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40)
# 42장 빚은 꼭 갚겠습니다. (2) #
마교의 교주전.
성내에서 가장 화려하면서 웅장한 이 건물에 교주의 거처가 있다.
교주전 내에 있는 연공실에서 한 중년인이 온몸에 땀이 젖어서 걸어 나왔다.
그는 마교의 교주인 천유종이었다.
연공실의 입구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그가 양팔을 벌리자, 익숙한 듯이 상의를 탈의시켜서 뜨겁게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냈다.
-슥슥!
“후우.”
지쳤다는 듯이 무거운 숨을 내뱉는 교주는 자신의 우측 가슴부터 비스듬하게 내려오는 상처부위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몸 안에 있는 도경을 밖으로 배출했는데도 여전히 후유증이 남아있었다.
적어도 열흘 정도는 계속 운기조식을 통해 원기를 회복해야만 도경에 의해 손상된 오장육부를 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몸을 다 닦아낸 시종들이 새로운 옷을 갈아입혀주자 교주는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곧장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교주전의 지하실이었는데, 여섯 개의 닫혀 있는 철문 중에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차가운 냉기가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교주가 등불을 밝히자 그 안에는 마도관 비급 서재 건물의 지하보고에서처럼 한옥석으로 벽면과 바닥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 안에 한옥석 탁자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지하보고에 있어야 할 도흔으로 가득한 잘린 팔과 인피들이 올려 있었다.
-슥!
교주 천유종이 도흔으로 가득한 팔을 만지며 눈을 감았다.
팔에 남겨진 도흔을 심상으로 그리게 되자 패도적인 도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도흔만으로 도초를 떠올리는 것은 힘들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 자의 도에서 느껴졌던 도의(刀意)와 흡사하다.’
-뜨끔!
이를 떠올리자 가슴의 상처부위가 욱신거렸다.
절강성에서 극도육무문의 세 명의 고수 중에 조법을 쓰는 자를 없애려고 할 때 갑자기 난입한 자가 있었다.
그 자는 앞서 세 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자였다.
중원 오대고수의 일인이자 현경 초입의 고수인 교주 천유종이 불과 십 초식을 견디지 못할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무위를 지녔었다.
초식의 한계를 벗어난 그 자는 특별한 식(式)이 없이도 천마검법을 파훼한 것도 모자라 그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대는 아니군.’
그 자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큭!”
-쩌저저저적!
교주가 손을 짚고 있던 한옥석 탁자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 자가 한 말을 떠올리자 그도 모르게 분노로 공력을 일으키고 말았다.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자신을 너무도 치욕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던 차였다.
-쿵쿵!
누군가 철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마라겸입니다. 교주님.”
“알겠다. 집무실로 올라가겠다.”
“충!”
교주는 감정을 드러냈던 것을 가라앉히고서, 한옥석 방을 나가 위층에 있는 교주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호법 마라겸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화려한 석좌에 앉은 교주가 손을 들어서 보고하라 명했다.
마라겸이 지금까지 마교의 성내를 수색했던 과정과 교주가 명령을 내렸던 것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보고했다.
한참 보고를 듣고 있던 교주가 물었다.
“그것은 어떻게 했지?”
그것이라고 지칭했지만 마라겸은 그것을 알아들었는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연회장에서 은밀히 회수한 옥병들은 십만대산 우절봉의 계곡에 폐기시켰습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겠지?”
“옥병을 물로 씻어내서 전부 깨서 계곡물에 던졌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습니다.”
“잘했다.”
연회장의 옥병들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지금 연회장에 있는 음식물과 술병들은 조사를 위해 그대로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대호법 마라겸은 그 중에 술이 담겨 있던 옥병을 빼돌려서 폐기시켰다고 말했다.
그것은 불과 어젯밤의 일이다.
최면에 걸려서 서로를 공격해대는 것이 마무리되고 천여운이 마도관에 적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먼저 그곳으로 향했을 때였다.
교주는 연회장에 있는 정파 무림맹의 사람들을 제압하게 하고, 장로들에게 성내를 봉쇄하라고 명했다.
그때 대호법 마라겸이 조용히 교주에게 옥병 하나를 가지고와 보고했다.
‘교주님. 술이 담긴 옥병에 뭔가 약물이 타있는 것 같습니다.’
‘약물?’
교주는 그것을 호법가의 무사들 중에 한 사람에게 복용하게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것을 한 잔 마신 무사가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되어서 눈이 풀리는 것이 아닌가.
교주와 대호법은 이것이 저들이 암시에 걸리게 만들었던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옥병들을 회수해서 마의에게 분석하게 하겠습니다.’
대호법의 말에 교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니.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구나. 지금 빨리 옥병들을 회수해서 누구도 찾을 수 없게 폐기시켜라.’
‘넷?’
교주의 말에 대호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반문했다.
이에 교주는 그 짧은 새에 자신이 생각했던 수를 대호법에게 말해주었다.
‘잘된 것일 수도 있다. 동맹 자리를 본교가 더 유리하도록 우위에 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
교주의 한 수에 대호법이 신음성을 흘렸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이것을 이용하리라고는 그 역시도 예상하지 못했다.
교주는 이 사건을 이용해 동맹을 결성하면서도 무림맹을 억누를 수 있는 명분을 얻어내려는 것이었다.
‘저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필요야 없지.’
무림맹의 사람들만 암시에 걸렸다면 모를까 마교의 일부 종주들도 이에 걸렸다.
옥병에 약물이 타져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림맹은 마교 측에서도 제대로 검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빌미 삼아 실책을 나누려고 들 것이다.
설사 최면술사가 연회장에서 약물을 탔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옥병이 없다면 온전히 정파 무림맹에서 적을 이곳으로 끌어들여서 사달을 일으킨 것으로 저들을 억누를 수 있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이것이 옥병들이 바꿔진 전말이었다.
아무리 그것을 조사한다고 해도 지금 연회장에 있는 옥병들은 멀쩡한 술이 담겨 있었기에 무림맹 측의 결백을 풀어낼 수 없다.
“마의와 의원들은 계속 조사하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이쯤하면 의원들을 물려도 되겠군.”
이것은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무림맹 측을 연회장에 억류시켜서, 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정하게 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일부러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상대 쪽에는 무림맹의 두 머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군사 제갈소희가 있었다.
소교주 천여운이 아뢴 것을 허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정도까지 조사에 성의를 다했다는 것을 보인다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의원들을 물리게 하고 정파 무림맹의 사람들을 금옥으로 옮기도록…응?”
마라겸에게 다음 명령을 내리려던 교주가 집무실 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집무실의 입구 쪽에서 호위 무사들이 고했다.
“교주님. 마의가 알현하기를 청합니다.”
“흠?”
철수시키라고 명을 내리려했는데, 본인이 먼저 온 것을 보면 더 이상 연회장에서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는다고 보고하기 위함인 듯 했다.
‘잘 됐군.’
교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오라 하였다.
집무실에 들어온 마의 백종우가 가지고 온 흰 천으로 가려진 쟁반을 옆에 내려놓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 올렸다.
“마의 백종우가 삼가 교주님을 배알합니다.”
“어서 오라. 그래 조사는 잘 되지 않은 것이냐?”
교주 천유종의 물음에 마의 백종우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교주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뭣?”
백종우의 말에 교주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대호법 마라겸을 통해서 약물이 담긴 옥병들을 전부 폐기하게 하였는데, 원인을 알아냈다고 하니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백종우가 옆에 놓여있던 쟁반에 천을 벗겼다.
쟁반 위에는 술잔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을 본 교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술잔?’
이것을 본 교주는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젯밤에는 경황이 없어서 무림맹의 사람들을 강제로 억류하는 사이에 옥병들만을 교체하게 했는데 설마 술잔을 들고 올 줄은 몰랐다.
다행히 술잔에는 어떠한 것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다면 문제가 될 게 없지만….’
그의 그런 불안함은 맞아들었다.
백종우가 술잔을 가리키며 교주에게 말했다.
“술잔에 양귀비를 비롯한 다량의 환각을 일으키는 약재를 조합한 잔재들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이런…..’
교주는 당혹감에 말문을 잃고 말았다.
술잔까지 처리하라고 하지 않은 것은 실책이기는 했지만, 술이 담긴 옥병에 문제가 없음을 발견했다면 이를 간과할 법도 했는데 찾아낸 것이었다.
‘마의에게도 언질을 했어야 했건만.’
후회가 되었다.
차라리 그에게 미리 말해두어서 증거를 발견해도 모른 척 하라고 했어야 했다고 생각되었다.
정파 무림맹의 사람들이 전부 지켜보는 앞에서 이뤄지는 조사였기에 자연스럽게 행해지도록 일부러 언질하지 않은 것이 사달을 일으켰다.
약물로 인해 벌어진 일에 교주의 심기가 불편했다고 판단한 마의 백종우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말했다.
“그래도 소교주께서 영민하여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뭐라? 소교주가 이것을 발견해?”
소교주가 발견했다는 말에 교주의 인상을 찡그렸다.
마의가 이것을 보고한 것만으로도 정파 무림맹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려던 한 수가 무너져서 어처구니가 없었던 교주였다.
‘이 녀석이…..’
잠시 말이 없던 교주가 물었다.
“…..그것이 정말 환술에 걸린 원인이 맞는가?”
“그렇습니다. 이것을 복용하게 된다면 환각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환술에 능한 자가 암시를 건다면 충분히 확률이 높습니다. 내공이 약한 자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다만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술잔에 묻어있는 양으로는 모자랍니다.”
마의 백종우의 말이 계속되면 될수록 교주의 표정은 굳어져만 갔다.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 하는데 옥병 안에 들은 술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소교주께서 이것이 바꿔진 것일 수도 있다고 직접 내성에 있는 옥병의 재고 확인을…”
“대호법!”
“충!”
교주가 백종우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것을 끊었다.
어젯밤에 일어난 사태의 원인을 알아냈는데도 불구하고 반응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백종우가 입을 다물었다.
“침입자들이 어떻게 환술을 걸었는지 그 원인을 알아냈으니, 정파 무림맹의 손님들의 억류를 풀어주도록 하라. 그리고 소교주도…..더는 조사를 멈추게 하도록 하라.”
“명을 받듭니다.”
대호법이 먼저 집무실을 나가자 마의 백종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교주는 처음부터 약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심기가 불편할 때면 눈매가 가늘어지는 것은 교주 특유의 감정 표현이었다.
‘허어…..교주께서 은폐한 것이었구나.’
사실 천여운이 옥병의 재고를 파악한다고 했을 때, 백종우는 교주를 배알해서 내성 음식물의 검수를 맡는 자들 중에 간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보고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는 듯 했다.
한편 내성의 주방에서 숙수를 만나서 옥병의 재고를 파악하고 있던 천여운은 대호법 마라겸이 나타나면서 그것을 멈춰야만 했다.
간자가 있을 지도 모르기에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천여운에게 마라겸은 교주가 세웠던 계획을 알려주었다.
‘그 상황에서 이것을 계획했단 말인가.’
교주가 마도관에 있을 때부터 자신을 미끼로 이용할 만큼 계략에 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점에선 참으로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교주의 이 한 수가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호법께서는 처음부터 이 계획을 알고 계셨습니까?”
천여운의 물음에 마라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교주가 계획한 이 한 수가 무림맹과의 동맹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을 제공해주기에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옥병을 처리한 것도 대호법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술잔은 둘째로 놓더라도 저라면 옥병을 전부 폐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고견이 있으십니까?”
“그것을 분석해서 대응할 수 있다면 적들이 똑같은 방법을 취하더라도 당하지 않을 테니까요.”
“아!”
대호법 마라겸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후까지 생각했단 말인가.’
천여운의 말대로 그들이 썼던 약물을 분석했다면 차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비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교주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그저 아쉽게만 생각했던 마라겸이었지만 천여운이 술잔에 남은 약물의 잔재를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훈수를 뒀군요. 먼저 나가겠습니다.”
-탁!
옥병을 내려놓고 내성 주방을 나가는 천여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라겸의 눈빛은 묘했다.
* * *
“아아!”
초조하게 기다리던 정파 무림맹의 사람들이 다행스러워했다.
결백이 증명되지 않으면 어떡해하나 노심초사하던 그들은 암시에 걸렸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연회장에 억류되던 것을 풀려날 수 있었다.
“허허, 다행일세. 오해가 풀려서 말이네.”
육웅주 풍청운의 말에 칠웅주 모용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만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흥! 다행이긴 하지만 어차피 동맹을 파기할 수 없는 상황이니, 저들도 본맹과 싸운다는 자충수를 둘 수 없기에 그런 걸 수도 있소.”
“그 말도 일리가 있구만.”
극도육무문이라는 최악의 적을 앞에 두고 두 세력이 상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마교에서 자충수를 두진 않을 거라 여긴 무용강이었다.
하지만 군사인 제갈소희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야. 이번 일을 빌미로 마교는 본맹과의 동맹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발 물러난다는 것은…..’
천여운의 도움이 컸다.
그가 암시의 비밀을 밝혀내주지 않았다면 무림맹은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 것이다.
‘소교주….천여운.’
어젯밤에도 자신이 암시에 걸려서 우발적인 행동을 벌인 것부터 시작해 하마터면 동맹의 연회장이 피로 물들 뻔한 것을 천여운이 막아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극도육무문에서 의도한 대로 모든 것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는 대의를 택했다. 마교에도 이런 큰 인물이 있었다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갈소희는 천여운의 행동에 내심 큰 감격을 받았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가 영리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맹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본 맹에 빚을 지게 만들다니. 어쩌면 그야말로 마교의 요주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그런 생각은 착각에서 비롯되었지만 천여운은 본의 아니게 무림맹의 제 이 군사인 제갈소희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빚은 꼭 갚도록 하지요. 천여운 소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