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이 여자는 동굴에서 도망쳤다! 너희들이 받아 주지 않으면 갈 곳이 없다!”
“우린 동굴사람이 필요 없다! 동굴사람에게 잡혀간 여자는 이상한 것을 낳는다. 어서 데리고 꺼져!”
전사가 다시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돌창을 날렸다.
슈우웅!
“이 망할 새끼들이!”
마음 같아서는 달려 나가 곰 부족 전사들을 몰살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님, 공격 준비할까요?”
이달투드워프1이 내게 물었다.
“……됐다, 싫다고 하니 그냥 가야지.”
사실 아예 예상을 안 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달투드워프1이 싸우자고 말했다.
동굴에서의 전투 때문에 이달투드워프들이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실제로 우리에겐 사각 방패가 있으니 전투를 펼치면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동굴이 아니다.
또한 곰 부족 전사들에 비하면 이달투드워프는 체력만 높지, 전투력은 떨어진다. 그러니 전투를 벌인다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꽤 많은 이달투드워프들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또 승리를 한다고 해도 얻을 것도 없어 보였다.
“그냥 가자! 재수 없는 새끼들을 조질 날이 있겠지.”
곰 부족 놈들은 별로 달갑지 않은 놈들이 분명했다.
‘그래, 조질 날이 있겠지.’
기분이 참 묘했다.
“예.”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고 여자는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래요?”
“……저는 어떻게 해, 해야 하죠?”
“동굴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나랑 같이 가요.”
“어디로요?”
“하늘 부족으로!”
내 말에 곰 부족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봤다.
“곰 부족에서는 당신을 버렸다 해도 우리는 당신을 환영할 겁니다. 같이 가요.”
“…….”
곰 부족 여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달투들이 있는 동굴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나를 따라 가야 하니 말이다.
곰 부족 여자는 허망한 듯 모든 것을 잃은 표정을 지은 채 고개만 주억거렸다.
‘저것들 제대로 망할 것들이네.’
그렇게 우리는 곰 부족의 부락에서 멀어졌고, 부족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여자들은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따라 걸었다.
‘이러다가 미션 클리어 못 하는 거 아니야?’
아마도 구한 여자들을 부족까지 돌려보내야 미션 클리어 메시지가 뜰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택배 서비스까지 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다른 부족에서도 대부분 곰 부족과 같은 일이 벌어졌고, 여자들도 거의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돌아가라!”
“우린 이달투의 새끼를 밴 여자는 필요 없다!”
“짐승과 같이 살 수는 없다!”
자라 부족도, 큰뿔사슴 부족도 곰 부족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제기랄, 이제 악어머리 부족만 남았네.’
부족에게서 축객령을 받은 여자보다 지켜보는 내가 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남은 악어머리 부족의 높은 목책이 보이는 숲 앞까지 왔다.
‘……기대하지 말자, 여기도 똑같겠지.’
자신이 살았던 악어머리 부족을 보고 있는 여자의 반응은 묘했다.
그러고 보니 동굴에서 나와 같이 가자고 할 때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여자였다. 아마도 잡혀 온 지 꽤 오래된 여자일 것 같다.
그런데도 돌아가겠다는 것은 아마도 악어머리 부족에 자신의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기까지 왔다.
“너희들은 여기 있어라!”
나에게는 내 부하인 이달투드워프들이지만 원시인의 눈에는 이달투에 불과했다. 그리고 원시인들에게 이달투는 여자를 납치해 가는 죽여야 할 존재였다.
“예, 주인님!”
“가요.”
“나도…….”
악어머리 부족 여자가 망설이는 듯 내게 말을 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건 일단 가 봐야 알죠.”
“……예.”
악어머리 부족의 여자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 * *
악어머리 부족의 목책 앞에 도착하자 난리가 났다.
“반쪽 악어 땅속에서일어서가 돌아왔다!”
“여자 하나와 함께 왔다!”
목책 위에 서 있는 전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목책을 열어라! 땅속에서일어서가 왔다!”
방패와 갑옷을 만들어 줬기에 나에 대한 호감도는 꽤 높았다.
‘목책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많지 않네.’
속으로 뇌까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부족의 전사들이 어디론가 빠져나간 게 틀림없었다.
역시 큰눈과 이빨이 이달투 원정대의 전사를 후퇴시킨 것은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어서 들어가요.”
여자를 목책 안으로 들여보내고 집으로 향할 참이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
“왜 혼자 온 거냐? 그리고 저 여자는 뭐냐?”
그때 목책 위에 서 있던 전사가 내게 소리쳤다.
“이달투의 동굴에서 구한 여자를 데려다주려고 왔다.”
“뭐?”
“악어머리 부족 여자다.”
“땅속에서일어서가 여자를 구해 왔다!”
그래도 악어머리 부족은 나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서인지 문전 박대는 하지 않았다.
“어서 들어가요.”
여자는 겁먹은 얼굴이었다.
“……고맙습니다.”
“힘들 겁니다.”
살짝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네, 그러겠죠. 하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어요.”
이것이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알았으니까 어서 들어가요.”
“고맙습니다. 이빨에게 말해서…….”
“이, 이빨이라고요?”
“네, 제 짝입니다.”
놀랍다.
내가 구한 여자는 이빨의 짝이었던 여자였다. 하지만 악어머리 부족에서 본 이빨에게는 짝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물론 원시시대이니 강한 사내가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려도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예, 알겠으니까 들어가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가지를 꺾었어.’
나는 악어머리 부족이었던 여자가 이달투의 동굴에서 나오면서 가지를 꺾어서 표시하는 모습을 봤었다.
‘……분명 동굴에도 새끼가 있겠지.’
이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인 것 같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 내 부족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순간이다.
-미션 클리어!
여자가 악어머리 부족 목책으로 들어가자 미션 클리어 메시지가 떴다.
-레벨 업!
이번 미션 클리어로 자그마치 레벨이 10이나 상승했다.
‘제대로 대박이네…….’
어쩌면 악어머리 부족에서 받은 미션이라 저 여자가 악어머리 부족으로 들어갔기에 미션이 클리어가 되었을 수도 있다.
‘고맙네. 꾹 잘 참고 잘 살아요. 내가 당신을 기억할 테니까.’
어디에 살든 저 여자는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나는 강 옆에 난 습지를 따라 하늘 부족의 부락이 있는 대나무 숲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혼자가 아니라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이달투드워프와 여자들과 같이 움직이기고 있기에 빠른 길 대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달투들을 다 싫어하니까.’
괜히 다른 부족을 만나면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뭔가 묘한데…….’
그때 발바닥 밑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지나온 곳은 습지라서 진흙을 밟는 물컹한 느낌이 아니라 뭔가 생물의 반응이었다.
여기로 오면서 머리에 맴도는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으음, 뭐지?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를 익숙함이다.
‘망할!’
항상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된다.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고 있는 용의 뼈로 만든 검을 뽑아 당장이라도 바닥에서 뭔가 튀어나올 듯 꿀렁거리는 곳을 내려찍었다.
수우욱!
그냥 습지를 힘껏 찌르는 느낌이 아니다. 검의 끝에서 뭔가 동물의 살을 베는 듯한 감각이 걸렸다.
아는 만큼 두렵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이 된다.
“모두 나무 위로 올라가! 어서어서!”
그리고 바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달투드워프들과 여자들은 오랜 이동에 지쳤는지 나만 보며 멀뚱거리고 있다.
캬아악!
그때 습지 바닥 아래서 기괴하지만 익숙한 괴성이 들리며 검은 피가 뿜어졌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단어는 딱 하나였다.
‘제기랄, 스몰 웜이 왜 여기에 있어!’
지난 어비스에서 신에게 강제 소환을 당했던 소환자들을 가장 먼저 공격했던 놈들이다. 땅이 무른 곳이면 어디에나 있고, 거의 반드시라 할 정도로 자주 나타나는 놈들이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약방의 감초처럼 안 나타나는 곳이 없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게 아니면 망할 놈의 신이 드디어 장난질을 시작한 걸까?
알 수 없었다.
사실 원시시대에 어떤 것이 생존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대인이 그 시절에 살았던 것 중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화석으로 발견이 된 것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삼엽충이나 공룡, 거대 잠자리 같은 몇몇뿐이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캬아아악!
슈우웅!
‘스몰 웜이 확실하다.’
그와 동시에 싹이 쏟아나듯 거머리처럼 생긴 놈들이 습지를 뚫고 나와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척!
쭈우욱!
내가 도망치라고 했지만 멀뚱거리고만 있던 여자의 왼쪽 가슴 부분에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흡착판을 단 놈이 달라붙었다.
“꺄아악!”
여자는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바로 빠르게 피를 빨렸고,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그게 시작이었다.
“어서 올라가! 어서!”
나는 지금 공격하는 놈들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하지만 이 상태라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수우욱!
척!
쪼오오옵!
길고 검은 놈이 이달투드워프의 허벅지에 달라붙었다.
“으악! 피…… 피가…….”
놈들은 피를 빤다.
“어서 쳐 내고 올라가!”
내가 다시 한 번 소리쳤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이달투드워프들과 여자들이 나무 위로 올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스몰 웜이다!’
스몰 웜은 눈도 없고 코도 없다.
단지 땅속에서도 땅 위의 움직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감각과 뭐든 쑤셔 넣는 주둥이와 이빨이 있다.
그리고 스몰 웜들은 지렁이처럼 여러 마리가 뭉쳐서 산다.
이 순간이 그 망할 놈의 신의 장난이 아니라면 우린 원시 습지에 살고 있는 거대 거머리 떼를 밟은 거다.
-습지 거대 거머리
종족 : 연체 생물
생명력 : 1,100/1,100
공격력 : 35
방어력 : 12
흡입력 : 176
나는 지난 어비스를 떠올리며 스몰 웜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습지 거대 거머리’라는 이름으로 메시지가 떴다.
“아아악!”
나무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척!
“아악!”
쪼오옥!
놈의 주둥이가 큰 만큼 피가 빨리는 속도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빠른데, 피를 빠는 소리가 내 귀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망할!’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비명들, 그리고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놈들에게 피를 빨리는 이달투드워프들과 여자들의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아악! 살려 주세요. 아아으읍!”
그때 급하게 나무 위로 올라가지 못한 여자 한 명의 다리에 습지 거대 거머리가 주둥이를 흡착했다.
쪼오옥!
“아아악! 살, 살려줘요.”
놈의 목구멍이 울렁거리면서 여자의 피가 꿀꺽꿀꺽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여자의 얼굴빛은 마치 영화에서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는 것처럼 창백하게 변해 갔다.
‘이 망할 놈의 신이 뭐 이런 것까지 카피를 한 거야?’
습지 거대 거머리의 공격 방법과 외형은 지난 어비스에서 본 스몰 웜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망할 놈의 신이 이 원시시대를 만들기 위해 지난 어비스의 세계관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이 원시시대를 이용해서 지난 어비스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어쩌면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습지 거대 거머리에게 피를 빨리고 있는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다다닥!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이달투드워프들에게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는 습지 거대 거머리를 향해 달려가 용의 뼈로 만든 칼로 몸통을 베었다.