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machines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08
108. 이한, 실력을 보이다.
108. 이한, 실력을 보이다.
처음부터 이한의 왼팔을 노린 공격은 아니었다.
혈교의 장로가 의도했던 것은 이한의 몸통을 가로지르는 참격(斬擊)이었다.
적에게 닿을 수 있는 최단 거리를 선호하는 발도술의 특성상 몸통을 노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한이 혈교 장로의 참격을 막겠답시고 날아오는 칼에 왼팔을 가져다 댄 것이다.
누가 보아도 정신 나간 행동이었다.
절정 고수가 작정하고 휘두르는 칼은 쇳덩이조차 일격에 가른다.
그렇다면 쇳덩이보다 강도가 약한 사람의 팔은 어떻게 될까?
팔이었던 것으로 변하리라는 것은 구태여 시험해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외공을 대성해서 검기조차 막아낸다는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을 이룬 사람이라면 모를까, 내공 수련을 중심으로 하는 대부분의 무림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한의 행동은 내 팔을 자르라고 내미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쯧, 어리석은!”
혈교 장로는 혀를 찼다.
혈교 장로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무공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이한의 반응을 죽기 직전의 마지막 발버둥, 두려움으로 인한 본능적인 반응, 뭐 그런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력에 비해 심력은 터무니없이 약한 놈이라는 비웃음도 함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방심이라니!
그런 사치를 부릴 정도로 여유있게 살아오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진작에 십만대산에서 죽었을 것이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놓친 것을 늦지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의 칼 아래에서 곧 셋으로 나누어질 것을 예약한 자의 눈빛이 여전히 강렬함을 말이다.
저것은 절대로 포기하거나 두려워하는 자의 눈이 아니었다.
확신을 가진 자의 눈이었다.
확신?
어떤 확신?
무엇인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혈교 장로의 경계심이 최고를 찍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기 전에 죽이면 그만이었다.
저놈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가 그의 칼에 깃들었다.
칼에서 희미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검기가 발현된 것이다.
사실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 사용하는 칼이나 무림인이 사용하는 칼이나 둘 다 칼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모양새도 쓰임새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절정의 경지에 있는 무림인이 휘두르는 칼은 좀 다르다.
그것은 그냥 칼이 아니었다.
칼이 스스로 빛을 내서도 아니고, 철이든 바위든 상관없이 두부처럼 슥슥 잘라낼 수 있어서도 아니다.
칼에 담긴 의념, 즉 목적을 가진 의지가 평범한 인간은 감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은 절정고수가 칼을 겨누는 것만으로도 그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절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평범한 무림인의 경우도 비슷하다.
칼이 의념에 반응해서 검기를 발산하기 시작하면,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칼에서 풍기는 기세를 견디기가 쉽지 않다.
실력이 많이 차이 난다면 기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어이없게 죽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혈교 장로는 이한이 자신의 기세에 제압되기를 바랬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실력의 차이에 압도되어 눈빛이 절망으로 썩어버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칼에 의지를 실어 검기를 발산했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 이한의 팔과 몸통을 동시에 베었다.
턱!
그러나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칼이 팔에 막힌 것이다.
검기를 발산하는 칼이 팔을 자르지 못해?
외공을 익힌 자도 아닌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혈교 장로는 당황할 틈도 없었다.
칼이 막히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이한의 주먹이 혈교 장로의 가슴을 가격했다.
삼단삼극권의 정수가 담긴 권격이었다.
*
이한은 왼팔이 칼에 맞는 순간 불에 데인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이한이 통증을 느끼자마자 나노가 통증을 차단했지만, 팔이 잘려나가는 것 같은 기분 나쁜 감각은 그대로 남았다.
그럴 만도 했다.
이한의 왼팔은 절반쯤 잘린 상태였다.
전완의 피부와 근육을 갈라버린 칼이 척골도, 요골도 베지 못하고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앞팔을 구성하는 두 개의 뼈 중 단 한 개도 자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뼈를 자르지 못했을 뿐, 반쯤 잘린 팔은 시뻘건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무통처지! 지혈! 치료를 시작합니다.]나노의 보고가 이어졌지만, 이한의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삼단삼극심법.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무공.
서로 다른 기운이 꼬리를 물고 서로를 자극해서 본연의 내공 이상의 위력을 내는 심법.
이한은 전력으로 삼단삼극심법을 운용했다.
그리고 몸이 완벽하게 기억하는 초식을 그의 오른손으로 펼쳤다.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공격이 막혀서 잠깐 멈칫한 혈교 장로의 가슴을 향해서 금의 기운을 담은 주먹을 뻗었다.
그의 주먹은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사라질 빈틈을 찌르는데 성공했다.
주먹에 담긴 기운이 혈교 장로의 갈비뼈를 부수고 심장을 강타했다.
그러나 이한 역시 멀쩡하지는 못했다.
이한이 전력을 다해 혈교 장로의 가슴을 가격한 순간, 혈교 장로 역시 이한을 향해 장법을 전개했다.
철혈신장(鐵血神掌).
혈교의 독문 무공이고, 금기를 끌어낸 삼단삼극권 못지 않게 강맹한 위력을 가진 장법이다.
삼단삼극권이 힘을 한곳으로 모아서 찌른다는 느낌이라면 철혈신장은 넓은 부위를 한꺼번에 박살낸다는 느낌의 무공이었다.
“컥!”
“억!”
비틀.
혈교 장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한의 일격으로 인해 입은 타격이 제법 컸다.
뒤로 물러서는 그 동작부터가 정상이 아니었다.
심장에서 시작된 격통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누워야만 할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요상심법을 운용했지만 심장에서 시작된 격통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이럴 때 누군가가 공격해 온다면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한 역시 혈교 장로를 공격할 상황이 아니었다.
철혈신장에 맞아서 십여 장을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한은 조금 전에 불쾌감까지 느끼며 떠났던 거대한 규모의 건물에 처박혀 버렸다.
“으~”
이한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키자, 나노가 호들갑을 떨며 보고를 시작했다.
[척골에 흠집이 났습니다! 강화 시술을 받은 뼈에 흠집이 나다니! 그것도 칼로! 라이트 세이버에도 멀쩡하게 버티는 뼈인데, 이게 무슨!]“내공의 힘이겠지. 그래서 내공을 탐내던 것 아니었나?”
[내공과 관련된 지식은 기관에서도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지금까지 이곳에서 내공에 관해 많은 자료를 모았지만, 내공이 가진 가능성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내공이든 뼈든 그것들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몸상태는 어떻지? 현재 상태가 어떻게 되나?.”
[일단 절단되었던 부분은 복구했습니다. 일상적인 동작은 상관없지만, 신경계와 혈관계가 안정되려면 적어도 하루는 있어야 하니까 격렬한 동작은 금물입니다. 전투는 절대 안 됩니다. 연결부위가 다시 찢어집니다. 독공도 사용하지 마십시오. 연결부위가 썩습니다. 치료용 나노머신을 만들 재료가 바닥났다는 점을 상기시켜드립니다.]“재료를 구하기 전까지는 병신으로 지내야 한다는 소리군.”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싸워야 해. 내 마음대로 안정을 취할 상황이 아니야. ”
이한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혈교의 장로를 보며 나노에게 말했다.
이한과 시야를 공유하는 나노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저 늙은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인상을 쓰며 쩔쩔매더니 의외로 금방 회복이 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한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한의 눈에 보이는 자는 혈교의 장로 뿐만이 아니었다.
소림의 승려와 무림세가의 고수로 보이는 자들도 혈교 장로를 쫓아 달려오고 있었다.
시간을 끈 보람이 있었다.
*
혈교의 장로는 자신의 혈도를 몇 군데 짚어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도록 처치했다.
원래는 특별한 대법을 진행하거나 아니면 수술을 할 때 고통을 느끼지 않게끔 하던 수법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되다니!
심장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움직여야 했다.
저 어린 놈을 이대로 놓아줄 수는 없었다.
세상을 파괴할 문을 여는 방법을 아는 도사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놈이었다.
사로잡을 수 있으면 사로잡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죽여야 했다.
만약 마교의 손에 저 놈이 들어간다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러나 세상일은 원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까부터 계속 귀찮게 굴던 몇몇 무림인이 다시 따라붙은 것이다.
소림의 땡중이 하나, 무림세가의 바깥 일을 하는 놈들이 둘.
그리고 눈치를 보며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 몇 명 더.
혈교 장로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
오른손으로 칼을 쥐고 일어서던 이한은 불현듯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생산할 수 있었던 나노머신의 대부분을 이곳에 살포했던 것이다.
“여기에 다목적 나노머신을 살포했었지?”
[그렇습니다. 현재 대부분 통제가 가능합니다.]이한은 즉시 부서진 벽을 넘어 구르듯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지만, 이 건물 내부는 나노머신으로 가득차 있는 셈이다.
이한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안전하게 혈교의 장로를 상대할 수단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한이 들어온 곳으로 혈교 장로가 따라 들어온 것은 금방이었다.
그의 눈빛은 분명히 이한을 원하고 있었다.
곧이어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혈교 장로를 추격해 온 무림인들이었다.
그들은 전과 달리 약세를 보이는 혈교 장로의 모습을 기꺼워했다.
혈교 장로에게 한방 제대로 먹여준 이한을 향해서는 우호적인 미소를 보냈다.
공격을 시작한 자는 소림사의 승려였다.
그는 긴 선장으로 혈교의 장로를 찔러갔다.
지팡이에 앞뒤로 도끼와 창을 끼워놓은 특이한 모양이 선장이었다.
뒤이어 무림세가의 고수들도 달라붙었다.
칼을 사용하는 그들은 손발을 맞춰본 적이 있는지 합공하는 솜씨가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한은 끼어들지 않았다.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며 준비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한이 기다리던 기회는 금방 잡을 수 있었다.
살포되었던 나노머신을 계속 모아들이던 이한은 혈교 장로가 살짝 몰리는 듯한 순간, 혈교 장로의 머리를 나노머신으로 뒤집어 씌웠다.
이한이 노린 것은 눈이었다.
신체 내부로 나노머신을 들여보내봐야 혈교의 내공을 한 번 일주천하면 모두 멍텅구리 나노머신이 되어서 똥의 재료가 될 뿐이다.
그래서 이한은 나노머신으로 눈을 공략했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느낌 때문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제대로 눈도 못뜨는 상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반쯤 장님이 되어버린 혈교 장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소림승의 선장에 머리를 맞고 머리가 반쯤 날아가는 것으로 전투가 끝났다.
이한은 자신을 노리는 위험이 없어지자 곧장 말론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