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43)
351화. 파도와 그림자 (2)
파진성과 공손수가 비무대 위로 올라섰고, 각각 수세에 몰리고 있던 덕수와 우학을 구해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비무대를 떠난 뒤, 파진성과 공손수, 남궁환과 모용양은 이 대 이로 서로를 마주했다.
“크아아아아아!”
허나 그때였다.
“너, 너는! 네… 네 이녀어언―!!”
돌연 남궁환이 발작했다.
부릅떠진 붉은 눈은 지금 막 자신의 검을 쳐낸 파진성이 아닌 공손수를 향해 틀어박혀 있었다.
“이… 더러운 쥐새끼 같은 년―!! 갈기갈기 찢어 개먹이로 던져줘도 시원찮을 년!”
“…어머.”
대뜸 욕지거리를 뱉었다.
공손수가 짐짓 놀란 얼굴을 했다.
“남궁 소협, 그 옛날 일을 아직까지 담아두고 계셨나 보네요? 사실 저는 지금 이 순간까지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쥐방울, 무슨 얘기 하는 거냐?”
파진성이 물었다.
“파 소협, 기억 안 나요? 예전에 우리… 객잔에서 남궁세가랑 모용세가의 무인들한테 무더기로 둘러싸였던 적이 있잖아요? 그때 저 남궁 소협이 ‘인질이 되어준 덕’에 무사히 벗어났었죠.”
공손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결과적으론 병상에 누워있던 언니가 저 남궁세가의 무인들한테 납치당하긴 했지만요.”
“…케케, 그런 일이 있었던가?”
“왜, 그때 송 소저가 술에 취해서… 하마터면 남궁 소협, 진짜로 골로 갈 뻔했었잖아요.”
공손수의 입꼬리가 호를 그었다.
“하긴 뭐, 지금 이 상황을 생각하니 그때 그냥 죽게 놔뒀어도 괜찮았을 것 같긴 하네요~”
남궁환과 모용양을 앞에 두고도.
두 사람의 목소리는 평상시의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나누듯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크… 으아아아아―!!”
남궁환이 재차 기함했다.
“각오해라, 이년! 네년만큼은 기필코… 살아서 이 비무대를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마라!”
“자, 잠깐만요! 가가!”
남궁환이 그 즉시 땅을 박차려 했다. 허나 그때 모용양이 서둘러 팔을 뻗어 막아섰다.
“가가… 침착하게! 알죠? 위대한 성취에는 그만한 인내가 따르는 법이에요. 가가는 이미 옛날의 남궁환이 아니잖아요?”
“……!”
남궁환의 눈이 흔들렸다.
“크… 크으으!”
으드득.
이내 이를 악물며 분을 삭였다.
바로 조금 전, 방심한 끝에 일섬룡 창성 따위에게 고전하는 꼴을 보이고 말았다.
또한 무엇보다도.
지금 막 자신의 검을 쳐낸 저 거무죽죽한 잡놈의 일검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홋, 오호홋!”
그 틈에 모용양이 얼른 나섰다.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실례지만요. 좀… 우습군요! 우리 정파무림의 오룡삼봉이 검을 나누는데… 이름도 없는 사파의 후기지수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아닌 것 같지 않나요?”
하아,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네요. 정도맹에게도 실망이에요. 고작 이 정도가 준비된 후기지수들의 전부인가요? 무엇보다 오룡이 모두 모였는데 대체 삼봉은 뭘 하고 있는 건가요?”
기실 이 자리에는.
당가의 잠영난봉 당려옥이나 아미의 금광선봉 정연화는 함께하고 있지 않았다.
단 한 명.
태극무봉 송영영만이 절정을 넘어서는 성취를 갖춘 채 정도맹 측의 젊은 여고수를 대표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족하나마 모용가의 여식으로서 이름 높은 태극무봉을 제 손으로 베기 위해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듣도 보도 못한 사파의 잡어들께서 올라오니, 솔직히 김이 새는 기분이군요.”
이어 모용양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허나 물론, 그녀 역시 진심으로 눈앞의 두 사람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전의 한 수를 보고도.
상대를 얕잡아볼 만큼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외려 충분히 경계를 기울이고 있기에 몇 마디 말로 하여금 상대의 평정심을 자극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분명,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녀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이 어떤 경험을 거쳐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쥐방울, 쟤 누군지 아냐?”
파진성이 모용양을 가리켰다.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피차 듣보잡인 건 마찬가지면서… 말하는 건 무슨 자기는 은근슬쩍 삼봉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올려치네?”
“…뭐, 뭐라구요?”
모용양의 안색이 흔들렸다.
훗, 공손수가 마주 웃었다.
물론, 모용양이 자신들의 분노를 건드리려 하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허나 그것은.
공손수에게 있어서는 가소롭다 못해 귀여운 수준이었다. 파진성조차 그 정도의 도발에 넘어갈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저기… 모용 소저?”
다시 공손수가 말했다.
“저야말로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한데… 소저는 저희한테 감사하셔야 해요~”
“…무슨 말이죠?”
“만약에 저희가 아니고 송 소저가 먼저 나왔으면… 소저는 대화를 시도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그대로 목구멍 안에서 현묘한 태극의 묘리가 펼쳐졌을 테니까요.”
휘리릭, 덥석.
공손수가 비수를 던졌다 받았다.
“아 물론, 저희라고 해서 순순히 살려 보내드리겠단 뜻은 아니니까 너무 안심하지는 마시구요~”
“…큿!”
모용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기실 그녀는 스스로 모용세가의 낭중지추라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오 년 전, 비룡대원이 된 이래.
흑천방, 녹림, 혈교의 잔당들을 소탕하며 잔뼈를 쌓아온 공손수의 경험치는 명문세가의 여식으로 살아온 그녀가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닌 것이다.
“…홋, 오호홋!”
그럼에도 모용양은 간신히 웃는 얼굴을 되찾았다. 어떻게든 몇 마디를 더 쏘아붙이려 했다.
“커흠, 케헤헤!”
허나 그때 파진성이 나섰다.
“이봐, 거기 소저? 보아하니 칼싸움하기 전에 먼저 혓바닥으로 한판 붙고 싶은 모양인데… 자신 있어? 앙?”
낼름, 파진성이 입술을 핥았다.
흠칫, 모용양의 말문이 막혔다.
“어디 그럼… 비린내 나는 해남부두의 뒷골목 홍등가 진창바닥 느낌으로다가 혀 대 혀로 한번 질펀하게 뒤엉켜볼 테냐? 케헤헤, 으헤헤헤!”
파진성의 오른손이 무언가를 움켜쥐듯 허공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힉.”
모용양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퍼어억.
공손수가 파진성을 걷어찼다.
“파 소협, 적당히 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지금 건 너무 더럽잖아요?”
“케헤헤…….”
파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해요, 모용 소저.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가 사파라서… 언행에 좀 근본이 없거든요~”
꾸벅, 공손수가 고개를 숙였다.
“…흥, 정말이지 천박하고 추악하기 짝이 없군요! 이래서 사파와는 하늘 아래 상종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데!”
질색한 모용양이 쏘아붙였다.
그러자 그 순간, 말문이 막힌 공손수와 파진성이 잠시 서로를 돌아보았다.
“…핫, 아하하핫!”
“푸핫, 케헤헤헤헤!”
다음 순간,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허리를 굽힌 채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가 우스운―?!”
“아핫, 아하하핫…! 아니, 소저? 우리는 분명 사파지만요. 소저… 마교도 아녜요?”
“……!”
“케헤헤! 그야말로 똥 처먹는 똥개가 흙 묻은 개한테 더럽다고 나무라는 꼴 아니냐? 으헤헤헤!”
모용양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허나 쏘아붙일 말을 찾지 못했다.
“크흠! 흠흠, 소저, 다 좋은데요. 명문세가의 금지옥엽인지, 아니면 얼떨결에 집안에 묶여 마교에 투신해버린 천하의 멍청한 계집인지… 둘 중 하나로 노선을 확실하게 정해주지 않을래요~?”
다시 공손수가 말을 받았다.
“크… 으으으!”
모용양이 이를 악물었다. 그것은 분명, 그녀가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진실의 단면이기도 했다.
울컥, 분노가 치솟았다.
기실 마공으로 말미암아 감정의 조절이 어려워진 것은 남궁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타아앙.
“이… 천박한 계집―!!”
그리고 이내.
충동을 못 이긴 모용양이 땅을 박찼다. 검붉은 강기와 함께 공손수를 향해 쇄도했다.
타앙.
“자, 잠깐! 소저어―!”
외려 당황한 남궁환이 외쳤다. 그제야 땅을 박차며 부랴부랴 모용양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서로를 자극함으로써 우위를 점하고자 했던 신경전은 명백한 공손수의 승리로 돌아갔다.
* * *
슥.
공손수는 자세를 낮추었다.
격분하여 달려드는 모용양과 그를 따라 함께 날아드는 남궁환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기세는 위협적이었으나.
정돈되지 않은 돌격이었다. 고로 어떻게 맞서야 할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또한 물론.
자신 혼자서 할 일은 아니었다.
흘끗.
공손수는 파진성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때에는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파진성 또한 이미 공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식.
두 사람은 마주 웃었다.
남궁세가, 그리고 모용세가.
상대는 뿌리 깊은 정도세가들 중에서도 천하제일검가를 다투던 명맥을 이은 한 쌍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설마 자신들이 그와 검을 맞대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물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허나 물론, 두려울 이유는 없다.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타아앙.
“케헤헤헤!”
이내 파진성이 날아올랐다.
어느덧 일 장 안쪽으로 다가선 두 사람을 향해 마주 쇄도하며 좌수의 검을 종횡으로 긋기 시작했다.
후우욱.
“니들이 해남의 파도를 알아?!”
그리고 겹겹이 쌓인 검로는.
격자 모양의 강기를 형성했다.
쐐애애애액.
이내 파도처럼 일렁이며 남궁환과 모용양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청해십이검, 파랑격쇄의 초식이었다.
“……!”
남궁환의 눈이 흔들렸다.
모용양 또한 마찬가지였다.
촘촘하게 엮인 채 밀려드는 강기의 노도와 같은 기세는 이성을 사로잡은 분노를 차갑게 식히기에 충분했다.
타앙.
남궁환과 모용양이 재빨리 제자리에 걸음을 멈춰 섰다. 허나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적당히 걷어낼 만한 초식 또한 아니다. 고로 한순간, 방어에 전념해야 함을 직감했다.
우웅. 카아아아앙.
“하아아압―!!”
이내 두 자루의 검이 뻗어졌다.
콰아아아아앙.
“…크!”
모용양은 입술을 깨물었다.
격자를 이루는 선 하나를 걷어낸 순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가 어깨를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하! 이까짓 것!”
반면 남궁환은 대연검법을 펼쳤다. 격자를 그물로, 촘촘함은 촘촘함으로 걷어내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이내 모용양 또한 분전했다.
분명 위력적인 한 수지만, 이와 같이 무거운 초식을 연달아 몇 번이고 펼쳐낼 수는 없을 터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남궁과 모용의 검이 교차했다.
찰나의 침착한 대처 끝에, 이내 밀물처럼 밀려들던 강기가 두 사람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마침내 파도는 끝을 드러냈다.
“핫! 제법 한 수가 있다만… 그래 봤자다! 제왕의 무게를 네놈들 사파 따위가 어찌 감히 따라오겠느냐!”
이내 남궁환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대로 땅을 박차며 허공의 파진성을 역습하려 했다. 허나.
훅.
“실례할게요~”
바로 그 순간.
남궁환과 모용양은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림자와 같은 기척이 두 사람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으스스.
“…헉!”
모용양은 숨을 삼켰다.
오한을 느낌과 동시에 직감했다.
밀려드는 파도는 분명 끝이 났다. 허나 그 그림자가… 썰물이 되어 다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후욱.
이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비수를 직감했으나, 모용양은 그 속도 앞에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었다.
훅. 콰아아아아앙.
허나 다행히도.
모용양의 목은 떨어지지 않았다.
“뭘 하는 거요, 소저?! 정신 차리시오!”
그 순간, 파진성의 추격을 포기한 남궁환의 검이 잽싸게 비수를 튕겨낸 것이다.
터어엉.
또한 남궁세가의 중검이 파고드는 순간, 공손수는 그대로 미련 없이 몸에 힘을 뺐다.
후욱.
이내 한껏 밀려난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한 뒤, 일 장 바깥의 배후에 가볍게 착지했다.
“아야야야…….”
공손수가 손을 내저었다.
은밀함, 그리고 진퇴의 자유로움은 암영각의 주특기이지만, 그럼에도 제왕의 검을 마주한 손에 적잖은 충격이 감돌았던 것이다.
“케헤헤. 괜찮냐, 쥐방울?”
“그럼요~ 그냥 좀 시큰하네요~”
그리고 그때는 이미 저만치 반대편에 착지를 마친 파진성이 목소리를 내었다.
“…….”
전방의 파진성.
배후의 공손수.
자신들의 앞뒤를 점한 두 사람을 번갈아 돌아보는 남궁환의 표정이 다시금 딱딱해졌다.
부르르르.
검을 쥔 팔이 잘게 흔들렸다.
전방의 잡놈을 추격하려던 찰나, 모용양의 위기를 감지하고 급격하게 검로를 틀었다.
그럼에도 하마터면.
모용양을 잃을 뻔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저 찢어 죽일 계집의 속도는 조금 전 상대했던 청성의 청풍룡 우학보다도 오히려 앞서 있었다.
물론, 공손수의 비수가 그 우학의 스승인 공능자에게도 상처를 입힌 적이 있음을 남궁환이 알 수는 없었다.
“고, 고마워요, 가가…….”
그때 모용양이 말했다.
“소녀의 목숨을 구해주셨군요. 가가가 아니었더라면 전…….”
“뭘 멍청한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요?!”
버럭, 남궁환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