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산적토벌 (5)
터엉!
이벽의 손에서 내력이 뻗어나갔다.
“커헉!”
초식도 뭣도 아닌 기의 발출.
그러나 앞선 충돌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중년 사내를 물러서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탱그랑!
이벽은 옆구리에 박힌 도를 뽑아내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아니, 산산조각이 난 채 도신의 흔적만을 유지하고 있는 그것은 더 이상 도라고 하기에도 어려웠다.
상처는 얄팍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크… 이, 있을 수 없다!!!”
“…….”
“이런 찢어 죽일 놈! 감히! 본좌를! 네까짓 게, 감히 능멸한단 말이더냐!!!”
사내는 온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벽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분노해야 할 이와 그 분노를 받아내야 할 이가 뒤바뀌었다.
엄밀히는 그 분노는 자신의 몫 역시 아니지만, 힘이 있으므로 대신할 수 있다.
후욱.
이벽의 내력이 마침내 사라졌다.
선천의 힘이 움직임을 멈추자 소모된 청강유엽공의 내력은 더 이상 채워지지 않았다.
우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선천의 힘은 다시 움직였다.
이벽의 살심에 호응하며 최적의 경로를 따라 흐른다.
콰콰콰콰!
혼탁한 기운이 이벽의 몸 안을 노도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적파심공의 내력이었다.
살심이 들끓었다.
적파심공의 구결로써 마음 한켠에 가라앉혀 놓았던 심마의 뿌리는 지금 이 순간 통제되지 않고, 통제할 생각도 없다.
그 위에 자기 자신을 맡긴다.
“뭐, 뭣……?”
그때였다.
“이, 이 힘은 설마? 어, 어째서 네까짓 놈이…? 아, 아니, 그럴 리 없다—!!”
별안간 사내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이벽을 바라보는 얼굴 위로 명백한 당황감이 스친다.
허나 잠깐이었다. 놀람이 스치고 지나간 사내의 얼굴은 곧 다시 일그러졌다.
타앙!
“크아아아압!!!”
사내가 일갈하며 달려들었다.
부서진 도를 주워들고서 혼신의 힘을 쥐어짜는 듯했다. 강기 비슷한 것이 흐릿하게 어른거린다.
허나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조금 전의 대치가 어색할 만큼 상대는 연약하게 느껴졌다. 몸집이 커서 베어낼 곳이 많다.
타앙!
이벽은 검을 마주 뻗었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일 초식, 난(亂).
탕, 퍼억!
일격에 두 번의 충돌음이 터졌다.
첫 번째 충돌에 사내의 공격은 허무하게 스러졌다.
그리고 두 번째 충돌은 사내의 가슴팍을 저며놓았다. 흉험하게 찢어진 검상이 한발 늦게 뭉클뭉클 피를 뿜어낸다.
“커, 커흑!”
허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실전에서의 사용은 처음이다.
아직 검증할 초식들이 남아있다.
* * *
챙, 채앵!
“큿, 크하! 케헤헤헤!!”
해남의 검이 즐거이 춤을 추었다.
살아남은 네 명의 적을 상대로도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몰아붙이고 있다.
그 사실은 파진성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혼자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슥, 채앵!
파진성의 검은 집요하고 날카로웠으나 과감하게 파고드는 만큼 스스로의 빈틈이 자주 노출되는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검을 잡은 이래 언제나 그의 발목을 붙잡아왔던 가장 큰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파진성은 자신의 빈틈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슥, 채앵!
공손수의 비수는 파진성의 그 빈틈을 귀신같이 메워주었다.
적들로 하여금 단 한 차례의 역습도 허락지 않았다.
‘케헤헤, 황홀할 지경이구만?!’
혼자서 둘을 상대할 때보다 둘이서 넷을 상대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수월했다.
무엇보다도.
이 정도는 버텨줘야 체면이 선다.
비룡대주 이벽은 강기를 강기로 맞서 적의 우두머리를 집 안으로 날려버렸고, 마무리 짓고자 그 뒤를 추격했다.
터무니없는 녀석이다.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쨌거나 이제 곧 저 안에서도 승부가 결정지어질 것이고, 두 발로 살아서 걸어 나오는 것은 이벽일 것이다.
그런 믿음이 들었다.
“크큿, 크카카카, 케헤헤헤!!”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따라나선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믿음 운운하는 자기 자신의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것 같다.
해남을 떠나올 때만 해도 이런 비참한 처지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유쾌했다. 이 사사건건 열받게 하는 암영각의 계집은 자신과 손발이 빌어먹게 잘 맞는다.
맹우강에게 깨져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후욱.
“…어?”
그러나 그때였다.
찰나의 순간 파진성의 등골이 차가워졌다. 우수수, 피부 위로 잔털이 일어났다.
일순 파진성은 움츠러들었다.
그것은 목숨이 오가는 전투 중에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파진성이 적의 역습에 피해를 입는 일은 없었다.
공손수와 적들을 포함해, 그 순간 싸우고 있던 전원이 정확히 같은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처럼 전투가 멈추었다.
모두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뭐야, 저거?”
파진성이 중얼거렸다.
살기. 아니, 어쩌면 다른 무언가.
일찍이 겪어본 적 없는 흉험한 기세가 이벽과 적의 우두머리가 향한 집채 안에서 뭉클뭉클 흘러나오고 있다.
“…쳇.”
으득, 공손수가 이를 갈았다.
제일 먼저 냉정함을 회복했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적이 실력을 감추고 있었거나, 혹은 또 한 명의 진짜 우두머리가 따로 있었다거나.
좌우간 직감했다.
기세는 마치 구름처럼 느껴졌다.
눈에 보일 리가 없는 것이 실존하는 것처럼 좌중의 숨통을 조여든다.
제아무리 이벽이라 해도, 일개 후기지수가 이런 기운을 받아낼 수 있을 리 없다.
어쩌면… 아니, 아마도 이벽은 이미 죽었거나 이제 곧 죽게 될 것이다.
강호는 상상을 초월한다.
결코 잃을 리 없는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산골에서 말도 안 되는 최후를 보게 될 줄은.
아니 그보다도.
공손수는 멍청한 얼굴을 한 파진성을 돌아보았다. 갈등이 일었다.
‘…미끼로 쓰고 도망칠까?’
콰앙—!!
그때, 무언가가 벽을 부수고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러고도 기세가 남아 땅 위를 튕기며 날아갔다.
“으, 으어, 커어어!”
‘그것’이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그 피투성이 덩어리의 정체가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잘린 인간임을 알아채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저벅저벅.
그리고 무너진 벽 안쪽에서 인영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마치 흉신과 같은 기운을 두른 그 정체는… 이벽이었다.
“…살아있나.”
이벽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은 손에 익지 않는군.”
저벅저벅.
“히, 히이익! 으아아악!”
앞서 날아든 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집요하게 저며진 그 몸은 이미 살아남기에는 글렀으나, 어떻게든 버둥거리며 멀어지려 했다.
이벽은 거리를 좁혔다.
웅크린 촌민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스윽, 콰득!
쓰러진 이에게 검 끝을 가져다 댄 순간, 그것으로 끝이었다. 두 개만 남은 사지와 목이 기괴하게 꺾여 들며 움직임이 멈추었다.
“…….”
믿을 수 없지만, 이벽이 맞다.
그렇다는 건… 공손수는 쓰러진 시신을 향했다. 검으로 베었으나 마치 거대한 무게에 짓이겨진 것 같은 기괴한 모습.
저 시신의 정체는…….
슥, 이벽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 눈과 마주친 순간 공손수는 꿀꺽, 침을 삼켰다.
타닷.
이벽이 거리를 좁혔다.
공손수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벽의 목적은 그녀가 아니었다.
타앙, 서걱!
그리고 다음 순간, 조금 전까지 파진성과 공손수가 상대하고 있던 적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도, 도망……!”
“…억.”
채 몇 합조차 버텨내지 못했다.
자르고, 깎고, 베고, 짓이겨진다.
넷이나 되는 이들이 변변찮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조각조각으로 해체되었다.
후두둑, 비처럼 떨어졌다.
저벅저벅.
그리고 이벽은 다시 걸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나섰다.
“…….”
그 뒷모습을 보며, 공손수는 생각했다. 바깥에는 언미희가 남은 광인들을 상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뒷모습은… 남은 적들을 상대하러 가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죽일 것을 찾아’ 움직이는 짐승.
“…저기 말야.”
침묵 속에서 파진성이 말했다.
“그게, 이긴 건 좋은데…….”
“…….”
“…저 녀석 저거, 뭐야? 기운이 전혀 달라졌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말려야 할 것 같지 않냐?”
말마따나 지금의 이벽은 이질적이었다.
기운도, 사용하는 검도, 마치 이벽의 겉모습을 뒤집어쓴 전혀 다른 사람이 나타난 것 같다. 하지만.
“…저걸 무슨 수로 말려요? 자신 있으면 파 소협이 가서 말 걸어볼래요?”
“아니… 관둘래.”
두 사람은 발치에 널브러진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죽음을 대하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인간이 이렇게까지 도축된 모습을 보는 건 역시 몸서리가 쳐진다.
“…일단은 쫓아가 보죠.”
타앗!
두 사람은 이벽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저만치의 공터에서 광인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이벽을 발견했다.
“큭, 커억!”
“커어어억!”
그것은 역시 전장이라기보다는 도살장의 풍경에 가까웠다. 적들은 잡초처럼 빠르게 제거되었다.
절정의 고수도, 일류에 근접했던 그 제자들도 몇 합을 넘기지 못하고 처참한 시신이 되었다.
애초에 그저 흉포할 뿐인 광인들이 이벽을 상대로 맞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수십에 달하던 광인들은 몇 호흡 만에 절반 가까운 이들이 넝마가 되었다.
“으, 아으으!”
“으으으아아아!”
광인이라 해도 그 감정이 결여된 무자비함 앞에서는 공포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얼마 남지 않은 광인들이 등을 보였다. 이리저리 흩어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
이벽의 검이 멈추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저벅.
빠르지 않은 걸음이지만, 결코 단 한 명도 살려서 보내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역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이대로 놔둬선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공손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의 이벽에게 과연 피아식별이라는 게 있을까?
‘…두려워.’
타앗!
그때였다.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한 광인의 틈바구니 속에서 작은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언미희였다.
그녀가 이벽의 앞을 가로막았다.
멈칫.
이벽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고, 공자…? 왜 그래요? 아니,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비켜라.”
훅, 이벽의 검이 휘둘러졌다.
아직 죽이는 도중이고, 죽여야 할 것들이 남았다. 생각보다 앞서 관성처럼 검이 움직였다.
멈칫.
그러나 작은 위화감이 스쳤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베려 하지?
그때, 이벽의 눈에 언미희의 얼굴이 들어왔다.
—사실은 사람을 죽였는데 아무렇지 않은 이라면 오히려 제가 가까이하고 싶지 않지만요… 공자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안심했어요.
움찔.
마음이 흔들린 순간, 검 끝이 급격히 기세를 잃고 무디어졌다.
그러나 뻗어나간 검을 아예 거두기에는 조금 늦어버렸다. 검 끝이 언미희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채앵!
권갑이 이벽의 검을 막아섰다.
다행히도 그녀는 약하지 않았다. 검신을 밀쳐낸 언미희가 빠득, 이를 갈았다.
빠악—!!
“…정신 차려요!!”
다음 순간, 언미희의 이마가 이벽의 이마를 들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