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28)
# 38장 난감한 제안 (3) #
문규가 분수처럼 뿜어댄 덕분에 탁자 위의 음식들이 전부 술에 젖었다.
바로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던 사마착의 얼굴도 술에 젖어 어안이 벙벙해졌다.
“푸푸풋. 문규 이게…”
봉변을 당했다는 생각에 무슨 짓이냐고 화를 내려고 했지만 천여운이 먼저 입을 열면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장로님의 말씀이 조금 당황스럽군요.”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인다고 여겼지만 혼례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고민하긴 했지만 그 안에 혼례는 들어있지 않았다.
이에 구 장로 사마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 제 여식이 별로이신지?”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천 장로님께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있습니까?”
사마의의 태도로 보아서 작정을 한 듯 했다.
사실 이것이 그가 노린 바였다.
천여운이 육 단계 시험에서 독마종의 종주이자 장로인 백오를 꺾는 모습을 본 후에 사마의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천 공자와 혈연관계를 맺어야 한다.’
최상위 종파의 위치까지 올랐는데도 여전히 여섯 종파의 등살에 밀려서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일반 종파들의 운명이었다.
그런데 여섯 종파에 속하지 않는 첫 소교주 후보자인 천여운은 오백 년이나 지속된 그 흐름을 부수려고 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먼저 손쓰기 전에 본처의 자리는 우리 사무종에서 얻어야지.’
오백 년의 전례를 두고 봤을 때, 여섯 종파 체제를 타파한다고 해도 후처들을 두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만 가장 먼저 약속된 자리를 보장받고 싶은 사마의였다.
이 상황을 난처해하는 천여운을 바라보며 사마의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핫, 상호간의 견고한 관계를 위해 혼례를 통해서 혈연을 맺는 것은 예부터 내려오던 일입니다.”
“……..”
굳은 얼굴로 천여운이 묵묵부답이자 사마의도 어느 정도 이런 반응을 짐작했는지 설득하는 방향으로 바꾸기로 하였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제 갓 약관. 정치를 알기에는 어리다. 후후후.’
사마의는 여섯 종파가 득세하는 본교에서나 장로 회의에서 자그마치 이십 년이 넘게 최상위 종파로 버텨왔다.
속에 수백 마리의 능구렁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를 사위로 점찍은 순간부터 많은 방안을 생각해두었다.
“천 장로님. 소교주로 등극하시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여섯 종파와 부딪치실 겁니다. 그건 본인이 더욱 잘 아시겠죠.”
천여운이 본인이 아니더라도 여섯 종파와 그의 관계가 완만하지 않음은 마교인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소교주 등극에 성공하게 된다면 향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여섯 종파 역시도 자신들에게 숙적이나 다름없는 천여운을 그냥 지켜볼 리가 없었다.
“소교주 등극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무위가 뛰어나시지만 그들 전부를 상대하려면 천 장로님께서도 그에 상응하는 세력이 필요하실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 사무종도 천 장로님께 큰 전력이 될 수 있겠죠.”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최상위 종파이자 본교의 열두 장로 중 한 사람인 사마의가 합류한다면 천여운으로서는 든든한 지원자를 얻게 되는 것이다.
‘으으으. 완전 달변가잖아.’
옥화주를 마셔서 취기가 돌던 것이 전부 깼다.
문규는 일장연설을 하듯이 천여운을 설득해가는 사마의를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천여운이 정말 사마영이라는 여자와 혼례를 치르면 어떡하지라고 여겨지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앗! 내가 왜 걱정하는 거지?’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놀라했다.
천여운에게 충성 맹세를 한 거지 이성으로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혼례라는 말에 답답하고 민감해졌다.
‘아니야. 에이. 그럴 리가.’
-두근두근!
스스로의 변화를 감지한 문규는 이상할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그런 문규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상관없이 구 장로 사마의의 설득은 계속 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천 장로님께서는 출신 종파가 없으십니다. 밑바탕이라는 것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이를 보완하는 방법은 혈연관계를 통해서 기반을 다지는 겁니다. 기반이 단단하다면 차후에 세력을 불려나가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흐음.”
천여운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이 집중하자 사마의는 그가 점차 납득한다고 여겼는지 흡족함으로 눈빛이 반짝였다.
기세를 몰아서 사마의가 마지막 쇄기를 박기 위하여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는 천 장로님의 입회자가 되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아가서 한 가족이 된다면 공자는 견고한 밑바탕을 가지시게 되는 겁니다. 차후를 바라본다면 이보다 좋은 방법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하하하핫.”
속내는 이러했다.
‘본교의 미래가 되실 분을 사위로 얻어서 본 종도 본교의 일 좌를 차지할 터이니, 어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닌가.’
정말 설득 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천여운이 말없이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잔치상 앞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문규는 그런 모습에 눈썹까지 쳐져서 불안함마저 드러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천여운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군요.”
그 말 한 마디에 희비가 갈라졌다.
고민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로잡혔던 사마의였지만 그 말에 화색이 돌아서는 입 꼬리가 귀까지 걸렸다.
‘됐다! 하하하핫. 그럼 그렇지. 당연히 이런 조건을 버릴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반면 문규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여운이 혼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듯하자 가슴이 찌를 듯이 아팠다.
아까 전부터 부정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제야 자신의 감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천 공자님을 좋아했구나.’
이제 겨우 깨달았는데 천 공자의 곁에 다른 여인이 함께 하려 한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카락을 넘기는 사마영의 모습은 어여뻤지만, 자신은 인피면구에 가려져서 남자처럼 지냈으니 천여운이 좋아할 리가 만무했다.
“하하하핫,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앞으로 가족이 되실 터이니 저희 사무종에서 견마지로로…”
“뭔가 오해하신 듯하군요.”
“네?”
“저는 단지 말씀하신 것이 일리가 있다고만 했습니다.”
좋아서 입이 활짝 벌려져있던 구 장로 사마의가 얼굴이 굳어져서 물었다.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묻겠습니다. 물론 혈연을 맺게 된다면 견고한 면도 있겠지만, 구 장로님께서는 따님과의 혼례와 별개로 제 입회자가 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그, 그건….”
사마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역공을 취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익을 고려하더라도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이기에 천여운이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질문을 던지니 난감했다.
‘이것 참.’
여기서 맞다고 답변을 하게 된다면 그 자신이 야욕에 넘치는 것이 되어버렸고, 아니라고 한다면 입회자를 명분 삼아서 자연스럽게 혼례를 추진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당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미숙할 거라 여겼는데….전혀 아니구나.’
예상한 것보다 영악한 대응에 사마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무슨 대답을 해도 진퇴양난이었다.
어쩌면 훗날을 위해서 지금 강하게 나가는 편이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천여운이 보여준 행보가 마음에 걸렸다.
‘모두가 맞서지 않는 여섯 종파도 두려워하지 않는 천 공자다. 만약 여기서 밉보이게 된다면 더욱 손해를 보지 않을까?’
일순간의 욕심으로 이 좋은 분위기를 해치기는 두려웠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사마착이 난감해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입을 열었다.
“주군. 잠시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라.”
“저희 아버님, 아니 구 장로께서는 육 단계 시험을 치를 때부터 순수하게 주군께 호의적인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혼례가 아니더라도 주군이 소교주에 어울린다고 여기셨기 때문에 이런 자리를 마련하신 겁니다.”
‘이, 이 녀석아. 그렇게 말하면….’
사마착의 말에 구 장로 사마의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도우려고 한 말이었는데 선택지의 폭을 줄여주고 만 셈이었다.
“그렇습니까?”
“그, 그건….”
사마의가 대답을 망설이자 천여운이 자리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당황스러워하는 사마의에게 고개 숙여서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아드님의 의견과는 다른 듯하군요. 그렇다면 구 장로님께서는 저와 가는 길이 다른 것 같습니다. 과분한 환영에 감사했습니다.”
“허엇?”
명백한 거절이자 포기 의사였다.
입회자를 구하러 온 입장이었기에 강하게는 나오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이렇게 강경한 성격의 소유자일 줄은 몰랐다.
‘아아아!’
덕분에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침울해 하던 문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천여운이 다른 여자와 혼인을 치르면 어쩌나 했는데, 이렇게 딱 잘라서 거절하니 희망의 빛줄기가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거절하면 공자님께 나중에 해가 되는 게 아닐까?’
순간 좋아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사무종이라면 그에게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다.
교주 역시도 일곱 처(妻)를 두었고, 영웅은 삼처사첩(三妻四妾)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을 문제 삼아서 완고하게 나갈 것도 아니었다.
‘호오.’
미련 없이 돌아가려는 모습에 십 장로 연무화의 입 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이것을 기회 삼아 정략을 추진하는 구 장로 사마의의 모습에 천여운이 휘둘릴까 우려했는데, 오히려 강하게 나가자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가자!”
천여운이 수하들을 향해 말하자 구 장로 사마의의 눈이 커졌다.
‘정말 간단 말인가?’
“자, 잠깐!”
잔치상에서 몸을 돌려 마루를 내려가려는 천여운을 구 장로 사마의가 붙잡았다.
“처, 천 장로님. 어찌 그러십니까? 이대로 가시다뇨.”
안달이 난 사람처럼 그를 붙잡은 사마의는 결국 자신이 한 발자국 물러서기로 마음먹었다.
“혹여 혼례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혼례. 그것은 구 장로님의 말씀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 제가 왜 소교주가 되려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천여운의 모습에 사마의가 입을 다물었다.
단순한 이유를 보자면 교주가 되기 위함이겠지만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다른 뜻이 있음이다.
천여운이 그런 사마의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지금 기득권을 잡는 여섯 종파의 폐해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합니까?”
“폐해? 아…..”
그 질문을 듣고서야 사마의는 천여운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천여운은 지금 혈연관계를 통한 외척 세력이 이런 폐해를 나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본교의 수뇌부로 있는 장로인 사마의 역시도 통감하는 부분이었다.
“이것을 바로 잡고 본교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서 일어났는데, 그런 제가 견고한 관계를 한다는 미명 아래 여섯 종파와 똑같은 짓을 반복해서 되겠습니까?”
“허어…..”
“그런 혈연 관계따윈 필요없습니다.”
그 말에 사마의의 눈동자가 떨렸다.
지금까지는 그저 원만한 관계를 위해 천여운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그라는 인물에게 충격을 받았다.
‘그릇이 다르다는 건가.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니…..’
진심으로 본교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었다.
그저 복수심으로 여섯 종파를 상대하는 것만은 아니란 의미였다.
자신의 의사를 밝힌 천여운이 다시 한 번 그에게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구 장로님의 호의는 감사드리지만 제 뜻과는 관련이 먼 것 같습니다. 혼례에 관련된 것은…..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그럼.”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다시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쿵!
마루바닥을 울리는 소리에 발걸음을 떼던 천여운이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리자, 구 장로 사마의가 어느새 한 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마의가 두 손을 모아 공손히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제가 부족하여 공자님의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십시오.”
그의 진중해진 태도에 좌중의 사람들이 놀라했다.
천여운이 이채가 띤 눈으로 물었다.
“무슨 의미죠?”
“사무종의 종주이자 구 장로 사마의가 공자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부디 옥패를 받으셔서 부족하지만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크게 외친 사마의가 품안에서 장로의 신분을 상징하는 옥패를 바쳤다.
과감하게 포기하려 했던 구 장로 사마의가 스스로의 욕심을 꺾고서, 진심으로 충성을 맹세한 것이었다.
이 모습에 천여운의 입 꼬리가 조용히 올라갔다.
마도관을 나오고 나서 사흘 때가 되는 날, 천여운은 목표로 했던 세 명의 입회자들을 모두 얻게 되었다.
* * *
늦은 오후 무렵,
천여운이 오늘 중으로 할 일이 남아있다며 돌아간 후에 구 장로 사마의가 너털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허허.”
설마 자신이 약관도 안 된 청년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뜻했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손해를 감수하고 충성맹세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만큼 천여운은 그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내 안목이 틀리지 않길 바라야지.’
어쩌면 그가 변질되어버린 마교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사마의가 배웅을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딸, 사마영에게 말했다.
“영아야.”
“네. 아버님.”
“놓치기에는 아까운 분이시다.”
놀랍게도 구 장로 사마의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천여운은 좋아하는 사람과 혼례를 치를 거라는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놓았다.
그것을 놓칠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런 아버지의 물음에 사마영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습니다.”
“그래. 너만 믿으마.”
내심 혼례를 거절하는 천여운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한 그녀였다.
그래도 외모로는 어디 가서 뒤떨어진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눈길 한 번 주지도 않고 거절할 줄은 몰랐다.
‘꼭 나를 보게 만들 거야!’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다.
한편 사무종의 장원에 나와서 마도관 방향으로 향하는 천여운과 수하들이다.
모두가 나란히 걷고 있는데, 유독 문규 혼자서 뒤떨어져서 걸어가고 있다.
문규의 얼굴은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혼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가, 다시 웃었다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기분 변화가 다양했다.
문규는 아직도 그 순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구 장로님의 호의는 감사드리지만 제 뜻과는 관련이 먼 것 같습니다. 혼례에 관련된 것은…..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잘못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천여운이 자신을 힐끔 쳐다 본 것 같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들뜨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헤헤.”
마도관에 도착할 때까지 문규의 웃음은 멈출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