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65)
373화. 예상 밖의 정체 (1)
후우욱, 후욱.
검과 주먹이 교차했다.
태극과 태극이 맞물렸다.
공수를 주고받는 검존과 권왕의 유려한 동작은 놀랄 만큼 서로를 닮아있었으며.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생사를 건 싸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합이 완벽하게 짜여진 안무와 같았다.
후우우욱, 스륵.
쉴 새 없는 공격이 서로를 향해 내뻗어졌으나 그저 간간이 옷자락 소리만이 스칠 뿐, 별다른 충돌음조차 일지 않았다.
허나 고요하다고 해서.
치열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후우우우욱.
태극과 태극의 교접 속에서.
힘은 서로를 향해 되돌아가기를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그 크기를 거듭 부풀렸다.
스르륵.
권왕은 이미 주먹을 쥘 수 없을 만큼 뭉개진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며 검존의 공격을 번번이 흘려내었다.
후욱.
나아가서는 흡수한 충격을.
왼손에 모아 도로 내뻗었다.
두 팔이 어깨를 따라 하나의 물줄기처럼 힘을 주고받는 일련의 동작은 그야말로 태극의 정수였다.
사라락.
허나 물론.
검존 또한 밀릴 이유는 없었다.
기실 조금 전에는 ‘의외의 한 수’에 허를 찔렸을 뿐, 무당의 지존이 태극의 묘리에 빈틈을 내놓을 리 만무한 것이다.
허나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접전이 지속되면서도 두 절대자는 서로에게 제대로 된 충격을 주지 못했다.
타아아아앙.
다만.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태극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다고 하더라도.
태극과 함께한 검존의 세월을.
권왕은 그리 쉽게 따라잡을 순 없었으며, 일대를 감싼 태극혜검의 영역 또한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었다.
타아앙, 우드드득.
그와 같은 차이는.
권왕에게 찰나의 빈틈을 만들었으며, 그러한 빈틈은 다시 권왕으로 하여금 가랑비와 같은 충격에 젖어 들게 했다.
따라서.
이러한 접전이 반복된다면, 설령 몇 날 며칠의 시간이 걸린다 한들 결국 승기는 검존을 향하게 될 터였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허나.
으스스.
‘…도대체가.’
지금 이 순간.
외려 검존은 서늘함을 느꼈다.
합을 거듭할수록 놈의 태극은 더더욱 정교해졌고, 자신과의 차이는 빠르게 좁혀들었다.
그것은 마치.
정면으로 마주한 채 상대하고 있음에도, 놈에게 등 뒤를 쫓기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수십 년의 격차가.
고작해야 몇 번의 주먹질에 성큼성큼 좁혀들어간다. 그리고 이대로 간다면 따라잡히는 것조차―
후욱.
허나 그때였다.
검존이 주춤하는 찰나의 순간, 또 한 자루의 검이 주먹의 경로를 가로막으며 원을 그었다.
사라락.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일엽유검(一葉柔劍).
원은 이내 비스듬한 타원이 되었고, 권왕의 주먹에 담긴 힘을 받아들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즉시 권왕을 향해 기울어졌다.
태극 간의 접전 속에 누적된 힘이 벼락처럼 쏟아지며 권왕의 주변을 무겁게 두드렸다.
휘청.
권왕의 몸이 흔들렸다.
“…….”
허나 그것은.
충격으로 인함이 아니라, 외려 ‘충격을 흘려내는 동작’임을 이벽과 검존 모두 알고 있었다.
“검치, 아니면… 선우벽 네 자신의 태극에 대한 재해석인가? 조잡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군.”
권왕이 이벽을 보며 웃었다.
후욱.
이벽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검을 뻗었다.
후우욱, 스륵.
그리고 다시, 세 사람 사이로 두 자루의 검과 두 개의 팔이 교차하며 퍽 고요한 접전이 이어졌다.
후우욱, 스윽, 콰아아아아앙.
‘이대로는… 곤란하다.’
허나 이벽은 직감했다.
물론, 태극의 교차 속에서.
권왕에게 제대로 된 충격을 가하지 못하는 만큼 이벽과 검존 또한 별다른 충격을 입지는 않고 있었다.
허나 문제는.
‘단순한 교착상태’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권왕은 외려 눈에 띄게 상처의 출혈이 멎으며 호흡 또한 가라앉고 있었다.
도가기공을 터득함으로써.
권왕은 진법 안에서도 내력을 회복할 수단을 얻게 되었고, 그에 따라 하늘에 달한 그 신체가 스스로 부상을 수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말인즉슨.
접전을 펼치고 있는 와중임에도 ‘가해지는 충격’이 외려 ‘회복의 속도’를 앞지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실로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권왕이 도가기공에 능숙해지는 만큼 진법의 공능 또한 그 의미를 잃게 되므로.
외려 두 사람은.
합공을 펼치고도… ‘제힘을 내지 못하는’ 권왕에게 쫓기고 있는 셈이었다.
스윽.
이벽은 검존과 시선을 부딪쳤다. 이내 두 사람은 또다시 서로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음을 이해했다.
무언가.
흐름을 바꿀 ‘변수’가 필요하다.
카아아아아앙.
그리고 이벽은.
지닌바 기예들을 헤아렸다.
등천의 경지에 이른 이래, 이벽은 마침내 청강유엽검식이 지닌 여섯 개의 묘리에 모두 ‘알맹이’를 채워 넣었으며.
거기에 창공비검을 합해.
일곱 종류의 검을 지니게 되었다.
허나 ‘진법의 영역’ 안에서는 사파의 가르침에 뿌리를 둔 적파직검이나 만월무변곡검, 혹은 패왕강검을 사용할 수 없으며.
창공비검 역시.
‘반쪽짜리 도가 무공’인 청강유엽공에 근거하는 절기이므로 제힘을 내기 어렵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애당초 현재.
이벽이 검존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한 ‘힘의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취풍쾌검의 경우 온전한 제힘을 끌어낼 수 있을지, 이벽은 내심 가늠해보았다.
사라락.
그러자 그 순간.
나뭇잎이 반응했다.
“…….”
다행히도.
매화검선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깨달음 역시, 도가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내 이벽은 판단을 마쳤다.
다시 검존과 눈빛을 교환했다. 어찌 되었건, 적의 허를 찌르기 위해선 거듭 신중해야 한다.
훅, 후우우욱.
침착하게 검을 뻗으며.
이벽은 때를 기다렸다.
스윽.
그리고 마침내.
권왕이 원을 그은 순간이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화영변검(花影變劍).
사라락.
붉은빛을 띤 꽃잎 몇 장이 흩날리며 권왕의 태극권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타아앙, 쩌저저적.
그리고 그와 동시에.
권왕의 태극에 균열이 생겼다.
타아아앙.
권왕이 그 즉시 땅을 박찼다.
신형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찰나의 역습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곧장 몸을 빼내는 그 움직임은 과연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취풍쾌검(醉風快劍).
그 또한.
이벽의 예상 범위 안이었으며, 하물며 진법의 제약에 묶인 상태의 권왕이 자신의 속도를 앞지를 수 없음은 분명했다.
타아아앙, 탕, 타아아아앙!
이벽의 발과 무릎, 허리 부근에 나무의 형상이 어른거리고 터져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쾌보의 추진력이 응축되었다.
쐐애애애액.
이내 쏜살처럼 거리가 좁혀졌다.
스으윽.
허나 이벽이 지척에 다다르기 직전, 권왕의 두 팔이 다시 태극을 그리며 정면을 가로막았다.
타앙, 쐐애애애액.
허나 그마저도.
이벽은 예상하고 있었다.
고로 이벽은 정면을 향해 검을 뻗지 않았다. 외려 뱀처럼 몸을 휘며 그대로 권왕의 우측을 지나쳐버렸다.
꿈틀.
“……?!”
그제서야.
권왕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후우우욱,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이벽은 권왕의 등 뒤 일 장 바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검을 휘둘렀다.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을 베었다.
콰아아아아앙.
이벽의 몸이 덜컥 흔들렸다. 취풍쾌검의 추진력이 일거에 쏟아지며 공기를 터뜨린 것이다.
쐐애애애액.
그리고 다음 순간.
충격파에 의해 이벽의 신형은 이미 정반대의 방향으로 쏘아지고 있었다.
철컥.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속도감 속에서, 이벽은 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저만치의 ‘등’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은.
권왕의 등이었다.
쐐애애애액.
또한 천하제일의 주먹이라 한들.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도 빠르게 날아드는 배후의 공격까지 막아낼 수는 없을 터였다.
후우우욱.
이내 공격 범위에 접어든 순간.
검끝이 망설임 없이 파고들었다.
* * *
“다시 말하지만 항복해주겠나?”
맹우강이 말했다.
“…다 좋은데요 맹 형.”
이내 혁대웅이 답했다.
“이대로 내가 그냥 미친놈처럼 달려들면… 결과적으로 맹 형이 나한테 맞아 죽을 공산이 크다는 거 모르진 않죠?”
“핫, 그야 물론이네. 허나 지금의 자네가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지.”
“그래요? 어째서죠?”
“글쎄, 내가 자네의 부하들 머리 위에 벼락을 떨구는 것보단 이러고 서서 세 치 혀나 놀리고 있는 게 서로에게 이롭지 않겠나?”
맹우강이 태연하게 웃었다.
“…쳇.”
혁대웅이 다시 혀를 찼다. 물론, 그로서도 맹우강을 잠시 떠본 것에 불과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발아래에서는.
본격적인 싸움이 전개되고 있었다. 허나 초조한 기색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외려 주도권을 내어주는 꼴이 될 터였다.
“뭐, 내 목숨 따윈 이제 와선 별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말일세. 그런 걸 아까워했다면 이벽에게 도전하지도 않았을 테지.”
“…….”
“중요한 건 나 개인이 아니라… 천하무림의 안위일세. 이 자리에서 무인들이 서로 피를 보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시 맹우강이 말했다.
거듭해서 ‘항복’을 권해왔다.
의혈맹주 혹은 천마, 혹은 천하제일인 황보혁 앞에 정, 사, 마의 구분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내 장담컨대 이대로 항복한다면, 자네와 자네를 따르는 사파무림의 정세는 지금까지와 거의 달라질 게 없을 걸세.”
“어째서 그렇게 되죠?”
“생각해보게. 애당초 맹주님께서 이 비무회를 마련한 것 또한… 진영 논리를 떠나 ‘차기 무림을 이끌어 갈 우수한 핏줄’을 분별해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자네는 당당히 ‘그 시험’을 통과했고 말이네.”
“아 그래요? 헌데 조금 전 내가 그 잘난 천마의 아드님 허리를 꺾어놔서… 아마 항복과 동시에 참수당할 것 같은데요.”
“그거야 황보 형님의 역량이 거기까지였을 뿐인 게지. 애석한 일이네만… 맹주님께서 그런 ‘작은 일’ 따위에 연연하실 것 같은가?”
“…….”
혁대웅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물론, 정말로 항복 권유 따위에 혹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설득하려 드는 맹우강의 태도가 퍽 진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미 죽은 목숨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또한 앞으로도 그러한 일이 없을 수는 없겠지. 그것이 무림의 본질이니 말일세.”
다시 맹우강이 말했다.
“허나 적어도… ‘흑천방’이나 ‘패왕가’와 같은 멸문지화의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
꿈틀.
혁대웅의 미간이 흔들렸다.
“…아하하.”
허나 이내 곧 웃음을 지었다.
“듣다 보니까 꽤 그럴싸하네요. 헌데… 맹 형과 우리집을 풍비박산 낸 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빌어먹을 혈교 놈들이잖아요?”
“그야 그렇다만.”
“그런 주제에 평화 운운하면서 마교에 투항을 권유하는 게… 좀 우습지 않아요?”
“…….”
맹우강이 잠시 침묵했다.
이내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이벽에게도 비슷한 얘길 들었네만… 내게는 외려 그 말이 이상하게 느껴지는군. 자네들은 왜 혈교놈들과 우리들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지?”
“…뭐라고요?”
“그야 혈교가 마교의 한 지파로 흡수되었다는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네만, 그건 말 그대로 백 년도 더 지난 옛날이야기이지 않나?”
“…….”
“우리는 중원을 침공했던 ‘그 마교’가 아니고, 또한 사파무림을 어지럽혔던 혈마는 이미 이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네.”
“…잠깐, 잠깐만요. 맹 형.”
그 순간.
혁대웅은 말을 끊었다.
그저 시간을 벌어 감춰둔 기예를 끌어올린 뒤, 맹우강의 빈틈을 노려 쓰러뜨리고자 했다.
허나 돌연.
맹우강과 자신 사이에는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무언가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것은.
흘려들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왜 시치미를 떼고 있어요? 당가를 쳤던 그 뱀 괴물 자식… 당신네 우두머리들 중 하나잖아요?”
“…….”
혈마는 ‘한 명’이 아니다.
기실 사패련에서 암중모략을 꾸미던 혈마는 이벽이 아닌 이진천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또한 당가에서 이벽, 그리고 독왕과 함께 혈전을 벌였던 ‘또 한 명의 혈마’는 스승 이진천을 해쳤던 바로 그 원흉이기도 했다.
“그래요. 말 나온 김에… 그 괴물 지금 어딨어요? 혹시 독왕의 독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미 뒈져버렸나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상세히는 모르겠네만. 물론, 혈교놈들의 뿌리가 완전히 뽑히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네.”
다시 맹우강이 말했다.
“이봐요 맹 형. 지금 무슨―”
“혁대웅. 자네가 정확히 무슨 일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와는 결이 다른 이들이야.”
“……!”
혁대웅의 눈이 흔들렸다.
“자네가 말하는 ‘그자’들이 정말로 우리 편이라면… 이 판국에 이르러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건 이상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