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95)
98화. 십팔나한진
“큭.”
소림승 덕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허나 더 이상 대화를 나눠본들 얻을 것은 없다. 덕수가 주변에 눈짓을 보냈다. 우르르, 젊은 무승들이 걸음을 옮겼다.
이벽을 둘러싼다.
이벽은 주변을 살폈다.
‘머릿수는… 열여덟.’
후욱.
덕수를 포함한 무승들이 일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열여덟 명의 나한들이 나한십팔권을 펼친다.
그것은 곧,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이 된다.
“…….”
이벽은 압박을 느꼈다.
금색의 벽에 둘러싸였다.
사방 어느 쪽을 봐도 빈틈은 없다. 허나 빈틈이 없으면 스스로 송곳이 되어 만들면 그만이다.
이벽은 한 명을 점찍었다.
탓, 발을 놀린 순간이었다.
“어딜!”
“이 노옴—!!”
이벽이 거리를 좁힌 순간, 점찍은 이를 포함한 주변의 두 사람이 동시에 공격을 뻗었다.
하나하나는 위협적이지 않다.
허나 머리는 셋, 손은 여섯이다.
챙, 채앵!
이벽은 청강검식으로 공격들을 쳐내며 황급히 연엽보를 밟았다. 뒤로 물러섰다.
탓, 후욱.
그러나 그 순간, 등 뒤에서 기척을 느꼈다. 어느새 다가온 네 개의 주먹이 뻗어지고 있다.
타앙! 챙!
연신 보법을 밟으며 생각했다.
무승들의 진퇴는 능수능란했다.
이벽을 둘러싼 원형의 벽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휘어지고 펼쳐지기를 반복한다.
이벽이 다가서면 황급히 물러나고, 그 대신 반대쪽에서 거리를 좁히며 공격이 뻗어진다.
이벽이 어느 위치에 있건, 가장 사각의 위치에 선 이들이 냉큼 다가서며 주먹을 뻗는다.
채앵, 채앵, 챙!
이벽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하나하나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덕수를 제외한 나머지들 대부분은 일류 언저리로, 공손수보다 못하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허나 무승들은 절대로 혼자서 붙는 법이 없었다.
최소 둘 이상이 동시에 달라붙으며, 순식간에 방어와 공격을 분담한다.
뿐만이 아니다.
무승들 한 명 한 명이 펼치는 나한십팔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수한 손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도합 열여덟 명의 서른여섯 개의 손이 심지어 점점 더 늘어나며 사방팔방에서 이벽을 압박한다.
챙, 채앵!
‘…과연 ‘진법’인가.’
그것은 제갈가의 진법과는 다소 의미가 다른 듯하지만… 단순한 합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묘리가 있음을 이벽은 이해했다.
이벽은 묵묵히 청강검식을 펼쳤다. 그림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지만, 유효타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무승들 역시 빠른 시간 안에 이벽을 쓰러뜨릴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듯했다.
‘소모전으로 끌고 갈 생각인가.’
그것은 이벽에게도 나쁘지 않다.
선천의 힘이 이끄는 내력은 바닥나는 일이 없으므로,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는 것은 저쪽일 테다.
허나 이벽은 생각했다.
역시 그런 식으로는 이기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이 진법을 파훼하는 것은 퍽 난해했다.
한두 명쯤 죽이거나, 최소한 팔을 날려버릴 정도의 중상을 입혀야만 진법을 흔들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랬다간 문제가 되겠지.’
이곳은 소림이다. 터무니없는 시비에는 기꺼이 응징하되, 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다른 방법이 아예 없으면 모르되,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뻐어억!
“컥!”
그때, 무승 하나가 쓰러졌다.
퍼억, 뻐어억!
“크윽.”
“어억!”
그리고 두 명이 더 쓰러졌다.
“무, 무슨?!”
덕수가 변고를 살폈다.
그리고 쓰러진 이들의 바깥쪽에서 인영들을 발견했다. 이벽 역시 그들을 둘러보았다.
언미희와 공손수, 송영영이었다.
뻐억, 뻐억! 뻐어억!
“커윽!”
“지, 진 바깥에 적이!”
바깥쪽에 선 세 사람이 무승들의 무방비한 등 뒤를 사정없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안에서의 파훼가 어렵다면, 바깥에서 공격하면 그만이다.
진형이 급속도로 무너진다.
“무, 물러나라! 진을 해체—!”
뻐억.
덕수가 황급히 외쳤다.
그러나 채 말을 마치지 못했다. 한순간, 명치에서 아득한 고통이 올라왔다. 덕수가 고개를 내렸다.
이벽의 주먹이 틀어박혀 있었다.
“이, 이런 간악한—”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
“십팔 대 일은 정정당당한 소림의 진법이고 십팔 대 사는 간계하고 사악한 사파의 사술인가?”
“…어.”
덕수는 말문이 막혔다.
뻐억!
그리고 이벽이 한 번 더 명치를 두드렸다. 마침내 덕수의 몸이 스르륵 무너져내렸다.
“…….”
이벽은 창천옥룡 남궁환을 떠올렸다.
앞뒤를 따지지 않은 채 본인이 하는 일은 정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명문 후기지수 특유의 오만함.
그것은 정도맹도 의혈맹도 아닌 소림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는 모양이었다.
뻐억!
“커억!”
이벽은 쓰러진 덕수를 걷어찼다.
이미 나머지 무승들은 이벽의 일행들에게 초토화되어 덕수를 도와줄 여력조차 없었다.
뻐억, 뻑, 뻐억!
고로 이벽은 계속 걷어찼다.
덕수의 몸이 공처럼 데굴데굴 땅을 굴렀다. 가사가 모래범벅이 되어 엉망진창이 되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나한십팔권에 항마연환퇴, 백보신권, 관음수, 죽어라고 익힌 절예들이 단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몸을 동그랗게 만 채 최대한 웅크려 고통을 줄이는 법뿐이다.
허나 이벽의 발은 무자비했다.
내력이 실린 발길질은 마치 철퇴와 같다.
“꺽, 꺼억, 꺽!”
뻐억, 뻐억! 뻑!
이벽은 생각했다.
죽일만한 잘못은 아니다.
이 자 또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겠지. 이러한 경우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검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창천옥룡이나 일섬룡과는 달리, 천수법룡은 검을 쓰지 않는다. 고로 떨어뜨릴 검이 없다.
그러므로 짓밟는다.
아주 약간의 사심을 담아.
뻐억! 뻑, 뻐억!
“그, 그만…….”
그때, 덕수의 손이 이벽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내, 내가 졌소. 이제 그만…….”
“그렇군. 내가 이겼군.”
뻐억! 뻑, 뻐억!
“컥, 커억! 어, 어째서!”
“어차피 처음부터 내가 너희들을 죽일 수는 없다는 걸 믿고 나온 거 아닌가?”
“…그, 그건.”
“검강을 쓰건 뭘 하건, 이곳은 소림이니 감히 나를 어쩌지는 못하겠지, 손속에 사정을 두겠지, 그렇게 생각했겠지.”
“아, 아니, 나, 나는……!”
“물론 틀린 생각은 아니다. 허나.”
뻑, 뻐억! 뻐억!
“커헉, 커억!”
“내 일행이 피를 토했다. 그러니 나도 네가 피를 토할 때까지는 때려야겠다.”
뻐엉!
그때였다.
저만치에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이벽의 기감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허공을 격하며 날아드는 무형의 기운은… 조금 전 파진성을 상대로 덕수가 펼쳤던 백보신권이다.
허나 수준이 달랐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회검제삼식(拔劍第三式).
유검(柔劍).
이벽이 물러나며 검을 펼쳤다.
검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지척까지 다다른 백보신권의 공력이 허공에서 푸스스, 흩어졌다.
이벽의 일검을 바라본 송영영의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
타앗.
“이 노오오옴!!”
그리고 인영 하나가 착지했다.
역시 기억에 있는 인물로, 이벽 일행을 소림까지 안내했었던 공암이란 이름의 중년 무승이었다.
“멈추지 못할까아아!!!”
“…….”
뻐억!
이벽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덕수를 걷어찼다. 주륵, 마침내 덕수의 입가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의식을 잃은 듯 추욱 늘어졌다.
이벽은 발길질을 멈추었다.
“뒤통수는 안녕하시오, 스님? 멀쩡하신 걸 보니 어제는 개방주께서 손속에 사정을 두셨나보군.”
공암이 움찔했다.
개방주의 경고를 잊은 건 아니다.
고로 어린 것들의 싸움으로 끝내려 했건만… 놈은 간교하게도 자신을 보자마자 대뜸 그 얘기를 꺼내 들었다.
허나 이미 내친걸음이다.
“…감히 경내에서 소림의 제자들을 해하다니, 개방의 등 뒤에 숨은들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이 일을—”
“됐고. ‘대환단’ 찾으러 오셨소?”
“…결코 좌시하지 않을—”
“아쉽지만 이미 먹어버렸소.”
공암은 말문이 막혔다.
텅, 머리가 비어버렸다.
“차, 참으로……?”
“아니, 농담이오.”
“…….”
“허나 그대의 사숙 되시는 분께서 친히 내게 내려주신 물건을 되레 강탈하려 하다니. 대체 여기가 소림사요, 소림산채요?”
으드득, 공암이 이를 갈았다.
할 말은 없었다. 허나 이미 내친걸음이다. 이렇게 된 이상 차후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건 지금 이 순간 결판을—
“아마도 그쪽이 이 일의 진짜 원흉일 것 같지는 않고. 어디, 방장께서 직접 시키신 일이오?”
그때, 이벽이 말했다.
“그, 그걸 어찌……?”
“같은 배분의 고수가 아니고서야 개방주의 분노를 어찌 감히 감당하려 들겠소?”
“…….”
“긴말은 됐고 싸움도 지겹소. 그러니 지금 당장 나를 방장께 안내해주시오. ‘내 물건’이 그렇게 탐이 난다면, 조건에 따라서는 내어줄 수도 있으니.”
* * *
소림 대환단.
그것은 강호무림에 이름 높은 수많은 비약 중에서도 가히 전설로서 회자 되는 비약 중의 비약이었다.
무려 일 갑자의 내공을 품고 있으며, 심지어 그 기운은 정순하기 짝이 없어 어떠한 속성의 내공심법을 익혔건 간에 무리 없이 녹아든다고 하였다.
물론, 제아무리 소림이라 한들 그런 절세의 영약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을 리는 없다.
들어가는 재료만으로도 하나같이 천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이며, 몇 년에 걸친 제련과정에서 찰나의 실수만으로도 그 모든 노고가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십 년에 한 알을 얻을까 말까’라는 수식어는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벽은 의심스러웠다.
‘그게 과연 나한테 의미가 있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정순한 내력이라 한들 담아낼 ‘그릇’이 없어선 의미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힘은 아마도 단전을 지니지 못한 자신의 몸에는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고스란히 흘러나가 버릴 것이다.
그저 몸에 좋은 보약 정도.
어쩌면 예상치 못한 효능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물론 그런 용도로 복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귀한 물건이었다.
천하제일의 빛 좋은 개살구.
“…….”
허나 혜공은 완고했다.
하나뿐인 손으로 이벽의 손을 붙들고는 그 위에 목함을 직접 쥐여주었다.
—곧 죽을 늙은이가 영약을 끼고 있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소? 어린 시주께서 의인임을 알았으니, 직접 어찌 사용하시건 결코 허투루 쓰이지는 않을 것임을 믿소.
난처한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내력의 연원이나 낙검진천신공에 대해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없었다.
결국에 이벽은 그 물건을 받아들었다. 물론, 그 쓰임새에 대해서는 여전히 처치곤란이었다.
‘오히려 나쁘지 않다.’
이벽은 생각했다.
이런 걸 가지고 있어봤자 어딘가에 팔아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스레 화를 입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소림에—
“…시주는 생각을 잘못했소.”
그때, 앞서가던 공암이 말했다.
“이제 와서 무슨 말씀이오?”
“내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오. 우리가 비록 첫 만남이 좋지 않았고, 퍽 다투기는 했으나 원수지간은 아니지 않소?”
“…….”
이벽은 앞서 처소에 몰려든 천수법룡 덕수를 비롯한 십팔나한들을 일행들과 함께 쓰러뜨렸다.
그리고 현재 장내에 난입한 공암에게서 길을 안내받고 있었다.
대환단을 걸고서 소림의 방장과 직접 담판을 낼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이라도 그냥 순순히 물건을 내어놓는 편이 좋을 것이오. 방장을 알현하는 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니.”
공암의 어투에서는 묘한 억양이 묻어나왔다.
그저 대환단을 뜯어내기 위한 상투적인 위협이라 하기에는…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주의 미래는 창창하오. 천하의 그 어떤 귀물이라 한들 시주의 남은 인생과 비견할 수는 없지 않겠소?”
“…….”
저의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좌우간 그다지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이벽은 잠자코 걸음을 옮겼다.
아미타불, 공암이 한숨을 내쉬며 불호를 읊었다.
그리고 소림의 경내를 가로지른 두 사람 앞에 이윽고 또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산문 안의 산문.
방장이 머무는 주지승방이었다.
흠칫.
문 앞에 선 순간, 이벽은 긴장했다. 무언가… 이 문을 넘어선 안 될 것 같은 감각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