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romancer Infinite Skill Player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쿠웅. 쿵. 쿵.
지면을 따라 묵직하게 전달되는 진동과.
숙성된 오줌마냥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역한 냄새.
칼리드는 그것들이 자신의 뇌 안을 지배하는 순간.
얼굴을 팍 일그러뜨렸다.
‘계곡 트롤.’
칼리드의 지식이 맞다면.
이놈들은 절대로 자신들이 사는 계곡 밖으로 나오지 않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밖으로 뛰쳐나오는 딱 한 가지 경우뿐이었다.
‘레드론…. 그 빌어먹을 오크의 영향력이 여기까지 뻗쳐왔다는 뜻인데.’
칼리드가 잠을 청한 협곡은 광산 지대로 진입하는 초입부.
그 말인즉.
눈앞에 위치한 협곡부터 광산 안쪽까지.
모조리 레드론 무리에게 먹혀 버렸다는 말과도 같았다.
‘빌어먹을.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꼬여 버린 것 같은데.’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적당히 몬스터 무리를 피해 가면서.
필요한 만큼의 청염석만 가져오고 그대로 몸을 빼내려 했는데.
광산 입구부터 장악당한 상황이라면.
이대로라면 레드론 무리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되지 않았나.
‘…우선은 이 냄새 나는 괴물들부터 처리하자.’
천막 아래에 던져두었던 검을 집어 든 칼리드.
그는 반쯤 감은 눈을 한 채로 밖으로 몸을 빼냈다.
“칼리드 발데아 도련님! 조심하세요!”
나가자마자 칼리드의 귀를 강타하는 아르센의 목소리.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뭘 하려는 거야?”
“계곡 트롤들이에요! 위험하니까 일단 제 뒤에 딱 붙어 계세요!”
여전히 시선은 정면에 둔 채로.
버럭 소리 지르는 아르센의 말에.
칼리드는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뭐야, 이 자식. 정말로 자기가 내 호위 역할로 온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생각은 자유라지만.
칼리드와 아르센이 가진 힘의 차이는 너무나도 현격했다.
애초에 아르센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검사.
기껏해야 1, 2급 기사 수준일까.
마음만 먹는다면 몇 초 안에 칼리드가 녀석을 으깨어 버릴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센은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만 눈빛을 하고선.
정면에서 다가오는 몬스터 무리를 노려보았다.
쿠오오오.
쿠오오.
“옵니다! 조심하세요!”
길잡이의 외침과 함께.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는 싯누런 색깔의 계곡 트롤들.
녀셕들은 몸에 초록 이끼를 덕지덕지 묻힌 채로.
간만에 맛있는 먹이를 찾은 양 입맛을 다시며 다가왔다.
‘하나, 둘, 셋…. 일단은 여섯 마리인가.’
칼리드의 너덧 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덩치들.
녀석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들자.
스릉.
긴장한 얼굴로 검을 뽑아 드는 아르센.
‘…꼴에 검은 꽤 좋은 걸 쓰는데.’
달빛에 반짝이는 날붙이를 보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
쿠오오옥!
서로 눈치만 보던 트롤 두 마리가 아르센을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쿵! 쿵! 쿠웅!
지면을 부숴 버릴 듯한 진동음.
‘온다!’
칼리드는 놈들의 움직임을 진작에 읽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차분한 눈으로.
길잡이가 어떻게 대응하려 들지 지켜볼 뿐이었다.
“너희 같은 괴물들에게 질 줄 알고?”
녀석은 트롤들이 움직이기 전까지 그 자리에 붙박은 듯 서 있다가.
바짝 몸쪽으로 검을 당겨 잡았다.
‘어?’
그리고는 일직선으로 쭉 뻗어가는 은빛 검격.
아르센의 검은 흡사 호랑이의 발톱처럼 맹렬하게 쏘아지더니.
서걱.
그대로 계곡 트롤의 모가지를 잘라내 버렸다.
‘잠깐… 저거… 크람펜 류 검술 아닌가?’
익숙한 동작과 눈에 익은 검선.
칼리드가 사용하던 검술과 완벽히 같은 류의 것이었다.
‘…발데아 영지에서 나 말고 이 검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혼란스러워하는 칼리드.
아르센은 자신의 고객님이 등 뒤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른 채로.
다음 검격을 펼쳤다.
촤악.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쏟아져 내리는 녹색 피 사이로.
예리하게 휘둘러지는 두 번째 검격.
사선으로 그어진 반달은.
이번에는 다른 트롤의 몸 위로 쏟아졌고.
녀석의 팔이 아르센의 몸에 닿기도 전에 반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쿠웅.
‘제법인데.’
찰나의 순간에 트롤 두 마리를 베어버리는 실력이라니.
내심 아르센의 실력을 반신반의했던 그에겐.
눈앞의 광경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조금 어설프긴 해도… 크람펜 류의 기본에 굉장히 충실해.’
따지고 들자면 허점이 제법 보이긴 했지만.
간결하고 파괴력 있는 검술은 어디에 내놔도 크게 흠잡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1급 기사 수준은 충분히 되겠고…. 마나 다루는 훈련을 제대로 한다면 소드 마스터까지 넘볼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아르센의 활약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
순식간에 합류한 여섯 마리의 계곡 트롤들이.
칼리드와 아르센을 둘러싸기 시작하더니.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우르르 달려드는 것 아닌가.
“아흑!”
아르센은 다급하게 검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내려 했지만.
폭우처럼 쏟아지는 주먹세례에.
그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카, 칼리드 도련님…. 일단은 도련님만이라도 자리를 피하시는 게….”
“나와.”
“예?”
“비키라고.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하니까.”
“하, 하지만 도련님께선 검을 다루시지 못하-”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턱.
칼리드는 녀석의 뒷덜미를 낚아채고는.
그대로 뒤쪽으로 휙 던져 버렸다.
털썩.
“도, 도련님?!”
“그만하면 됐어. 거슬리니까 거기에 앉아 있으라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엉덩방아를 찧은 아르센.
녀석은 얼떨떨한 얼굴로 칼리드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굳이 입을 열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간 끌면 서로 피곤해지니까, 빨리 끝내자고.”
트롤들의 발치로 검은 마나를 흩뿌렸다.
콰드드드.
쿠오오?
쿠오오오?!
예기치 못한 흔들림에.
멍청한 얼굴을 한 채 서로 무어라 울부짖어대는 트롤들.
칼리드가 뿌린 마나에 갈라지는 지면.
그 속에선.
‘나와라, 트롤들아.’
뼈다귀로 만들어진 트롤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쿠오오오!!!
외형부터 덩치, 크기까지.
코앞의 계곡 트롤들과 완벽히 같은 형태.
비록 살가죽은 붙어있지 않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어디 틀린 곳 하나 찾기 힘들 만큼 정교한 모습이었다.
한 녀석을 필두로.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순식간에 네 마리의 트롤 스켈레톤을 빚어낸 칼리드.
그는 동족을 보며 얼이 나간 트롤들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죽여.”
쿠오오오!
칼리드의 명령과 함께.
뻥 뚫린 눈에서 보랏빛 안광을 뿜어내는 트롤 해골들.
녀석들은 흡사 광전사라도 된 마냥.
제 두 배는 되는 계곡 트롤들을 향해 우르르 덤벼들었다.
콰오오!
삽시간에 뒤섞여 치고받는 열두 마리의 트롤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아르센은.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난전에.
멍하니 칼리드와 트롤 무리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칼리드 도련님이 트롤들을 불러내서… 아냐. 애초에 칼리드 도런님이 사령술을 다룰 수 있었던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파란 눈을 꿈뻑이는 사이에.
트롤들의 난투는 더욱더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여덟 마리의 계곡 트롤들을 상대로 주먹다짐을 하던 트롤 해골들이.
자신의 왼팔을 뽑아 들더니.
오른손에 쥐고선 검처럼 휘둘러대는 기괴한 광경에.
아르센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로 눈을 떼지 못했다.
‘트롤들이… 자기 팔을 뽑아서 검술을 펼치고 있어.’
심지어 그 검술이라는 것이.
방금 전까지 자신이 계곡 트롤들을 상대로 펼쳤던.
크람펜 류 검술과 완벽히 닮아 있다는 사실에.
그의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어째서 트롤들이… 내 검술을….’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르센이 칼리드 쪽으로 눈을 돌리자.
그곳엔 인형극을 하듯 손가락을 까딱이는 칼리드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칼리드 도련님께서 저 트롤 해골들을 조종하고 계신 거야?’
믿기 힘들었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설명할 방법은 그것 말고는 없었다.
아르센은 용병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사령술사들이 불러낸 소환체들이 검술을.
그것도 크람펜 류 검술을 펼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직접 본 적도 없었으니까.
꿀꺽.
방금 전까지 혼란스러워하던 아르센.
그는 어느샌가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선.
트롤 해골들이 펼치는 검술에 자신의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사이.
쿠오오오오오오!!!
일대를 뒤흔드는 괴성과 함께.
전투의 판세는 급격하게 트롤 해골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숫자가 많다고는 해도.
칼리드의 마력을 받은 데다가.
단단한 무기를 들고 검술까지 펼쳐대는 데에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철퍽. 철퍽.
몇 번 몸뚱이를 섞어대던 녀석들은.
이내 초록색 피를 흩뿌리며 하나둘씩 바닥에 자빠지더니.
쿠오오! 쿠오!
한 마리만을 남겨놓고 모조리 다져진 고깃덩어리 신세가 되어 버렸다.
“멈춰. 저놈은 죽이지 마라.”
우뚝.
한 마리 남은 계곡 트롤을 두고.
살짝 손을 들어 올리는 칼리드.
그 모습에 안심하기라도 한 건지.
저 멍청한 덩치 녀석은 인간이 하는 것마냥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칼리드는 그런 녀석을 쳐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쿠로르르르. 크르르.
[스킬: 중급 인외 언어학을 발동합니다.]“도, 도련님?!”
갑자기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몬스터의 언어에.
흠칫 몸을 떠는 아르센.
칼리드는 그쪽에 눈길조차 주지도 않은 채.
하나 남은 계곡 트롤 녀석과 시선을 마주쳤다.
녀석 역시 아르센과 같은 마음이었을까.
갑작스레 인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동족의 언어에.
퉁방울만 한 눈을 번쩍 뜨고선 칼리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대답해라, 트롤. 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닐 텐데.”
“이, 인간. 네가 어떻게 우리 일족의 말을 할 줄 아는 거지?”
여전히 반쯤 혼이 나간 얼굴로 되묻는 녀석을 보며.
칼리드는 들고 있던 검을 빼 들어 녀석의 목을 향해 겨누었다.
“거기까지는 알 필요 없어. 딱 한 번 기회를 더 주지. 네 이름은?”
“…회색 땅의 란토스.”
“그래, 란토스.”
“회색 땅의-”
사아악.
제대로 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불평하려던 계곡 트롤 란토스는.
자신의 피부를 한 층 베어 들어오는 칼리드의 칼날에.
급하게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라면 대번에 눈앞의 인간을 향해 주먹을 뻗었을 테지만.
방금 전까지 함께 했던 동료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던가.
심지어 자신과 싸웠던 트롤 해골들은.
아직까지도 건재하게 살아남아 란토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라, 란토스. 맞다, 내 이름은 란토스다.”
“앞으로는 묻는 말에 재깍재깍 대답할 수 있도록 해.”
“아, 알았다.”
혹여 칼리드의 검이 움직일까 싶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그 모습에 칼리드는 흡족한 얼굴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두 번째 질문.”
“무, 물어보아라.”
“너희 일족은 보통 저 협곡 안에서만 움직일 텐데. 굳이 이곳까지 나와서 우리를 노린 이유가 뭐지?”
아마도 칼리드의 예상이 맞다면.
변종 오크, 레드론의 영향력 때문에 밖으로 밀려난 것일 테지.
앞서 칼리드는 그렇게 추측했었고.
절대로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그것이….”
그러나 머뭇거리며 입을 여는 트롤 란토스의 대답은.
“…뭐라고?!”
칼리드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사령명가의 무한스킬 플레이어
지은이
: 대왕생
제작일
: 2022년 11월 23일
발행인
: (주)에이시스미디어
편집인
: 에이시스미디어 편집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428 11F 125호
전자우편
※ 본 작품은 (주)에이시스미디어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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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76-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