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08)
# 34장 이이제이(以夷制夷) (4) #
선임 무공 교두 호진창의 뒤에는 자그마치 사십 명이 넘는 무공 교두들이 무장을 한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과 현마종의 혈손인 무진윤은 완숙한 초절정의 고수였다.
이 중에서 그들을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는 자는 호진창뿐이었다.
많은 인원을 데려온 것도 이들이 스스로의 무력이나 종파의 위세를 믿고서 압송되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영민한 천무연조차도 이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마도관에서 지낸 삼 년하고도 여섯 달 동안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무장까지 하고 왔다는 것은 반항을 염두 했다는 건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무공 교두들의 기세로 보아선, 여기서 반항했다가는 더욱 사태가 커질 게 뻔했다.
-착!
“알겠습니다.”
천무연이 수련을 위해 쥐고 있던 검을 검집에 착검했다.
모시는 주군이나 다름없는 천무연이 고분하게 명을 받으니, 당연히 무진윤 역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옳은 선택일세.”
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사십 명이 넘는 무공 교두들에게 둘러싸여 연공실 건물에서 나왔다.
-웅성웅성!
격세석 연공실 건물 앞에는 천무연의 수하들의 일부가 당혹감이 서린 눈빛으로 망연자실하게 그들이 압송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는 연현종의 극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수하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해하는 표정을 보면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무진윤이 다급하게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극신의 전음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저, 정확한 건 나도 모른다. 단지 교두들이 하는 말로는 마도관 안에서 시신이 발견 되었다고 들었다.] [뭐?]시신이라는 말에 무진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마도관 내에서 누군가를 살해하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데, 어떻게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인가? 그리고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왜 자신들을 압송하는 것일까?
무진윤이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압송되어가는 중이었기에 더 이상은 무리였다.
무공 교두들에게 둘러싸여 마도관의 본관 건물 앞으로 도착하자, 두 명의 교두가 입구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호 교두님.”
“혐의자들을 압송해왔네. 관주님은?”
“관주께서는 현장에 나가계십니다. 그곳으로 혐의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혐의자?’
그 말에 현마종의 무진윤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자신들을 압송하는지 몰랐는데, 혐의자라는 말은 자신들이 그 시신들을 죽인자로 의심받고 있다는 말이었다.
“안내하게.”
“넵.”
두 명의 무공 교두들을 따라서 압송 일행들은 마도관의 숙소 건물 방향으로 향했다.
숙소 건물로 향하는 방향에서 인적이 드문 어두운 길목이었다.
그곳에는 스무 명 정도 되는 무공 교두들이 있었고, 그들이 들고 있는 등불로 주위가 환하게 밝았다.
압송 인원을 포함하면 대부분의 무공 교두들이 전부 모인 셈이었다.
‘피 냄새?’
밤 공기가 차가웠지만 짙은 혈향이 천무연과 무진윤의 코 끝을 찔렀다.
스무 명의 교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의 한가운데에는 마도관주인 좌호법 이화명이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네 구의 시신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아닛!’
시신들을 알아본 무진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들은 산공독으로 함정을 파고서 천여운을 습격하기로 했던 네 종파의 혈손들이었다.
저들이 어째서 시신으로 발견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저놈들이 죽어 있는 거야?’
“관주님!”
선임 무공 교두 호진창의 부름에 시신을 살피고 있던 이화명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화명의 표정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분노로 휩싸여 있었다.
성큼성큼 그들을 향해 다가온 이화명이 압송 행렬의 한 가운데에 있는 두 사람의 앞에 섰다.
“천무연 단주. 무진윤 대주.”
“관주님을 뵙습니다!”
천무연과 무진윤이 두 손을 모아서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직위가 상승했다고 한들 마도관주인 이화명에게는 예를 갖춰야 했다.
이화명이 노기가 섞인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다. 두 사람 모두인가? 아니면 한 사람이 저지른 것인가?”
정말로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누가 이 일을 벌었냐는 말에 무진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들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면 이 짓을 했을 사람은 오직 천여운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이 의심을 받고 있었다.
“과, 관주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화명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잡아떼시겠다.”
“그게 아니라…”
“관주님.”
그때 천무연이 무진윤의 말을 자르고 입을 열었다.
“저와 진윤은 연공실에 있다가 압송되어 와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아무 것도 알려주시지 않고 대뜸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무진윤과 다르게 천무연은 냉철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 천무연의 태도에 이화명이 입을 다문 채로 그들에게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크게 원진을 만들어서 등불을 들고 있는 스무 명의 교두들을 지나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띤 시신은 한쪽 다리가 녹아있고, 한 팔이 잘려서 죽어있는 시신이었다.
‘항유직?’
시신은 바로 음마종의 혈손인 항유직이었다.
죽은 가장 큰 사유는 오른팔이 잘리면서 출혈이 심해서인 것 같으나, 얼굴색이 검게 변색된 걸 보아선 극독에 중독된 듯 했다.
‘어째서 독에?’
무진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명 독마종의 백철구가 이야기 한 계획대로라고 하면 독에 중독된 것은 천여운이어야 한다. 그런데 도리어 죽어있는 항유직이 독에 중독되어 있다.
“보았나?”
이화명이 다음 시신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경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두려움에 빠진 얼굴로 죽어있는 그는 검마종의 혈손인 경표였다.
가슴에 검날이 관통해 있었는데, 그 앞에 부러진 비파형태의 검이 떨어져 있었다.
비파형태의 검은 음마종에서 자랑하는 비마음검(枇魔音劍)이었다.
이것만 본다면 검마종의 경표가 음마종의 항유직과 겨루다 죽임을 당한 듯 했다.
‘…..뭔가 잘못 되었다.’
무진윤은 제대로 일이 틀어졌음을 느꼈다.
시신만 보았을 때는 절대로 이들은 천여운과 싸우다 죽은 흔적으로 보기 힘들었다.
“다음 시신이다.”
이화명의 열다섯 보 정도 떨어진 시신을 가리켰다.
“욱!”
시신을 보자마자 무진윤은 토사물을 올릴 뻔했다.
세 번째 시신은 잔혹하게도 머리가 반쯤 으깨져서 죽어 있었다.
그런데 머리가 으깨진 이 시신의 상의가 벗겨져 있었는데, 등에 여덟 개의 손바닥 자국의 피멍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
-주르륵!
차가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무진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었지만 천무연 역시도 시신에 남겨진 손바닥 자국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장흔(掌痕)을 두 사람이 몰라볼 리가 없었다.
‘운경팔식!’
그것은 현마종의 이절이라 할 수 있는 장법, 유현운장(柔玄雲掌)의 제 사 초식인 운경팔식(雲競八式)을 펼쳐야만 남길 수 있는 장흔이었다.
그들은 이제야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어떻게 유현운장의 초흔이? 이, 이래선 형님이나 내가 이 녀석들을 죽인 범인으로 오해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너무도 선명한 유현운장의 장흔은 현마종의 사람이 한 걸로 오인받기 쉬웠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관…”
[반응하지 마라.] [형님?]순간 흔들려서 자신들이 아니라고 입에서 튀어나올 뻔 했던 무진윤은 천무연의 전음에 굳어진 인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시신에 남아있는 장흔에 잠시 흔들렸던 천무연이었지만 금방 이성을 찾았다.
이이제이의 수법으로 함정을 팠던 당사자이기에 이들을 해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다만 놀란 것은 두 가지였다.
그 동안 그가 지켜보았던 천여운은 자신을 건드는 자에게 철저하게 응징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를 죽이진 않았다.
‘이젠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다는 것인가?’
두 번째로 그를 놀라게 만든 것은 무서울 정도로 영악해졌다는 점이었다.
함정에 빠졌는데도 그 상황 속에서 이런 식으로 반전을 꾀할 줄은 몰랐다.
유현운장의 초식 하나만으로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정말 위험한 놈이다.’
여기서 흥분해서 말실수라도 한다면 이번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는 꼴이었다.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차분하게 증명해야만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입을 닫고 있어라.] […..알겠습니다.]믿을 사람은 오직 천무연 뿐이었기에 무진윤은 입을 꾹 닫았다.
시신을 바라보는 천무연의 눈이 반짝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신에 남겨져 있는 것이 유현운장의 장흔이라는 점이었다.
‘천여운. 네놈이 간과한 실수다.’
마도관의 비급 서재의 오 층에는 현마종의 유현운장의 비급서가 있다.
굳이 자신들이 아니더라도 오 단계 시험을 통과한 자라면 유현운장을 익힐 수 있기에 차분하게 대응하면 된다.
“보았나? 이제 마지막 시신이다.”
이화명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시신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형님 말씀이 옳다. 평정심. 평정심.’
혐의에서 벗어나려면 천무연의 말대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무진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고 말았다.
“이, 이게 대체?”
당혹감을 넘어서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지막 시신은 이 모든 함정을 팠던 독마종의 혈손인 백철구의 시신이었다.
앞서 머리가 으깨져서 죽은 도마종의 부양강처럼 상의가 벗겨져 있는 백철구의 시신에는 두 가지 초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
감정 조절에 능숙한 천무연조차 표정이 굳어져버렸다.
백철구의 왼쪽 가슴에는 붉은 피멍의 장흔이 남아있었고, 우측 가슴부터 복부까지 검흔이 남겨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이렇게 평정심을 잃고 놀라는 이유는 당연했다.
왼쪽에 남아있는 장흔은 유현운장의 장초였고, 우측 가슴에 남겨져 있는 검흔은 현마패검의 검초로 생겨난 흔적이었다.
-꾸욱!
천무연이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검좌장.’
그것은 현마종의 종주이자 일 장로 무진원의 비기인 우검좌장(右劍左掌)이었다.
현마종 내에서도 수장인 무진원과 오직 천무연만이 익힌 비기였다.
삼 년 전, 노란 명찰을 획득하기 위해 무공 교두와의 대련에서 딱 한 번밖에 보인 적이 없었던 비기의 흔적이 시신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좌호법 이화명이 싸늘해진 눈빛으로 천무연에게 말했다.
“변명할 거리라도 있나? 천 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