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64)
372화. 태극과 태극 (2)
“…쳇, 짜증 나게.”
혁대웅이 혀를 찼다.
“핫, 어떤가?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대화라도 좀 나눠보는 게? 그래도 한때는 사패련의 미래를 함께 짊어지던 사이가 아닌가?”
맹우강이 말을 받았다.
현재, 두 사람은 만류일원진으로 닫혀버린 비무대 바깥의 공중에서 이 장 가량의 거리를 둔 채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카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발아래로는.
마침내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각 진영의 대표들을 선두로 한 싸움의 양상은 퍽 팽팽했다. 온갖 기예가 빗발치며 서로를 상쇄하고 뒤덮기를 반복했다.
허나 혁대웅은 생각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싸움이 길어질수록, 목천의 경지를 넘어선 초절정고수의 머릿수가 적은 아군 측이 불리해질 공산이 크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혁대웅 자기 자신뿐이었다.
파지지지직.
그러나 동시에 자신은.
비무대에서 기어코 목숨을 건진 맹우강의 밧줄과 같은 뇌기에 기습적으로 움직임을 구속당하고 말았다.
“…….”
떨쳐내는 것은 간단하다.
하물며 이벽에 의해 이미 만신창이가 된 맹우강을 쓰러뜨리는 것 또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터였다. 허나.
등천의 절대고수란.
말 그대로 ‘비대칭전력’이다.
맹우강이 작정하고 거듭 자신의 발목을 붙들며 사방으로 벼락을 쏟아내기 시작한다면.
어떻게든 뒤를 쫓아 목을 쳐낸다 한들, 그 시점까지 아군에 미칠 피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터였다.
“혁대웅, 내 얘길 들어준다면…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저 아래의 ‘무의미한 싸움’을 여기서 멈출 수도 있다만.”
다시 맹우강이 말했다.
“하아.”
혁대웅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제인 이벽이라면, 가지고 있는 여러 기예들을 통해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터였다.
허나 자신은 다르다.
일 대 일의 싸움이 아닌 전장에서는, 창 한 자루가 지닌 힘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고로 이 순간.
떠오르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허나 그것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온전히 체득하지 못한 불완전한 기예였다.
철컥.
이내 혁대웅이 창을 거두었다. 동시에 그 등 뒤에 맺힌 물레바퀴의 형상 또한 서서히 흩어졌다.
“핫, 역시 현명한 선택이로군. 그럴 거라 생각은 했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피가 흐르는 것을 싫어하잖나? 예전에도―”
“추억팔이는 나중에 하시구요.”
혁대웅이 말을 끊었다.
“대화라… 뭐, 그래요. 이 판국에 대체 무슨 할 말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 그렇다면야 들어는 보죠.”
“하핫, 그거 고맙군.”
맹우강이 재차 웃었다.
“이만 항복하는 게 어떤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맹 형, 나 열받게 하지 마요. 진짜로 손발이 묶여서 잠자코 있는 게 아니란 건 알죠?”
“그야 이를 말이겠나?”
맹우강이 어깨를 으쓱했다.
“허나 잘 생각해보게. 어쩌면… 우리가 서로 싸울 이유 따윈 없네. 왜냐하면 입장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일세.”
“그게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죠?”
“자네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 이상의 무의미한 피가 흐르는 일은 가급적 막고 싶네. 그게 적이건 아군이건 말일세.”
“…….”
혁대웅은 잠시 침묵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의 맹우강은 재능과 오만함, 그리고 호전성을 겸비한 사파의 후기지수였다.
최소한.
이처럼 진지한 얼굴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입에 담을 위인은 아니었다.
“…뭐, 그래요. 피가 싫어서 마교도가 되셨다 이거군요? 맹 형, 이제 보니 온전한 정신이 아니군요. 하긴 뭐, 마공이란 게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건―”
“아, 나는 마공을 익히지 않았네.”
“…뭐라구요?”
“자세히 얘기하자면 꽤 길어지네만, 천축에서 참된 스승을 만나 흑천방의 뿌리를 찾았고, 또한 그분으로부터 불법(佛法)을 이었다네.”
“…….”
“뭐, 믿고 말고는 자네의 자유지만 말일세. 하핫!”
맹우강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말을 이었다.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맹우강은 무림의 피바람을 막고자 다시 중원으로 돌아왔으나, 물론 한 명의 힘만으로는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고로 맹우강은 ‘선택’을 내렸다.
“전쟁을 막을 수 없다면, 하다못해 흐르는 피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법은…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힘’을 지녀버리면 되는 걸세. 그렇지 않나?”
“…….”
“그러니 나는 ‘반드시 이기는 쪽’을 골랐을 뿐이네. 뭐, 내 아버지를 쓰러뜨린 이벽을 넘어선다는 개인적인 목표도 있었지만… 그건 무리였던 것 같군.”
찰나의 쓴웃음이 스쳤다.
흘끗, 등 뒤를 돌아보았다.
“좌우간 비무대를 감싼 저 안개의 정체가 무엇인진 잘 모르겠지만… 상황이 조금 꼬였을 뿐, 결국 달라질 건 없네. 권왕께서는 ‘절대로’ 패배하지 않으니까. 자네도 겪어보지 않았나?”
당연하다는 듯.
맹우강은 결론을 내렸다.
“…….”
허나 혁대웅은 최소한 ‘권왕을 향한 그 믿음’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 전.
비무대를 벗어나기에 앞서, 자신을 향해 뻗어졌던 권왕의 ‘일 권’을 떠올렸다.
전력을 다한다 해도 그 주먹과 동수 이상을 이룰 수 있을지, 혁대웅은 쉬이 자신할 수 없었다.
허나 동시에.
그와 같은 주먹이 권왕에게는 그저 ‘보통의 일격’에 불과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아.”
혁대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호흡이 몸 안에서 순환하며 서서히 소리 없는 움직임을 만들어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크, 크아아악―!!”
“뭘 하는 게냐! 정신을 놓지 말아라―!! 진형을 유지하되 중상을 입은 이는 후방으로 물러서라―!!”
발아래에서는 본격적인 격전의 소음이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허나 마음을 조급하게 먹어선 안 된다.
어쨌거나.
맹우강이 늘어놓고 있는 말들의 진위 여부와는 관계없이, ‘미완성의 기예’는 발동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고로 혁대웅 또한 이 당혹스런 대화를 조금 더 끌고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뭐, 맹 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는데요. 진심으로… 그쪽이 이기면 중원 땅에 평화가 찾아올 거라 생각해요?”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돌아오는 대답은 태연했다.
“피는 전쟁이 있으니 흐르는 것이지. 누가 되었건 확고한 위계질서만 잡힌다면… 결국 그것이 무림 안팎의 모든 이들을 위한 태평성대가 아니겠나?”
“…그래서 그게 마교라도요?”
“핫, 꽤나 새삼스러운 이야기로군. ‘힘이 있는 자’가 질서를 주도한다. 애당초 그게 우리 사파의 논리잖나?”
“…….”
“자네들은… 우리 맹주님에 대해 적잖은 오해를 하고 있네. 뭐, ‘천마’란 이름이 과거 중원에 남긴 상흔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네만.”
핫, 맹우강이 다시 웃었다.
“천마란 그저 따라붙는 하나의 상징일 뿐, 그분 앞에서는 더 이상 정, 사, 마의 구분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네. 왜인 줄 아나?”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아요? 그런 시답잖은 말장난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핫, 미안하지만 그냥 말장난은 아닐세. 진정한 ‘마의 주인’은… 결코 마성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네. 말하자면… 탈마(脫魔)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지.”
* * *
후욱.
이벽의 검이 원을 그었다.
권왕 황보혁의 ‘태극권’에 허를 찔린 검존을 한켠으로 밀쳐내는 한편, 대신 그 앞을 막아서며 일엽유검을 펼쳤다.
콰아아아아아앙.
이내 권왕의 주먹에 실린 힘이 다시 권왕에게로 되돌아갔다. 비틀, 주저앉은 권왕의 몸이 흔들렸다.
다행히도.
일권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일엽유검으로도 그 힘을 감히 되돌려보낼 수 없었던 조금 전의 일격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만류일원진의 공능으로 인해 권왕의 등천의 힘이 봉인된 덕분이었다. 허나.
“…….”
이벽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권왕은 검존의 태극혜검 속에서 일방적인 부상을 입었고, 마침내 만신창이가 된 채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심신의 모든 힘이 고갈된 상태에서, 돌연 태극권을 사용해 검존의 마지막 일격을 쳐내고 외려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권왕의 마지막 집념이 만들어낸 단 한 번의 행운일 수도 있다. 허나 그렇지 않다면.
마지막은커녕.
권왕과의 ‘진짜 싸움’은… 어쩌면 지금부터일 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직감이 스쳤다.
저벅.
그리고 그때였다.
권왕이 다시 일어섰다.
“…후우.”
두 발로 선 채 호흡을 뱉었다.
피칠갑을 한 그 모습은 분명 당장 쓰러져 숨이 끊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허나.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권태와 흥미가 교차하는 그 얼굴은, 조금 전 처음으로 일전을 시작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고요하게 흐르는 은연 중의 공기 속에서, 이벽은 우려하던 ‘후자의 경우’임을 서서히 이해했다.
저벅.
“도와줘서 고맙네.”
다시 그때였다.
“솔직히… 자네가 그리 다급하게 도와줘야 할 만큼 위협적이진 않았네만. 어찌 되었건 조금은 아플 뻔했군.”
다시 검존이 다가섰다.
그리고 권왕을 마주했다.
“황보혁, 거듭 놀랍게 하는군. 헌데… 네가 어찌 감히 ‘그 힘’을 쓰느냐? 대체 어디서 구결을 손에 넣은 거지?”
검존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태극권은 분명 무당에 뿌리를 두고 있되, 저잣거리에 널리 알려진 기초무공에 불과했다. 허나.
그 외형만을 어설프게 따라 했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검존의 일검을 감히 쳐낼 수 있었을 리 없다.
권왕의 손에 서린 것은.
분명한 ‘무당의 힘’이었다.
“쓰면 안 되나?”
권왕이 답했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내력의 회복이 막혔는데 너희들은 그렇지 않더군. 그렇다면 사용하는 무공의 차이에 그 이유가 있는 거겠지.”
스으윽.
권왕의 두 손이.
태극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래서 따라 했다. 그뿐이다.”
“…뭐라?”
“그만큼이나 몸으로 겪어보면 원숭이라도 능히 따라 할 수 있다. 별로 놀랄 것도 없지 않나?”
다시 손이 원을 그었고.
들숨과 날숨이 교차했다.
그리고 권왕의 손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가는 검존의 흰 눈썹이 잘게 흔들렸다.
“…허! 별 웃기지도 않는 소릴 다 듣는군. 무당의 도를… 보고 베꼈노라고? 정녕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인가? 말장난으로 시간을 벌어볼 셈이라면―”
“초식이란 그저 손발의 움직임에 불과하며, 심공이란 그저 기를 움직이는 경로에 불과하다.”
허나 권왕이 다시 말을 끊었다.
입꼬리가 비틀리듯 위를 향했다.
“사실이 그런들 어쩌겠나?”
“…….”
“그렇지 않나 선우벽? 검치의 핏줄을 이은 너라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
돌연 권왕의 시선이 이벽을 향했다. 허나 이벽 또한 할 말을 찾기는 어려웠다.
말마따나.
일엽유검은 송영영의 태극에서 착안한 기예이며, 애당초 청강유엽공 또한 도가의 형에서 파생된 무공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명.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울 뿐.
‘정말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
이내 검존은 할 말을 잃었다.
연유야 어쨌건, 현재 권왕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분명한 무당의 내공이며 또한 그 손짓에는 태극의 정수가 오롯이 녹아있었다.
그리고 무당의 제자라 한들.
이 정도의 태극을 그려낼 수 있는 이는… 제자인 송영영, 그리고 검존 자기 자신뿐이며.
설령 어딘가에서 구결이나 비급을 우연히 손에 넣었다고 한들, 그것만으론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일 수는 없다.
외려 그렇기에.
검존은 권왕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그나마 사실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직감했다.
‘…괴물. 아니, 천마인가.’
검존은 침음했다.
수세에 몰리는 도중에.
외려 적의 힘을 흡수한다.
하물며 도가의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이가, 재능과 오성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건너뛰어’ 버린 것이다.
불현듯 검존은.
개방의 취풍신개나 소림의 북두천존이 눈앞의 권왕에 의해 쓰러졌노라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렸다.
“…진인.”
이내 이벽이 입을 열었다.
“무존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소. 허나 속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안위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소.”
“…그런가?”
“그러니 지금은 어떻게든 함께 저자를 빠르게 마무리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오만.”
“알겠네. 그렇게 하지.”
검존이 답했다.
기실 이 순간, 두 사람은 같은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권왕의 태극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건.
적이 ‘도가의 힘’을 쓴다면.
진법의 공능은 의미를 잃으며.
고로 권왕에게 이 이상의 ‘새로운 무언가를 떠올릴 시간’을 줘선 안 된다.
타아앙.
그 즉시 두 개의 신형이 뻗어졌다. 약간의 시차를 둔 채 검존의 검과 이벽의 검이 쇄도했다.
우우우우웅.
“하앗―!”
검존의 태극이 울었다.
또한 태극혜검의 영역이 함께 공명하며 권왕의 일대를 조여들기 시작했다.
스윽, 콰아아아아앙.
태극의 벽이 교차하며 권왕의 몸을 스쳤다. 허나 좀 전과는 달리 권왕의 표정에는 충격을 입은 기색이 스치지 않았다.
그 신형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나 그것은 외려 태극의 흐름과 공명하며 ‘충격을 흘려내고’ 있는 몸짓이었다.
“크……!”
검존이 다시 침음했다.
타아아앙, 스윽.
다음 순간, 권왕이 쇄도했다.
충격을 흡수한 주먹이 뻗어졌다.
사라락.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일엽유검(一葉柔劍).
허나 그 사이를 틈타.
이벽의 검이 마주 뻗어졌다. 주먹의 충격을 흡수한 뒤, 다시금 권왕에게로 되돌렸다.
후우우, 콰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