임자가 또 누가 있어?”
* * *
파진성이 비무에 나선다.
그것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허나 잠깐의 침묵 속에서, 이벽과 검존을 비롯한 일행들은 그것이 ‘생각해보지 못할 이유’ 또한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괜찮겠나?”
이벽이 되물었다. 그러자.
훅.
“그럼요~”
대답은 눈앞의 파진성이 아닌 등 뒤에서 들려왔다. 소리 없이 다가선 것은 물론 공손수였다.
“외려 상황이 꼬인 덕에… 드디어 ‘우리’도 겨우겨우 비룡대 짬밥 먹은 값을 할 기회가 온 것 같은데요~”
“…뭐야, 쥐방울 너도냐?”
“당연하죠. 그럼 공을 세워 떡상할 기회를 혼자 독차지할 생각이었어요, 이 바다원숭이야?”
다시, 이벽은 생각했다.
두 사람은 충분히 강하다.
애당초 두 사람이 비무회에 나설 것을 고려하지 않았던 건, 정도맹의 후기지수들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검존의 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적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최소한… 두 사람이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리였다.
“…허헛! 허허헛!”
그때, 검존이 웃음을 흘렸다.
“그래, 내 이리 뜻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낙검신룡과의 동맹을 받아들인 덕을 톡톡히도 보게 되는구먼!”
노인의 주름 진 시선이.
파진성과 공손수를 향했다.
“그럼… 부탁 좀 해도 되겠나?”
“……!”
그리고.
천하십대고수, 검존이자 정도맹의 주인이며 무당의 장문인인 태허진인은 까마득한 사파의 후기지수들을 향해 ‘부탁’이란 말을 입에 담았다.
“케헤… 에헤헤, 에헤헤헤헤!”
슥, 파진성이 코밑을 쓸었다.
“됐냐? 지금 네 위대한 사부님 말씀 잘 들었지? 그렇게 됐으니 송영영, 몸이나 풀고 있어라! 케헤헤!”
“…멍청이들이.”
일순 파진성과 공손수를 바라보는 송영영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야지. 목숨이 여러 개야? 어딜 함부로 나서는 거야?”
“어머, 걱정해주는 거예요?”
“흥. 헛소리하지 마.”
휙, 송영영이 단호하게 돌아섰다. 흘끔, 허나 이내 세 걸음도 떼기 전에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다.
“…죽을 것 같으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바로 내려와. 알겠지? 멍청하게 버티고 있지 말고.”
“네, 알았어요~”
“방심하다 일섬룡처럼 배에 구멍 뚫려서 내장이나 흘리지 말고. 그때 가서 울고 보채도―”
“아… 알겠다니까요 소저?”
“흥.”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즈음이었다.
“헉, 허억! 헉!”
마침내 잦아들기 시작한 굉음과 함께 비무대 위에서는 덕수가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어떻게든 강기를 쥐어 짜내어 나한십팔권을 펼쳤고, 그를 통해 잠깐이나마 남궁환을 수세로 몰아붙일 수 있었다.
허나.
마침내 단전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더는 지친 기색을 숨길 수조차 없게 되었다.
우우웅.
이내 덕수의 어깨 위로 맺힌 황금빛 팔의 그림자들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하핫! 끝이냐 땡중?! 어차피 목이 잘려 뒈질 것을 마지막까지 성가시게 하는구나!”
남궁환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애당초 남궁환은 덕수의 수준으로는 이처럼 강기를 남발하는 초식을 그리 오랫동안 펼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리하게 파고들기보다는 잠자코 수세를 취해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이만 불경이나 읊거라! 크핫!”
후우욱.
그리고 마침내.
산산이 흩어져버린 나한십팔권의 잔상을 가르며 검을 내뻗었다. 물론, 그 위로는 서슬퍼런 강기가 맺혀있었다.
후우욱.
덕수 또한 무너질 것 같은 몸을 추스르며 마주 장을 내뻗었다. 허나 그 위로는 더는 강기가 맺혀있지 않았다.
강기가 맺힌 검과 맨손.
충돌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아미타불.’
덕수는 최후를 직감했다.
콰아아아아아앙.
“…크윽?!”
허나 다음 순간.
검끝에 와닿은 감각은 남궁환이 기대하던 살과 뼈를 가르는 감각이 아니었으며.
외려 충만한 내력에서 비롯된 상상 이상의 반발력이 검끝을 타고 돌아왔다.
타앙.
“케헤헤!”
“……!”
또한 덕수의 눈이 흔들렸다.
난데없이 머리 위에서 날아든 인영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고, 남궁환의 검을 너무 쉽게 막아낸 것이다.
처음에는 우학이라 생각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허나 이내 덕수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우학은 저만치에서 모용양과 검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눈의 착각이 아니라면, 자신의 눈앞을 가로막은 인영은… 검을 왼손에 쥐고 있었다.
“케헤헤, 잘 지냈냐 달걀대가리? 제법 근성이 생겼구만. 어때, 그간 고기 맛에는 눈을 좀 떴냐?”
“……!”
인영이 목소리를 내었다.
물론, 정체는 파진성이었다.
“좌우간에 이걸로… 옛날에 너희 절간에서 닭 한 마리 서리한 값은 치른 거다. 케헤헤!”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호홋! 조금 전의 기세는 모두 어디로 갔나요? 생긴 건 무슨 찌그러진 주전자처럼 흉측하게 생겨가지고… 영 힘을 못 쓰는군요?!”
“…핫, 다 좋은데 외모 비하는 하지 말라고. 도인이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고.”
한편, 우학은 모용양에 의해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물론, 본래대로라면 모용양은 우학의 상대가 아니었다. 허나.
조금 전, 남궁환의 일격으로 몸에 스민 경직이 채 가시기도 전 우학은 모용양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콰아아아앙.
물론.
상대가 약해진 틈을 놓치지 않는 것 역시 엄연한 싸움의 일환이었므로 불평할 수는 없다.
콰아아아아앙.
침착하게 검을 내뻗으며, 우학은 서서히 회복을 꿰했다. 허나 그로 인해 덕수를 돕기는커녕 살필 여력조차 낼 수 없었다.
“오호홋, 오호호홋!”
허나 물론 그 또한.
모용양의 노림수일 터였다.
“…돌겠네.”
훅, 쐐애액.
허나 그때였다.
“……?!”
두 사람은 일제히 무언가가 날아드는 기척을 감지했다. 훅, 모용양이 황급히 몸을 뺐다.
콰아아아아앙.
이내 한 자루의 비수가 바로 직전까지 모용양이 딛고 서 있던 비무대 위로 틀어박혔다.
“……!”
자루를 제외한 검신이.
통째로 깊숙이 틀어박혔다. 물론, 강기가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결과임에는 분명했다.
“이야, 역시 모용세가~ 썩어도 준치라고 변방의 제일검가라 불리는 이름값은 하네요?”
탓, 공손수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우학을 돌아보았다.
“소협, 수고했어요. 뒤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이만 내려가서 운기하세요~”
“……!”
그 순간, 우학은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난입한 여인의 정확한 소속을 알지는 못하나 아군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강하다.
“헉, 허억! 뉘신진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살았수다! 후우, 근데요 소저, 난 아직 더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호흡을 가다듬는 한편.
씨익, 우학은 웃음을 보였다.
어차피 이 비무는 일 대 일 따위가 아니다. 고로 싸울 여력이 있는 한 남아서 힘을 보태는 편이 이로운 것이다.
물론, 자신과는 달리 무리한 내력을 소모한 덕수는 이만 내려가는 편이 이로울―
“…헉! 덕수 스님!”
그제서야 덕수에게 생각이 미친 우학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케헤헤헤!”
자신과 마찬가지로.
소속을 알 수 없는 검수의 난입에 의해 목숨을 구명 받은 듯한 덕수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저희’라고 했잖아요?”
다시, 공손수가 말했다.
“도움은 마음만 받을 테니 이만 내려가세요, 소협~ 솔직히, 저희한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러는 거거든요?”
“…….”
“그리고… 고작해야 ‘비무’ 따위에 일섬룡 소협처럼 힘이 다할 때까지 싸울 필요는 없잖아요?”
“…핫.”
이내 우학은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물론, 비무는 비무일 뿐, 진짜 싸움은 ‘이다음’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무리해서 목숨을 던져.
짐 더미가 될 필요는 없다.
“…네, 뭐. 잘 알겠수다. 좌우간에 이 은혜는 언젠가 살아서 갚을 수 있으면 좋겠구만.”
꾸벅.
이내 두 사람에게 감사의 목례를 취한 우학과 덕수가 비무대를 내려갔다.
그리고 그때는.
새로운 적들의 난입을 이해한 남궁환과 모용양 역시 맞은편에 나란히 선 채 두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호홋, 실례지만… 지금 올라오신 분들은 어느 무파 소속의 어떤 분들인지 여쭤도 될까요?”
“해남의 파진성이시다. 케헤헤!”
“암영각의 공손수라고 해요~”
“…….”
모용양의 미간이 흔들렸다.
물론, 그녀 또한 사패련의 주축을 이루는 몇 개인가의 세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파의 후기지수 따위가……?’
대 모용세가의 혈통인 그녀에게.
전(前) 비룡대주 낙검신룡 이벽이나 현(現) 비룡대주 겸 패왕의 후예인 소패왕 혁대웅 외 비룡대원들 따윈 경계의 대상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크아아아아아!”
허나 그때었다.
“너, 너는! 네… 네 이녀어언―!!”
돌연 남궁환이 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