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85)
88화. 도주 (2)
철퍽.
피 웅덩이가 발에 채였다.
이벽은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
그곳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난자된 시신들이 있었다.
허나 이벽은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곳에 죽어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언미희와 파진성, 공손수였다.
“꼬, 맹이… 너어…….”
“빌어먹을… 자식.”
그때, 피 끓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역시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형제인 제갈소미와 혁대웅의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철컥.
그리고 이벽은 손에 칼이 쥐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갓 적셔진 더운 피가 검신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지긋지긋한 꿈이군.”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갈성의 진법을 상대한 이래 이벽은 같은 꿈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꾸기 시작했다.
마치 깨달음을 얻기 전과 같다.
허나 이벽은 앞서 화정촌에서의 경험을 통해 마음의 돌을 치우고서 관계 속의 자신을 받아들였다.
그를 통해 선천의 힘을 얻었으며, 이제 와 또다시 악몽과 현실의 분간을 잃어버릴 만큼 무르지는 않다.
다만.
“이야, 역시 형님답군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말했다.
“가로막는 것은 벤다, 거치적거리는 것도 벤다, 그게 바로 제가 아는 형님이지요.”
“…….”
이벽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심마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의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호시탐탐 마음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가는 맹수처럼 그 존재를 드러낸다.
“헌데 왜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이 아우가 또다시 등을 찌르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구요?”
“…….”
“어서 빨리 저를 베지 않으면 제가 언제 형님을 다시 벨지 모릅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형님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어요.”
이벽은 눈을 감았다.
잠자코 마음에 집중하자 이내 선천의 힘이 청강유엽공을 따라 도도히 흐르기 시작했다.
훅, 이내 혈향이 멀어졌다.
그리고 이벽은 다시 눈을 떴다.
퀘퀘한 냄새가 감도는 공간이었다. 바닥에는 마른 짚들이 깔려있다.
개방의 은신처 중 한 곳이었다.
비룡대 일행과 철면개는 추적을 피하면서도 마침내 성가의방이 위치한 감리현 인근에 도달했다.
“끄으으, 으으…….”
저만치 드러누운 인영에게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파진성이었다.
늘 그렇듯이 허세를 부리곤 있지만, 나날이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
상처는 덧나고 열병마저 앓아 더는 제 발로 걷겠다느니 하는 생떼마저 부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별일이 없다면 오늘 안으로 의방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아.”
이벽은 문득 한기를 느꼈다.
온몸이 식은땀에 절어있음을 깨달았다. 피로는 전혀 가시지 않았지만, 다시 잠을 이루긴 어려울 것 같다.
이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신처의 문밖으로 나섰다.
후욱.
“핫, 하앗!”
새벽의 공터에서는 인영 하나가 힘찬 움직임과 함께 청아한 기합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언미희였다.
그동안 함께해 오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녀는 한 번도 아침 수련을 빼먹은 적이 없다.
‘…자칫 방해가 되겠군.’
이벽은 문틈에 주저앉았다.
잠자코 언미희를 바라보았다.
두 번.
적파심공의 살심에 사로잡혀 그녀에게 검을 휘두른 것이 벌써 두 번이나 되었다.
처음은 산적에게 점거당한 마을에서였고.
다음은 제갈성의 진법에 휘둘렸을 때였다.
만월무변심공을 얻고서 조금씩 제어가 되는 듯하던 적파심공의 살심은 암영각을 거쳐오며 다시 통제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동촌장 목일령에게 받은 증혈환으로 인해 증폭된 혈기는 통제되기는커녕 또렷한 의식마저 뒤흔들기 시작했다.
“…….”
이벽은 두려움을 느꼈다.
지킬 것이 생겼다는 것은 지키지 못하거나 배신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의 힘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자칫 소중한 이들을 내 손으로 해치게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포는 허상에 불과하지만.
그 위험성은 허상이 아니다.
짹, 짹짹.
저만치에서 동이 터 오른다.
어슴푸레한 양기가 언미희를 감쌌다. 권갑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권법가인 그녀의 육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잘 단련된 병장기와 같다.
‘아름답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언미희의 수련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후우.”
내지른 주먹을 회수한 언미희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표정을 달리하며 이벽을 향했다.
“어땠어요, 공자?”
“훌륭하군. 배우고 싶을 정도요.”
“아하하, 빈말이라도 기분은 나쁘지 않네요.”
언미희가 배시시 웃었다.
물론 빈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재능은 진짜이며, 하물며 노력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성실했다.
초식은 무르익었고 기의 운용은 완연히 안정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일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상대가 설령 흑천방의 맹우강이나 오룡삼봉이라 해도 결코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헌데 공자는 아침부터 왜 그렇게 안색이 안 좋아요? 아직도 계속해서 악몽을 꾸나요?”
“…….”
철컹, 철컹.
두 손에서 권갑을 빼내며 언미희가 이벽의 옆에 다가와 앉았다.
제갈성은 자신의 진법을 가리켜 그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투영한 허상일 뿐이라 했다.
문제는 그 허상에 시달린 순간 마음이 흔들렸고, 그 빈틈을 타고서 적파심공이 몸을 점거해버렸다.
그리고… 멈출 수 없었다.
몸이 멋대로 날뛰며 사방으로 도살지도를 펼쳐대었다. 그것은 마치 의식과 몸이 분리되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콰아앙!
—정신 좀 차려요!!
“…….”
벼락과 같은 충격.
그리고 이벽은 정신을 차렸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언미희의 ‘박치기’는 그러한 통제력의 상실을 두 번이나 멈춰주었다.
이후 이벽은 언미희에게 자신의 상태와 거듭되는 악몽에 대해 간략히 털어놓았다.
그녀에게 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뭐랄까… 좀 신기하네요.”
언미희가 뺨을 긁적였다.
“그렇게 강한데… 공자도 무언가에 그렇게까지 두려움을 느낀다는 게요.”
아하하, 언미희가 다시 웃었다.
“하지만 사실 전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애초에 공자가 진심으로 저를 베려 했다면, 제가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잖아요?”
“…….”
언미희는 ‘믿음’을 이야기했다.
허나 정작 이벽에게는 그 당시의 기억조차 명확히 남아있지 않다. 그저 안개가 걷히고 눈을 떴을 때, 언미희의 이마가 보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공자도 너무 걱정은 말아요. 설령 심마에 젖어 이성을 잃더라도… 공자는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요.”
“…….”
“…말이 좀 이상하지만 어, 어쨌건! 옆에 있는 한 제가 어떻게든 늦기 전에 정신 차리게 해줄게요. 반드시요.”
꾸욱.
문득 이벽의 손 위로 언미희의 손이 포개어졌다.
그 손은 조금 전까지 강맹한 권법을 펼치던 손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역시 이상한 얘기 같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공자의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오히려 저는 약간 뿌듯해요.”
“…면목이 없군. 소저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는 피를 손에 묻혔을지도 모르겠소.”
“아하하…, 아뇨 그런.”
이벽은 언미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떠오르는 햇빛에 비치는 뺨은 복숭아처럼 붉다.
“나와 함께해줘서 고맙소.”
“에…….”
문득 새삼스럽게 궁금해졌다.
언미희가 비룡대에 합류하여 이벽을 따르는 것은, 그녀의 스승이자 하오문 운남지부장인 지소약의 명령 때문이다.
하지만.
—…무리해서 명을 따를 필요는 없소. 필요하다면 내 루주님께 말씀드리겠소.
—아뇨, 제가 함께하고 싶어요.
—…….
—공자께, 도움이 되고 싶어요.
분명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공손수에겐 암영각으로부터의 ‘임무’가 있었고, 파진성에게는 명예 회복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그렇다면.
언미희에겐 어떠한 이유가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이토록 자신을 도와주려 하는 걸까.
슥
“아… 그게, 슬슬 채비를 해야겠네요! 파 소협의 상태도 걱정되고, 아하하. 갈 길이 바쁘니 먼저 들어가 볼게요!”
그러나 그때였다.
포개진 언미희의 손이 치워졌다.
벌떡,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쩐지 허둥거리는 기색으로 이벽의 시선을 피하며 자리를 떠버렸다.
“…….”
질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자리에 혼자 남겨진 이벽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사이 어느덧 완연한 아침이 밝았다.
* * *
“드디어 다 왔네. 저기 보이는 저 산기슭의 집채들이 바로 성가의방이라네.”
철면개가 말했다.
말마따나 철면개가 가리키는 저만치 산에 몇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흡사 작은 마을처럼 보였다.
일행은 마침내 감리현에 도착했다. 산을 오르기만 하면 일단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다.
허나.
콰앙!
“뭐라고? 팽가 놈들이?!”
“그, 그렇습니다요…….”
철면개가 발을 굴렀다.
긴급히 달려온 개방도들의 보고에 의해, 일행은 팽가의 무인들이 성가의방에 한발 앞서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군요. 일전에 부상을 입은 건 우리보다 오히려 그쪽이 압도적이었으니까요.”
공손수가 말했다.
“케… 케헤, 그러니까 내가 그냥 소림으로 가자고 했잖아. 지금이라도—”
“닥쳐요. 짐짝.”
“…….”
일행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현내에 머물며 개방이나 소림 측의 지원이 도착하기까지 머무르는 방법도 있다.
허나 파진성의 상태는 좋지 않다.
상처도 상처지만, 추적을 피해 강행군을 몰아붙이는 와중에도 업히지 않겠노라 고집을 부리다 병을 키운 게 컸다.
“…팽가놈들, 끝까지 성가시게 하는군. 이 못난 거지놈 믿고 예까지 따라주신 여러분들께는 참으로 면목이 없소.”
철면개가 침통한 목소리를 냈다.
“허나 알다시피 일단 의방의 문턱을 넘어서고 나면 놈들도 감히 엄한 생각을 할 순 없을 거요.”
“…….”
일행은 시내에서 마차를 구했다.
저마다 죽립을 눌러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소규모 상단의 일행으로 위장했다.
위험은 팽가뿐만이 아니다.
행여 목적지가 이곳 성가의방임을 추적자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눈치챈 세력이 있다면… 의방 내로 접어들기 직전의 길목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헤엑, 헉…….”
일행은 탈진하여 의식을 잃은 파진성을 짐마차에 싣고서 빠르게 시내를 벗어났다.
그리고 산을 올랐다.
짐짓 수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행색에 갖은 신경을 쓰는 한편,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히히힝!
덜커덩, 덜컹.
마차가 산길을 나아갔다.
두어 시진 정도 지났을까.
저만치 앞의 길의 끝자락에 성가의방을 둘러싼 울타리와 대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내 서서히 긴장이 풀어졌다.
일단 저 문을 들어서고 나면 그 이후에는 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시간은 그들의 편이 된다.
후욱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의방의 안쪽에서 인영 하나가 대문을 뛰어넘었다. 땅을 박차며 일행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탁, 일행의 앞에 멈춰 섰다.
“…….”
인영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일행들 사이로 무언의 긴장이 흘렀다. 아는 얼굴이었다.
“실례하오만, 어디에서 오는 분들이시오?”
다가선 인영이 물었다.
그는 참마일도 팽무옥이었다.
팽가의 절정고수이자, 참마대의 대주로서 일행을 습격해 지금의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타앗.
마부석에 앉아있던 철면개가 냉큼 땅으로 내려앉았다. 짐짓 허둥대며 급히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강호의 대협이시군요! 저희는 사천의 마령상단입니다요. 성가의방에 약재를 납품하러 가는 길인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요?”
“아, 그렇소?”
피식, 팽무옥이 웃었다.
“그런데 왜 하나같이 죽립들을 뒤집어쓰고 계시오? 얼굴을 보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소?”
“그, 그게 말입니다요…….”
“뭐, 험한 세상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지. 나 역시 그렇소. 임무 중에 부상을 입은 본가의 제자들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서 말이오. 경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지.”
“아… 아이고, 그러시군요. 어쩌다가 원, 세상에 참 악적놈들이 많습니다요. 암.”
“그러게 말이오. 내 이곳을 뜨는 대로 이 땅의 거지놈들을 모조리 씨를 말릴 생각이오.”
“…….”
“아, 신경 쓰지 마시오. 무림의 일이니 여러분들과는 상관이 없소. 약재라고 했지? 어서 지나가시구려.”
슥, 팽무옥이 길을 비켜섰다.
멈칫.
철면개의 어깨가 잠시 흔들렸다.
떨떠름한 얼굴로 잠시 마부석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돌려 말 옆에 선 이벽을 향했다.
“…….”
두 사람은 짧게 시선을 나누었다. 이내 철면개가 말의 고삐를 잡고 등자 안으로 발을 디뎠다.
훅, 위로 올라선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채애앵!
팽무옥의 도가 대뜸 휘둘러졌다. 올라타는 순간의 빈틈을 노린 일격이었다.
그러나 이벽의 검이 막아섰다.
“하! 일개 상단치고는 꽤 쓸만한 무사를 지니셨군, 그래?”
“…쳇.”
철면개가 혀를 찼다.
타앗, 말 위에서 도로 뛰어내리며 옷자락 안에 감춰두었던 타구봉을 꺼내 들었다.
우르르.
“이쪽이다! 서둘러라!”
그리고 양쪽의 산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내 참마대의 무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게 일행들을 둘러싼다.
“하하하! 상단? 거지 냄새가 코를 찌르거늘 옷만 갈아입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예끼, 지나가던 개가 비웃겠구나! 크하하하!”
“…….”
철면개가 죽립을 벗어던졌다.
카악 퉤,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뭐? 그래서 네놈이 뭐 어쩔 건데? 뚜드려맞다 도망친 놈이 잘도 지껄이는구나. 다시 붙으면 뭐가 달라질 것 같더냐? 응?”
뚝, 팽무옥의 웃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안색이 굳어졌다. 일전의 싸움에서는 철면개가 우위를 점했다. 팽무옥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 그야 뭐. 네놈이 제법 한 수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허나 미안하게도 오늘은 운이 나빴네. 특별히 먼 곳에서 귀한 객이 한 분 와 계시거든. 크크!”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타악, 성가의방의 대문 위로 또다시 인영 하나가 솟구쳤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힌 뒤 팽무옥의 바로 옆에 내려앉았다.
“이놈들이오, 팽 대협?”
“허허! 그렇소이다. 말씀드렸던 개방의 빌어먹을 거지놈과 사파의 어린 악적들이오.”
사내가 일행을 둘러본다.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개방의 걸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애송이들 같은데? 이거 원, 베는 재미도 없겠군.”
“이거 면목이 없구만. 그래도 저 비룡대주라는 놈은 제법 강단이 있으니 조금은 주의하시구려.”
“…뭐, 마침 잘 되었소. 그러지 않아도 조만간 의혈맹주님을 뵙게 될 터인데 초면에 빈손으로 가는 것보단 낫겠지.”
허리에 검을 찬 초로의 사내.
체형은 작았으며 얼굴은 다소 깡마른 인상을 주었다. 팽무옥과 나란히 서 있으니 그런 느낌은 더욱 도드라진다.
“…….”
그리고 이벽이 알고 있는 이였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예상치도 못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이벽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두근.
이벽의 심장이 뛰었다.
악몽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헹! 중늙은이 하나 어디서 데려왔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냐? 나중에 피똥 싸지 말고 한꺼번에 덤벼라, 이놈들아!”
철면개가 한 발 나섰다.
으름장과 함께 봉을 앞세웠다.
정체를 알 수 없으나, 깡마른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심상치 않다.
“과연, 듣던 대로 입이 더럽군.”
그때, 사내가 말했다.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검을 뽑지 않은 채 가만히 섰다.
“그 입버릇에 감사하지. 그래도 나름 정파에 속한 이를 베는 것이 찝찝했는데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운남 선우세가의 선우굉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