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산적토벌 (4)
“타합!!”
“크아압!!!”
촌민들 사이에서 뛰쳐나온 적은 총 아홉 명.
하나하나의 기세 역시 결코 녹록지 않다. 앞서 상대했던 우두머리 사내와 비교해도 못지않았다.
아니, 애시당초 그 사내는 우두머리가 아니었던 모양.
타앗!
찰나의 순간, 일행들은 산개했다. 어림잡아도 각자 두 명 이상을 상대해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마당 위에는 수십 이상의 촌민들이 줄에 묶인 채 어쩌지도 못하고 떨고만 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켜야 한다.’
철컥, 이벽은 검을 잡았다.
단걸음에 거리를 좁히며 적에게로 쇄도했다. 가능한 한 빠르게 머릿수를 줄이고 일행을 도와야 한다.
구태여 죽일 생각은 없다.
그러나 죽이지 않을 생각도 없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이식(拔劍第二式).
쾌검(快劍).
채앵!
“허, 헉?!”
선두에 선 적의 창대가 대번에 두 동강이 났다. 그리고 열어 젖혀진 가슴팍으로 공격이 이어졌다.
서걱, 이벽의 검이 회수되며 가슴을 횡으로 베었다. 청강검식 곡의 묘리였다.
엄중한 상처를 입은 적이 땅 위로 널브러졌다. 그러나 이벽의 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채앵!
절묘한 각도로 꺾여진 이벽의 검이 뒤이어 달려들던 또 한 명의 검을 두드렸다.
챙강!
또다시 가슴이 열렸고, 열린 가슴을 청강검식의 발검식 쾌의 묘리가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푸욱!
“끄르륵.”
가슴을 관통당한 적이 답답한 비명과 함께 널브러졌다.
휙, 휘익!
“으, 으아아아!!”
이벽이 세 번째 적을 향해 쇄도하자, 악에 받친 기합과 함께 무기가 뻗어졌다.
날붙이가 장착된 기이한 형태의 삼절곤이 낭창낭창 꺾이며 이벽에게로 날아들었다.
멈칫.
이벽이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회검제이식(拔劍第二式).
변검(變劍).
챙, 챙, 채앵!
이벽의 검이 화려하게 움직였다.
삼절곤의 변화를 더 많은 변화로 압도하며 기세를 찍어눌렀다. 현란한 검세 속에서 삼절곤은 추풍낙엽처럼 휩쓸려 날아갔다.
슥, 푸욱.
그리고 무방비가 된 적의 옆구리를 할퀴며 이벽의 검이 회수되었다.
다시 뻗어진 검이 배를 관통했다.
“컥, 꺼헉…….”
털썩.
세 명을 쓰러뜨렸다.
이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챙, 채앵!
일행들은 각자 두 명씩을 맡아 상대하고 있다. 언미희와 파진성은 얼추 밀리지 않고서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다.
위태로운 것은 의외로 공손수였다.
암습에 능한 그녀의 무공은 반대로 정면승부에는 취약한 모양이었다.
타앗, 판단을 마친 이벽이 땅을 박찼다. 공손수의 맞은편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푸욱!
“커… 헉.”
이벽의 검이 공손수를 몰아붙이던 두 명의 적 중 한 명을 파고들었다.
동료가 쓰러진 순간, 나머지 하나가 흠칫 경련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크나큰 실책이었다.
공손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푸욱!
공손수의 비수가 남은 적의 늑간에 틀어박혔고, 이내 적은 검을 떨어뜨린 채 허물어졌다.
“어머, 고마워요, 오라버니. 제일 먼저 제게 달려와 주다니. 조금 감동했어요.”
“…파진성을 도와라.”
공손수의 짓궂은 미소를 일견하며 이벽은 재차 땅을 박찼다. 곧장 언미희에게로 향했다.
공손수 역시 파진성에게 향했다.
“크… 어, 어떻게 된 거야?! 이 새끼들 뭐냐고!!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혀, 혈귀! 혈귀들은 어디 있나!”
그러나 그때, 상황을 파악한 남은 적 넷이 공격을 뿌리치며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다.
물론 언미희와 파진성은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다. 이벽과 공손수의 가세에 힘입어 몰아붙이려던 그때였다.
콰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정면에 자리한 집채의 벽이 박살 났다. 그리고 그 거대한 파편이 이쪽으로 날아들었다.
후웅, 퍼억—!!
촌민들의 머리 위를 지나 날아든 벽은 적들과 일행들이 대치하는 사이 한가운데에 꽂혀 들었다.
일행이 흠칫하는 사이 적들은 벽 뒤에 숨어 몸을 빼는 데에 성공했다.
저벅.
그리고 부서진 문 안쪽에서 상체를 드러낸 건장한 중년 사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대도를 어깨에 메고 있다.
도망친 적들이 황급히 중년 사내의 양측에 시립했다.
“스, 스승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흥, 한심한 놈들 같으니. 기껏해야 어린애 몇을 상대하지 못하고 여섯이나 뒈져버렸단 말이냐?”
“스, 스승님! 저는 살아있습니다!”
그때, 인영 하나가 필사적으로 땅을 기며 중년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맨 처음 공손수에게 팔을 잘리고 사슬로 묶여 제압당했던 바로 그 사내였다.
“응? 뭐냐, 네놈은? 두 팔은 어디에다 팔아먹고 어찌하여 그런 꼴로 아직까지 살아있느냐?”
“제, 제자는……!”
콰직!
다음 순간, 중년 사내의 발이 쓰러진 사내의 목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난전 중에도 땅 위에 붙어 힘겹게 부지하고 있던 사내의 목숨이 허망하게 스러졌다.
“쯧,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
벌레를 짓밟는 듯한 무심함.
양측에 시립한 이들이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중년 사내의 가라앉은 시선이 일행을 향했다.
“허어! 나이도 어린데 제법이구나! 그야 쓸만하니 본좌의 십대제자 중 절반이 저렇게 뒈져있겠지. 그래, 본좌는 녹괴천웅(綠怪天熊)이라 한다.”
껄껄껄! 사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자들의 시신과 그 원수들을 앞에 두고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했다.
“어떠냐? 내 오늘은 기분이 썩 좋으니, 너희들을 본좌의 새로운 제자로 받아줄 수도 있다.”
* * *
“…이번엔 진짜인 것 같군.”
“그러게요. 우두머리답게 제일 많이 미친놈 같은데요? 원 세상에 본좌라니, 부끄럽지도 않나 봐.”
이벽이 말하자 공손수가 답했다.
“케케, 케케케! 누가 누굴 제자로 받아? 나보다 더 황당한 놈이네, 저거.”
퉷, 파진성이 침을 뱉었다.
“…피곤하네요. 얼른 때려눕히죠.”
언미희가 말했다.
그러나 짐짓 농지거리와 함께 한숨을 돌리면서도 일행들은 당장이라도 전투를 재개할 수 있도록 몸과 기운을 추슬렀다.
우두머리 사내의 전신에서 기세가 새어 나오고 있다. 자신의 기세를 감출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그리고 그 기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다른 적들과는 최소 두 수 이상의 차이가 난다.
분명한 강자다.
무인으로서의 직감이 스쳤다.
“크하, 크하하하하!”
스스로를 녹괴천웅이라 소개한 우두머리 사내가 쩌렁하게 웃었다.
“당돌한 놈들이로다! 그야 그렇겠지! 바야흐로 천하가 새로이 요동치고 있거늘 너희 같은 것들이 그 변화를 어찌 이해하겠느냐?!”
우르르르!
“크, 크악! 크아아!”
그때, 등 뒤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일행은 뒤를 돌아보았다.
대문 밖 저편에서 남은 광인들이 이쪽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우두머리 사내의 광포한 기운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듯했다.
“…제가 갈게요. 한 놈도 들여보내지 않을 테니… 마을 사람들을 부탁해요.”
이 판국에 저 광인들까지 안으로 들여보냈다간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촌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타앗!
그 사실을 깨달은 언미희가 자리를 박찼다. 그녀의 신형이 대문 바깥으로 멀어졌다.
“…쳇.”
일순 파진성은 잠시 갈등했으나, 그 뒤를 따르지는 않았다.
우두머리뿐 아니라 그 제자도 아직 네 명이 남아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쪽이 더 위험하다.
철컥!
“크크크, 허나 모처럼 타고난 재능이니 역시 죽이긴 아깝구나. 우선은 본좌의 힘을 보여주도록 하마.”
다음 순간, 우두머리 사내가 등 뒤에 걸쳐놓았던 대도를 꺼내 들었다.
우우웅!
기운이 집중되며 대도가 거칠게 진동했다. 그리고… 도신 위로 탁한 빛깔의 기운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도강이었다.
“…절정고수 산적이 있군.”
잠깐의 침묵 끝에 이벽이 말했다.
“…오라버니, 잘난 척 지껄여서 죄송해요. 강호는 넓고 미친놈은 너무 많네요.”
“케헤… 돌겠네, 진짜. 나 빼고 왜 다들 강기 쓰는데? 나 이렇게 약해빠진 거였냐고……?”
이벽은 우두머리의 도강을 바라보았다. 불꽃처럼 일렁이는 그 시커먼 기운은 분명 위협적이다.
“…어쩌죠? 도망칠까요?”
“그냥 제자로 받아달라고 할까?”
“…….”
이벽은 일행을 돌아보았다.
농담처럼 얘기를 나누고 있으나, 두 사람의 얼굴엔 어느새 딱딱한 긴장감이 서리고 있다.
지켜주기로 했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한 약속이었다.
“괜찮다.”
“…네?”
“저자는 내가 상대할 테니, 남은 제자들을 부탁한다.”
저벅, 이벽이 걸음을 뗐다.
상대의 기운은 분명히 위협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벽은 생각했다.
선천의 힘이 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아직까지 이벽을 배신한 적이 없다.
“호오, 해볼 생각이더냐?”
더욱이 사내는 방심하고 있다.
저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탓!
서서히 거리를 좁히던 이벽은 이내 거칠게 땅을 박찼다. 우두머리를 향해 허공을 쇄도했다.
충돌 직전, 이벽의 검이 검집에서 꺼내어졌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푸른 빛의 강기가 감돌았다.
타아아앙!!
강기와 강기가 부딪혔다.
일순 천둥과 같은 빛이 번쩍였고 천지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짜릿!
그리고 이벽은 근육을 갈기갈기 풀어헤치는 충격이 검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일순 온몸이 경직되었다.
아니, 그러나 움직여야 한다.
잠깐의 빈틈만으로도 목숨이 달아날 수 있다. 이벽은 힘겹게 검을 거두었다.
“크, 크억!!”
다행히도 경직은 이벽에게만 있던 게 아니었다.
검강이 튀어나올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던 우두머리 사내의 표정이 처참히 구겨졌다.
반격은커녕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다. 적지 않은 충격을 입은 듯했다.
타아앙!!
이대로 몰아붙인다.
다음 순간, 이벽의 검강이 다시 한번 뻗어졌다. 같은 충격이 이어졌다.
그러나… 버틸 수 있다.
타앙, 타아앙!! 타앙!!
천둥과 같은 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벽은 검을 뻗었고, 사내는 속수무책으로 물러섰다.
몇 합 만에 우위가 드러났다.
비로소 사내의 얼굴에 당황이 어리기 시작했다.
“뭐, 뭘 하느냐!! 이 쓸모없는 밥벌레 같은 것들!!! 어서 본좌를 도우란 말이다!!!”
마침내 사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두 사람의 격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사내의 제자들이 그제서야 이벽에게 접근하려 했다.
채앵!
“헹, 그렇겐 안 되지!”
그러나 물론, 공손수와 파진성이 그들을 방치할 이유는 없다.
타앙, 타아아앙!
충돌이 이어지면서 사내의 도강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반면 이벽의 검강은 굳건하다.
이벽은 강기의 충돌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몇 합 정도면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쐐애액!
“크, 크아아아악!!! 감히, 감히!!!”
그때, 사내가 광분하며 손에 쥔 도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제대로 추슬러지지 않은 초식이었다.
적절한 빈틈이 벌어졌다.
그 순간, 이벽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한 초식을 생각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삼식(拔劍第三式).
강검(强劍).
타아아아앙—!!
검강을 두른 검이 청강유엽검식을 펼쳤다. 일순 이벽은 내력이 뭉텅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선천의 힘을 깨달은 이래 처음으로 느끼는 내력의 유의미한 소진이었다.
그러나 그만큼의 가치는 있었다.
콰장창!
“커헉!”
다음 순간, 사내의 도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그러고도 모자라 남은 충격이 사내의 몸을 저 뒤로 날려버렸다.
쿠당탕, 쾅!
부서진 벽을 넘어 사내의 몸이 집 안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반드시 죽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상대의 전투 불능을 확인해야 한다.
이벽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
그러나 방 안에 들어선 순간, 이벽은 일순 제자리에 굳고 말았다.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안에는 여인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못한 여인들은 방 안 곳곳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다. 나체의 몸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중에는 어린 소녀도 있었다.
“…….”
이벽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힘이 없는 그래서 아무런 책임도 없는 마을의 소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명약관화하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텅 빈 그 눈과 마주한 순간, 이벽의 호흡이 작게 흔들렸다.
퍼억!
그 순간 부러진 도 끝이 이벽의 옆구리를 어설프게 파고들었다. 사내가 부서진 벽 파편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듯했다.
“쿨럭! 어, 어리석은 놈 같으니!! 보, 본좌를 상대로 감히 방심을 한단 말이더냐?! 크, 크하하!!”
“…….”
고통이 신경을 타고 올랐다.
이벽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의지와는 별개로, 소녀의 시선으로부터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문득 아무런 맥락도 없이, 화정촌에 있을 왕수련의 얼굴이 겹쳐서 지나갔다.
우웅!
선천의 힘이 격동했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이벽은 살심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