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90)
398화. 해후와 정리 (1)
콰아아아아아아앙.
오가는 주먹과 주먹 속에서.
언미희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단전의 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충격에 젖은 육신이 삐그덕 대는 것조차 서서히 뇌리에서 잊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잊어버린 사실은.
더는 발목을 잡아끌지 못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권왕의 주먹에 맺힌 용권풍이 제힘을 갖추기도 전, 언미희의 주먹이 한발 먼저 그 중심을 타격했다.
그렇게.
‘천하제일의 주먹’은 채 완성되기도 전에 번번이 파훼되었고, 접전의 흐름 또한 서서히 언미희에게로 기울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섣불리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권왕의 주먹을 허용하는 순간, 전투 불능은 물론 목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다만 지극한 평정심 속에서.
언미희는 반복되는 권왕의 주먹을 착실히 읽어내었고, 합이 이어질수록 용권풍의 기세는 약해졌다.
후우우욱.
허나 그때였다.
공기가 거칠게 흔들렸다.
움찔.
언미희의 눈이 흔들렸다.
물론, 단순한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한순간, 일대를 둘러싼 기의 흐름이 거칠게 요동치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공자!’
그 순간 언미희는.
자신도 모르게 이벽을 향해 곁눈질했다. 그리고 이벽과 송영영을 둘러싼 검은 불꽃의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진 것을 목도했다.
그것은 분명.
나쁜 징조는 아니었다. 허나.
그로 인해 오롯이 권왕에게로 집중되어있던 그녀의 무아지경이 아주 잠깐 흐트러지고 말았다.
후우욱, 터어어어엉.
그리고 그 틈을 타.
언미희의 주먹이 쳐내어졌다.
“……!”
당황한 언미희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이벽을 향한 것은 말 그대로 찰나에 불과했으나.
권왕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맹공일변도의 흐름을 벗어나 손등으로 언미희의 주먹을 걷어내며 수비초식을 펼친 것이다.
‘어, 어떻게?’
허나 그 움직임은 마치 시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의 능숙한 임기응변과 같았다.
다만 어찌 되었건.
주먹은 하나가 아닌 두 개이므로, 그것뿐이었다면 흐름이 권왕에게로 넘어가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스윽.
그러나 다시 그 순간.
언미희와 권왕의 눈이 부딪혔다.
움찔.
언미희의 눈이 흔들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탁한 회잿빛으로 물들어 있던 시신의 두 눈에는 어느새 또렷한 안광이 서려 있었다.
“…….”
그리고 분명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욱.
심지어 그 순간, 권왕의 주먹이 또다시 변화를 보였다. 두 팔이 위아래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태극권의 형임을.
언미희 또한 모르지 않았다.
투우우우웅.
허나 알고 있다고 한들.
쉬이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내 태극의 기예가 완성되었고, 언미희의 일권에 담겨있던 힘이 다시 그녀에게로 되돌아왔다.
휘청.
“크윽……!”
언미희의 신형이 흔들렸다.
허나 부드러움을 다루는 기예라면 그녀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 즉시 언미희는 외강내유의 묘리를 일으켰다.
우우웅.
몸 안의 근골들이 물처럼 진동했고 충격 또한 냇물처럼 그녀를 지나 등 뒤로 흘러나갔다.
허나.
그로 인해 빈틈은 더욱 벌어지고 말았고, 이번에도 권왕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휘오오오오오오.
다시, 권왕의 주먹이 뻗어졌다.
그리고 언미희가 신형을 회복했을 때에는 이미 그 주먹의 용권풍이 형태를 완성한 이후였다.
“…….”
다만 늦었을지언정.
모든 방법이 막힌 것은 아니다.
언미희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우우우웅.
그리고 다시, 언미희의 왼손이 빛났다. 망설임 없는 주먹이 용권풍의 한가운데를 향해 뻗어졌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엉.
주먹과 주먹이 부딪혔다.
휘오오오오오.
콰드드드드득, 콰드드득.
그와 동시에 사나운 용권풍의 이빨이 언미희를 타고 올랐다. 왼팔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안쪽의 뼈가 산산조각으로 으깨어졌다.
으득, 언미희가 이를 악물었다.
아득한 격통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허나 동시에 자신의 노림수가 실패하지는 않았음을 직감했다.
우득, 우드드드득.
다음 순간.
맞부딪힌 권왕의 오른팔에서도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급기야 팔 위로.
‘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언미희의 주먹에 실려있던 발경의 묘리가 권왕의 팔을 안쪽으로부터 붕괴시킨 것이다.
쩌저저적, 쩌저적.
그리고 그 말인즉슨.
두 사람 모두 각각 하나씩 팔을 잃어버렸으므로, 싸움의 무게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후우우우욱.
“하압―!!”
허나 물론, 같은 실수를 반복할 이유는 없다. 그 즉시 언미희는 다시 오른 주먹을 내뻗었다.
허나.
그 순간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공격이 날아들고 있음에도 권왕은 다음 초식을 펼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만 권왕의 담담한 눈빛이.
다시금 언미희를 바라보았다.
“……?!”
언미희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 눈빛은 심지어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 마치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양이었다.
허나 어찌 되었건, 뻗어진 그녀의 주먹은 그 순간 이미 권왕의 지척까지 다다라있었다.
퍼어어어어어어어엉.
그리고 이내.
권왕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태산을 두드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다음 순간 권왕의 가슴이 무너져내리며 거대한 동공이 생겨버렸다.
“…….”
허나 가슴이 꿰뚫리고서도.
여전히 권왕의 담담한 눈에는 작은 파문조차 일지 않았다. 허나 그것은 역시 ‘죽은 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렇군. 언종명의 핏줄인가.”
그리고 마침내.
황보혁이 ‘입을 열었다’.
흠칫, 언미희의 어깨가 흔들렸다.
“어, 어떻게……?”
말인즉슨.
지금 이 순간, 권왕이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심지어 그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분명 세상을 떠난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안심해라. 회광반조일 뿐이니.”
훗, 권왕 황보혁이 옅게 웃었다.
그것은 천마의 씨앗에 자아를 잠식당한 지 어언 이십여 년 만에 ‘본래의 자신’을 되찾은 사내의 미소였다.
허나 어찌 되었건.
구속에서 벗어나 육신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들, 이미 한 번 죽은 몸이 소생할 수 있을 리 없다.
“…후우.”
다만 황보혁은.
간만의 바람을 만끽했다.
다시, 언미희를 향했다.
자신의 주먹을 막아선 상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파 무림맹의 해산과 의혈맹의 독립을 반대하며 자신의 곁을 떠났던 과거의 의동생을 퍽 닮아있었다.
기실 천마에게 자아를 빼앗긴 이후, 권왕이 아닌 ‘황보혁’이 진심으로 아끼던 이들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역시 나쁘지 않은… 주먹이군.”
스륵.
이내 권왕 황보혁이 눈을 감았다.
마침내 ‘유예된 죽음’이 찾아왔다.
파스스스.
몸이 아래로 추락하며.
먼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죽어서도 절대지경의 무예를 착취당한 육신은 더는 유해조차 남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 * *
사라락, 사락.
매화가 비처럼 흩날렸다.
후두둑.
존재할 리 없는 매화나무의 가지들이 서로 부대꼈고, 꽃향기는 봄 안개처럼 만천하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마치 비무대 위로 봄날의 화산을 그대로 옮겨다 심어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매화만천(梅花滿天).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제갈소미가 펼칠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의 절기였다.
사라락, 사락.
허나 그에 맞서는 이진천은.
한 장의 나뭇잎이 되어있었다.
팔랑.
천지를 가득 메운 꽃잎 사이로 한 장의 푸른 잎이 여섯 묘리를 품으며 사이사이를 거닐었다.
사라락, 후욱.
부드럽게 노닐다가도.
꽃잎 사이로 빈틈이 생기는 순간 움직임은 급변했고, 검끝이 날카롭게 뻗어져 왔다.
카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공격이 막히는 즉시.
다시금 미련 없이 몸을 빼내었다.
“…….”
제갈소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절기를 펼쳤음에도 그저 움직임을 조금 묶어두는 데 그쳤을 뿐, 여전히 수세에 처한 것은 자신이었다.
과연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이었다.
일전을 거듭할수록, 제갈소미는 스승이 이룬 기예 앞에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허나 그렇기에.
제갈소미는 위화감을 느꼈다.
기실 지니고 있는 기예를 충분히 동원한다면, 상대는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노릴 수 있을 터였다.
허나 스승의 시신은.
그저 틈틈이 치고 빠지기만을 반복할 뿐, 좀처럼 두 합 이상을 이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일부러 봐주는 거 같잖아?’
허나 물론.
상대는 거듭 시신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결국 그러한 의도를 지닌 것은 스승이 아니라 술자인 월향인 것이다.
스윽.
제갈소미는 월향을 일견했다.
그리고 다시 상황을 생각했다.
분명 이벽으로 하여금 송영영을 구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적들의 발을 묶어두고 있는 것은 자신들 쪽이라 생각했다.
허나 어쩌면.
‘발이 묶인 척’하며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은… 월향 또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쳇.”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적에게는 아무래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의도’가 더 숨겨져 있는 듯했다. 제갈소미는 혀를 찼다.
후우욱.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돌연 ‘무언가’가 일어났다.
흠칫.
“……!”
제갈소미의 눈이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 저 하늘로부터 대기가 요동쳤고 일대를 감싼 진법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후욱, 카아아아아앙.
허나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적의 검이 파고들었다. 고로 제갈소미는 고개를 들어 진원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스승의 검을 받아내는 한편, 제갈소미는 거듭 생각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체되고 있으며.
어쩌면 이대로는.
이벽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좌우간 상대가 시간을 벌고 있음을 알아챈 이상, 더는 그러한 의도에 놀아나 주어선 안 된다.
즉, 이쯤에서.
스승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또한 생각해둔 한 수는 있었다.
스승은 분명 자신보다 강하지만, 이미 죽은 목숨이기에 임기응변에 강하지 않음을 이미 확인했다.
그렇기에.
‘육참골단(肉斬骨斷).’
허를 찌름으로써.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제갈소미는 어떻게든 해낼 자신이 있었다.
카아아아아아앙.
허나 문제는 결국.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승의 시신’이며, 쓰러뜨리기 위해선 그 목을 베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조금 전, 제갈소미는 진법을 통해 시신에게서 빈틈을 만들었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허나.
목전에서 검이 흔들리고 말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때마침 혁대웅이 충격파를 쏘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 시점에서 이미 자신은 중상을 입었을 터였다.
허나 심지어는.
지금에 와서도 같은 실수를 두 번씩이나 반복하지 않을 거라 단언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있었다.
“…….”
물론.
외려 그것이 스승을 위한 길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허나 나약한 마음은 부정한다고 한들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카아아아아아앙.
그렇기에 제갈소미는.
다시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정말로 오랜 시간 누구보다 흠모하고 동경해왔던 사내의 목을 벨 수 있을지, 제갈소미는 거듭 생각했다.
부르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검을 쥔 손이 흔들렸다. 허나.
“…그래도 내가 대제자잖아.”
화아아아악.
그 순간.
매화만천의 기예가 흔들렸다.
꽃잎이 좌우로 갈라지며 제갈소미와 이진천을 잇는 한 갈래의 ‘꽃길’을 열어주었다.
타앗.
그리고 제갈소미가 땅을 박찼다. 수세를 벗어나 외려 스승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후우우욱.
화산의 보법 암향표는 걸음걸음마다 꽃을 남겼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짐과 동시에 즉시 검을 뻗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앙.
물론, 시신 또한 마주 검을 뻗었다. 검과 검이 부딪혔고 찰나의 경합이 일어났다. 허나.
콰아아아아아아앙. 태애앵.
“…큭!”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갈소미의 검이 허망하게 밀려나고 말았다. 심지어는 손에서 빠져나가 버린 매화검이 저만치에 널브러졌다.
후우우욱.
그리고.
맨손이 된 제갈소미의 우측 어깨를 향해 이진천의 검이 파고들었다.
쩌저적.
그 순간.
제갈소미는 스스로 ‘매화나무’가 되었다. 물론, 그러한 기예를 두른다고 한들 결코 무사할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팔 하나를 잃더라도.
목숨을 건지기 위함이었다.
스윽.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갈소미의 왼팔이 뻗어졌다. 소매 안쪽에서 ‘비도 한 자루’가 소리 없이 흘러나왔다.
스르륵.
물결을 타고 나아가는 꽃처럼.
이진천의 목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것은 그녀가 이진천에게 거둬지기도 이전부터 스스로를 지켜왔던 제갈세가의 기예, 소리비도(小莉飛刀)였다.
스르르륵.
한 송이 이질적인 꽃이.
만개한 매화 속을 나아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도신은 이미 이진천의 목 앞에 이르러 있었다. 제갈소미는 가급적 시신의 눈을 마주하지 않으려 했다.
허나.
“소…미야?”
움찔.
그 순간, 시신이 말했다.
제갈소미는 자신이 또다시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던 비도가 거짓말처럼 멈추고 말았다.
탱그랑.
그 즉시 땅에 떨어졌다.
“…아, 개같이 못 해먹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