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89)
# 29장 주군이 돌아왔다(3) #
“이럴 수가….”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뒤늦게 도착한 고왕흘과 일행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말문을 잃고 말았다.
바닥에 일 열로 쓰러져 있는 열아홉 명의 부상자들.
하나 같이 팔 다리가 꺾여서 기절해 있는 그들을 한 곳으로 질질 끌면서 한곳에 정리하고 있는 푸른 두건의 청년이 보였다.
“허봉?”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자우민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불안해서 급히 달려왔는데, 완전히 예상과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아! 문규다.”
“저 사람은?”
멀리서 문규가 긴 머리카락에 새하얀 얼굴의 청년에게 상기된 얼굴로 반갑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발밑에는 오른팔이 잘려서 천으로 압박시켜놓은 자가 있었는데, 얼굴이 짓뭉개져서 피 곤죽이 되어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서, 설마?”
“아아아!”
일행들의 눈에는 바닥에 누워있는 자보다 긴 머리카락의 청년만 보였다.
삼 년하고도 두 달이라는 긴 나날이 지났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그들이 그렇게 기다려왔던 주군 천여운이었다.
“주군!!!”
흥분되었는지 상기된 얼굴로 고왕흘이 큰 목소리로 외치며 제일 먼저 달려가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뒤이어 달려온 다른 수하들 역시도 고왕흘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고왕흘이 호탕한 목소리로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제 일검 고왕흘이 주군을 뵙습니다.”
그의 옆에 서있던 문규도 아차 싶었는지 무릎을 꿇고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제 이검 문규가 천 공자님을 뵙습니다.”
세 번째 차례는 백기였는데, 유일하게 서있는 그였다.
‘삼 년 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면서 마도관에 있는 무공 교두들조차 약하게 느껴질 만큼 성장한 백기였다.
그런데 천여운을 바라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압도적인 역량을 느꼈다.
마치 마도관주인 좌호법 이화명을 볼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공이 강해질수록 관자놀이 부근의 태양혈이 솟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평평해져 있었다.
‘천여운 너는 정말…..’
백기는 본능적으로 그가 경(境)의 경지에 올라섰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수하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고독한 늑대와도 같은 성격인 백기는 마음 깊숙이 그를 우위로 인정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강함 앞에 드디어 마음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탁!
백기가 한 쪽 무릎을 꿇으며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제 삼검 백기가 주군을 뵙습니다.”
처음으로 생도들이 없는 앞에서 진심으로 예를 갖추어 경어를 사용하는 백기였다.
달라진 모습에 다른 수하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도저히 낯간지러워서 존댓말은 쓰지 못하겠다는 녀석의 변화가 오히려 낯설었다.
호상화가 빙그레 웃으며 외쳤다.
“제 사검 호상화가 주군을 뵙습니다.”
“제 육검 자우민이 주군을 뵙습니다.”
그 외의 아홉 명의 생도들이 차례대로 천여운에게 예를 표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떨리는 눈동자만 보아도 오랜 기다림 끝에 반가움이 느껴졌다.
심지어 눈시울마저 붉어진 이들도 있었다.
천여운이 그런 그들을 향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말했다.
“기다려줘서 고맙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하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주군께서 돌아오셨다.”
주군의 부재가 컸던 그들에게 있어서 천여운의 귀환은 의미가 남달랐다.
환호하는 그들의 모습에 긴 폐관으로 감정 변화가 다소 어색해진 천여운조차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고왕흘이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주군 그런데 이 자는?”
얼굴이 심하게 짓뭉개져서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말에 대답한 것은 문규였다.
“검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경운이에요.”
“천경운?”
천경운이라는 말에 고왕흘을 비롯해 생도들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최근에 들어서 오 단계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부터 현마종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과 더불어 각광을 받고 있는 그였다.
무공만으로는 생도와 교두들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인 천경운이다.
“처, 천경운 공자를 이렇게 만드신 겁니까?”
“이 곤죽이 천경운이었어?”
폐관 수련에서 복귀하자마자 제대로 한 건 한 셈이었다.
이 정도 중상이라면 소교주 후보자에서 탈락했다고 보아야 했다.
‘푸흡!’
‘꼴좋다! 그렇게 나대더니.’
천여운이 없는 동안 여러 수작을 부리며 그들에게 압박을 가해왔던 천경운이 이렇게 곤죽이 된 모습을 보니, 모두가 속이 시원해졌다.
“히히, 천 공자님한테는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더라고요.”
허봉이 괜히 자신이 으쓱해져서 자랑하듯이 말했다.
백기도 느꼈듯이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왕흘 역시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단지 반가움이 더 커서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주군!……혹시 화, 화경의 경지에 오르신 겁니까?”
떨리는 목소리.
모든 수하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바라보던 천여운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수하들은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목소리로 열광적으로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주, 주군께서 화경의 경지라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워낙 오랜 폐관 수련 때문에 걱정했던 수하들이었다.
깨달음이 오지 않아서 길어진 것이라면 소교주 쟁탈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길었던 폐관의 결과가 화경의 경지임을 알게 되자, 오랜 기다림에 보답을 얻는 느낌이었다.
마교 내에서도 화경의 경지에 오른 자들은 세 호법과 십이 장로들뿐이었다.
‘어쩌면 그딴 게 아니야.’
‘주군이야 말로 본교를 새롭게 바꾸실 분이다.’
‘아아아!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강자존을 표방하는 천마신교에 있어서 무위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길이었다.
천여운은 화경의 경지에 오르면서 수하들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천여운과 그 수하들은 우선 부상을 입은 천경운과 그 수족들을 의무실로 옮긴 뒤에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천천히 해후를 즐겼다.
천여운의 복귀는 많은 생도들과 무공 교두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폐관에서 돌아오자마자 소교주 후보자인 천경운 일파를 붕괴시켜버렸으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야. 이러다 정말 천여운 공자가 소교주가 되는 거 아냐?’
‘에이. 그래도 현마종의 천무연 공자도 있잖아.’
‘천무연 공자가 한 게 뭐가 있어?’
‘대박 아니야? 처음으로 여섯 종파 이외의 소교주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잖아.’
생도들 간의 여론이 심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여섯 종파 출신의 후보자들 간에 쟁탈전을 겨룬 적이 없었는데, 그 중 다섯 명이 전부 천여운의 손에 나가떨어졌다.
천여운은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했다.
‘큰일이다.’
지금까지 크게 부딪치지 않았지만 성장한 천경운 일파를 견제하고 있던 현마종의 천무연 일파 수하들의 부담감이 커졌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천무연이 소교주가 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천여운이었다.
수하들은 심히 걱정을 했지만 정작 천무연은 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무공을 높이는 데만 집중할 뿐이었다.
마도관의 본관 일층에 있는 관주 집무실.
마도관주인 좌호법 이화명 역시도 천여운이 폐관 수련에서 나온 사실을 접했다.
물론 나오자마자 검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경운 일파를 무너뜨리고, 그의 팔을 자른 것 역시도 듣게 되었다.
의무실에서 환자들에 대한 보고서가 이미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믿기 힘든 소식마저 접했다.
“화경 경지로 짐작된다?”
집무실 책상 앞에서 보고를 하고 있는 중년인은 폐관 수련 건물의 담당 교두였다.
폐관 건물의 입구는 밖에서 열어줄 수밖에 없기에 마지막 폐관 수련자를 위해 근무를 했던 담당 교두였다.
그러다 우연히 천여운의 신위를 직접 보게 된 그였다.
경악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무위에 담당 교두는 확신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짐작이 아니라 확실합니다. 격공섭물을 펼치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담당 교두의 확신에 찬 말에 좌호법 이화명의 눈동자가 떨렸다.
폐관 수련이 예상보다 길어진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소식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내심 초절정의 극에 올라서 나오리라 예상했던 이화명이었다.
‘화경의 경지라고?’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느낌이었다.
역대 마도관의 기수들을 통틀어, 불가능이라 불리는 육 단계 시험을 통과하지 않고도 화경의 경지에 올랐던 이는 전무했다.
이것은 단순히 천부적인 재능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정말 본교에 큰 폭풍이 몰아치려는 것일까?’
상상을 초월하는 천여운의 성장에 혹시나 하는 기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말로 큰 변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여운이 가진 힘은 더 이상 여섯 종파가 언제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수준을 넘어섰다.
놀라움이 쉽게 가시지 않는지 입을 꾹 닫고 있던 이화명의 두 눈이 커졌다.
이화명의 반응을 이상하게 생각한 폐관 수련 담당 교두가 물었다.
“관주님, 무슨 문제라도?”
“하! 정말이었나.”
“네?”
화경의 경지인 이화명의 기감은 마도관 건물 전체에 있는 자들을 감지할 만큼 그 범위가 넓다.
마도관의 건물 안으로 압도적인 역량을 가진 자가 들어섰다.
만약 방금 전의 보고를 듣지 않았다면 장로들 중의 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역량이었다.
그 역량을 가진 자가 바로 집무실의 문 앞에 서있었다.
-똑똑!
“관주님, 천여운 대주가 뵙기를 청합니다.”
“아!”
밖에서 들려오는 무공 교두의 목소리에 폐관 수련 담당 교두의 놀라워했다.
지금까지 보고했던 당사자가 지금 문밖에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들어오라 해라.”
“충!”
관주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긴 머리카락에 새하얀 얼굴의 천여운이 들어왔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목 등까지만 내려오게 정리한 그였다.
기를 갈무리하고 있었기에 하수들은 그 역량을 짐작하기 힘들었지만 좌호법 이화명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경(境)에 들어선 것이 틀림없구나.’
이화명이 책상에서 일어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천 대주. 정말 괄목상대(刮目相對) 했군.”
“과찬이십니다.”
이제는 정말로 애송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좌호법 이화명을 바라보는 천여운의 눈빛이 미묘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정말 대단하구나.’
화경의 경지에 올라서 이화명을 바라보니 그의 진정한 실력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짐작이 틀림없다면 완숙한 화경의 경지가 분명했다.
현재의 천여운보다 한 수 위였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탁!
천여운이 이화명에게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오 단계 시험을 치르고 싶습니다.”
좌호법 이화명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온 지, 불과 두 시진 만에 천여운이 오 단계 시험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