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57)
58화. 호남 정사비무 (1)
마침내 호남무림의 향방을 건 정사 간 비무를 치르기로 약조한 날이 되었다.
진시 즈음, 이른 아침부터 정파인들이 악양 금강회의 대문 앞에 우르르 모여들었다.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헹, 사파 놈들에겐 과분할 만큼 좋은 곳인데? 그간 이 물 좋은 동정호에 눌러앉아서 얼마나 해 처먹은 거야?”
점창의 삼대제자 창명이 말했다.
“뭐, 그것도 오늘까지겠지만. 이 일대가 전부 우리 차지가 될 테니까 말야. 안 그러냐?”
“…….”
마찬가지로 점창의 제자인 창성은 사형의 너스레에 굳이 입을 열어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긴장 따윌 한 건 아니다.
정과 사는 결코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없다.
삿된 것은 언제나 정의 발밑에 눌려있는 것이 합당한 자연의 이치이며, 사람의 일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그야 사파제일의 후기지수라 일컬어지는 비룡대주 이벽의 실력은 퍽 의외이긴 했다.
앞서 무적파에서 있었던 일전에서 그자의 검은 사형인 창명을 압도했다.
그러나 그 직후, 자신이 나섰을 때 사일검법에 제대로 대처조차 못 하는 그 모습은 싱거울 정도였다.
“…….”
다소 의아한 부분은 있었다.
사형을 상대할 때와 자신을 상대할 때의 그 자는 이상하리만치 실력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사형의 절기인 급풍쾌검과 자신의 사일검법은 같은 점창의 검이라 해도 그 묘리가 무척 다르다.
그저 우연히, 그자의 검과 사형의 궁합이 좋지 않았던 걸까?
물론, 곧 알게 될 것이다.
어찌 되었건 방심은 금물이다.
히히힝!
“하! 송구하오만 그 말에는 조금 어폐가 있군, 그래!”
그때였다.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말 한 마리가 두 사람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 위에 올라탄 것은 기골이 장대하고 훤칠한 이목구비의 소년이었다.
“점창의 고고한 도인들께서 이런 난잡한 속세의 땅을 얻은들 무에 쓸 데가 있겠소? 우리 같은 속세의 때 묻은 이들에게나 쓸모가 있지! 안 그렇소? 하핫!”
“…….”
“물론, 가만히 앉아 떨어지는 감을 받아먹을 생각은 없소! 그런 의미에서 사파제일이라는 그 후기지수는 이 창천옥룡이 쓰러뜨리겠소이다. 그러니 일섬룡께서는 수고롭게 검을 꺼낼 필요조차 없으실 테요! 핫!”
따그닥, 따그닥!
일방적으로 할 말을 마친 소년, 남궁환은 말고삐를 박찼다. 태양 빛을 받으며 저만치 앞으로 나아간다.
“흥, 번지르르하기는. 퉷!”
창명이 땅에 침을 뱉었다.
도인으로서는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이지만, 사형제 모두 그런 걸 개의치는 않는다.
점창과 남궁세가.
정도맹과 의혈맹.
지금은 이 호남 땅에서 사파를 몰아내기 위해 한 무리가 되어 있지만, 결국 그 이후에는 서로 간의 협상과 경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궁세가의 기재이자 창천옥룡이라 일컬어지는 저 남궁환은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되리라.
이벽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창성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 * *
금강회 내부, 비무대.
개방의 철면개와 하오문의 염우길을 중심으로 정사 양측의 대표들이 전면에 모였다.
이미 협의된 몇 가지 사항을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등, 비교적 침착한 분위기 속에서 비무의 사전 준비가 진행되었다.
“하핫, 이거 볼만하겠군, 그래!”
“점창의 용과 남궁의 용을 한자리에서 보게 되다니, 이거 잠깐 눈이라도 깜빡하면 아주 큰 손해를 보겠구려? 껄껄껄!”
다만, 비무대를 중심으로 이를 지켜 보는 입장이 된 양측의 분위기는 상당히 엇갈려있었다.
우측의 정파 측은 희희낙락한 반면, 좌측에 모인 사파 측은 조용하다 못해 비장함마저 감돌고 있다.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자리에서의 패배는 즉, 그들이 여태껏 호남에서 쌓아온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운명은 고작해야 다섯 명의 후기지수들에게 달려있었다.
부조리함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힘의 균형이 압도적으로 기울어진 와중에 그것이 그나마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비무대를 향해 한 칸 더 앞으로 나아간 쪽에는 대표들을 위한 천막과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는 이미 이벽을 비롯한 비룡대원들이 자리했다.
대표로서 함께 나서기로 한 나살문의 대제자 음서희와 적사파의 소문주 전강준 역시 함께하고 있다.
“저기… 소협?”
음서희가 이벽에게 다가섰다.
“…내게 용건이 있소?”
“그게, 자리가 적절하지는 않지만… 지난 번에는 실례가 많았어요.”
꾸벅, 음서희가 고개를 숙였다.
그제서야 이벽은 상대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앞서 파진성과 지붕에서 술을 마시던 때에 일도무문의 제자들을 뒤에 달고서 나타난 예의 여인들 중 한 명이다.
“딱히 개의치 않소.”
나살문의 입장은 이해가 갔다.
나살문주 우진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결과적으로는 그 덕에 팔절구궁필법과 만월무변심공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질책할 마음은 없다.
“…폐를 끼치고도 이렇듯 도움을 받으니, 소협께는 참으로 드릴 말씀이—”
“자, 잠깐잠깐~”
공손수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사적인 대화는 나중에 이기고 나서 하도록 해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이벽을 감싸듯 가로막은 공손수가 뾰족한 눈으로 음서희를 노려보았다.
일순 당황한 표정을 한 음서희가 이내 작게 웃었다.
“그렇네요. 소저 말대로예요.”
뚜벅뚜벅.
그때, 적사파의 소문주 전강준이 일행에게로 다가섰다.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잠시 말없이 이벽을 바라보았다.
“…고맙소, 소협.”
꾸벅, 이벽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께 전해 들었소. 소협과 하오문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겐 이런 기회조차 없었을 테지.”
“…….”
“내 비무대에서 칼을 물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한 놈은 재끼고 쓰러지겠소.”
전강준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비무대에 오를 순서는 이미 정해두었으며 전강준과 음서희가 비룡대원들보다 앞서 나서기로 했다.
정파 측에서 가장 주의해야 상대는 물론 창천옥룡 남궁환과 일섬룡 창성이다.
물론, 그 외의 나머지도 녹록한 상대가 나올 리는 없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정파 측에선 그 둘을 가장 뒤쪽으로 미뤄놓은 채 앞선 상대들로 하여금 이벽의 검을 파악하고 힘을 소진시키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같은 전략을 취해야 한다.
즉, 이벽을 맨 뒤 순서로 미뤄둔 채, 남은 이들이 최대한 많은 적들을 꺾어두는 것이다.
“…….”
물론, 정작 이벽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는 전략이기는 했다.
강하다고 한들 일류 수준의 후기지수들에게 이벽이 유의미한 부상을 입을 리는 없다.
또한 낙검진천신공은 이벽에게 마르지 않는 내력을 가져다주므로 강기를 쓸 것도 아닌 바에야 지칠 일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설명하기에도 어렵고, 지나친 주목을 받고 싶은 생각 역시 없으므로 이벽은 잠자코 그에 따랐다.
“케케케, 죽긴 뭘 죽어?”
그때, 한켠에 잠자코 앉아있던 파진성이 입을 열었다.
“저기, 너희들. 괜히 무리하다 개죽음당하지 말고 적당히 싸우다 내려와라. 응? 상대가 몇 명이건 우리 대주가 다 쓸어버릴 테니까 말야. 케케, 케헤헤!”
“…다 좋은데 왜 파 소협이 으쓱거려요?”
한켠에서 몸을 풀던 언미희가 나지막이 쏘아붙였다.
“…허.”
전강준은 퍽 당혹스러웠다.
비룡대원들은 거의 긴장하는 기색이 없다.
긴장은커녕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제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고 한들, 상대는 정파의 무수한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최고라 일컬어지는 오룡 중의 두 명이다.
객관적으로 열세임에 틀림없다.
대체 무엇을 그렇게 믿고 있는 가? 전강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음서희는 그보다는 조금 나았다.
앞서 일도무문의 제자들과 자신의 스승인 우진희를 상대로 이벽이 보여주었던 한 수를 기억했다.
분명 승산은 없지 않다.
터엉.
“자 그럼, 비무를 개시하겠소!”
그때, 타구봉이 땅을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내력이 담긴 철면개의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마침내 비무 개시가 선언되었다.
그와 동시에 반대편의 정파 측에서 인영 하나가 비무대 위로 기세 좋게 뛰쳐 올라갔다.
“자! 대 점창파와 정검문의 도리 앞에 무릎 꿇을 첫 번째 사도 놈은 누구냐!”
“어…? 저 사람은?”
언미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에 남아있는 얼굴이었다.
정검문의 대제자 장막수로, 일전에는 무적파의 대제자 표왕호를 상대로 몰아붙이다 갑자기 난입한 언미희에 의해 쓰러진 적이 있다.
딱히 인상이 깊지는 않았지만, 후기지수로서 결코 낮잡아볼 만한 이는 아니었다.
다만 언미희가 더 강했을 뿐이다.
“…다녀오겠소.”
전강준이 음서희를 비롯한 비룡대 일행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비무대를 향해 나아갔다.
* * *
카앙! 챙!
전강준과 장막수의 비무는 퍽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양쪽 다 이류의 끄트머리에서 일류의 문턱 즈음에 이른 수준으로, 경지는 엇비슷한 듯했다.
검과 검이 격렬하게 부딪힌다.
내력을 통해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이류라면, 자신의 병장기에 기를 심을 수 있게까지 되는 것이 일류무인의 기준이다.
“큭!”
“하하! 생각보다는 제법이다만 결국 사파놈들이 쓰는 검법 따윈 조잡하기 짝이 없구나!”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패색이 짙어지는 것은 전강준 쪽이었다.
궁합이 좋지 않다.
장막수의 검은 극한의 찌르기에 치중한 점창의 사일검법이었다.
물론, 같은 검법이라 해도 점창제일 후기지수인 창성과 숙련도 면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휘두르는 반경과 완력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적사파의 검공은 동작이 클 수밖에 없다.
자연히 전강준은 직선으로 빠르게 찔러오는 장막수의 검에 이리저리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뭐, 안타깝지만 이기긴 힘들겠네요. 저 수준에서 경지가 비슷하면 밀리는 건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공손수가 푸념처럼 말했다.
일반적으로 이류 이하에서는 패도적이고 변칙적인 사파무공이 정파를 압도하기 쉽지만, 경지가 높아질수록 입장이 뒤바뀐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고, 각자의 무리를 완성한 절정 이상의 고수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털썩!
그리고 이십여 합이 오고 갔다.
마침내 피투성이가 된 전강준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헉… 헉! 쓸데없이 애먹이는군! 내 이제부터 집 없는 신세가 될 네놈을 불쌍히 여겨 목숨은 거두지 않—”
“크아아악!”
타앗!
그때였다.
전강준이 괴성을 내지르며 무릎을 펼쳤다. 추진력을 실어 막무가내로 몸을 집어 던진다.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일순 당황한 장막수의 검이 다시 한번 빠르게 찔러졌다.
푸욱!
“커헉!”
전강준의 왼쪽 어깨에 꽂혔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장막수의 오판이었다.
찌르기로는 전강준의 거구를 밀쳐낼 수 없다. 익숙한 검로에 갇혀 베지 않고 찌른 것이 문제였다.
푸우욱.
다음 순간, 장막수의 검이 그대로 전강준의 어깨를 관통했다.
그리고 두 사람 간의 거리가 마저 좁혀지며, 전강준의 거구가 장막수를 찍어눌렀다.
쿠웅, 털썩!
“켁!”
일순 균형을 잃은 장막수가 전강준의 몸에 짓눌린 채 뒤로 넘어가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 위로 올라탄 전강준이 황급히 칼날을 장막수의 목에 겨누었다.
반면 장막수의 검은 아직까지도 전강준의 왼쪽 어깨에 틀어박혀 있다.
“져…졌다고 말해라! 어서!”
“시, 싫—”
“말하라고 이 새끼야!!! 죽인다!!”
“으아아악! 져, 졌다!!”
전강준의 검이 진짜로 목거죽을 파고드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낀 장막수가 황급히 외쳤다.
씨익, 전강준이 웃었다.
쿠웅, 털썩.
그리고 그 즉시 그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비무대 위로 축 늘어진다.
과도한 출혈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한 것이다.
“…세상에. 저렇게까지.”
언미희가 침음성을 내었다.
그리고 이후로 장내에는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그러나 다행히 전강준의 승리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물론, 혼절한 전강준이 계속해서 다음 상대를 맞이할 수는 없다.
이후 전강준의 몸이 들것에 의해 실려 나가고, 안색이 창백해진 장막수 역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이봐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소저까지 저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요. 우리가 어떻게든 할 수 있거든요?”
공손수가 음서희에게 말했다.
“…소협들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든든하네요. 하지만 저희 호남 사파에게도 나름의 자존심이 있답니다.”
“…….”
“알량한 힘이라 한들,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이 저희를 위해 싸워주시는데 남의 집 불난 것마냥 구경만 할 수는 없지요.”
음서희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전강준을 잠시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내 비무대가 정리되었다.
음서희가 일행들에게 목례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비무대를 향했다.
웅성웅성.
그러나 정파 측에서는 다음 대표가 좀처럼 올라서지 않는다.
분명히 장막수가 이겼어야 할 승부였다.
기실 이벽 외의 나머지 상대들 따윈 거의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몸을 사리지 않고 장막수를 밀어낸 전강준의 혈투는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타앗!
“하! 조잡해서 못 봐주겠군, 그래!”
반 각쯤 지났을까.
마침내 정파측에서 새로운 인영이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훤칠한 키와 깎아내린 듯한 이목구비.
“나, 남궁환……?!”
음서희가 한 걸음 물러섰다.
상대는 창천옥룡 남궁환이었다.
점창의 일섬룡 창성과 함께 가장 경계해야 할 강자로, 계산대로라면 고작해야 두 번째에서 나올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남궁환의 시선은 정작 마주 선 음서희가 아니라 그 너머를 향해 있었다.
“이봐 거기! 비룡대주라고 했나?”
“…….”
“어차피 마지막은 결국 너와 나의 승부가 아닌가! 네놈도 사내라면 졸개들 뒤에 숨어 지루하게 질질 끌지 말고 당장 튀어나와라! 이 정파제일의 창천옥룡께서 친히 단죄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